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편지

[2015 아르코창작기금]

 

 

고양이 편지

 

 

홍은경

 

 

1. 그렇게 고양이가 왔어

 

    무슨 소리가 나서 눈이 떠졌다. 방이 어두컴컴하여 주위가 잘 안 보였다. 아침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었다. 창문에 쳐진 두꺼운 커튼이 빛을 꽁꽁 가로막고 있었다.
    “야옹.”
    긴가민가했던 그것은 확실히 고양이 소리였다. 지예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만 깜빡거렸다.
    “야옹!”
    뒤이은 소리가 화난 듯해서 지예는 마지못해 이불 속에서 나갔다.
    커튼을 젖히자 햇살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지예는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비켰다. 눈을 감고 있어도 햇빛은 환하게 느껴졌다.
    “야옹.”
    가늘게 실눈을 뜨면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앞집 지붕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너머 지붕들에도 지저분한 잡동사니만 눈에 띌 뿐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지예는 커튼을 닫고 돌아서려다 멈추었다. 앞집 검은 지붕 위에서 웬 시커먼 것이 움직거렸기 때문이다. 아지랑이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하얀 점 두 개가 나비인 듯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지예는 눈을 부릅떴다. 고양이였다. 나비처럼 춤추는 흰 점은 고양이 앞발이었고.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까만색이어서 양말이나 장화를 신은 것처럼 발이 흰색이 아니었다면 고양이인 줄 모를 뻔했다.
    “배고파, 밥 줘.”
    창문을 여니 대뜸 그런 소리가 날아왔다. 지예는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고양이가 휘익, 날아오르는 바람에 지예는 움찔 뒷걸음질 쳤다.
    “이쯤이 좋겠군.”
    고양이는 창문의 좁은 틈으로 들어와 방안으로 사뿐히 내려앉더니 방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열린 커튼 사이로 비춰 들어온 햇빛이 길쭉하게 드리워진 자리였다.
    “밥 달라니까 뭐 해?”
    하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지예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주방에서 무언가를 조리하던 고모가 지예를 발견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예야, 너…….”
    싱크대 수납장 여기저기를 열어보는 지예의 모습에 고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예는 고모의 눈길이 뒤통수와 손등을 쫓아다니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마침내 찾아낸 참치 깡통 하나를 들고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왔다.
    “지예야.”
    안타까운 고모의 목소리가 방문에 가로막혀 밖에서 맴돌았다.
    검은고양이는 참치 깡통 하나를 맛나게 먹어치웠다. 그런 다음 정성껏 얼굴과 몸을 씻고 벌러덩 방바닥에 누웠다. 세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자세였다.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는 지예는 이만큼 떨어져서 조심스레 지켜보았다.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저대로 잠이 든 건가.
    조심조심 다가가 보았다. 늘어진 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손을 뻗었다.
    아이, 깜짝이야.
    고양이가 고개를 발딱 들고 쳐다보는 바람에 지예는 기절할 듯 얼어붙어버렸다. 부릅뜬 고양이 눈동자란!
    고양이는 씩 웃고 도로 벌러덩 눈을 감았다. 올라간 입 꼬리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슬쩍 배를 보이며 돌아누웠는데 어쩐지 만져 봐도 좋아, 하는 것 같았다.
    지예는 용기를 내 살짝, 아주 살짝 만져보았다.
    갸르릉.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도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라니. 손가락이 저절로 조몰락거려졌다. 몸 어딘가가 근지러웠다.
    지예는 고양이가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곁에 누웠다. 숨소리가 다 들렸고, 배를 만지는 손바닥 전체로 어떤 기운이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아슴아슴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지예는 방바닥에 혼자 누워 있었다. 고양이는 없었다.
    꿈꿨나?
    꿈은 아닌 게, 빈 참치 깡통이 머리맡에 있었고, 커튼이 한 뼘 정도 열려 있었다. 지예는 창문 사이로 앞집 지붕을 바라보았다. 검은 지붕엔 아무 것도 없었다. 지붕들 너머 저쪽에서 빨강, 노랑, 하양의 삼색 깃발만 생뚱맞게 나부끼고 있었다.
    고양이는 다음다음다음날 다시 왔다. 흰 양말이나 흰 장화를 신은 것 같은 검은고양이 바로 그 녀석이었다. 역시나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선 밥을 내놓으라고 호통치고, 늘어지게 한숨 자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사흘 뒤에 왔다. 녀석은 정확히 3일마다 찾아왔다.
    지예한테 고양이는 그렇게 왔다.

