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단편소설]

 

 

주인

 

 

김호애

 

 

 

 

    4층 주인집에서 키우는 갈색 푸들이 용이의 말티즈 엉덩이에 코를 박으며 따라붙었다. 도망치던 말티즈는 짧은 순간, 푸들 아래에 깔려 낑낑댔다.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용이가 발을 굴렀다.
    “가!”
    푸들은 현관 쪽으로 잽싸게 몸을 뺐다가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발톱 부딪는 소리를 내며 제 집으로 돌아갔다. 위층에서 개의 하울링과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들의 노골적인 애정공세를 본 건 처음이라 용이는 비위가 상하고 말았다.
    용이는 말티즈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끼워 안아 올렸다. 개를 어르고 달래며 엄지만 한 작은 뺨에 입을 대고 으르렁, 뽀뽀까지 해주었다. 개는 허공에 뜬 두 발 탓인지 불안한 기색으로 두리번거렸다.
    “문 좀 똑바로 닫으라고 몇 번을 말하냐.”
    도라가 큼직한 부직포 가방을 들고 현관에 들어서며 말했다. 문이 무거워서 그런가, 용이는 괜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평소보다 부은 도라의 눈두덩을 발견하곤 물었다.
    “오늘…… 그날이야?”
    “미친. 이거나 정리해.”
    용이는 내가 뭘 또 어쨌다고, 꿍얼거리며 품에 안고 있던 말티즈를 바닥에 내려놓고 도라가 들고 온 가방을 건네받았다.
    “똘이, 이리 와.”
    도라의 부름에 개는 곧장 제 주인의 품에 안겨 가슴께에 발을 대고 입가를 핥았다.
    마트의 로고가 크게 박힌 가방엔 냉동 햄버거, 냉동 만두, 냉동 미트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트에서 또 직원들을 상대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냉동식품들을 강매한 게 분명했다. 용이는 냉동 칸의 빈 곳마다 앞으로 먹게 될 양식들을 쑤셔 넣었다. 손끝이 시려 왔다.

 

    며칠째 끼니마다 같은 구성으로 상이 차려졌다. 가격도 맛도 종류도 제품을 만들어낸 기업도 다른 냉동식품들이었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나면 어딘가 비슷한 맛이 났다. 이미 얼린 음식을 녹인 맛. 햄버거의 패티와 만두의 속과 미트볼의 고기는 짜고 시고 건조하면서도 기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라 앞에서 음식투정을 할 수는 없었다. 용이는 입에 물린 음식들 탓에 우욱, 헛구역질을 하려다가도 꾸덕한 토마토소스를 뒤집어쓴 미트볼과 함께 구역질을 삼켰다. 용이가 이런데, 도라는 소스에 변화를 주어 가며 맛있게 먹었다. 햄버거 빵을 열어 놓고 머스터드소스를 뿌릴지 케첩을 뿌릴지 고민하던 도라가, 이내 케첩 통을 거꾸로 들어 상에 탁탁 치며 말했다.
    “나, 임신했다고 그러네.”
    사레들린 용이가 캑캑댔다. 도라는 태연하게 케첩을 짰다. 푸르륵, 소리를 내며 케첩이 튀었다.
    “언제?”
    용이가 간신히 기침을 멈추고 물었다. 물으면서도 자신의 질문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잠자코 도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누가 그래? 라고 묻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병원 갔다 왔어. 저번 주에.”
    도라는 쩝쩝. 햄버거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쩔래? 이제 그만 헤어져야겠지?”
    잠시 눈을 감았던 도라가 다시 한 입 베어 물고 웅얼웅얼 말을 이었다.
    “네 애 아니야.”
    그 말끝에 도라가 웃어버려 용이는 할 말이 없어졌다.
    “빨리 정리하고 나가 줬으면 좋겠어.”
    말을 마친 도라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쩝쩝, 입안 음식을 삼키고 겉이 딱딱하게 마른 만두를 집어 들었다.
    “그게 할 소리야?”
    숟가락을 놓치고 묻는 용이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미안해해야 해? 왜? 네가 뭔데?”
    도라는 진심으로 궁금한 얼굴이었다. 용이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티슈를 뽑아 손을 닦았다. 손끝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휴지 조각이 잘 떼어지지 않아 짜증이 치밀었다.
    “내가 뭐냐고? 그건 지나가는 동네 개한테 물어봐도 답 나오겠다. 나쁜 년아.”
    용이의 목울대가 묵직하게 뜨거워지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존심이 상했고 몸 전체가 심장박동으로 꽉 차는 것 같았다. 용이는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훑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도라는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미안함은 없었다. 용이의 아이인 뱃속 아이는 어차피 낳지 않을 거였고 다음 주엔 아는 언니가 소개해 준 병원에 갈 예정이었다. 언니는 어려서 회복이 빠를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도라는 무서움에 다짐이 약해질 때마다 지나며 몇 번 본 적 있는 집 앞 반지하방을 떠올렸다. 희멀건 형광등 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곰팡이, 소변금지 팻말을 기대어 놓은 반 토막 난 창문, 대낮부터 찾아들 눈 가린 어둠을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되면 언니의 고향이라는 바닷가 마을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곳에 도라 네가 할 만한 일이 있을 거라고 했다, 언니가.
    도라는 미트볼을 입에 넣었다가 뺐다. 소스가 씻겨 나간 갈색 고깃덩어리를 똘이의 분홍색 밥그릇에 넣어 주었다. 사료만 먹도록 훈련받은 개는 낯선 고깃덩이를 잠시 경계했지만 본연의 습성대로 쉽게 입안에 넣고 씹었다. 다 먹어치운 다음엔 도라에게 달려들어 더 내놓으란 몸짓을 했다. 깜깜한 눈동자에 도라의 피곤한 얼굴이 비쳤다. 소스가 시어 입안에 침이 고였다. 도라는 눈물을 닦았다.

