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후회 없음’을 결심하다

[기획 인터뷰]

 

 

‘후회 없음’을 결심하다

–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담당의사 안자혜

 

 

인터뷰 : 김상혁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1)

  1)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국문학의 위상』 김현문학전집 1, 문학과지성사, 1991, 50쪽.

 

‘무용한 문학의 유용함’을 역설하는 저 유명한 문장은 작가를 위로하는 동시에, 작가가 좀처럼 떨치기 힘든 열등감을 재차 드러낸다. 문학이란 대체로 쓸모없다는 것. 김현의 말마따나, 작가는 자기 글로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할뿐더러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기획 인터뷰에 관한 청탁을 받자마자 나는 어떻게든 ‘덜 문학적인’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문학과 가장 멀리 존재하는, 그래서 진짜 밥과 돈을 만들어내며, 그러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전문가를 만나보리라 결심하였다. 시를 쓰려고 의자에 앉을 때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걸 이리 열심히 하고 있나, 매번 회의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시작하는 에세이의 끝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 역시 느끼거나 의도하였을 것이다. 내가 인터뷰를 통해 훔쳐보려는 그러한 삶이 실은 가장 문학적일 수 있다는, 최고로 재미없는 결론 말이다. 신생아집중치료실(이하 NICU)을 담당하는 안자혜 선생님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생명을 다룬다는 실감을 가지는가?’였다. 그리고 내가 미리 준비한 저 질문 속엔, 미숙아를 살리는 직업이 얼마큼이나 문학적일 수 있는가를 우선 가늠하려는 천박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기계적으로 첫 질문을 읽었으나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이상한 질문이네요’란 말을 덧붙여야 했다.

 

인터뷰 전, 그의 안내를 받아 NICU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생명의 실감’이니 ‘문학적’이니 하는 단어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기대한 것은, 희미한 불빛과 우중충한 벽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긴장한 의사와 간호사, 미숙아의 크기를 압도하는 거대한 기계장치 등이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본 건 아기자기하고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파스텔 색조의 벽지였다. 거기엔 오색찬란한 풍선과 돼지와 토끼가 붙어 있다. 생과 사를 ‘다룬다’고? NICU 벽의 발랄한 꾸밈이 그런 호기심과 질문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우선 축복받고 있었다. 세상에 막 나온 아이가 가장 먼저 받아야 할 것이 축하와 축복이라는 사실을, 형형색색의 풍선과 동물 들이,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는 안자혜 선생님과 동료들의 모습이 정확히 말해 주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개인 당직실에서 마주 앉았다. 갑작스러운 인터뷰가 어색하여 그러기도 했겠지만, 그는 최고로 지쳐 있을 오후 시간에도 가장 지치지 않았을 때의 나보다 훨씬 건강하고 밝아 보였다. 우리나라 영아 사망률이 2016년 기준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낮다, 극소 저체중 출생아 생존율은 미국의 생존율과 유사할 만큼 발전을 이루었다, 같은 딱딱하고 의례적인 내용을 묻고 답하는 중에, 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의 미소를 주시하다가 문득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 의사는 ‘착한 사람’일까요?
― 그렇게 말할 수 없죠.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기에 좀 놀랐던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하지만 좋은 의사는 대체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반적으로 기대하듯, 의사라는 직업에 훌륭한 인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인지?
― 그게 인성이라기보다는.

그는 호흡을 가다듬더니 잠깐 허공을 쳐다봤다. 나는 좀 멋쩍은 나머지 ‘이상한 질문이네요’란 말을 반복해 버렸다.
― 아뇨. 의사는 그저 착하다기보단, 착한 방식으로 이기적인 사람이죠. 그러니까 의사는 자기 환자를 애지중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서워하는 거죠.
― 무서워한다?
― 내 환자 혹시 잘못될까 봐, 무서워하는, 걱정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지는.

막연하게 나는 두 가지 답변 가운데 하나를 기대했다. NICU 의사는 선하니까, 아이를 ‘부모같이’ 돌볼 것이다. 혹은 NICU 의사에게도 어쩔 수 없이 아이란 치료 대상일 뿐이다, 정도의 답변. 하지만 그는 무서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 NICU 의사가 부모는 아닙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마음과 비슷한 무엇이 있어요. 그 비슷한 무엇을 가져야 좋은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아니지만 부모의 마음과 비슷한 무엇. 이 답변을 곱씹다 보니 이후 질문들은 조금 겉돌았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내 아들이 태어났다. 부모가 되면 모든 게 달라진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는데, 실은 아내가 임신했다는 걸 안 뒤에도 내 생활이나 생각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토하는 것도 아내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도 아내의 일이다. 초음파 사진을 볼 때마다 실제 내 마음보다 부풀려서 어떤 감동을 표현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누구도 감동을 강요한 적이 없는데도 그땐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가 부모의 세계를 바꾼다는 말을 이해한다. 아이는 내 생활만 바꾸는 게 아니라, 나의 과거마저 바꾼다. 가령 나에게 대학원 진학이란 평생 과오였다가, 이젠 지금의 내 아이를 만나기 위하여 거쳐야 했던 행운의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반작용처럼, 아이라는 존재는 나의 현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 선생님은 따님을 ‘아기양’이라고 부르시죠. 의사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겠죠?
― 아, 네.