 

 

2. 루돌프

 

    아침마다 수납장을 뒤져 참치 깡통을 가져가는 지예를 고모는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3일마다이지만, 매일 아침 방에서 나오기만 한다면야 참치 깡통이든 그보다 더한 무엇을 집어가도 좋은 것이 고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니, 하루에도 몇 십 번씩 뻔질나게 드나들어서 잔소리를 해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고모는 묻지 않았다. 아직은 마음을 누르고, 묵묵히 견디며 기도를 해야 할 때였다. 조용히 지켜보며 그저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와 주는 것에 감사하고, 더 자주 그렇게 해주기만을 바라야 했다. 이제 시작해도 되는 걸까, 고모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어보았다.
    아침에 수납장을 연 지예는 어안이 벙벙했다. 참치 깡통들이 수납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살코기 참치, 김치 참치, 고추 참치, 짜장 참치, 야채 참치, 마요 참치, 불고기 참치, 바비큐 참치……. 슈퍼마켓 같았다.
    지예는 고모가 어떤 맘으로 이렇게 채워놨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더 난다는 걸 고모는 모를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고모가 저럴수록 지예는 가슴이 무너졌다. 마음이 딱딱해졌다. 마음과 행동은 서로 어긋나고 항상 반대로만 움직였다.
    “아이구, 지예 이것아.”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분명 고모한테 전해 들었을 할머니는 때맞춰 방에서 나오며 눈물바람으로 지예를 붙잡았다.
    “이렇게 니 얼굴을 보게 되다니, 할미가 너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아? 불쌍한 내 새끼, 이제 맘 굳게 먹고 이 할미랑 이 악물고 같이 살자, 어여 우리 지예도 딴 애들처럼 학교 다시 다녀야지? 친구들도 만나고? 암 그래야지, 그래야하고말고,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아이고 불쌍한 것, 할미 속도 다 타버리고 없느니라, 썩어 문드러져 빈껍데기만 남았어. 할미가 니 맘 왜 모를꼬, 누구보다 니 속 할미가 다 안다, 다 알아, 하지만 할미는 곧 죽으면 그만이지만 지예 너는 앞길이 구만리.”
    “엄마!”
    고모가 펄쩍 뛰면서 할머니를 가로막았다.
    “지예야, 얼른 들어 가.”
    고모는 할머니를 억지로 방으로 모시고 들어가면서 눈짓을 했다. 할머니 제발! 속으로 부르짖던 지예는 고모가 저렇게 알아서 나서주는 것도 고맙지 않았다. 지예는 모든 것이 고깝게만 여겨졌고, 이 순간엔 할머니와 고모마저도 다만 한통속일 뿐이었다.
    “아이고, 이거 놔라, 아파, 이것아! 지예야, 이 할미가 또 그만 주책을 떨었나 보구나, 느이 고모가.”
    “엄마 그만 하시고 얼른 들어가세요.”
    “알았다, 알았어. 내 들어갈 테니까 이 손 좀 놓고 얘기해. 지예야!”
    “아이참, 들어가시라니까 왜 또 지예를 부르고 그러세요.”
    우당탕탕!
    요란하게 문이 닫히고 방안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래서 싫다는 거다.
    지예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제 정말 울고 싶지 않지만 이 깊은 슬픔은 도저히 헤어 나올 길이 없었다. 어떡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예는 차오르는 울음을 꾹꾹 눌러 삼켰다. 목이 미어지고 가슴이 뻐근히 조여 왔다.
    참치 깡통 하나를 가까스로 움켜쥐고 들어오는 지예를 고양이가 빤히 쳐다보았다. 고양이는 밖에서의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늘어져 있었다. 지예는 깡통을 따서 고양이 앞에 놔주었다. 이 눈빛. 공연히 들켰다는 느낌이 들어 저절로 몸이 옹송그려졌다. 내가 운 걸 알았나?