 

    용이는 작은 공원에 둘러진 우레탄 트랙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목덜미의 땀이 쉽게 말랐다. 집을 나올 때 ‘나쁜 년’보다 더 심한 욕을 해주지 못한 게 분했다. 그러면서도 용이는, 아이를 가졌다는 도라의 말을 믿을 수 없어 곱씹고 또 곱씹었다.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도라이지만 방금 본 도라는 정말이지 낯선 모습이었다. 도라는 분명 남들 눈에 띄는 행동을 즐기긴 해도 이런 식으로 막나가는 아이는 아니었다. 용이는 도라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확신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졌을 리 없지. 그렇다면, 아이 같은 건 처음부터 없거나 가졌다면 자신의 아이라는 말이었다. 언제지. 두 달 전이었나. 그럼 맞는 거 아닌가. 정말 나인가. 용이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이를 낳자고 할 수는 없었다. 돈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어떻게 지우라고 해. 그럼 이대로 헤어져? 용이는 고개를 저었다. 도라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열일곱 겨울, 각자의 집을 나와 처음 가본 동네에 보증금을 반씩 보태 시작한 살림이었다. 얼떨떨할 정도로 즐겁고 자유롭기만 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단란함이 견고해져 갈 때 즈음, 용이의 배달 오토바이가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가 터졌다. 함께 모았던 돈을 빼 사고를 수습하니 살림살이는 더없이 빠듯해져 있었다. 용이의 부러진 정강이와 허벅지 뼈가 붙는 동안 도라는 마트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했다. 쉬어야 할 시간까지 죄다 수당과 맞바꿔야 겨우 생활이 유지되는 수준이었다. 용이는 다친 다리 때문에 매일을 누워 있다시피 지내야 했는데 60 언저리를 가리키던 체중계 바늘이 80을 훌쩍 넘기게 되면서부터는 작은 일에도 쉽게 우울감에 빠져들곤 했다. 그사이 도라와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들과는 완전히 멀어졌다. 도라를 통해 종종 그들의 소식을 전해 듣긴 했지만 그런 얘기들은 전혀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아 실감이 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 세계 속 친구들은 교복을 입고 벌점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고, 방과 후에는 주유소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었다. 용이는 조금이라도 그 선에 닿고 싶었다.
    꽤 오랫동안 이어진 재활치료를 마치고 예전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용이는 도라의 도움으로 도라가 일하는 마트에 취직했다. 창고에서 물품들을 정리하는 일이 주 업무였는데, 하필 창고관리팀장의 취미가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음흉한 농담 하기였고 거기에 도라가 포함된 바람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여느 때처럼 팀장의 말에 낄낄 동조하며 웃는 사람들을 향해 용이가 주먹을 내지른 것이었다. 그 일은 팀장의 공개사과로 마무리되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이후 마트 직원들은 용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문제되지 않던 고등학교 자퇴라는 최종 학력이 갑작스레 도마에 올랐고 나중엔 가출청소년 꼬리표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계속 버티고 있다가는 도라와의 사이에 관한 것도 안 좋게 소문 날 것 같아 용이는 쫓겨나다시피 마트를 그만두었는데, 그 일을 두고 도라와 몇 차례 다툼이 일었다. 도라는 용이에게 애 같다고 했고 용이는 저 어른들이 이상한 거라고 했다. 둘 다 어렸고 매우 지쳐 있어 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도라와 소원해진 사이 용이는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성장하는 동안, 월세와 생활비는 고스란히 도라의 부담으로 지워졌다.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다투는 날들이 잦아졌고 용이는 끝내 자신의 보증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똑 부러지는 도라는 그 자리에서 그럴듯하게 각서를 만들었으며 용이에게 이름을 적게 했다.

