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컷 - 조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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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베스트 컷

 

 

조진주

 

 

 

    홍보용 제품 사진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제품의 장점이 부각된 사진을 고를 것. 제품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것. 초점이 맞지 않거나 상품의 기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진들은 당연히 사용할 수 없다. 드러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지나치게 드러난 사진, 예를 들어 약해 보이는 손잡이 부분이나 제품의 미관을 해치는 회사 로고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사진 따위도 제외해야 한다. 기준을 충족시킨 쓸 만한 사진을 골라내고 남은 사진들은 한데 모아 두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곧 삭제될, 불필요한 자료들이었다.
    사진 선별 작업이 끝나 갈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늘고 톤이 높아 언제나 들떠 있는 듯 느껴지는 목소리.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옆자리에 앉은 한 주임이 대신 아는 체를 했다. 현기 씨 친구 왔네요. 그제야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았다.
    원호는 자신의 동기인 강 사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사 3년차인 그에게서는 안정감과 여유가 느껴졌는데, 그 모습이 긴장해 있는 나와 비교가 되어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에게 향한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원호가 내 쪽을 돌아보고 씩 웃어 보였다. 양쪽 입 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지어 보인 미소가 쓸 만해 보였다. 그를 렌즈에 담는 중이었다면 앞의 컷들은 삭제해도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컷 역시 삭제용 폴더에 담아 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반 만에 생활 가전을 취급하는 회사의 홍보팀에 계약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잡다한 업무와 더불어 홈페이지와 팸플릿 등에 쓰일 제품 이미지나 매달 사보에 실릴 사진 등을 찍는 것이 내 일이었다. 6개월 동안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업무 평가를 거쳐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원호와 마주친 것은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점심시간 전에 들른 화장실에서 먼저 나를 알아본 그가 아는 체를 해왔다. 그러나 나는 금방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고등학교 때에 비해 살이 붙어 있었고 얼굴도 어딘가 변한 듯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 시절의 원호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비쩍 마른 몸에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고 분위기 파악을 못 해 종종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던 그를 두고 아이들은 '국멸치 새끼'라고 불렀다. 국 끓이고 건져낸 멸치 새끼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본 원호는 마치 절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깊지 않은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 까닭은 얼마 뒤 그의 제안으로 함께하게 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알 수 있었다.
    “너 그 사진 기억나? 고등학교 축제 때 네가 나 찍어 줬던 거. 나 되게 잘 나왔었는데.”
    팔팔 끓는 부대찌개를 열심히 휘젓던 그가 불쑥 내게 물어 왔다.
    “사진?”
    “네가 그 사진 네 홈페이지에도 올렸었잖아. 그때 애들이 그 밑에다가 댓글로 시비 걸었는데 네가 내 편 들면서 걔네한테 막 뭐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글쎄, 그랬었나?”
    “고등학교 올라가고 나서 누가 내 편 들어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언젠가 한 번쯤 널 꼭 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또 만나게 되네. 우리도 인연인가 보다, 야.”
    원호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낯간지러운 말을 듣는 일이 영 민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를 따돌리는 행위를 묵인하는 쪽이었다.
    그 당시 원호를 괴롭히는 데 앞장선 아이는 반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반장을 그리 나쁘게 여기지 않았는데, 그가 원호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에게는 친절한 편이었고 내게도 꽤 살갑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나 음악 등 관심 분야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이어서 나는 반장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싶어 했었다. 그러니 그가 원호를 부당하게 대한다고 해서 내가 앞장서서 그를 만류할 까닭은 없었다. 원호를 찍은 사진을 내 홈페이지에 올린 것 역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원호는 왜 내가 그의 편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일까.