    “내가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느 날과는 달리 고양이는 참치 깡통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뭐 밥투정한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할 말은 해야겠어. 다음부턴 사료를 가져와. 우리 고양이들을 위해서 특별히 만든 사료 말이야. 이 참치는.”
    그러면서 앞발로 깡통을 톡 건드렸다.
    “지저분하게 얼굴에 묻어서 싫어. 이 멋들어진 수염이 기름에 젖는다구.”
    앞발에 침을 발라 천연덕스럽게 털을 쓰다듬는 고양이.
    지예는 자신이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고양이는 말을 했고 지예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괜한 걱정을 했다.
    저렇게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고양이한테 속마음을 들켰다고 착각했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동안은 가져온 성의를 봐서 먹어준 거야. 내가 또 한 배려심 하거든, 야옹. 좋았어! 인심 쓰는 김에 까짓 거 한 번 더 써주지. 하지만 다음부턴 내 말을 명심해야 해!”
    고양이는 있는 대로 거드름을 피우며 참치 깡통을 끌어당겨 냠냠 먹기 시작했다.
    지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으려 했다는 걸 알아채고 금방 얼굴을 굳혔지만.
    세상에 저처럼 뻔뻔한 고양이가 다 있을까.
    지예는 뻔뻔한 고양이가 마음에 들었다. 밥을 다 먹고 털 손질까지 마치고 나면 그대로 퍼질러 잠들어버리는 것도 여간 배짱이 있지 않았다. 제 멋대로 쳐들어와선 윽박질러 밥을 얻어먹고 자기 집 안방인양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모습이란. 어쩜 저렇게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을까. 이 고양이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여기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지예가 이 집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잠자는 녀석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또 솔솔 잠이 왔다. 첫 번째도 그랬고, 두 번째도 그랬고, 지예는 고양이 곁에서 어느 틈에 잠들어버리곤 했다. 녀석이 잠들면 지예도 잠이 왔다. 달콤하고 편안한 잠이었다.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오늘만은 녀석이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리라 결심했다. 언제나 눈 뜨면 지예 혼자였고, 그래서 허전했고, 돌아가는 녀석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었다.
    지예는 무릎을 끌어안고 그 위에 고개를 얹었다. 녀석의 늘어진 배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눈까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힘껏 밀어 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고양이는 가고 없었다. 후다닥 일어나 창문 너머를 보았으나, 지붕들 너머 저쪽에서 젖은 빨래처럼 늘어진 삼색 깃발만 눈에 띄었다. 그새 비가 흩뿌렸는지 지붕은 거멓게 번들거렸다.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녀석을 만나려면 사흘을 기다려야 한다. 벌써부터 사흘 뒤가 그리웠다. 멀뚱멀뚱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지예는 불현듯 일어났다. 맞다, 사료!
    주머니를 뒤졌다. 옷장 속을 헤집었다.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아예 통째로 꺼내 뒤집었다. 지갑은 텅 비어 있었다.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돼지저금통도 없다.
    어쩌지?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뱅뱅 돌기를 몇 번. 할 수 없었다.
    주방 식탁엔 우산 같은 밥상보가 놓여 있다. 고모는 언제나 저렇게 지예의 밥을 연분홍 밥상보로 덮어놓고 출근한다.

