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

[단편소설]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

 

 

이주란

 

 

 

 

    살던 집을 정리하고 8개월 전 전남 장흥으로 내려간 조수영은 대선을 치르고 난 다음날 동생 조지영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수영은 남자 친구와 단둘이 장례를 치르고 그를 먼저 내려 보낸 뒤 조지영의 방을 정리하기 위해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으로 갔다. 조수영은 집주인에게 거짓말로 상황을 설명한 뒤 비상 열쇠를 받아 조지영의 방에서 나흘간 머물렀는데 하루 이틀을 온몸이 가려워 긁느라 고생했다. 팔이나 다리뿐만 아니라 손바닥까지 가려웠고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조수영이 동생이 살던 방에 들어선 것은 저녁 6시가 넘어서였다.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고요가 느껴졌다.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가만히 잠시 있었더니 어디선가 시계초침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자 조수영은 조금 안심이 됐다. 벽시계는 없었고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한 책상 위에 탁상시계가 있었다. 조수영이 준 것이었다. 조수영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새하얀 방이었다. 방에는 침대와 책장, 책상 하나와 책상보다 커다란 탁자 두 개, 이동식 옷걸이, 그리고 6호짜리 우체국 택배 상자 세 개가 있었다. 침대와 책장은 뭐라 할 것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책상과 탁자 위에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셀 수 없이 많은 물건이 있었다. 책상과 탁자 위에는 오래된 렌즈케이스나 클립, 고무줄까지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없었다.
    조지영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모든 물건을 눈에 보이는 곳에 널어 두고 살았다. 그러지 않으면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조수영이 정리를 좀 하라고 해도 그때뿐이었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종종 정리를 해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조지영은 미친 사람처럼 화를 냈다. 방이 이게 뭐냐고 물으면 담담한 목소리로 ‘방이 뭐 어때서’라고 대답했고 왜 정리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불안해서’라고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방 안에서 조지영은 편안해 보였고 필요한 것을 찾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무언가 없어졌다면서 방을 뒤집어엎는다든가 하는 일은 오히려 어머니가 조지영의 방을 정리하고 나면 생기곤 했다.
    그에 반해 조수영은 가방 하나만 있으면 될 정도로 가지고 있는 물건이 없었다. 아마 조지영의 서랍에서 나온 클립 같은 것들은 25년은 된 것일지도 몰랐다. 조지영에게는 늘 ‘추억상자’라고 불리는 상자들이 있었고 어머니와 조수영은 가끔 상자를 열어 물건들을 꺼내 보면서 울던 조지영을 놀리곤 했다. 조수영은 동생의 추억상자를 보면서 겨드랑이를 긁다가 손목을 긁었다.
    열어 봐야 할까.
    조수영은 가슴 밑을 긁으며 생각했다. 가슴 밑을 긁다가 손목을 보니 피가 조금 맺혀 있었다. 남자 친구에게 같이 오자고 할 걸, 하는 후회가 잠깐 들었다.

 

    사실 조지영은 5개월 전에 개명했다. 어릴 때부터 ‘조지’라는 부분 때문에 놀림을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수영은 계속 조지영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조지나’는 어떠냐고 제안한 적도 있다. 조수영은 ‘조지나’의 ‘나’를 말할 때 물어보듯이 음정을 올렸고 그때의 저녁 식사자리가 떠올라 몹시 괴로웠다. 조수영은 근처 편의점에 가 네 캔에 만 원 하는 수입맥주와 치즈볼을 사왔다. 치즈볼 봉지를 까자 구린내가 났다. 조수영은 동생의 추억상자를 열어 이것저것 꺼내 보면서 혼잣말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전부 쓸데없는 물건 같아 보였지만 그런 것들을 모아 왔다는 것이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술에 취해 가던 조수영은 동생의 침대에 기대어 앉아 주방이랄 것도 없는 주방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싱크대 아래 수납장과 벽에 붙은 선반의 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현관문을 잠그고 살긴 한 걸까? 조수영은 궁금했다. 같이 살 때 늘 방문을 닫아 두고 지내면서 노크 없이 문을 열면 불같이 화를 내던 동생이었다.
    선반에는 라면이나 즉석밥 같은 것이 많았다. 즉석밥을 꺼내 보니 아직 유통기한이 7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7개월이라도 더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수영은 갑자기 울었다.

 

    울면서 화장실에 가 오줌을 눈 조수영이 계속 울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뭐라고 말했다. 조수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조수영은 대충 눈물을 닦고 문 가까이로 가 울먹이며 말했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네?
    경찰입니다. 잠깐 문 좀 열어 보세요.
    시끄럽다는 이유로 아래층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했다. 조수영은 상황을 설명했지만 아무튼 조용히 하겠다고 했다.
    경찰이 가고 난 뒤 조수영은 다시 나가 소주 세 병을 사와서 책장에서 발견한 호두와 함께 전부 마시고 잠들었다. 조수영은 중간에 잠시 깨 화장실에 가서 토를 두 번 하고 다시 잠들었는데 꿈에서 남자 친구가 끓여 주는 라면을 먹었다.