    그러나 굳이 그의 기억을 정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가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편이 유리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1층 로비에서 우리 팀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나는 그와 같은 판단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무리 중에는 원호의 동기 강 사원을 비롯해 원호와 꽤 친분이 있는 듯한 우리 팀원 몇 명이 있었는데, 원호가 그들에게 나를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아주 괜찮은 친구라고 소개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쁘지 않았고, 그의 오해를 내버려두기로 했다.
    아쉽게도 원호가 말한 게시물은 확인할 수 없었다. 홈페이지를 제공하던 사이트가 서비스를 중단한 탓이었다. 사이트에서는 서비스 종료를 고지한 뒤 넉넉한 백업 기간을 주었지만 나는 차일피일 미루다 그 기간을 놓치고 말았다. 늦은 취업 준비로 한창 바빴기도 했지만 홈페이지에 올려 둔 게시물들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 탓도 있었다. 올려 둔 자료라고 해보았자 주로 중고등학교 시절 직접 찍은 사진들이었고, 그것들은 이미 개인 외장 하드에도 저장이 되어 있었다.
    서랍 구석에 처박아 둔 외장 하드를 꺼내 고등학교 2학년 축제 때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당시에도 사진작가를 지망했던 나는 교지 편집부라는 명목 하에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예술 관련 부서들이 걸어 놓은 제법 수준급 작품들과 인스턴트커피나 분말 아이스티 따위를 내놓던 찻집의 풍경,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밴드부의 공연 모습 등이 찍힌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듯했다. 시끄럽고 분주하게 흘러가던 시간과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미래를 꿈꾸던 어린 얼굴들.
    원호가 전면에 나온 사진은 단 한 장이었다. 사진 속에서 원호는 어느 한 곳을 응시하며 다정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 시절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알았나 싶어 조금 놀랐다. 원호가 말한 것이 이 사진일까? 그의 기억이 잘못되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작성했다는 댓글들, 예를 들어 ‘너희가 하는 말들이 테러지 뭐냐.’와 같은 말들은 영 생소하게 들렸지만 그 아래 쓰였다는 그를 향한 조롱과 욕설들은 나 역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그 시절의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은 그와 정반대되는, 예를 들면 축제 기간이 끝난 뒤 어느 점심시간 때 있었던 일과 같은 것뿐이었다. 축구를 하던 중 멀리 날아간 공을 찾으러 갔을 때였다. 공은 마침 운동장 옆을 지나던 원호 근처에 떨어졌다. 나와 눈이 마주친 원호가 공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본 나는 마치 그 모습을 보지 않은 것처럼 조금 더 멀리 있던 또 다른 아이를 불러 공을 건네줄 것을 부탁했다. 순간 갈 곳을 잃은 원호의 발과 민망한 듯 거둬지던 그의 두 손. 그런 장면들이 마치 클로즈업을 시킨 화면처럼 점점 또렷하게 떠올랐다. 만약 원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와 같은 장면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다른 팀인데도 불구하고 원호와는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그가 담당한 정수기가 프로모션에 들어가며 팀끼리 협업하는 일이 많아진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리 팀의 혜원 대리 때문인 듯했다. 대리 1년 차에 나보다 한 살 많은 혜원 대리는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었다.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지, 원호는 업무를 핑계로 뻔질나게 얼굴을 비추며 그녀 주위를 알짱거렸다.
    원호는 업무 중 분위기를 띄울 때마다 우리의 과거를 자주 들먹이고는 했다. 문제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따돌림 당하던 ‘국멸치 새끼’가 아니라 질 나쁜 양아치들의 눈 밖에 나 괴롭힘을 당하던 순진한 학생이었고, 나는 그를 위해 양아치들과 당당히 맞선 용기 있는 영웅이 되어 있는 식이었다. 그 정도의 각색쯤이야 모른 척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좋지 않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어쨌든 원호가 퍼뜨린 내 미담 덕분에 나는 비교적 빠르게 팀에 융화될 수 있었다. 계약이 끝난 뒤 정규직 전환을 노리는 내게 분명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가 언제 말을 바꿀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와 같은 상황에도 점점 익숙해졌다. 심지어는 가끔 그의 말이 사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정말 고마운 존재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는 굳이 기억나지 않는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관계란 기억을 토대로 형성되는 것이니 그가 나를 좋게 기억하고 있다면 그에 맞추어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 가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그 이후 정말로 그와의 관계가 조금씩 변하는 듯했는데, 왠지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느끼는 것이었다.