 

    이제 그만 나가라는 도라의 말에 용이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건, 그 종이 때문이었다. 다 무효라고 억지를 부려 볼 생각까지 해봤지만, 그건 생각에 그쳤다.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과 더불어 갈 데 없는 현실에 서글픔이 배가 되었다. 이제 곧 겨울인데, 거처를 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이런 식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도라가 야속하고 치사했다. 용이에겐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 동안 밖을 떠돌던 용이는 갈 데가 없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도라와 마주치게 될까 봐 건물 입구 앞을 서성이는데 어이, 소년!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이는 소리가 나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4층 주인집 남자가 베란다 난간 밖으로 몸을 내민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용이는 위를 향해 엉거주춤 인사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맨 위층의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통로를 타고 내려왔다.

 

    층마다 다섯 세대로 쪼개진 집이자, 방이 있고 4층은 층 전체를 터 한 세대가 사는 구조였다. 집주인 남자는 그곳에 혼자 살았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용이의 눈엔 그저 ‘어려 보이고 싶어 애쓰는 40대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입고 다니는 옷이나 목, 손목에 걸친 것들은 유행을 몇 박자씩 느리게 탔고, 도저히 복고풍으로는 봐줄 수 없는 아이템들은 어울리지 않아 겉돌기 일쑤였음에도, 남자는 용이를 만나기라도 하면 자신의 패션을 자랑하며 은근슬쩍 용이를 깔봤다. 거기에는 탄탄하게 다져진 경제적 기반에서 오는 안정감과 스스로를 ‘프리랜서 사진작가’라고 소개하는 낭만적 자아도취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는데, 용이가 그것에 개의치 않아 할수록 남자는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곤 했다.
    용이는 이곳에 이사를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자의 초대를 받아 도라와 함께 저녁을 먹은 날을 떠올렸다. 기름을 두른 팬에 파스타 면을 볶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도라가 멋지다, 입 모양으로 속삭였던 것까지 생각났다. 도대체 뭐가 멋인지 용이는 알 수 없었지만 괜스레 위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또 용이를 귀찮게 하려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용이는 남자를 피해 2층 보일러실에 몸을 숨겼다가 밖이 잠잠해질 즈음 잽싸게 3층 도라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도라는 없었다. 대신 방 안에 있던 똘이가 반가운 몸짓으로 용이에게 달려들었다.
    그 작은 동물은 귀여운 한편 용이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었다. 부담의 마음엔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한 마음이 함께였다. 어쩌면 도라가 자신을 이렇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용이는 똘이를 끌어안고 도라를 생각했다. 도라를 닮았을 아이는 쌍꺼풀 없는 눈에 키가 큰 어른으로 자랄 것이었다.

 