 

    눈이 부셔 일어나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한 조수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햇살도 햇살이지만 새들이 엄청나게 지저귀고 있었는데 시간은 5시 44분. 2시 넘어서 잔 것 같으니 세 시간 정도 잔 셈이다. 조수영은 눈을 감았지만 다시 잠들지는 못했다.

 

    8시가 조금 넘어 완전히 침대에서 일어난 조수영은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칫솔을 사고 생수를 사 마셨다.
    여기 생활의 달인에 나온 유기농 빵집이 있다고 했는데.
    조수영은 금방 가게를 찾아 쌀로 만든 치즈 식빵을 사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 한 잔을 샀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빵 냄새가 너무 좋다고 말하자 그는 빵 향수를 팔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수영은 건성으로 웃었다. 빵 냄새를 맡으면 뭐 하니, 먹어야지. 대꾸도 해가면서. 조수영의 남자 친구는 조지영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몇 주째 나라를 뒤덮은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을 나타내던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며칠째 새 대통령과 관련된 미담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편안해 보였고 낙선한 후보의 현수막이 7층 높이 건물에서 철거되었다.
    저걸 이제야 떼네.
    조수영은 슈퍼에서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샀고 그러자 이 세상에 오롯이 혼자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떠올렸는데 그 모습이 슬로비디오처럼 조수영의 뇌리를 스쳤다. 요즘 일이 어찌나 잘 풀렸던지…… 여기저기서 많이 웃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수영은 동생의 방으로 돌아와 쓰레기봉투를 내려놓았다.
    이거면 될까.
    조수영은 생각했다.
    그녀는 동생을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물건들은 챙기고 웬만한 것은 다 버리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추억상자 같은 것은 조지영의 추억이지 조수영의 추억은 아니었다. 조수영은 목 뒷덜미를 긁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선 큰 것들부터 정리해야겠다.
    지영이 같으면 작은 것들부터 정리했을 거야, 그리고 아마 거의 모든 물건이 추억상자로 들어갔겠지. 조수영은 생각했다. 그나마도 열 개도 넘는 상자들을 이사할 때마다 몇 개씩 줄인 상태였다.

 

