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와 립싱크 - 서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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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페르소나와 립싱크

 

 

서희원

 

 

 

 

 

    2006년 신춘문예로 등단해 단편을 발표해 온 박찬순은 2018년 올해까지 총 세 권의 단편집을 출간하였다.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명성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것은 번역가로서의 이력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70년대 이후 출생한 한국인 중 누구도 박찬순이 정성스럽게 빚어낸 언어에 추억을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박찬순은 1977년부터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번역하는 일을 하며, 그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30년 가까이 빵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맥가이버> 같은 미국 드라마에서부터 <아마데우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영화까지 1,000편 이상의 영상물을 한국어로 옮겼으니 한국인이 박찬순의 언어에 추억을 빚졌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1)

 

    번역가와 소설가. 언뜻 보면 상이하고 또 다른 방향에서 골똘히 생각해 보면 다른 점보다는 유사한 점이 더 많아 보이는 두 가지 삶을 살아가며 박찬순은 교집합에 해당하는 약간의 단편을 창작했는데, 첫 번째 소설집 『발해풍의 정원』(2009, 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립싱크」와 두 번째 작품집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2013, 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소라고둥 공화국」이 그것이다.2) 「립싱크」의 주인공은 다큐멘터리 제작의 통 · 번역 일을 하고 있고, 「소라고둥 공화국」의 ‘나’는 동시통역사이니, 작가의 실제 삶과 텍스트 속 인물들의 언어로 형상화된 삶, 번역과 소설이라는 작업의 교집합이라고 이 단편들을 칭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외화 더빙과 동시통역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흥미로움을 안겨 줄 색다른 이야기와 함께 ‘번역’이라는 상징적 문화 행위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또한 담겨 있다.

  1)  내 오래된 추억의 한 조각도 여기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원조 미국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할머니와 함께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한참을 보시더니 내게 하버드 대학이 좋은 대학이냐고 물으셨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이라고 답을 했더니, 역시 좋은 대학 다니는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르다며, 하버드 대학 학생들은 한국말도 저렇게 잘한다고,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하버드 대학에 꼭 가라고 말씀하였다. ‘천국에도 드라마가 있다면 천사가 더빙을 하겠죠, 할머니. 하버드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걔들보다 제가 한국말은 더 잘해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더빙된 외국 드라마를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며 화면을 잠시 흐리게 하는 추억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2)  이 단편들에서의 인용은 별다른 구분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인용한 구절 옆에 쪽수만 병기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겠다.

 