 

    <지예야, 전자렌지에 순두부찌개 들어 있어, 3분>

 

    밥상보를 들면 그런 식의 쪽지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지예야, 너 좋아하는 설렁탕이다, 4분. 지예야, 달걀찜이다, 2분. 지예야, 냉장고에 샌드위치, 이건 안 돌려도 돼…….
    고모가 시키는 대로 해서 밥을 먹은 적은 없었다. 차가운 그대로 갖다 먹거나 아예 꺼내먹지도 않았다. 고모가 속상해할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전자레인지 사용법을 몰라서도 아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 그 자체가 지예는 잘못 같았다.
    지예는 전자레인지를 딱 3분 돌렸다. 처음이었다. 주황색 불빛이 켜지고 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따뜻하게 데워진 순두부찌개에 밥을 다 먹고 지예는 써온 쪽지를 식탁에 놓은 뒤 밥상보로 덮었다. 방으로 돌아가려다 도로 꺼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냉장고에 붙였다. 떼었다. 수도꼭지에 붙였다. 떼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는 사이 쪽지가 구겨졌다.
    지예는 수납장 안에 쪽지를 놓아두었다.

 

    <고모, 고양이 사료 좀 사다주세요>

 

    수납장을 다시 열었을 때 지예는 사료 가게에 온 줄 알았다. 참치 깡통들은 깨끗이 치워지고 대신 고양이 사료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아아, 고모는 대책 없이 큰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서 종류 별로 사느라고 그랬단다. 그 가게에 있는 고양이 사료를 몽땅 털어올 뻔했다고. 그런 식으로라도 말을 걸어준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지예는 오목한 그릇에 사료를 담아 고양이에게 갖다 주었다. 고양이는 당연하다는 듯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지예는 넋 놓고 바라보았다.
    “루돌프.”
    고양이가 먹으면서 말했다.
    지예는 금방 알아듣지 못했다.
    “이름이야.”
    ‘…….’
    “이름이 루돌프라고.”
    지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루돌프는 먹기를 멈추고 지예를 빤히 쳐다보았다. 꿰뚫는 눈빛은 뭔가 잘못한 느낌이 들게 했다.
    ‘나, 난 지예야. 손지예.’
    “그래, 반갑다.”
    루돌프가 악수하자는 듯 앞발을 내밀었다. 지예는 얼떨결에 그 흰 장갑을 낀 것 같은 앞발을 잡았다 놓았다. 루돌프가 식사를 이어갔다.
    ‘너 내 말 알아들어?’
    지예는 얼떨떨하여 물었다.
    ‘내 말이 들려?’
    오도독오도독.
    “들리지 그럼.”
    ‘어떻게 들려?’
    “니가 말을 하니까 들리지.”
    ‘난 맘속으로 말하고 있는데? 맘속으로 말하고 있는데도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너도 내 말 알아듣잖아?”
    ‘아니, 나는 속으로만 말하고, 소리 내서 말하지는 않잖아?’
    “그거나 이거나.”
    ‘신기하다.’
    “신기할 것도 많다.”
    루돌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예는 항상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눈빛만 봐도 내 마음을 척척 헤아리는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로 다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루돌프.’
    루돌프가 돌아보았다.
    ‘내 말이 들리면 야옹, 하고 한번 웃어 봐.’
    “야옹.”
    ‘이번엔 두 번.’
    “야옹야옹.”
    ‘세 번은?’
    “야옹야옹야옹.”
    ‘너 정말 내 마음이 들리는구나?’
    “이 바보, 멍청이.”
    루돌프는 곱게 눈을 흘기며 피식거렸다.
    지예는 갑자기 마음이 달떴다.
    ‘루돌프야, 있잖아.’
    “물 좀 가져와.”
    루돌프가 명령했다.
    “나 목말라. 다음부턴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서 딱딱 대령하도록.”
    지예는 샐쭉하여 루돌프를 째려보았다.
    ‘너 정말 사람 성가시게 하는 데 뭐있어.’
    투덜대며 물을 갖다 주는 지예의 발걸음은 그러나 가볍기만 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너무 요구가 많잖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부려먹기만 하고, 지금도 그래!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시켜먹을 수가 있니? 그리고 넌 부탁이라는 것도 모르니? 누군가에게 해달라고 할 때는 이것 좀 해 주겠니? 부탁해, 하고 말하는 거야.’