    우선 조금만 움직여도 삐거덕거리는 침대는 버리기로 했다. 책상, 탁자들, 책장…… 모두 버리기로 결정했다. 관할 시청에 가서 폐기물 스티커를 사온 다음 붙여서 내다놓아야 했다. 집에 뭐가 있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결정을 하고 오긴 했다. 영원히 간직할 지영이의 물건 몇 개만 가져가기로.
    책장은 버리면 되는데, 책이 문제였다. 물론 책도 버릴 수는 있었다. 지정된 곳에 내다놓기만 하면 폐지를 주워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지영의 다세대주택 바로 앞에도 재활용품을 내다놓는 곳이 있었다. 조수영은 동생의 책장을 바라보았다. 어림잡아 보니 500권은 넘어 보였다. 같이 살던 집을 정리할 때도 조지영은 책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3주 동안 책 정리에만 매달린 끝에 가져갈 책, 완전히 버릴 책, 중고서점에 팔 책, 고민인 책으로 나눴다. 그녀는 책 한 권을 뽑아들고는 오래 바라본 다음 움직였다. 가끔 여기서 저기로 다시 옮겨지는 책도 있었다. 이렇게 분류를 마친 조지영은 고물상에 전화를 걸어 260kg의 책을 팔아 26,000원을 벌었고 책을 팔기 위해 30인치 트렁크를 끌고 무려 열네 번이나 종로에 위치한 중고서점에 갔다. 조수영이 택시를 부르라고 했지만 조지영은 대중교통을 고집했다. 택시를 타면 많이 실을 수는 있지만 어차피 택시에서 내려 서점까지 들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영에게는 트렁크를 끌고 시내에 나가 외국인인 척하는 취미가 있었다. 조지영이 그런 취미를 갖게 된 데는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조지영은 오래전에 군산으로 불편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일박 이일의 여행을 마친 조지영은 돌아오는 길에 친구 나지영의 연락을 받고 그 집으로 갔다.
    일박 이일인데 트렁크를 끌고 갔어?
    응. 내 베개가 아니면 잠을 못 자니까…….
    수건은 숙소에 있잖아?
    나지영은 조지영을 이해했지만 다는 이해하지 못했다.
    수건도 내 수건을 써야 편해.
    조지영은 하루 여행을 가면서 베개와 수건 넉 장을 챙겼다. 씻은 몸을 닦을 수건과 베개에 깔고 잘 수건까지 챙긴 데다 수건을 안 가져올지도 모르는 직장 동료를 위한 수건까지 해서 전부 넉 장이었다. 그렇게 챙기고 나니 조지영의 마음은 완전히 편했다. 이왕 트렁크를 끌고 가기로 했으니까 이것저것 넣을 수 있는 것은 더 넣은 조지영이었다. 조지영은 그날 밤 자기 방에서 자는 것처럼 달게 잘 수 있었으며 그러자 ‘이 상태라면 어디든 편하게 떠돌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의 부름에 바로 응했던 것이다.
    나지영이 만든 김치찌개와 잡곡밥을 먹은 조지영은 샤워를 하고 잠옷을 꺼내 입었다. 시간은 아직 저녁 전이었지만 그렇게 해야 편했다. 편한 차림의 조지영은 친구의 일상과 고민을 들었다. 5시쯤 되었을까. 조지영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었다. 잊고 있던 약속이 코앞이었다. 조지영은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의 팬 사인회에 갔다가 잠시 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가 다시 한 번 만나자며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조지영은 당시 매우 행복했는데 막상 겁이 나서였는지 그가 약속을 취소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무튼 까맣게 약속 날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약속장소는 홍대였는데 도저히 버스를 타고 가면 늦을 것 같아 조지영은 택시를 불렀다. 그때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조지영은 트렁크를 끌고 우산을 쓴 채 약속장소로 갔다. 늦은 것이 다행인지, 택시를 타고 가서 조금 편하게 가긴 했다. 넓고 모던한 느낌의 노천카페에 그 작가가 앉아 있었다. 작가의 동료 작가들 몇도 함께였다. 그들은 트렁크를 끌고 온 조지영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일박 이일의 여행에 베개와 수건 여러 장을 넣고 다녀야지만 마음이 편한지 이야기하자 그들은 엄청난 공감을 해주면서 매력이 있다는 둥 특이하다는 둥 하면서 재미있는 친구라고 말해 주었다. 조지영은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그녀는 작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조지영과 작가 일행은 근처 해물탕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모임이 있는지 하나 둘 사람들이 늘어 갔고 우산을 써도 옷이 전부 젖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빗속에서 작가 일행은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조지영을 재미있어하며 돌아가면서 트렁크를 들어 주기도 했다. 불편해서 가기 싫었던 조지영의 하루짜리 여행은, 사람들이 웬 트렁크냐고 물을 때마다 조지영을 재미있는 친구로 만들어준 여행이 되었다. 그녀는 이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게 되었고 그러자 나중에는 점점 더 재미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시간이 늦어 한 작가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조지영은 또다시 베개를 꺼내 편안히 잠들 수 있었고, 그녀가 베개를 꺼낼 때 모두가 웃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트렁크 손잡이가 부서져 힘들었지만.

 

    손잡이는 부서졌지만 조지영은 그 트렁크를 버리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 조지영은 중고서점에 책을 팔기 위해 트렁크에 책을 가득 넣어 집을 나섰다. 문제는 샌들이었는데 ‘오늘까지만 신고 버리자.’는 마음으로 그걸 신고 나온 것이다.
    폭염이었고 조지영은 발이 몹시 아프다는 것을 나오자마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신발을 갈아 신지 않았다. 참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오늘까지만 신고 버리자,’라는 결심을 바꾸기 싫었던 것이다.
    조지영의 뒤꿈치는 점점 까져 갔고 발바닥에도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날은 계속 잘못된 선택만 하는지 조지영은 하필 평소에 잘 이용하지 않는 발산역에서 내렸다. 송정역에서 내렸으면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었는데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린 것이다. 조지영은 바보 같은 자신을 탓하며 발을 절면서 천천히 트렁크를 끌었다. 발산역에는 계단이 많았는데 트렁크 손잡이가 고장 나 특히 고생했다. 거의 통째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계단을 겨우 지났지만 지하철을 타려면 오래 걸어야 했다.
    조지영은 발을 절며 걸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결국 젊은 남자가 다가와 조지영에게 말했다.
    도와드릴까요.
    조지영은 기분이 좋았고 마음 놓고 발을 절며 남자를 따라 걸었다. 남자는 느리게 걷는 조지영을 가끔 뒤돌아보며 속도를 맞춰 주었다.
    그 남자는 승강장에서 트렁크를 넘겨준 뒤 사라졌다. 그와 어떤 인연이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조지영은 어쩐지 당당하게 발을 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발을 저는 것은 샌들로 인한 물집 때문이 아닌 걸로 하고 싶었고, 그래서 샌들을 꺾어 신지 않고 계속해서 스트립 끈이 물집에 닿는 것을 묵묵히 견뎠다.
    종로 3가역엔 사람들이 많았다. 조지영은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얼마 안 가 또 한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남자는 트렁크의 손잡이를 빼들었다.
    고장 난 손잡이는 맥없이 빠져나왔고 남자는 당황하며 조지영에게 사과했다. 조지영은 괜찮다고 말했다. 원래 고장 난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했다.