    문 밖의 어수선한 기척에 똘이가 튀어나가 현관문에 앞발을 대고 섰다. 용이도 똘이를 따라 현관문을 짚고 서서 서늘한 문에 귀를 댔다. 웅웅, 울리는 남자 목소리와 부스럭거리는 봉지소리, 살짝 웃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을 오르는 발들, 잠시 멈춘 뒤 웃음, 다시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이어지다 점차 작아졌다. 저 위에서 문이 열리고 몇 초 뒤 문이 닫혔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똘이는 배가 고픈지 밥그릇 주위를 돌며 낑낑댔다. 용이는 사료 한 줌을 크게 쥐어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리고 싱크대에 담긴 접시며 숟가락이며 모조리 닦기 시작했다. 그릇마다 소스가 굳어 있고 싸구려 고기에서 나온 기름기가 자욱해 두 번이나 퐁퐁을 묻혀 닦아야 했다. 빈 봉지들은 따로 모으고, 행주로 상과 싱크대의 물기를 훔쳐냈다. 싱크대 정리를 마친 뒤엔 걸레로 방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결국엔 아저씨로밖에 보이지 않는 집주인 남자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여자들이 드나드는 방. 용이는 속으로 욕을 뇌까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그 남자의 매력은……. 에이 몰라 시발, 바닥을 박박 문질러 주인 남자의 얼굴을 밀어냈다. 머리카락과 구불거리는 털들이 계속해 나왔다. 물걸레질을 한 번 더 하고 나니 더는 치우거나 닦을 게 없어졌다. 도라가 말끔하게 치워진 방을 보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풀리기를, 그래서 유예의 시간을 주기를, 용이는 바랐다.

 

    윗집 문이 열리고 사람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용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도어 록의 번호 키가 빠르게 눌리는 소리가 나더니 삐리릭, 잠금이 해제된 문으로 도라가 들어왔다. 도라는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걸레를 꼭 쥐고 있는 용이를 보고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안 갔네.”
    용이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렷하게 그려지는 정황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부터 돈, 돈 해대더니 결국 윗집 아저씨인 거냐. 일단은 도라보다 윗집 남자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다. 조카 같다더니. 조카는 개뿔, 좆같은 새끼.
    하아, 하고 짧게 한숨을 쉰 도라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일은 나가.”
    화장실에서 도라가 소리쳤다. 용이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도라는 세면대 앞에서 얼굴에 거품을 문지르고 있었다.
    “나쁜 년아.”
    도라가 눈가의 거품을 쓸어내고 눈을 가늘게 떠 용이 쪽을 돌아봤다.
    “내일 나갈게. 됐지? 애 잘 낳고 잘 먹고 잘살아라.”
    용이가 소리치고 문을 닫았다. 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용이가 백팩을 꺼내 닥치는 대로 옷을 욱여넣고 있는데 도라가 문을 박차고 나와 젖은 수건으로 용이의 뒷목을 후려쳤다.
    “미친 새끼. 내가 왜 나쁜 년이야? 내가 왜. 너 뭔데!”
    도라는 계속해서 용이의 등을 때리고 발로 차고 뒤통수를 퍽퍽 쳤다. 그럴 때마다 용이의 고개가 앞으로 꺾였다. 도라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울며 내는 소리에 욕이 반이었다. 울고 싶은 건 나야, 나쁜 년아. 너는 그 아저씨가, 너는, 좋냐, 어떻게, 어떻게 해, 나 어떡해. 용이는 생각하며 눈물을 삼켰다. 잠 한숨 자지 못했는데 어둔 밤이 그냥 지나갔다.

 

    “잘 가.”
    싸늘하게 말하고 도라는 출근을 했다. 원래는 갔다 올게, 였는데. 달라진 인사말이 용이의 마음을 서럽게 했다. 문이 쾅 닫혔다. 그래, 나가 줄게. 떠나 주마. 용이는 이를 갈며 백팩을 메고 꼬리를 흔드는 똘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똘이가 불안한 눈망울로 용이를 올려다보았다. 용이가 한쪽 무릎을 꿇고 똘이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으면 정을 좀 덜 줄걸 그랬다며 후회하는데 문 밖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초코인지 쪼꼬인지 하는 이름의 윗집 푸들이 앞에 있었다. 그 개는 똘이를 응시하다 이내 좁은 문틈을 비집고 방 안까지 들어와 뒤꽁무니를 쫓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똘이는 적극적으로 도망치지 않는 것 같았다. 용이는 기분이 이상했다. 왜 저런 놈이 쫓아오는데 가만히 있는 거야? 똘이 너도, 쟤가 마음에 들었던 거야? 용이는 똘이의 목줄 하나를 더 꺼내 갈색 푸들의 목에 채웠다.