    지예는 친구에게 하듯 쫑알거렸다. 별일도 아닌 거 갖고 열을 내며 티격태격하고 토라지고 했던 일이 순식간에 떠오르며 스쳐갔다.
    ‘내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니까 만만하게 보는가 본데, 아니거든! 내가 니 부하야 뭐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지예는 마음껏 떠들어대고 싶었다.
    ‘잘 알아두라고, 난 니 심부름꾼이 아니야! 난 그냥 네가 배고프다니까 불쌍해서.’
    순간 지예는 말문을 닫았다.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보기보다 꽤나 투덜이로군.”
    루돌프가 이죽거렸다.
    “알았으니까 그만하고 여기 좀 주물러 봐.”
    루돌프는 방바닥에 벌러덩 누워서 앞발을 들썩거렸다. 지예는 눈치를 보듯이 조심스럽게 루돌프의 앞발을 주물렀다.
    “좀 더 세게 주물러, 그래야 시원하지, 어이구 시원하다. 거기 옆구리도 좀 긁고.”
    루돌프는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미안해.’
    지예는 사과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그만…….’
    “뭐가?”
    ‘불쌍하다고 한 거.’
    루돌프는 한참 있다가 물었다.
    “……나쁜 말이야?”
    지예는 우물쭈물했다.
    ‘나쁜 말은 아니지만, 난 싫거든. 불쌍하다는 말.’
    “…….”
    ‘불쌍하다고 하면 진짜 불쌍한 거 같잖아. ……난 사람들이 나더러 불쌍하다고 그러는 거 정말 싫어.’
    “쯧쯧, 불쌍한 것. 쯧쯧, 쯧쯧쯧.”
    지예는 어른들 혀 차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었다. 어른들은 지예만 보면 혀를 차고 눈물을 글썽였다. 불쌍하다고, 저 어린 것 불쌍해서 어쩌냐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 부둥켜안고 울면 지예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따라서 목 놓아 울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제발 꺼져버리세요!”
    “오우, 꽤나 과격한데?”
    루돌프가 지예를 돌아보았다.
    ‘난 불쌍한 아이가 아니야. 난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고.’
    지예는 입술을 앙 다물고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지예는 알았다. 아무리 큰소리로 아니라고 외쳐도, 아무리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고 해도 자신은 불쌍한 아이라는 사실을. 그 사실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아니라고 소리 높여 외치면 외칠수록 불쌍한 아이가 되고, 더 나아가 불행한 아이가 될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기적이 있을까. 이보다 더 불운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는 자동이었다. 자신이 어떤 애인지를 생각만 해도 눈물은 흘렀고, 그 눈물과 함께 한없는 절망 속으로 미끄러졌다.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루돌프가 벌떡 일어나 지예를 마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지예는 온몸이 굳었다. 그 쏘는 듯한 눈빛은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깜빡깜빡.
    루돌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괜찮아, 괜찮아.
    그 눈짓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지예는 주문에서 깨어나듯 흠칫 정신이 돌아왔다. 루돌프는 그새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눈 뜨고 꿈이라도 꾼 것일까.
    “푸하!”
    어딘가에 갇혀 있다가 빠져나온 것처럼 숨이 터져 나왔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루돌프.’
    가만히 이름을 속삭여보았다. 루돌프. 선물을 가득 실은 산타할아버지의 썰매를 끄는 붉은 코 사슴 루돌프.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준다네.
    ‘난 울지 않을 거야, 루돌프.’
    지예는 꾸덕꾸덕 말라가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손등으로 쓱쓱 닦았다. 루돌프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3. 집에 가봤어

 