 

    조수영은 조지영의 이런 일들로 인한 기분을 몰랐기 때문에 동생이 그저 약간 엉뚱하고 가끔 미련하다고만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조지영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를 말이다. 조수영이 볼 때 조지영은 나름 보통의 인간 같았다. 언뜻 보면 그저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조금 예민하고 조금 나약하지만 현대인들은 다들 그런 면이 있으니까. 조수영은 조지영이 남긴 책들을 전부 버리기로 했다.
    무언가를 버리기를 잘하는 언니 조수영과 달리 조지영은 버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나는 이것들을 버리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조지영은 ‘마음은 따뜻하지만 무언가를 잘 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지영은 서른두 살이 되던 해에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 번째는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거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었다. 조지영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았고 그래서 당장 모든 것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올해 안에 버리자.’ 정도였다. 기억은 남기되 물건들은 버리는 것, 버리고 나서도 기억나는 것들만 기억할 것, 그리고 조금씩 달라질 자신을 기록하는 것이 조지영의 바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조지영은 기억력 같은 것은 아주 약한 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작은 물건조차도 못 버리는지도 몰랐다. 물건을 보면 그것을 둘러싼 기억이 아주 잘 살아났기 때문이다.

 

    조수영은 책장에서 발견한 동생의 일기장을 펼쳐들었다. 너의 일기장은 책처럼 생겼구나. 조수영은 지난 연말 조지영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떠올렸다.
    언니, 너무 예쁜 일기장이 있는데 어때?
    ?
    응. 민트색하고 오렌지색 중에 골라봐. 둘 다 샀어, 하나 줄게.
    ㄴㄴ
    조수영도 이십대 초반까지는 다이어리를 쓰긴 했다.
    조지영의 일기는 4월 10일에서 멈춰 있었다. 며칠 후, 조지영은 밀린 일기를 쓰는 것을 포기했다. 몰아서 쓰다 보니 이미 일기가 아니게 되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쉽게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조금 실망한 조지영은 생각했다.
    그래, 더 중요한 걸 하자.
    추억상자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순 없었는데, 얼마 전 조지영이 일하는 학원은 문을 닫았다. 조지영은 밥벌이를 한다기보다는 단순히 생존만 하고 있다고 봐야 했기 때문에 당장 새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월세를 내고 난 다음 학자금 대출, 차비, 통신비, 생필품, 쌀 등을 사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조지영의 두 달 전 통잔 잔액은 105원이었다. 학원에는 오후 2시까지만 출근하면 되므로 7시쯤 일어나는 조지영에게는 나름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을 다른 일을 하는 데 쓰고 싶진 않았다. 조지영은 그 시간에 학원에 가기 위한 준비를 했는데 그것은 수업 준비가 아니라 ‘이따가 학원에 출근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는 일이었다. 조지영은 4년 전 작은 학원의 사회 선생님이 되었고 일은 적성에 잘 맞았으나 최근에는 탄핵이나 대선에조차 무관심해 초등학생들의 질문에도 잘 대답하지 못했다. 다행히 질문을 역으로 하거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라고 말하면서 위기를 모면해 왔지만 일을 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해 오던 참이었다.

 

    조지영이 처음에 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조지영을 포함해 총 7명의 선생님이 있었다. 조지영은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한효진과 친했다. 한효진은 조지영보다 네 살 많았는데 친했다기보다는 조지영이 한효진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따르고 기댔다고 볼 수 있다. 조지영은 자신이 한효진에게 점점 더 많이 기댄다는 것을 인식한 뒤로 자제해 보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은 조지영을 더 괴롭게 했다. 언젠가는 꼭 이런 말을 듣게 될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선생님 좀 불편해요.

 