    「소라고둥 공화국」의 주인공인 ‘나’는 성공한 동시통역가이다. 단편은 통제할 수도, 통역할 수도 없는 어떤 소리에 쫓기듯 섬을 떠나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 시작하며, 탈출의 과정에 삽입되는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통해 서사를 전달한다. ‘나’의 평정심을 뒤흔드는 것은 우연히 만난 자신의 대학 선배이자 첫사랑인 ‘제임스’가 부는 소라나팔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동안 자신이 억누르며 살아왔던 세월에 대한 회한과 후회가 귀환하는 소리이며, 성공한 삶이라고 굳게 믿어 왔던 자부심이 일종의 허위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의 환청이다.
    “소백산 자락의 깊숙한 산골 마을 출신”(121)인 ‘나’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학진학을 한 이후 강박적으로 자신의 출생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는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직업을 “세상에서 가장 도시적이고 지적이며 교양 있는 직종인 국제회의 동시통역사”(121~122)라고 생각하는 ‘나’의 태도에는 자부심과 함께 살아왔던 삶의 편향이 담겨 있다. ‘나’는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열리는 세계번역가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을 떠나는 김에 올랜도에서 멀지 않은 키웨스트에서 열리는 소라나팔 대회의 통역 일도 함께 맡게 된다. ‘나’는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통역을 진행할 때 겪게 되는 낭패감을 잘 알고 있지만, 키웨스트라는 지명이 주는 감각 ― “걸리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키, 웨스트, 하고 두 단어를 따로 떼어 소리 내어 보았을 때 그 말은 곧 서쪽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꽉 막혀버린 내 삶의 다음 장을 열어 줄 무슨 열쇠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열쇠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나는 시간은 곧 돈이라는 내 직업 세계의 상식도 팽개쳐 버리게 되었고 나는 키웨스트를 반드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109~110) ― 에 취해 이를 일과 여행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일종의 기회로 생각하고 이를 수락한 것이다. 어감에 도취되어 행한 오역(誤譯)의 장소에서 ‘나’는 지금은 제임스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대학 선배이자 첫사랑인 이희재를 만나게 된다. 오래전 이희재는 ‘나’에게 번역의 기술뿐만 아니라 대학 생활의 의미도 알려준 선배였지만 그가 사랑을 고백하며 던진 “우리 촌티 나는 사람끼리……”(113)란 말에 ‘나’는 단호하게 이별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촌티”라는 단어가 문화적으로 세련된 서울 친구들에게 느끼던 ‘나’의 열등감을 날카롭게 찔렀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는 「소라고둥 공화국」을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나’는 언어를 정성스럽게 번역할 줄만 알았지 그 언어를 발화하는 사람에 대해 깊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 에피소드가 분명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 ‘나’는 자신이 일류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국제회의 동시통역이란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야. 내 귀에 들려오는 이방의 언어를 나는 겹겹이 쌓이고 쌓인 내 삶의 둔덕으로 가져와 내가 알고 경험한 모든 질료와 섞어 비비고 체로 쳐서 비단실로 뽑아내야만 해. 그것도 말하는 이와 동시에. 그건 순간의 예술이야. 난 그걸 위해서 뼈가 으드득 내려앉는 숱한 낮과 밤을 보냈어. 상대의 눈물과 한숨까지도 살려서 옮기려면 시와 소설을 읽고, 음악과 미술도 감상할 줄 알아야 한다면 닦달 당했던 걸 알기나 해? 텍스트 분석과 통번역 전략 짜기로 항상 머리에 쥐가 났던 파리 통번역대학원 시절은 또 어쩌고. 시사 상식, 금융, 경영, 지역학 등등 그 수많은 주제 발표 세미나는. 막상 어려운 공부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내 앞에 놓인 게 뭐였는지 알아? 망망대해의 초입에 겨우 발가락만 담그고 서 있는 왜소한 내 모습이었어. 웬 통번역의 분야가 그리도 넓고 깊은지. 문학, 미술, 연극, 패션에다 IT, 의료, 컨설팅, 금융, 산업공학, 원자력, 우주 과학에 자원외교까지.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앞두고는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그 수많은 날들을 너희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어?”(127~128)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읽을 수 있는 동시통역사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함께 중요하게 읽어야 할 것은 이 문장 사이에 존재하는 기묘한 역설과 아이러니이다.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역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자신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주 쉽게 타인이 살아가며 지불해야 했던 고통은 폄하한다. 타인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은 내면의 상태를 음성기호를 통해 발화하는 것이 말이라면, 언어는 내면의 번역이며, 우리 모두는 일종의 통역가이다. ‘나’의 실수는 모든 언어의 어원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그 땅의 끝에서 첫사랑이 대학 시절 알려준 헤밍웨이 소설의 한 구절 ― “허무 가운데 계신 허무님, ― 우리에게 일용할 허무를 주옵시고……”(129) ―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삶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디로 갔을까. 젊은 날의 그 숲 속은. 바람에 흔들리며 책장 위에 드리우던 그 잎새의 그림자는.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까, 나는. 산다는 건 단지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그림자로 걷는 일임을.”(129) 박찬순은 언어는 인간의 그림자이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림자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립싱크」의 첫 장면은 문자를 번역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상 번역의 특수한 어려움을 기술하는 흥미로운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는 “번역 대사를 화면 속 여자의 입과 맞추어”(335) 보며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을 영국 여자의 입과 표정, 몸짓에 어울리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1946년도에 민스미어에서 뒷부리장다리물떼새 한 마리가 발견되었어요’라는 문장은 “46년도에 여기서 뒷부리 한 마리가 발견됐어요”로, 다시 “사라졌던 뒷부리가 46년도에 여기서 딱 한 마리 발견됐어요”로, 마지막에는 “사라졌던 뒷부리가 딱 한 마리 발견됐어요. 46년도에 여기서”라는 문장으로 완성된다. 「소라고둥 공화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립싱크」에서도 하나의 문장을 입과 표정, 몸짓에 어울리는 삶의 구어체로 바꾸는 ‘나’의 에피소드는 중요하다. 가면이란 어원을 가진 페르소나가 사회적 인격을 지칭하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속마음과는 다른 많은 말을 내뱉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작가에 따르자면, 일종의 ‘립싱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사회적 소통을 위해 발화하는 과정이 ‘립싱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이 단편 속 ‘나’가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분명하게 전달된다. ‘나’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3년째 보살피고 있지만 ‘나’는 결코 전통적 의미의 열녀가 아니다. ‘나’는 함께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하는 윤 피디와 오래 전부터 그리고 남편을 간호하는 지금도 쉽게 몸을 섞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337)라는 솔직한 말처럼 ‘나’는 결혼의 의리도, 육체의 요구도 모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더빙의 과정에서 익힌 언어적 감각을 통해 뇌출혈 후유증으로 모든 문장을 반쯤 깨어진 상태로 발화하는 남편의 말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번역하며, 병원의 관계자들이 병원비를 독촉하는 숫자처럼 차가운 말을 그대로 받아내며, 이 신산한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누군가는 쓰러진 남편의 곁을 우직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나’의 드러난 모습만을 보며 그 의지에 찬사를 보낼 것이고, 윤 피디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불쌍한 남편을 병원에 뉘어 놓고 성적 욕망만을 취하는 못된 여자라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을 함께 읽은 독자는 ‘나’를 어떠한 단어로 지칭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마치 ‘나’가 번역하는 다큐멘터리 속 “뒷부리장다리물떼새”가 영국에서는 보호해야 할 자연의 상징처럼 취급되고, 한국의 새 박사에게는 “주로 영국과 스페인, 지중해에 무리 지어 사는데 어쩌다 길을 잃고 우리나라까지 날아왔다”는 이유로 “길 잃은 새, 미조”(350)라고 불리며, ‘나’에게는 진화의 법칙에서 열외가 된 “거추장스런 부리”를 가진 새로 인식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라일락이 핀 언덕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며 떨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네다 실연을 당하고, 가슴 속에서 나오는 호흡을 말이 아닌 소리로 연주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옮기기 위해 그 말에 담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행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관계나 상황에 맞춰 기계적으로 입을 움직이며 적절한 말을 하고 살아가지만 그 말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는 다른 욕구에 몸을 맡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소설가는 겨울 거리를 걸어가면 보이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입김의 모습처럼 생경한 말들을 어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번역은 소설가가 하는 그 일을 지칭하는 상징적 단어일지도 모른다. 번역과 소설, 번역가와 소설가의 일, 립싱크와 페르소나, 이 둘의 간격은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지에 피어난 꽃과 같지만 천천히 그 줄기를 따라가면 그것이 모두 한 나무의 꽃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변웅필
표지 / 변웅필

변웅필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강아지 만득이와 살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소개 / 서희원


문학평론가. 2009년 《문화일보》, 《세계일보》 평론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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