바다와 돌 외 1편

[신작시]

 

 

바다와 돌

 

 

김선우

 

 

 

한 번도 쉬어 본 적 없는 심장―
이것은 바다의 독백이라고 하자

 

당신, 당신들을 듣고 만지고 이해하기 위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돌들의 대화라고 하자

 

태어난 이래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파도를 보고 있다
단 한 번도 같은 모양, 크기, 그림자가 없는 수십억 년의 포말
생성과 해체를 동시에 수행하는 줄기찬 근력의 언어 앞에
발 달린 짐승들 달변의 입은 자주 속되다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 태초, 라고 해안에 쓰고
너라는 외계의 심장을 향해 내가 귀를 연 때, 라고 읽었다

 

이곳에 오기 전 잠시 살았던 다른 바다에서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 사랑이 죽고도 몸이 살면 그 몸을 뭐에 쓰려고?

 

바다가 뱉어 놓은 살아 있는 돌들이 해안에 앉아 있다

 

주먹만 한 뜨거운 돌 하나씩을 서로의 가슴에 묻어 준 사람들을
여기서는 연인이라 부른다고 했다

 

 

 

 

 

 

 

 

 

 

 

 

 

티끌이 티끌에게

 

 

 

내가 티끌 한 점인 걸 알게 되면
근사한 일들이 생깁니다

 

자정의 시간이 가벼워지고 웃음이 많아지죠
연애가 아름다워지고 용서가 수월해집니다
나 하나로 꽉 찼던 방이 드넓어지고
아주 많은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되죠

 

하찮은, 변두리라 불리는 것들이나
중요한, 중심이라 불리는 것들이 모두
닿아 본 적 없는 별의 부스러기들일 뿐이란 걸
알게 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겨나지요

 

드넓은 우주에 한 점 티끌인 당신과 내가
춤추며 흐르다 하필 여기서 서로를 알아챈,
이보다 더 근사한 사건이 어디 있겠어요?

 

때로 우리라 불러도 좋은 티끌들이
서로를 발견하며 첫눈처럼 반짝일 때
이번 생, 이라 불리는 정류장이 화사해지죠

 

가끔씩 공중 파도를 힘껏 첨벙이며
서로에게 찰나의 밥을 먹여 주는 다정한 접촉
영원을 떠올려도 욕되지 않는 역사는
지금 여기 한 점 티끌들의 유랑뿐

 

 

 

 

 

 

 

 

 

 

 

 

 

 

작가소개 / 김선우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96년 《창작과비평》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녹턴』과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캔들 플라워』, 『물의 연인들』, 『발원: 요석 그리고 원효』가 있다. 청소년 소설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청소년 시집 『댄스, 푸른푸른』,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부상당한 천사에게』, 『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 그 외 여러 권의 시 해설서가 있다. 현대문학상·천상병시문학상·고정희상 등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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