    금요일 저녁, 혜원 대리까지 함께 셋이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러 가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혜원 대리와 함께 시간을 보낼 핑계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을 원호를 생각하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회사 주변을 벗어나자는 원호의 의견을 따라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은 해방촌 부근의 한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안쪽에 원호가 잘 아는 집이 있다고 했다. 택시에서 내려 이리저리 얽힌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어느 갈라진 길 끝에 어린 남자 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덩치로 보아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턱을 괴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의 머리 위를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조그만 아이의 실루엣 위로 부서져 내리는 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습관처럼 재킷 주머니에서 콤팩트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세 번째 셔터를 눌렀을 때, 갑자기 아이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카메라를 든 나를 발견한 아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비속어와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꽤 쌀쌀한 밤이었는데도 아이는 반바지 차림이었다. 바지 아래 드러난 무릎과 종아리에는 대충 붙여 놓은 반창고와 채 떨어지지 않은 상처 딱지가 매달려 있었다. 앞서가던 원호와 혜원 대리가 아이의 고함소리를 듣고 내가 있는 쪽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서둘러 그들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났다.
    원호의 인솔 아래 도착한 곳은 아담하고 소박한 일본식 술집이었다. 미닫이문을 여니 오픈식 주방을 둘러싼 바 테이블과 다섯 개 남짓의 테이블이 놓인 홀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본풍 소품들과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분위기는 좋은 편이었지만 회사 주변의 다른 술집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원호는 주방에서 일하는 한 남자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는 나를 불렀다.
    “너도 알지? 명재.”
    나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를 금방 알아보았다. 원호와 같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로, 그 역시 사교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호와 달리 반 아이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데, 크고 다부진 몸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예상 못 한 인물과 갑작스레 맞닥뜨린 나는 당황하여 조금 바보 같은 자세로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바에 나란히 앉아 주방 안에서 분주히 오가는 명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혜원 대리를 의식해서인지 원호는 더욱 열심히 떠들어댔고, 혜원 대리도 그런 원호의 말에 적절하게 반응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느 정도 술이 올랐을 무렵, 원호가 내게 회사 일 외에도 개인적인 사진 작업을 하고 있냐고 물어 왔다. 오는 길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더 이상 개인 작업을 하지 않았다. 작업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표절 사건이었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내 작품에 대해 표절을 제기한 이는 나와 가깝게 지내던 후배였다. 그녀는 내가 자기 작품의 소재와 구도와 색감까지 따라했다고 주장했고 당연히 나는 그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상황은 내게 불리하게 흘러갔는데 그녀가 내게 포트폴리오를 보여준 적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뿐더러 어떤 사진들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나의 주장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지저분한 싸움이 이어졌고 많은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 그와 같은 일을 겪고 나자 카메라를 드는 것이 두려워졌고 결국 도망치듯 취직을 택했다.
    나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원호와 혜원 대리에게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혜원 대리가 힘든 시간이었겠다며 위로를 건네 왔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지자 잠자코 듣고 있던 원호가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고등학교 때 꿈을 꿔요. 교실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하나둘 제 주변에 모여들어서 저를 둘러싸는 꿈이죠. 벌써 십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시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스스로도 너무 한심하더라고요. 그래서 후회해요. 만약 그때 현기처럼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그 게시물 사건 때 현기도 많이 힘들었을 거거든요. 그래도 현기는 그 양아치 새끼들이 뭐라고 하든 굴하지 않고 멋있게 딱 반기를 들었잖아요. 난 끝까지 겁쟁이였으니까 지금까지 이 모양인 건가, 하고 후회하고 있어요.”
