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축제
김은지
술을 마시고 손을 맞잡고
가장 슬픈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았다
형이 잘못 사는 얘기
그녀가 잘못 떠난 얘기
질투, 못지않은 억울함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난
손잡은 사람 이야기에 울고 있는데
화장실에 갔던 한 명이 뛰어나와
이거 십오일 전에 삼켰던 약이 명치에 걸려 있었나 봐 라며
토해 낸 알약을 보여줬다
우리는 모두 기뻐 일어나
술상을 가운데에 두고 박수를 치며 춤을 추려는데
창가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소리로
“이제 그만 잡시다. 좀.”
옆집 사람의 한 마디
잠에서 깼을 때
우리가 꺼낸 알약은 보이지 않았다
꾸벅 꾸벅
약이 놓여 있었던 것 같은 곳을
쓸어 보았다
민트
심장이 커졌다
바위를 이식한 것 같아
운동화를 이식한 것 같아
토끼를 이식한 것 같아
꽃잎 한 장을 올려 주었지만
서쪽 창가에 널어 보았지만
왜일까
줄어들지 않는다
고양이가 숨는 덤불에
문틀을 만들고
재활용품을 내놓는 소리에
올리브유를 뿌린다
별에는 빨간 펜으로 오답 처리를 하고
팍, 팍, 팍
트랙을 파낼 듯이 달린다
1.2배속으로 재생되는 하루
그러니까 왜일까
커튼을 치고
현관문을 점검하고
심장을 가로로 뉘어 주었는데
아니어도 괜찮아
그리고 그건 좋은 거야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그건 좋은 거야
심장이 나를 데리고 간다
팍. 팍. 팍
더위를 버티지 못하게 한다
두 개의 삶을 일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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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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