    영어를 가르치는 문미영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좋지 않다기보다는 조지영이 문미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조지영은 문미영에게 먼저 말을 건 적도 없거니와 걸어오는 말에도 건성으로 대꾸했다. 문미영도 처음에는 조지영에게 얘기 좀 하자고 하면서 풀어 보려 했지만(뭐가 꼬였는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포기해 버렸다. 문미영이 특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 역시 한효진이었기 때문에 조지영은 문미영을 더욱 의식하며 불편해했는데 다행히 한효진이 중간에서 대수롭지 않게 둘을 대해서 조지영이 아예 왕따처럼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건 한효진이 엄청난 노력을 했기 때문인데 조지영은 한효진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다.
    학원의 영어 선생은 둘이었는데 한 명은 문미영이고 다른 한 명은 김미영이었다. 문미영은 아주 적극적인 스타일로 선생님들의 리더 격이라고 보면 맞았다. 예쁘고 목소리가 밝았으며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제스처도 화려했다. 조지영이 가장 부러워하고 싫어하는 유형이었다. 상대의 속마음도 모른 채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부럽고 싫었다. 어느 쪽에 더 가깝냐고 물으면 조지영은 부러움 쪽에 손을 들었을 것이다. 부러웠지만 조지영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고 밝은 문미영의 모습을 매일 보면서 그녀를 탓할 이유는 없었지만 상처받았고 그 상처는 점점 깊어졌다. 그래도 조지영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줄은 알았다. 오전 시간을 거의 그런 류의 생각들을 하면서 보냈기 때문이다. 조지영은 어머니와 언니와 같이 살 때 둘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생각해?

 

    그리고 조지영이 어머니와 언니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괜찮아?

 

    조지영의 어머니와 언니 조수영은 둘 다 이혼을 한 경험이 있었다. 조수영의 직업은 웨딩플래너였다. 이혼 후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예식장으로 출근하는 언니를 보며 조지영은 물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아무 때나 툭툭 자주 물었다.) 조지영이 그런 질문을 계속한 것은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인터넷에서 닐슨 만델라도 이혼을 했다는 글을 읽고는 그렇구나, 했다.

 

    조지영은 아마 영어나 수학 선생은 못 되었을 것이다. 조지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늘 따로 있었다.

 

    조지영의 최근 일이 년 사이의 관심사는 타인의 마음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조지영이 알 수도 없는 것이었거니와, 안다고 해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쳐 갔는데 아무것도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그만두면 그만둔 대로 또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조지영의 일상은 아무튼 계속 흘러가야 했다.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여러 경우에 이렇게 생각하면 좀 편했다.
    1. 출근을 할 때는 ‘나는 봉사 활동을 하러 간다.’(조지영은 실제로 소액이나마 기부를 하는 곳들이 있었고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 했다.)
    2. 가기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나는 배우이고 작품을 찍으러 간다.’(조지영은 내향적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이런 욕망도 있었다.)
    3. 운동을 하기 싫은데 해야 할 때는 ‘나는 김연아다.’(이것도 연기의 일종이었다.)
    4. 어떤 식으로든 이별을 하거나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죽었다.’(다른 설명이 필요 없음.)
    5. 자기 자신이 싫을 때는…… 조지영은 자기 자신이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냥 싫어했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싫어할 순 있다. 하지만 그걸 타인에게 말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그녀는 몰랐다.

 

    조지영은 수업을 엉터리로 마친 어느 토요일 오후 한효진에게 술을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한효진은 시계를 보더니 10시쯤 약속이 있다면서 그전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휴, 10시까지면 충분하죠. 조지영은 말했다. 조지영은 그 다음날 한효진에게 여러 개의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워 고민하다가 안정아에게 연락했다.

 

    조지영에게는 안정아라는 친구가 있었다. 안정아는 조지영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조지영이 종종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자책의 수면 아래 있을 때, 안정아는 늘 조지영을 따뜻하게 위로했다. 그러나 조지영은 그런 안정아를 개독이라고 욕하면서 연락을 받아도 답장하지 않았다. 안정아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태어나고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었고 조지영은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과 어렵게 내린 자신의 선택, 그로 인해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이 모두 남의(신의) 뜻이라는 것이 싫었다. 이를테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지영은 결국 안정아를 찾고 말았다. 그건 한효진이 술을 마신 다음날 조지영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의 요지가 ‘조 선생님은 어제 너무 우스웠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지영은 한효진과 술을 마시던 중 10시를 넘겼고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등장한, 소설을 쓴다는 한효진의 후배들을 따라 작가들의 모임까지 간 것만 기억했다. 거기서 조지영은 과연 어떤 얘기를 했을까? 가방 안에는 젓가락 한 개와 오프너, 라이터 세 개가 들어 있었고 조지영은 그걸 책상 위에 놓았다.

 

    조지영의 연락을 받은 안정아는 ‘안 그래도 늘 네 걱정을 하고 있었어. 이 달 말에 우리 교회에서 하는 태신자 초청잔치에 와.’라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당신과 함께하는 씨들의 축제’, ‘당신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자녀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초대장을 찍은) MMS가 같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조지영의 신앙생활은 의외로 길게 이어졌다.
    그 계기는 한효진의 퇴사였는데, 조지영이 한효진과 불편해진 사이 때문에 학원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려던 월요일, 한효진이 무단결근을 하더니 소설가가 되겠다며 학원을 그만두겠다 말해 온 것이었다. 조지영은 다른 일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조지영은 ‘그래, 한번만 믿어 보자.’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교회를 나갔고 어쩌다가 청년들을 주축으로 한 모임의 리더가 되고 마는데…… 교회의 많은 사람은 그녀를 아주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그런 그들의 제안을 대놓고 거절을 하기 어려워서 그만 리더 자리를 승낙하고 만 것이다. 편안했던 조지영의 마음은 리더가 되면서 조금씩 불편해졌다. 하느님을 믿고 싶었지만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조지영은 매일같이 고민을 하며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조지영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고, 사랑을 일단 받아 보고 싶었다.