자식 이야기에 그는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돈에 신경 별로 안 쓰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는 아들을 보면서 내가 돈이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속물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의사 아버지, 부자 어머니가 아니라서 좀 그렇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딸을 부러워하며 질문을 던졌는데, 답변이 시원하지가 않았다. 아직 아이니까, 그래도 바쁜 엄마를 이해하긴 어렵겠지, 정도로 짐작했는데, 그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 NICU 온 뒤로 제일 멀리 가본 곳이 강원도예요.
― 강원도요?
― 딱 한 번 강원도요. 병원이 NICU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게다가 언제 응급상황이 생길지도 알 수 없으니까.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비행기 같은 걸 타고 멀리 휴가를 간다거나 하는 일, 지난 2년 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 그래도 아이는 자랑스러워하죠? 엄마를.

나는 내가 원하는 답을 듣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좀 못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활을 후회한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처럼 멋지게 성공한 사람이 말하는 후회란 지나치게 문학적이다,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안자혜 선생님 아이가 이곳에 와서,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본다면, 분명히요.
― 저는…….
지금 나는 당시 인터뷰의 녹취를 듣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여기서 분명하게 떨린다.
― 제가 일하는 곳에 가족이 오는 것을……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가 저를 부끄러워하진 않겠죠. 저는 누군가가 꼭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자식에게도 존경받는, 의사의 자부심을 확인하려는 취지에서 가볍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직업에 대한 신념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와, 아이와 가족의 의미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많이 달랐다. 나는 뻔하고 지루해서 던지지 않으려던 질문 하나를 꺼냈다.
― 혹시 후회하세요?
그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끌었다. 재밌는 건 다음의 비슷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가 금방 대답하였다는 점이다.
― 의사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고, 혹은 언젠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 아니요. 저는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두 질문 사이에 무엇이 달랐던 걸까. 나는 짓궂게도, 후회하느냐고 다시 물었고, 그도 다시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나는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언젠가 사보에 실린 그의 다른 인터뷰를 살펴보았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본과 3학년 때 소아청소년과에서 첫 실습을 하게 된 안자혜 교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반해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된 그녀는 그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나는 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올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그가 8개월 된 미숙아를 살렸다고 기뻐하였을 때, 난 처음으로 뱃속에 있는 생명이 진짜 생명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해, 임신중단에 대한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태아가 가진 생명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저 양가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배웠다. 하지만 그는 자기 신념과 자기가 살려낸 생명에 끊임없이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자주 후회와 절망을 토로한다. 그리고 그러한 절망의 말과 비슷한 무게의 어조로, 괜찮다고, 많이 기쁘다고 쓰기도 했다.

 

그가 사적인 방식으로 쏟아낸 말들을 여기 지면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후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내가 읽은 바, 그의 우울한 감성은 자기 존재 자체를 흔들 만큼이나 강력하고 구체적이다. 나는 서두에 그를 덜 문학적인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분명히 밝혔으며, 실제로 그의 직업은 문학적 멜랑콜리와는 동떨어져 있다. 그는 대체로 쾌활하고 건강한 모습이다. 그렇게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후회 없는 사람으로 보이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후회 없음’이 자연스러운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매 순간의 결심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는 얼마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미 나는 바뀔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앞뒤에 붙은 글을 다 옮기진 않았으나, 저건 당연하게도 후회와 절망의 말이다. 그런데 나는 저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이렇게 바꾸어 말하기도 하는 그를 상상하게 된다. 아니요. 저는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이 전복을 가능케 함으로써 결국은 그를 지금의 안자혜로 조금씩 만들어 온 결심이 바로 NICU 담당의의 ‘문학’일 것이다.

 

 

 

 

 

 

 

 

 

 

 

 

 

 

작가소개 / 김상혁

2009년 《세계의문학》 신인상 등단.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민음사, 2013),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문학동네, 2016).

 

   《문장웹진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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