    다음에 왔을 때 루돌프에게 물었다.
    ‘왜 매일 안 와?’
    지예는 루돌프가 이곳에 오지 않는 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다른 날은 어디에서 밥 먹어? 어디에서 자고? 집이 딴 데 있는 거야? 혹시…….’
    “온 세상이 내 집이야.”
    루돌프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곤 방바닥을 뒹굴었다. 지예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목을 뒤로 꺾어 뚱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루돌프.
    ‘난 매일 너를 보고 싶어.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이제부터 어디 딴 데 가지 말고 나랑 여기서 살자.’
    “싫어.”
    루돌프는 단칼에 거절했다.
    ‘왜? 내가 잘해줄게, 나 심부름 잘하잖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하잖아. ……앞으론 투덜대지 않을게.’
    대답이 없다.
    ‘여기 주물러줄까?’
    지예가 어깨를 주무르자 루돌프가 갸르릉거렸다.
    ‘시원하지? 여기도 주무를까?’
    루돌프는 지예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허, 어허.”
    ‘나랑 있으면 매일 이렇게 시원할 거야.’
    루돌프는 지그시 눈을 감고 안마를 즐겼다.
    ‘내 말대로 할 거지, 응?’
    그러나 루돌프는 지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틈에 지예는 잠들어버렸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루돌프는 가고 없었다.
    지예는 속상했다. 또 바보같이 잠들어버리다니. 루돌프와 함께 있으면 왜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방이 유난히 휑뎅그렁하고 낯설었다. 허락 없이 남의 방에 몰래 들어온 것 같았다. 지예는 루돌프가 사라진 지붕들 너머 저쪽 끝 간 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예는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조금 긴장이 됐다. 한 번 더 깊게 숨을 쉬고 지예는 문을 열었다.
    맨 먼저 반긴 것은 그리운 도마질 소리였다. 구수한 냄새도 풍겨왔다. 주방 앞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고모의 뒷모습을 지예는 숨죽여 바라보았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마치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다가오는 조카딸을 고모는 웃음으로 맞았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지예야.”
    그동안 수백 수천 번도 더 불렀을 그 이름이 오늘처럼 그리운 적은 없다고 고모는 생각했다.
    “배, 배고프지? 많이 고파?”
    고모는 좀 허둥거렸다. 그렇게도 저 방문을 스스로 열고 나와 주기를 기다렸던 조카가 막상 눈앞에 나타나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저녁 먹으려면 좀 더 있어야 하는데, 어쩌지?”
    지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줄까? 과자 먹을래? 아니, 그럼 이따 밥 못 먹지? 여기 뭐가 있지?”
    고모는 허둥지둥 냉장고를 뒤졌다.
    지예는 말없이 행주로 식탁을 닦고 수저를 가지런히 놓았다. 냉장고에서 사과와 딸기와 오렌지 등을 주섬주섬 꺼내던 고모는 가슴이 뭉클했다. 지예가 지금 나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천지신명이시여!”
    할머니라면 그렇게 부르짖으며 합장했을 것이다.
    절에도 교회도 다니지 않는 고모는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휘몰아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알라신께도 감사드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감사를 올렸다. 정말로 이제부터는 시작해도 될 모양이었다.
    고모는 과일들을 식탁 위에 한꺼번에 부려놓았다.
    “자 이거 먹어가면서 해. 그렇지 않아도 너 좋아하는 부대찌개 만들 참이었어. 여기 이거 좀 봐, 소시지랑 햄이랑 치즈 잔뜩 사왔잖아? 마트 가니까 원 플러스 원으로 싸게 팔더라고. 살라미도 샀어, 봐. 이거 다 넣으면 정말 맛있겠지? 어머, 이러다 이거 존슨탕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지예야, 너 존슨탕이라고 들어봤어? 이름 되게 웃기지? 미국사람 이름이 붙은 김치찌개라니. 마이클탕, 줄리엣탕, 에 또 거기에 더해설라무네 다나까탕 왕서방탕 나타샤킨스키탕 하하 뭐 그런 다국적 이름의 음식이 나오면 진짜 웃기겠다, 그치? 그렇게 한식의 글로벌화가 이루어지는 거지. 있잖아, 존슨탕은 부대찌개 비슷한 건데, 뭐랄까, 피자를 찌개로 끓인 거라고나 할까? 지예 너 피자 좋아하잖아? 참 사람들 김치찌개에 소시지랑 치즈 넣어 먹을 생각을 어떻게 했나 몰라. 국물이 치즈 국물이야. 근데 맛있다는 사실! 이거 개발한 사람 상 줘야 해. 어우 이 오렌지 맛있다. 지예야, 너도 어서 먹어 봐. 딸기는 벌써 끝물인지 덜 다네.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렇게 쓸데없이 떠들기만 하고 뭐하는 거니, 나?”