 

    조지영은 어떤 것을 책임질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그래 보고도 싶었다.

 

    조지영이 거의 매일 술을 마시게 된 것은 너무 놀랄 일은 아닌 것이 그녀는 원래 술을 잘 마셨다. 게다가 이제 가기 싫은 날은 교회에 가지 않거나 모임도 미루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런 날은 일요일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 다음 울면 기분이 좋아졌다. 다행히 아주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거의 매일 마신다는 것이 문제였다. 거의 집에서 혼자 마셨는데, 가끔은 ‘혼술’이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술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몇 번뿐이었지만. 언젠가 한번 그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조지영은 갑자기 눈물이 나 엎드려 버렸고 그 후로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조지영은 그즈음 가방 같은 것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가방을 떨어뜨리거나 눈으로 보고 가면서도 갑자기 계단 두 개를 내려가는 바람에 발목을 삐고는 했다. 치매인가 싶어 맥줏집 사장 아저씨에게 말했다가 아저씨가 ‘요즘 뭐 힘들어?’라고 묻는 바람에 또다시 엎드려 버린 적이 있다.

 

    조지영뿐만 아니라 어머니나 조수영도 역시 술을 잘 마셨다. 조수영은 조지영의 일기장에서 그녀가 학원이 문을 닫은 바로 다음날 알코올중독 모임에 다녀온 것을 확인했다. 너도 노력이란 걸 했구나 싶어 조수영은 목이 메었다. 알코올중독 모임은 4월 29일, 광흥창역에서 6명이 모였다는 메모가 있었다. ‘지는 팀만 응원하는 사람, 일부러 살찐 사람, 냄새를 못 맡는 사람, 잘 우는 여자, 불륜 전문가, 사라진 사람 그리고 사라질 사람’ 조수영은 저 7명 중에 누가 동생인지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조지영이 자신을 뺀 뒤 6명이라고 적어 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조수영도 삶에 어려움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둘에게는 어릴 때부터 공유한 좆같은 경험이 많았다. 하지만 우린 그 안에서 나름 잘 자라 왔고 비슷한 인간들이 아니었니? 무엇이 널 죽게 만들었지? 어떤 면에선 네가 나보다 낫지 않나. 넌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수영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8개월 전 조지영이 소리를 지르던 날을 떠올렸다. 조지영의 ‘언니, 난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다. 힘들다.’라는 말에 조수영은 ‘다 그래.’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조지영은 소리를 질렀다. 전부터 조지영이 힘들다고 하면 조수영의 대답은 거의 대부분 같았다. ‘다 그래. 요즘엔 다 힘들잖니.’

 

    응……? 내 말이 틀려……?

 

    조수영은 아주 오래 울었다.

 

    조지영이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한효진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왜 죽었는지 말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한효진이 그걸 소설에 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금방이라도 미칠 것 같았다. 조지영은 이런 것까지 조수영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저 어떤 아픔이나 불안을 속으로 삼킬 줄 모르는, 입 싸고 나약한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다.

 

    갑자기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2시. 조수영은 생각했다. 하루가 더 필요할 것 같아.

 

    조수영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배달 앱을 통해 짜장면을 주문해 먹었다. 이것은 어쩌면 지영이는 이사를…… 간 것이니까.

 

    짜장면을 먹다 말고 조수영은 울었다. 그녀는 자꾸 울었다. 5월 10일 전까지 조수영이 태어나서 운 것은 기껏해야 열 번도 안 되었다.

 

    양파 조각 두 개, 아주 얇게 썬 단무지 여덟 조각, 자잘한 짜장 소스까지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것은 힘을 내기 위해서였다. 조수영은 어쩐지 쓰러질 것 같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아침에 들렀던 커피 가게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마셨다. 그리고 담배를 피웠다.

 

    다시 조지영의 방으로 들어온 조수영은 옷장을 열었다. 옷장에는 검은 옷 몇 벌과 가방 세 개가 있었다. 조지영은 최근 7개월 사이에 14킬로그램이 늘어 몇 벌의 옷을 새로 사 그것만 입고 다녔는데, 전부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조지영은 어릴 때부터 큰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가방 두 개, 그다음에는 가방을 세 개씩 들고 다녔다. 그것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었고 그저 조지영만 힘들 뿐이었다. 조지영의 가방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 트렁크 줄까?