 

    “훔친 개는 취급 안 하니까 말로 할 때 그냥 가지?”
    “진짜 훔친 거 아니라니까요! 제가 돈을 받고 파는 것도 아니고, 돈 드리면서 하는 건데. 뭣 하러 이래요.”
    용이가 능청스레 연기를 이어 갔다.
    “아, 우리 집 개 맞아요. 지인짜. 할아버지가 시켰다고요. 솔직히 제가 이런 거 먹을 나이는 아니잖아요. 전화 통화라도 시켜 드려요? 네?”
    턱수염이 볼까지 난 남자는 앳된 얼굴의 용이를 가는 눈으로 살폈다. 용이가 금방이라도 전화를 걸 태세로 휴대폰을 손에 쥐고 나서야, 그는 얼마의 돈을 받고 갈색 푸들을 받아 주었다.
    “손질만 해달라고?”
    “네.”
    “그건 안 잡아?”
    남자가 용이의 품에 안긴 흰색 말티즈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얜 아니에요. 전화 주세요.”
    용이는 대충 인사하고 번호를 남긴 뒤 그곳을 나왔다. 등 뒤가 서늘했다. 큰 죄를 짓는 느낌을 태연하게 지우기란 어려웠다. 용이는 똘이를 쓰다듬으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떠올렸다. 휴식과 복수…….

 

    반려견과 함께 이용 가능한 모텔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실 전, 방 상태를 확인받겠다는 약속에 보증금까지 얹어 주고 나서야 용이는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 안에서 용이는 사발면의 비닐과 애견용 간식을 뜯었다. 갑자기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갈색 푸들이 떠올랐다. 역겨워서 입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걸 보고 경악할 집주인 남자를 생각하니 아주 못할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좁은 화장실엔 어울리지 않게 스파 기능을 갖춘 큼직한 욕조가 있었다. 용이는 곧장 그곳에 뜨거운 물을 받고 몸을 담갔다. 정강이와 허벅지에 약간의 뻐근함이 느껴졌다. 퉁퉁한 그곳을 조심스레 주물러 풀어 주었다. 벌게졌던 몸이 물의 온도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하며 녹지근하게 피로가 풀려갔다.
    피부가 아플 정도로 뜨거운 느낌에 용이가 눈을 떴을 때였다. 욕조의 물이 뽀얀 빛으로 펄펄 끓고 있었다. 거품 사이로는 발가락같이 생긴 덩어리 몇 개가 보였다. 저게 뭐지? 용이는 그것들을 건지려 손을 뻗었다. 희부연 물속에서 뼈가 드러난 팔이 두둥실, 하고 떠올랐다. 용이의 비명이 타일 위를 미끄러졌다가 다시 돌아와 귀에 단단히 박혔다. 시야가 흐려져 눈앞이 아득해졌다. 용이는 정신을 일깨우며 가까스로 욕조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서 김이 훅 끼쳤고, 잔뜩 물을 먹은 엉덩이는 무겁게 느껴졌다. 오른 다리를 들어 올리자 후드득, 무릎 아래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풍덩 소리가 생생히 들리고 몸 안 깊숙한 곳을 찌르는 통증이 이어졌다. 용이는 안 되겠다 싶어 욕실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어깨가 차가운 타일에 닿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뒤이어 삶아진 팔 한쪽이 몸에서 떨어져나가 바로 눈앞에 패대기쳐졌다. 용이가 신음하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살려 주세요.”
    몇 초 뒤, 화장실 문틈을 비집고 똘이가 나타났다. 용이는 그 작은 개의 등장이 눈물 나게 반가워 흐흑, 울먹였다. 용이가 애타는 눈으로 똘이를 바라보았다. 안절부절 못하던 똘이가 일순간 눈을 빛내며 천천히 다가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달려들어 허겁지겁 용이의 볼 살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용이의 비명이 개의 침에 섞여 뭉근하게 사라졌다. 마침내 코를 물어뜯기고, 얼굴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었다. 용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투명한 물 아래로 큰 고깃덩이 같은 몸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용이는 발가락을 꼼지락 움직여 확인하고 두 손을 살폈다.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끝이 열 개, 온전했다. 용이는 어안이 벙벙하다가 방금 꾼 꿈을 되새겨 보고는 그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내용에 웃음이 났다.
    용이는 몸의 물기를 대충 닦고 알몸으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락스 냄새가 배어 있는 흰 이불 아래로 기어 들어가자 똘이가 냉큼 올라와선 품으로 파고들었다. 비뚜름하게 겨우 한 뼘 열린 창문 새로 밤공기가 흘러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개를 잡는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 됐으니 와서 찾아가라는 거였다. 용이는 알겠다 말하고 침대 위에서 뭉그적대다 퇴실 시간에 맞춰 방 점검을 받았다. 객실에 별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모텔 직원은 가도 좋다고 했다. 용이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면서 허리를 굽혀 똘이의 작은 머리통과 귀, 턱 아래를 긁어 주었다.