    한껏 들떠서 수다를 늘어놓던 고모는 화들짝 놀라는 시늉으로 앞치마에 손을 닦고 도마질을 한다, 가스 불을 켠다 하며 정신없이 싱크대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밥을 푸는데 고모가 말했다.
    “할머니 껀 안 퍼도 돼.”
    손을 멈추고 고모를 보았다.
    “밤 기도 가셨어. 내일 새벽에나 들어오실 거야.”
    지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이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이후부터 종종 철야기도를 다니셨다.
    드디어 그 요란한 부대찌개가 완성되었고, 어쩌면 고모의 말처럼 존슨탕인지도 모를 찌개를 가운데 두고 지예와 고모는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앉았다.
    지예더러 먼저 한술 뜨기를 재촉하던 고모가 물었다.
    “어때? 먹을 만해?”
    끄덕끄덕.
    “아휴, 다행이다. 맛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
    ‘맛있어요.’
    “지예가 도와줘서 일이 훨씬 수월해졌어. 다른 때 같았으면 아직도 혼자서 절절맸을 텐데, 네가 도와주니까 좀 좋으니?”
    지예는 문득 숟가락질을 멈추었다.
    “어머, 이런.”
    고모는 공연히 스스로를 나무랐다.
    “아니 난 그런 뜻이 아니라 지예 네가 도와줘서 좋다고…….”
    “네가 도와주니까 좀 좋으니?”
    라는 말이 그 동안 왜 안 도와줬느냐고 타박하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고 고모는 생각한 것이다. 아주 사소한 말 한 마디, 몸짓 하나에도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져 있음을 두 사람은 깨달았다.
    “얼른 먹자, 아, 배고파.”
    고모가 일부러 숟가락으로 탕탕, 찌개냄비를 때렸다. 말을 더 조심해야겠다고 고모는 생각했다.
    말없이 밥 먹는 소리만 식탁 위를 오갔다.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는 소리, 우적우적 김치 씹는 소리, 꼴깍 음식물 삼키는 소리, 후루룩 국물 떠먹는 소리, 꿀꺽꿀꺽 물 마시는 소리…….
    “아참, 지금 드라마할 시간인데? 깜빡했다.”
    고모가 거실의 텔레비전을 켜놓고 돌아왔다. 왁자지껄한 텔레비전 소리가 어색한 공기를 완벽하게 메워줬다. 그제야 고모도 지예도 밥 먹는 것이 조금 편해졌다. 티브이 연속극은 할머니가 좋아한다. 고모는 티브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뉴스를 싫어했다.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아예 꺼버렸다.
    가까스로 저녁밥을 다 먹고 지예는 빈 그릇을 개수대에 갖다놓았다. 오늘 지예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고모는 콧등이 시큰했다.
    “지예야.”
    방으로 들어가려는 조카를 불러 세웠다.
    “이거.”
    고모가 내민 손에는 열쇠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이 집은 번호키가 아니라서……이건 위에 잠그는 거고, 이건 아래.”
    고모는 열쇠를 하나씩 들어 보여주었다.
    “꼭 둘 다 잠그지 않아도 돼. 둘 중 하나 아무 거나 잠가, 자.”
    지예가 멀뚱히 서 있기만 하자 손을 잡아끌어 손바닥에 놓아주곤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곤 이건 용돈.”
    지폐도 쥐여준다.
    “여기 집 주소 알지? 혹시 모르니까 이거 가지고 다녀. 고모 명함이야. 거기 주소 적어놨고, 고모 핸드폰 번호도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고모는 명함도 주었다.
    “저기……핸드폰 하나 살래?”
    지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리 맡겼는데 그냥 새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최신형 스마트폰으로다, 고모가 사줄게. 아니, 너 전화하기 편하라고. 요샌 공중전화도 잘 없더라.”
    ‘…….’
    “번호는 아직 그대로 있어.”
    고모는 지예가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걸 보았다.
    “그러니까 그게……그래 그 얘긴 나중에 하자, 미안해.”