 

    조수영은 조지영의 가방들을 꺼냈다. 조지영은 파우치가 두 개였는데 그중 하나에는 오프너나 커피믹스, 손톱깎이 등 혹시 필요할지도 모를 것들까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휴대용 칫솔 치약 세트도 학원에 두고 다니면 될 것을 매일 가지고 다녔다. 토요일이면 자리를 정리하고 퇴근했는데 누구의 자리도 아닌 것처럼 전부 집으로 싸가지고 왔고 월요일이 되면 다시 가져갔다(개인 컵이나, 두었다가 다음에 먹어도 되는 간식까지). 일요일에 먹을 것도 아니면서 일단 자리를 전부 정리해 가져오는 것이다. 조지영은 가끔 학원이 아닌 곳에서 수업 준비를 하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노트북과 도시락 등(밖에서 혼자 사먹는 것보다 모두가 퇴근한 학원에서 싸온 밥을 혼자 먹는 것을 좋아했다)이 추가되어 가방은 더욱 무거워졌다. 가방은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편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조수영은 팔다리를 긁으면서 크고 튼튼해 보이는 가방을 하나 제 곁으로 끌어왔다. 여기다가 넣어 가자. 그것은 흰 바탕에 붉고 큰 꽃이 가득 그려진 네모난 가방이었다. 조지영이 봄, 여름에 애용하던. 그 남자가 사준.

 

    조지영은 그 남자와 이 년간 비밀 연애를 했다. 그 남자는 그녀가 일하던 학원 상가 같은 층에 위치한 실용음악학원의 기타 선생님 김성현이었다. 조지영보다 네 살이 많아 한효진과는 동갑이었기 때문에 둘은 어느 순간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조지영이 일 년쯤 일했을 때, 학원으로 한 남자가 떡을 들고 들어왔다. 그 떡을 받은 사람이 조지영이었다. 당시 조지영은 기타나 드럼을 배우고 싶어 한 데다 전에 보컬과 기타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에서 데스크 업무를 본 적이 있어 어느 정도 분위기는 알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조지영의 보강 수업에는 단 두 명이 출석했다. 두 명의 학생들은 어쩐지 조지영을 무시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따분해하는 것은 맞았다. 수업을 마치고 그녀는 김성현이 일하는 학원으로 갔다. 학원에는 김성현 혼자였고 기타를 치고 있었다.
    드럼을 배우고 싶어서요.
    아, 드럼 어려워요. 되게 어려우실 거예요. 이, 드럼이, 아무튼 되게 어렵거든요. 아무나 못 해요.
    기타도 배우고 싶긴 한데, 같이 하면 할인 같은 거 있어요?
    이 동네가 워낙 그래서요, 이미 수강료가 엄청 싸요.
    아, 두 개 배워도 그대로인 거예요?
    네.
    조지영이 바란 것은 ‘두 과목을 같이 수강하면 (만 원이라도) 할인해 준다.’는 말과 ‘드럼이 어려운 것 같아도 천천히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었지만 그는……. 조지영은 실망했다.
    그녀는 더 생각해 본다고 하고 나와 집으로 가면서 모든 흥미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좁은 레슨실에는 에어컨도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버벅거리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짜증이 났다. 실용음악학원 강사로서 김성현이 잘못한 것은 없었으나 조지영은 어쩐지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조지영은 드럼 대신 샌드백을 주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조지영이 가르치는 학생 중 중학교 2학년 김한수가 드럼스틱을 가지고 학원에 왔다. 김한수는 비어 있는 옆 책상에 드럼스틱을 올려놓았다.
    재밌니? 드럼 재밌어?
    네.
    어렵지 않아?
    아니요?

 

    조지영이 김성현을 가장 많이 마주친 것은 화장실 앞이었다. 그녀가 휴지를 들고 여자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에도 인사성 바른 그 남자는 조지영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몇 초 안 되어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한효진에게 ‘자꾸 화장실 앞에서 만나서 미치겠어요.’라고 지나가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과학 선생님인 전재경은 김성현을 좋아하고 있었다.