 

    “작아서. 이게 다야.”
묻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말하며 용이에게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용이는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봉지를 받아들었다. 남자의 말과는 달리 손가락 끝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토막 난 붉은 살덩이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끓일 사람은 있고?”
    용이가 뭐,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겠죠, 답했는데 남자가 말을 이었다.
    “없으면 여 뒷집에 가서 해달라고 해. 그 여자가 솜씨가 좋아.”
    용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봉지를 들고 건물을 돌아 남자가 말한 곳으로 들어갔다. 노인 한 명이 구석자리에 앉아 뚝배기에 밥을 말고 있었다.
    “저기요.”
    용이의 부름에 주방 안쪽에 있던 여자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혼자? 쫌 기다려야 하는데.”
    “이거.”
    용이가 봉지를 보이게 들었다. 여자는 알겠다는 얼굴로 지저분한 앞치마를 꾹 쥐고 다가왔다.
    여자는 잠깐 기다리라고 말한 뒤에 봉지를 낚아채 안으로 들어갔다. 용이는 손이 허전해지고 나서야 똘이가 곁에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놀라 밖으로 나가 보니 작은 개는 잔걸음으로 가게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용이가 똘이를 안아 올렸다. 늑골 아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 박동에 맞춰 묵직하게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 쿵쿵쿵쿵. 내가. 쿵쿵쿵쿵. 무슨 짓을. 쿵쿵쿵쿵.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두 손으로 벌인 일이었다. 나는 뭐지? 용이는 진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기 자신이 한없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똘이가 용이를 바라봤다. 까매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동자로 개새끼, 개새끼, 욕을 하고 있었다. 용이는 갈색 푸들이 끓여지는 동안 똘이에게 욕을 들어야 했다.

 

    여자는 흰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닫고 그걸 다시 봉지에 넣어 주었다. 용이가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자 똘이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용이는 몇 걸음 걷다 방금 나온 곳을 돌아보았다. 간판이 없는 식당. 문 옆에 달린 일반음식점 팻말과 유리문에 써진 단고기, 라는 단어가 이상했다. 거기서 나오는 자신의 모습과 통 안에 담긴 음식과 호일에 싼 반찬과 그 옆을 졸졸 따라오는 흰색 말티즈도 이상했다. 용이는 한참을 이상하다 생각하며 걷고 또 걸어 도라의 방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서 이걸 데우고, 4층으로 가야지. 눈앞에서 주인집 남자가 이걸 먹는 걸 지켜봐야지. 만약 4층에 없다면? 옥상으로 올라가서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용이는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려 보았다.
    도라가 비밀번호를 바꿨는지 숫자를 거듭 눌러도 도어 록은 열리지 않았다. 경고음이 여러 번 울린 뒤에야 용이는 다른 수를 떠올렸다. 보일러실에 비상용 카드 키를 올려놓은 걸 생각해 낸 거였다.
    줄줄이 설치된 보일러들 중에 ‘304호’ 딱지가 붙은 보일러 위를 더듬었다. 가슬거리는 먼지를 뒤집어 쓴 카드 키가 만져졌다. 그걸 도어 록 위에 대니 안쪽에서 잠금 장치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빡빡한 현관문을 확 열어 젖혔다. 똘이가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고 용이가 그 뒤를 따랐다.

 