    “원호 씨도 잘하고 있어요.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원호와 혜원 대리가 낯간지러운 위로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몇 마디에 나는 순식간에 그와 같은 처지가 되어 있었다. 모두에게 비웃음 당하던 국멸치 새끼와 내가. 그의 말은 분명 사실과 달랐다. 몇몇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시절 있었던 일을 통째로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을 하나씩 따지자면 그 사건에 관한 세세한 기억까지 들추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그 기억이란 게 원호의 주장에 불과했고 나는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그저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와서 우리가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굳이 깊이 파고들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옹색하게 느껴졌다. 학창 시절에 있었던 해프닝에 대해 몇 마디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혀끝에서 맴도는 욕을 애써 삼키며 바 위에 놓여 있던 애꿎은 장식품만 만지작거렸다. 익살맞은 승려의 형상에 커다란 뿔 같은 장식이 달린 괴상하게 생긴 장식품이었는데 아기자기한 바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밤이 깊어 손님이 뜸해지자, 명재가 잠시 우리 대화에 참여했다. 명재는 나와 원호가 함께 왔다는 사실이 의아한 눈치였다. 우리가 재회하게 된 계기를 명재에게 설명하다가 원호는 역시나 문제의 게시물 사건을 언급했다. 원호의 이야기를 듣던 명재는 더욱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그랬다고?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더 물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했지만 명재는 더 이상 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그때 원호가 명재에게 물었다.
    “참, 고등학교 때 현기 별명 기억 나냐? 얘가 좀 어리바리해서 어벙이라고 불렸잖아.”
    “무슨 소리야? 야, 내가 언제 그렇게 불렸어?”
    계속되는 원호의 헛소리에 결국 발끈한 나는 필요 이상으로 큰 목소리를 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지고 말았다. 원호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명재에게 ‘맞지 않아?’ 하고 동의를 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명재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 별명은 아니었던 거 같다.”
    흥분으로 달아올랐던 얼굴은 이제 다른 이유로 뜨거워졌다. 빠르게 뛰던 맥박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올수록 온몸에 힘이 빠졌고 점점 기분이 가라앉았다. 원호와 혜원 대리는 어느새 다른 화제로 넘어가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더는 그들의 이야기에 참여할 기분이 나지 않아 나는 계속해서 술잔만 비워 나갔다.
    내 잔이 비든 말든, 원호는 오로지 혜원 대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쉴 새 없이 변하는 원호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혜원 대리의 말에 추임새를 넣을 때마다 흰자위가 가득 드러나도록 커지는 두 눈과 불룩하게 솟아오르는 광대. 자꾸 넓어지는 콧구멍과 씰룩대는 입가.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는 그의 얼굴은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얼뜨기 캐릭터 같았다. 수줍은 듯 오므린 두 다리 사이에서 연신 비벼대는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혜원 대리가 원호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리고 곧이어 원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어수룩하던 얼굴은 간데없고, 그 옛날 사진 속 소년처럼 따뜻한 빛을 품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지금과 같은 장면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던가. 하드보드지 따위로 만든 조잡한 장식이 붙은 칠판 앞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는 아이스티를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원호의 모습이 어렴풋이 아른거렸다. 곧이어 떠들썩한 교실 한가운데 유독 고요했던 그의 주변과 그 위를 비추던 햇빛이 인화지 위로 서서히 드러나는 상처럼 점점 선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주변 아이들이 숨을 죽인 채 그를 주목하고 있었고 잠시 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점점 커지는 웅성거림을 들으며 나는 카메라를 들어 수차례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비친 원호의 표정은 지금처럼 시시각각 바뀌었다.
    갑자기 떠오른 장면은 예고 없이 들이닥친 불청객처럼 나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런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원호는 여전히 속없이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잔에 남아 있는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눈을 떠보니 내 방 침대 위였다. 술에 잔뜩 취해서도 용케 집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와 손을 씻는데 손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살펴보니 2cm가량의, 어딘가에 긁힌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전날 밤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았다. 점점 커지던 원호의 몸짓, 벌게진 원호의 얼굴과 내 멱살을 잡던 그의 손. 정신이 돌아올수록 어젯밤의 광경이 하나둘 눈앞에 그려졌다. 원호는 혜원 대리 앞에서 계속 허세를 부렸고 그 과정에서 자꾸 과거 나와의 관계를 회고했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그에게 몇 마디를 해주었다. 좀 나아진 듯 보여도 그 속은 여전히 한심한 국멸치 새끼였다. 