 

    한효진의 주선으로 김성현은 전재경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어지지는 않고 그저 종종 만나 술을 마시고 노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전재경의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조지영도 종종 그 자리에 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1차 정도만 하고 한효진과 함께 자리를 비켜 주었다. 김성현과 전재경만 남겨 두고 한효진과 2차를 가면 한효진은 김성현이 왜 별로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댔다(이유가 참 많기도 했다). 그래서 조지영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 일들은 전재경이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재경은 한효진보다 먼저 학원을 옮겨 간 뒤 연락이 끊어졌는데 음……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조지영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놈에겐 장거리 연애를 하는 오래된 연인이 있었다. 김성현은 학원에서 일을 하며 홍대에서 밴드 활동을 같이 했는데 다들 일을 하다 보니 밤늦은 시간에 합주를 할 수밖에 없었고, 또 다들 어릴 적부터 합주가 끝나면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지다 보니 멀리 떨어진 연인에게 핑계를 대기 좋았던 것 같다. 조지영은 전재경에게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작은 상가에서 소문나 봤자 좋을 것도 없고 해서 김성현의 제안을 따라 비밀 연애를 해왔는데, 전재경은 이미 눈치 빠른 한효진에게 얘길 들어 알고 있었던 데다 곧바로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조지영뿐이었고 이 년이라는 시간과 그 후로도 일 년간 계속된 엉망진창의 시간 동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도 조지영뿐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 김성현에게 청첩장을 받았다.

 

    그 후 조지영은 김성현의 연습실에 찾아가 여러 번 행패를 부렸는데 그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급기야 조지영이 일했던 학원이 문을 닫음으로써 김성현의 눈앞에서 조지영이 사라져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조수영이 동생의 일기장에서 가장 많이 발견한 것은 ‘믿자’라는 말과 말줄임표, ‘추하다’라는 말과 ‘죽고 싶다’라는 말이었다. 조지영은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출근했다가 퇴근할 거면서 가방을 세 개씩 싸들고 다니던 내 동생은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둔 채로…… 도대체 어디로…….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기척에 조수영은 놀라서 일어났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으며 책상 위에 있던 녹슨 드라이버를 집어 들었다. 어제 시끄럽다면서 경찰에 신고한 남자…… 문득 얼굴도 보지 못한 그 남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을 때 쾅! 하고 문이 닫혔다. 현관문을 연 것은 바람이었다.

 

    조지영이 발견된 것은 행주대교에서 조금 떨어진 강변이었다고 한다.

 

    8개월 전 동생과 살던 집을 정리하고 조수영이 동생을 만난 것은 한 달 전쯤…… 딱 한 번이었다. 그날 조지영은 유난히 말이 없었다.
    옷 예쁘다. 샀어?
    응.
    일은?
    응.
    혼자 사는 건? 안 무서워?
    응.
    그날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물었던 것은 모두 조수영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너무 반가워 조수영은 35만 원을 주었고 그러자 조지영은 울었다. 조지영은 언니가 반갑다기보다는…… 언니에게 미안했다. 언니는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지영은 생각했다.

 

    조수영은 동생이 어릴 때부터 자주 울었기 때문에 대낮에 카페에서 울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지영은 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만원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의 아픈 냄새를 떠올렸다. 계속 그 냄새를 떠올리면 조지영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주 잠시만 조지영은 편안했다. 조지영은 그즈음 오래 해온 모든 후원 활동을 끊었다. 그리고 책을 팔러 중고서점에 갔다가 도둑 취급을 받았으며, 한 학부모로부터 임신 축하 인사를 받았다. 안정아에게 연락을 해보았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고, 긴 휴가 내내 추억상자를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조수영과 조지영은 나름 우애가 돈독한 편이었고 특히 조수영은 조지영이 언니에 대해 아는 것에 비해 동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동생이 어릴 때부터 언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수영은 조지영이 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고 원래 늘 비관적인 편인 데다 자기 감정을 자주 얘기하는 편이라서 더 이상의 것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조지영은 자신이 느낀 기쁨이나 수치심을 처리하지 못했고 그 모든 일이 너무나도 사소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웠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일들이 많을 텐데…… 하는 생각에 조지영은 더 움츠러들었다.

 

    조수영은 아까부터 아무데도 긁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조지영의 방에서 동생과 자기 자신에 대해 오래 생각했는데 실제로 조지영이 이런 모든 일을 말했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섬뜩했다. 그래서 그녀는 갑자기 며칠 사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실감나지 않았고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조지영이 살아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조수영 또한 조지영이 아는 것이 다가 아니었을 테니까. 이를테면 조지영은 이거 하나는 알고 있었다. 어떤 죽음이 꼭 극적일 필요는 없으며 그러므로 그 후에도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 말이다. 그날, 조수영은 선거를 했고 그 일이 일어났다.

 

    조수영은 조지영의 방을 정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버릴 수도 간직할 수도 없는…… 조수영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튼 그건…… 미안해서였다.

 

    얼마나 저기 널려 있었을까. 좁은 베란다에 널어 둔 조지영의 커다란 블랙 원피스가 바람에 펄럭였다. 바람이 불어왔고 또 바람이 지나갔다. 조수영은 앞으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 대해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바람이 부는 것처럼 우리는 사라질 것이니까.

 

 

 

 

 

 

 

 

 

 

 

이주란
작가소개 / 이주란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 수상.

 

   《문장웹진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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