    방 안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이단 서랍장과 책상이 통째로 넘어져 있고 한쪽 지지대가 빠진 노출형 행거 아래로는 쏟아진 옷들이 쌓여 있었다. 도둑이 들어 이곳저곳을 들쑤셨다기보다는 꼭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어디선가 토사물 냄새가 났으나 그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용이가 천천히 다가가 날렵하게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채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가는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물을 잠그고 바닥에 떨어진 몇 장의 사진을 주워들었다. 도라의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 도라는 꼭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배경은 집 앞 담벼락이거나 건물 옥상 벽이었다. 차림은 교복 차림이었는데 도라가 다니던 학교의 교복은 아니었다.
    “완전 변태 새끼네 이거.”
    용이는 가빠진 호흡을 고르며 주인집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역겨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곧장 냄비를 꺼냈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내용물을 냄비에 부었다. 손으로 찢은 깻잎, 같은 간격으로 썬 부추가 무너져 내리며 쏟아졌다. 탕은 금방 끓었다. 생각보다 냄새가 나쁘지 않아 놀란 그때, 갑자기 번호 키 눌리는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열렸다. 용이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보이지 않는 등 뒤의 상황을 그려 보았다. 도라일까? 갖은 변명거리를 떠올리는데 소년, 하고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주인집 남자였다. 그는 밀대를 들고 있었다.
    용이만큼이나 남자도 놀란 듯 보였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는 용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 나는 청소 좀 하려고.”
    정적을 깨고 남자가 말했다. 용이가 아, 하며 가빠진 숨을 골랐다. 남자는 문 옆에 밀대를 세워 놓고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는 방금 술에서 깬 사람처럼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남자가 어지러운 듯 잠시 서서 머리를 짚었다가 숨을 고르고 용이에게 물었다.
    “참, 조커 못 봤어?”
    “조커요?”
    “우리 집 강아지 말이야. 갈색. 푸들. 이만한.”
    남자가 두 손을 들어 가슴너비만큼 벌렸다. 초코도 쪼꼬도 아닌 조커였구나. 용이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 그런데 이건 무슨 냄새야?”
    남자가 킁킁거리며 용이의 냄비에 관심을 보였다. 용이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냥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울며불며 잘못했다 빌고 싶었다. 용이의 속을 모르는 남자는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그러는데, 괜찮으면 자기도 좀 줄 수 없겠냐고 물어 왔다. 용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진 책상을 바로 두자 두 사람이 앉을 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용이는 그 자리에 작은 밥상을 펴고 가운데에 냄비를 내려놓았다. 남자가 앉으며 냄비 뚜껑을 열었다.
    “요리를 잘하나 봐.”
    “아니요, 그냥. 맛이 어떨지.”
    용이가 얼버무리며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남자가 숟가락을 들어 먼저 한 술 떴다. 국물 맛을 본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그 모습에 용이는 속이 매슥거리기 시작했다.
    “맛있다. 좀 익숙한 맛이네.”
    “많이 드세요.”
    용이가 냄비를 남자 쪽으로 밀었다. 남자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건더기를 건져먹기 시작했다.
    “소년도 어서 먹지 그래?”
    남자가 뼈에 붙은 살을 발라 먹으며 눈짓을 했다. 열심히 고기를 뜯는 남자의 얼굴이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냄비가 절반쯤 비었을 때, 남자가 뭔가 생각난 듯 가져올 게 있다며 방을 나섰다. 그사이 용이는 재빨리 화장실로 가 먹는 척 억지로 목구멍 안에 밀어 넣은 음식물들을 게워냈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앞이 흐려졌다.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다리에 힘을 줄수록 무릎이 제멋대로 꺾이며 말을 듣지 않았다. 도라는 어디에 있는 건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상한 아저씨라는 생각에 도라가 걱정됐다. 우당탕거리며 위에서 남자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용이는 가까스로 화장실을 나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울컥 신물이 올라왔다. 남자는 큼직한 은색 보온병을 그러안고 다가왔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먹는 게 있어. 소년도 먹어봐 봐.”
    남자가 단단히 쥔 보온병의 뚜껑을 돌려 열고 그걸 컵 삼아 내용물을 부었다. 노란 국물에 기름이 뜬 액체가 흘러나왔다.
    남자가 용이에게 뚜껑을 내밀었다. 용이는 마지못해 그것을 받고 가까이 입을 대었다. 역겨운 노린내가 훅 끼쳤다. 용이는 남자를 흘긋 보았다. 남자의 눈가에 선뜻함이 서렸다.
    “왜, 못 먹겠어? 비위가 좀 약하구나. 그치?”
    남자의 말에 용이는 괜한 오기가 생겨 그걸 한 모금 크게 입에 물었다. 미지근하게 식은 액체는 느끼했다. 용이는 숨을 꾹 참고 단번에 삼켰다. 혀와 잇몸에 도톰한 막이 쳐지며 입안이 전체적으로 텁텁해졌다. 되직한 기름이 이 사이사이에 끼며 구린내를 풍겼다. 용이는 올라오는 토기를 참으며 뭐, 좀, 제 입맛에는 안 맞네요, 하고 말했다. 그 모습에 돌연 남자가 뒤로 몸을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웃겨 죽겠다는 듯 배를 부여잡고 찔끔찔끔 눈물까지 흘렸다. 작은 방 안이 웃음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용이는 영문도 모른 채 뚜껑을 내려놓고 눈치를 살폈다.
    “도라 말대로 너는 진짜 병신이구나. 너랑 이러고 산 도라도 참.”
    남자가 웃느라 흐느끼며 말했다. 용이가 상을 뒤엎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수치스러웠다. 도라와 엉긴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듯했고 자신의 이름을 들먹인 도라가 원망스러웠다. 용이의 엉덩이 아래에 깔린 남자의 가슴이 빠르게 들썩였다. 깔린 와중에도 계속해서 웃은 탓이었다. 용이는 남자의 얼굴을 세게 한 대 쳤다. 남자의 윗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소년, 더 힘껏 때려봐 봐.”
    남자가 입안에 고인 피를 모아 용이의 얼굴에 뱉으며 도발했다. 용이가 씩씩댈 뿐, 가만 있자 남자는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어린놈의 새끼들. 왜 그렇게 사니?”
    남자의 살기 어린 눈빛에 이제는 용이 쪽에서 웃음이 났다. 이 아저씨는 방금 자기가 무얼 먹었는지도 모르고 까불고 있다고 생각했다. 뭘 먹었는지 알면, 이렇게 웃지 못할 텐데.
    “아저씨 너도 병신이야. 방금 지가 먹은 게 뭔지도 모르는 게.”
    “뭐긴 뭐야, 우리 집 개새끼지.”
    정적이 흘렀다. 용이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 상황은 뭐고 여기는 어디인지,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무섭고, 도라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소년이 방금 마신 건 뭘까?”
    남자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이마와 목에 바짝 선 핏대가 보랏빛을 띠어 갔다.
    용이는 자신이 방금 뭘 마신 건지 알 수 없었다. 맛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역겨운 무언가라는 것만, 혀끝에 맴돌 뿐이었다. 남자가 아래에 깔린 팔을 꺼내 용이의 배를 밀었다. 용이가 힘없이 옆으로 밀려났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고 앉아 찢어진 입가를 조심히 만져 보며 피를 훔쳤다.
    “사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 세상살이가 그래.”
    남자가 중얼거리며 턱 아래를 문질렀다. 그때 똘이가 앙, 하고 짖었다. 용이는 정수리부터 척추까지 곧게 서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현실감에 보온병의 마개를 열어 안에 든 걸 모조리 방바닥에 부었다. 누런 액체가 왈칵 쏟아지며 토사물 비슷한 냄새가 났다. 똘이가 다시 앙, 짖고 현관을 향해 달려가 문을 긁었다.
    용이가 일어나 현관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면 왠지 도라가 있을 것 같았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있어야 했다.