주말 동안 나는 혹시 원호가 먼저 연락을 해오지는 않을까 내심 기다렸다. 그럼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동안 그의 거짓말에 동조한 것을 인정하고 따져야 할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려 애써야 할까. 그러나 그런 내 고민을 비웃듯 원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로비에서 혜원 대리와 마주친 나는 조금 멋쩍은 마음에 일부러 더욱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녀는 냉랭한 얼굴로 내 인사를 받고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잠시 당황했지만, 월요일 아침에는 대개 컨디션이 좋지 않기 마련이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난주에 촬영한 사진 중에는 쓸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다음 달 사보의 체험 코너에 실을 사진이었다. 지원한 직원 중 매달 한 명을 선정하여 원하는 문화 체험을 할 기회를 주고 그 후기를 전하는 코너인데, 이번에는 40대 중반의 남자 팀장이 스케이트보드를 배웠다. 영상이 아니니 씽씽 달리는 모습까지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스케이트보드 위에 멋지게 올라선 모습이라도 찍어 가야 할 텐데 운동신경이 형편없는 그는 영 중심을 잡지 못했다. 보드 위에 오르기만 하면 긴장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험상궂은 인상이 더욱 굳어버렸고 자세는 어정쩡하기 짝이 없었다. 연신 넘어지는 바람에 그의 티셔츠는 곧 땀과 먼지로 얼룩덜룩해졌다. 알고 보니 그가 신청한 것은 캘리그래피인데 강사 섭외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엉뚱하게 스케이트보드를 배우게 된 것이라고 했다.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결국 그는 울컥 짜증을 냈다. 거 대충 좀 찍고 끝내면 안 되나?
    사진에는 그의 지친 얼굴과 더러워진 옷,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중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 그나마 그럴듯한 것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골라낸 사진들을 모아 놓고 보니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것처럼 보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혜원 대리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를 피했다. 아무래도 금요일 밤 원호와 드잡이를 한 일 때문인 듯했다. 그 일은 원호와 나의 문제였고 그녀가 내게 화를 낼 이유는 없었으므로 지금과 같은 태도는 분명 부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사와 마찰을 빚어 보았자 내게도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메신저를 보내 물었다.
    – 대리님,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혹시 저한테 기분 상하신 거라도 있습니까?
    잠시 뒤, 혜원 대리로부터 짧은 답장이 왔다.
    – 몰라서 묻나요?
    – 그날 저랑 원호 때문에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그리고요?
    뜻밖의 물음에 나는 무엇을 더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원호와의 일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게 화를 내느냐고 물어야 할까.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혜원 대리가 다시 메신저를 보내왔다.
    – 그게 다예요?
    그제야 나는 우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 죄송하지만 제가 무엇을 더 말해야 하죠?
    – 뭘 사과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 모르겠는데요. 원호와 싸운 일 때문에 이러시는 거 아닌가요?
    – 그러니까 그 싸움이 왜 벌어졌는데요?
    혜원 대리의 질문에 나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원호와의 문제를 지금에 와서 설명하기도 어려웠을뿐더러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답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호와 나의 문제에 그녀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일까. 나는 금요일 밤, 원호와 싸움을 벌인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한창 난장판이 벌어지던 그 장면 속에는 내게 달려들던 원호만 등장할 뿐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기억이 떠오른 것은 핸드크림 냄새 때문이었다. 혜원 대리가 사용하는 핸드크림의 톡 쏘는 시트러스 향을 맡는 순간 그날 밤 원호와 나 사이에 끼어들던 손이 기억났고 곧이어 멀리서부터 급하게 달려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 시각 그녀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고 핸드크림 향을 풍기며 돌아왔다. 그렇다면 정작 원호와 싸움이 벌어지던 순간에는 그곳에 없었다는 것 아닌가.
    나는 탕비실로 혜원 대리를 불러내 그와 같은 사실을 따져 물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저한테 이상한 말 하셨잖아요?”
    “제가 대체 무슨 말을 했는데요?”
    “남자가 어지간히 고팠던 모양이라느니, 무슨 이상한 걸레라느니…….”
    “제가 정말 대리님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그랬다고 했어요.”
    “그랬다고 한 건 또 뭡니까? 직접 들은 거 아니에요?”
    “정확히는 원호 씨가 들었어요. 자리가 멀어서 저한테는 잘 안 들렸고요. 나중에 제가 계속 물어보니까 원호 씨가 말해 줬어요.”
    “그럼 지금 원호 말만 듣고 이러시는 거예요?”
    “그날 밤 현기 씨가 제 쪽을 보며 뭐라고 한 뒤에 원호 씨가 갑자기 화를 냈어요.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았어요. 뉘앙스라는 게 있잖아요. 아, 그리고 나 그때 분명 자리에 있었어요. 핸드크림 향? 그런 게 정말 기억나요? 거기 음식 냄새가 진동했는데?”
    “그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하고 있네.”
    “끝까지 사과할 생각은 없나 보네요. 그럼 전 제 방식대로 대응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내게 으름장을 놓은 혜원 대리는 나를 남겨 두고 먼저 탕비실을 나섰다.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날 함께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아니었다. 아니, 원호가 게시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던 그때부터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의 미담을 사무실에 퍼뜨린 것도 표면적으로는 나를 영웅으로 치켜세운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그의 불편한 과거를 들추어내지 못하도록 애초에 봉쇄해 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자신이 영웅이 되려 하고 있었다. 원호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는 이번에도 말을 만들어내며 우겨댈 것이므로 우선 확실한 정황을 파악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자리로 돌아왔지만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니터에 잔뜩 펼쳐 놓은 사진들은 모두 비슷하게 보였고, 나는 그것들을 어떤 기준으로 골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밤, 명재가 일하는 가게를 찾아갔다. 명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썹을 꿈틀 추켜세우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다시 철판 위에서 부지런히 뒤집개를 놀렸다. 나는 바의 구석 자리에 앉아 맥주와 고로케 하나를 시켜 놓고는 하릴없이 명재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놀림은 섬세하고 날렵했다. 가끔 손님과 가벼운 대화를 나눌 때면 꽤 살가운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그 눈빛이 의외로 세심하고 주의 깊었다.
    열 시가 넘어 조금 한가해지자 그가 내게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나는 금요일 밤 원호와 나 사이에 있었던 다툼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 그 일로 온 거야?”
    내 부탁을 들은 명재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는데,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나를 조금 한심하게 여기는 듯 보이기도 했다.
    “보다시피 내가 계속 너희를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리고 그때 나 식자재 창고에 있었을걸? 돌아와 보니까 이미 너희가 서로 멱살 잡고 있던데.”
    “그럼 혜원 씨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어?”
    “글쎄, 중간에서 너희 말리려고 애쓰던 건 기억나는데 계속 거기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뭐, 그러지 않았을까? 어쨌든 내가 봤을 때는 있었으니까.”
    모호한 대답에 일부러 모른 척을 하는 것일까 싶어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지만 그 속내를 알 수는 없었다. 대답을 마친 그는 무언가 더 말할 것이 있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커다란 뿔이 달린 승려 모양의 장식품을 들이밀며 물었다.
    “이건 또 언제 갖다 놨냐. 여기 인테리어랑 좀 안 어울린다.”
    “그거 계속 거기 있었어.”
    “아냐. 저번 주에 왔을 때는 없었어.”
    “일 년 전부터 그 자리에 계속 있던 거야.”
    “그래? 그때 못 봤던 거 같은데…….”
    “묻고 싶은 건 그거뿐이야?”
    명재의 물음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혹시 원호가 말했던 고등학교 때 그 홈페이지 게시물 말이야. 너도 기억해?”
    “글쎄, 난 홈페이지 관리 같은 거에 취미가 없어서.”
    그를 붙잡고 있어 봤자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을 듯했다. 남은 맥주를 들이켠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나를 보고 있던 명재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건 기억나. 네가 일부러 원호 사진을 찍고 다녔던 거. 원호가 어떤 여자애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증거를 잡겠다면서 카메라 들고 따라다녔잖아. 그때 네가 찍은 사진들, 애들끼리 몰래 뒤에서 돌려 보던 것도 생각난다. 나중에 그거 그 여자애까지 보지 않았나?”
    “갑자기 무슨 소리야.”
    “축제 다음날인가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여자애가 울고불고 난리 났었잖아. 그 소문 네가 찍은 사진 때문에 시작된 거 아냐? 원호랑 그 여자애랑 둘이 있는 사진.”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 당시 주변 사람들 찍는 게 내 취미였어. 그러는 중에 원호도 찍혔을 수는 있지. 그런데 일부러 걔 골탕 먹이겠다고 따라다닌 적은 없어. 적어도 난 사진 갖고 그런 장난은 안 쳤어. 여자애가 울었던 건 나도 기억나는데 그건 반장이 걔한테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런 거고. 그리고 네 말대로라면 원호 걔가 왜 지금 나한테 고맙다고 하겠냐?”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옛날부터 너희는 하는 짓이 비슷했어.”
    “내가? 그 국멸치 새끼랑?”
    “언젠가 원호가 나한테 묻더라. 나 수학 되게 못 하지 않았냐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까 학교 다닐 때 내가 수학한테 맨날 혼나던 기억이 난대. 그런데 난 수학한테 거의 혼난 적 없거든. 딱 한 번 크게 깨졌는데 아마 수업 진도 무시하고 다른 과정 풀다가 걸린 거였을 거야. 그런데도 걔는 끝까지 자기 기억이 옳다고 우기더라.”
    “그거랑 나랑 뭔 상관이야?”