 

    용이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엔 아무도 없었다. 복도의 찬 공기가 더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똘이는 허공을 향해 계속 짖었다. 용이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문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뒤에 있던 똘이가 냉큼 튀어나와 계단을 올랐다. 무언가에 홀린 듯 용이가 그 뒤를 따랐다. 등 뒤에서 다시 남자의 웃음이 시작되었다.
    4층 주인집 문 앞에 다다라서야 코를 찌르는 악취가 선명하게 맡아졌다. 용이는 문고리를 꼭 쥐었다. 이 문은 열려 있을 거였다.
    손잡이를 아래로 내리자 안쪽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용이는 천천히 문을 당겼다. 문 반대편에 기대어 있던 무언가가 열리는 문을 타고 스러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문을 젖히자 큼직한 검정 가방이 넘어졌다. 가방 지퍼에 달린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용이가 도라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때 무언가 단단한 것이 용이의 목 뒤를 후려쳤다.

 

    용이는 눈을 떴다. 사방이 깜깜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등 뒤에 묶인 자신의 양팔은 남의 것인 양 감각이 없었다. 용이는 오목한 벽에 기대어 앉은 채였는데 발목까지 물이 차 있다는 건 몇 초 뒤에야 인지한 사실이었다.
    용이는 온몸의 감각을 하나하나 일깨워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려 애썼다. 칙칙, 하고 압력솥이 내뿜는 증기소리가 멀지만 제법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규칙적인 소리에 용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어느 지점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

 

 

 

 

 

 

 

 

 

 

 

 

 

 

작가소개 / 김호애

1991년 서울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7년《대구매일신문》신춘문예 「닭을 먹다」당선.

 

   《문장웹진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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