    “원호가 왜 그렇게 기억하는지 알아? 자기가 수학을 못 했거든. 걔는 옛날부터 자기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곤 했지. 그래서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야. 걔 머릿속에서는 내가 수학한테 혼나던 그 장면 하나만 계속 반복 재생되고 있는 거지.”
    명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무채를 썰기 시작했다. 입안이 바짝 말라 나는 생맥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맥주를 따라 내 앞으로 가져온 명재는 내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말은 좀 심하지 않았냐? 멸치 육수 닦는 걸레라니.”
    “뭐라고?”
    “오늘은 조용히 먹고 가라고. 너 그날 밤 원호 때렸던 건 기억 나냐?”
    그리고 내가 맥주를 다 비우고 가게 문을 나설 때까지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외장 하드에 저장된 원호의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사랑에 빠진 소년의 앳된 얼굴은 여전히 설렘과 수줍음으로 물들어 있었다. 좌측 화살표 키를 눌러 폴더 안의 다른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그날 교실에서 찍힌 원호의 사진은 그것뿐이었다. 바로 직전 그가 지었을 우스꽝스러운 표정들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여자애를 훔쳐보다 들켜 당황하던 원호의 모습, 주변의 야유소리와 이어진 더러운 소문들, 그리고 내가 찍은 사진들을 돌려 보던 아이들의 바쁜 손과 생각보다 커진 일에 뒤늦게 원호의 편을 들며 수습해 보려 하던 나의 얼뜬 모습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렴풋이 그려지는 이 장면들은 명재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허상일까, 내 의식의 창고 깊숙이 묻어 두었던 과거일까.
    사진 속 축제 풍경은 한없이 유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서빙 중인 콜라를 엎지르고도 낄낄대는 아이,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라도 된 양 기타를 잡고 과장된 몸짓을 해 보이는 아이,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서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아이, 그리고 웃고 있는 원호까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날카롭게 벼려진 어둠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진을 계속 앞으로 넘기다가 원호가 좋아하던 여자애를 찾아냈다. ‘문예부’라는 팻말이 달린 교실 문 앞에서 다른 아이들과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은 맑고 예뻤다. ‘멸치 육수 닦는 걸레’ 같은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명한 웃음이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이, 원호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 네가 기억 안 난다고 뻗대는 바람에 대리님이 더 화난 거 같다. 일 더 크게 만들지 말고 그만 인정하고 좋게 끝내라. 그런데 진짜 기억이 안 나는 거냐, 안 나는 척하는 거냐?
    나 역시 그에게 묻고 싶었다. 원호 너는 그중 어느 쪽이냐고. 만약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로 네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는 어떤 과정을 거쳐 그것들을 솎아냈느냐고. 그럼 우리는 무엇을 사실이라 믿을 수 있을까. 무엇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좋을까.
    “그 기억 안 난다는 말 좀 그만 할 수 없어요?”
    원호의 메시지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잊고 있던 목소리와 함께 오래전 어떤 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우 덥고 끈적거리는 날이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는 금방이라도 물로 변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카페에 들어선 그녀의 찌푸린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그녀의 손에는 곱게 접힌 검정색 장우산이 들려 있었다. 저녁에 소나기 예보가 있어 우산 겸 양산으로 쓸까 하고 들고 나왔는데 정작 너무 지쳐 우산을 펼 기운도 없었다고 했다. 내 앞에 앉은 그녀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느라 며칠째 잠을 자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가 시킨 카푸치노에는 시나몬 가루가 유독 많이 뿌려져 있어서 입에 묻히지 않으려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사소한 장면들까지 모두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내게 보여주었다는 문제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뭐, 따지고 보면 완벽한 내 아이디어라는 건 없겠지. 누구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거니까. 근데 난 정말로 네 작품을 떠올린 적 없어.”
    “선배, 개소리 마요.”
    그해 내 수상은 취소되지 않았고 그녀는 다음 공모전에서도 수상하지 못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고, 결과는 내 편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카메라를 꺼내 컴퓨터에 연결한 뒤 지난 금요일 밤에 찍은 사진 파일을 열었다. 가로등 아래 쪼그리고 앉은 남자 아이와 그 주변을 밝히는 불빛은 따뜻하면서도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두어 장의 사진을 넘기자 나를 쳐다보는 아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벌떡 일어난 아이의 찡그린 얼굴, 추켜올린 가운뎃손가락과 다리의 상처들. 나는 그것들을 한 장씩 지워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사진 한 장을 외장 하드에 옮겨 두었다.

 

    다음날, 혜원 대리는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아예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로 작정한 듯했다. 반면 원호의 태도는 모호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원호와 마주쳤을 때 나는 그가 내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든가 혜원 대리처럼 내 존재를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서 있던 그는 자신이 내릴 층에 도착하자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세게 한 번 꾹 쥐더니 말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원호의 손이 닿았던 어깨를 몇 번이고 털어냈지만 어쩐지 그의 뜨뜻한 손바닥이 계속 내 위에 얹혀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다음날 역시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나는 내심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랐다. 그동안 지나온 수많은 날처럼, 조금씩 희미해지다 언젠가는 완전히 산화되어 날아가기를. 사흘 뒤, 팀장이 나를 회의실로 부르기 전까지는 정말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팀장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혜원 대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날 밤 일에 대해 혜원 대리가 팀장과 상담을 한 모양이었다. 사건의 진위를 묻는 팀장에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할 뿐이었다. 회의실을 나서기 전, 팀장은 사무실에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리가 돌고 있다며 귀띔해 주었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 길인지 잘 생각해 봐. 그리고 회사 생활에 있어서 팀워크라는 것도 중요한데 이런 불화 일으키는 거 보기 좋지 않아. 혹시라도 다음 직장에 가게 되면 실수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는 거야.”
    팀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뒤로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음 직장이라는 팀장의 말이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내가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한 예고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가라앉은 듯한 사무실을 둘러보다 우연히 한 주임과 눈이 마주쳤다. 평소처럼 가벼운 눈인사를 보내려 했지만 그는 곧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자신의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기분 탓일까. 그런 그의 반응이 자꾸 신경 쓰였다.
    사보 제작 담당자로부터 문의가 들어온 것은 그날 오후였다. 사진 파일이 잘못 보내진 듯하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원래 보내야 할 A컷 폴더 대신 추후 삭제할 용도로 만들어 둔 B컷 모음 폴더가 전송되어 있었다. 다시 제대로 된 파일을 보내주려는데 해당 폴더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지통과 다른 하드 드라이브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역시나 폴더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폴더를 잘못 지운 듯했다. 보통 업무가 완료될 때까지 관련 파일을 보관해 두곤 했는데 요 며칠 정신이 없다 보니 습관적으로 삭제를 해버린 것이었다.
    “그걸 왜 벌써 삭제해요?”
    사정을 말하자 담당자가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저는 필요 없는 파일인 줄 알고…….”
    “일도 끝나기 전에 파일을 지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마감까지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최대한 빨리 해결해 주세요.”
    나는 거듭 사과하며 어떻게든 사진을 복구해 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파일을 복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완벽히 복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전화를 내려놓고 잠시 열어 둔 휴지통 폴더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삭제되어야 할 것들과 삭제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혼재되어 있었을, 그러나 지금은 텅 비어버린 그것을. 지워진 것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까. 어떻게든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빈 화면을 보고 있을수록 어쩐지 그 일이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다.
    삭제되어야 했을 B컷 폴더 안에서는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라선 불쌍한 중년 남자가 허우적거리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 아래로 사내 메신저 수신 창이 쉴 새 없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발신자는 원호였다. 나는 명멸하는 원호의 이름을 가만히 바라보다 수화기를 들고 서비스 지원팀의 내선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 연결음이 울린 뒤 굵고 낮은 음성이 이어졌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수화기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복구하려고 했더라? ■

 

 

 

 

 

 

 

 

 

 

 

 

 

 

작가소개 / 조진주

1985년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현대문학》 등단.

 

《문장웹진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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