    고모는 또 스스로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 알려줄게. 나가서 왼쪽으로 가면 큰길로 가는 골목이 나와. 그 골목을 따라 쭉 내려가다가 행운슈퍼 오른쪽 길로 한 10분쯤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 나올 거야. 우리 동네 오는 버스는 172번이랑…….”
    ‘고모, 나 밖에 안 나가요.’
    “전철 타도 돼. 진안 역에서 내려서 2번 출구로 나와 16번 마을버스 타면 돼. 4번도 있는데 그건 좀 돌아서 시간이 걸려.”
    ‘안 나간다니까요. 집에 있을 거야.’
    “차타고 가는 거 좀 뭣하면 그냥 동네 한 바퀴 돌아. 아참 저기 언덕에 한번 올라가봐라. 나도 얼마 전에 가봤는데,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 몰라. 동네가 한눈에 다 내려다보이거든. 세상이 다 내 발아래 있어. 나가서 오른쪽 길로 가다 보면 계단 보이거든? 거기로 올라가서.”   
    지예는 고모가 설명을 마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고모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설거지하는 고모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온 지예는 손에 있는 것을 책상에 놓았다. 열쇠, 명함, 돈. 계속 들여다보고 있자니 욕망이 꿈틀거렸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고모가 출근하고, 철야기도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 주무시는 걸 확인한 후에 지예는 집을 나섰다.
    혹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아닐까.
    지예는 두려워서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땅바닥만 내려다보며 걸어갔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처음 나오는 길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손발이 다 떨렸다.
    역으로 곧장 가서 전철을 탔다. 무슨 역에서 몇 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지는 아주 잘 알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데서는 더 조심해야 했다. 절대로 눈이 마주쳐서도 얼굴을 보여서도 안 된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의 고동은 드높아졌다.
    쿵쾅대는 심장박동에 맞춰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도 빨라졌다. 지예는 한달음에 땅위로 올라왔고, 한걸음 내딛자 발은 알아서 움직였다. 길을 찾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신발 바닥으로 전해지는 보도블록의 느낌, 길가에 심어진 나무의 모양, 대리석 조형물, 눈에 익은 건물들 모습, 동네의 표정, 이 분위기, 이 바람, 이 햇볕, 이 냄새……. 이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아파트 단지가 눈에 걸리자 심장은 터질 듯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예는 숨을 몰아쉬었다. 413동 모서리가 보였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415동이 보였다.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조금만 더 가면 보일 것이다. 몇 발짝 남지 않았다. 하나, 두울, 세엣.
    있었다! 있었다.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판박이처럼 모두 똑같이 생겼어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는 우리 집,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살았던 집, 아직도 꿈속에서는 살고 있는 집, 눈을 감아도 보인다, 저기 저 네모난 창문……안에서 나는 살았었다. 집은 저렇게 멀쩡히 그대로 저기 있는데, 난 여기서 뭐하는 거지? 집에 갈 거야, 우리 집으로 갈 거야. 땡!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눈에 들어오는 호수. 현관문 구석에 걸린 우유 주머니. 어느새 붙어 있는 치킨집 스티커. 띠리릭, 번호 키 누르는 소리. 다녀왔습니다!
    이제 오니, 지예야? 어서 손 씻고 와, 간식 먹게.
    엄마? 엄마!
    어머 얘가 왜 이래? 애기처럼?
    나 엄마가 없는 줄 알았잖아, 나만 두고 아빠랑 오빠랑 어디 멀리 가버렸는지 알았어.
    가긴 어딜 가, 엄마가.
    그치? 엄마, 엄마. 나 정말 무서웠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빵집, 약국, 은행, 휴대전화 대리점, 치과, 커피전문점, 꽃집, 부동산, 치킨집, 24시간 편의점, 김밥천국……모두 그대로야. 달라진 건 없어.
    저기 우리 반 애들이랑 잘 가던 떡볶이집도 있어. 아줌마, 안녕하세요? 저 지예예요. 네, 그럼요. 잘 있죠. 어, 저기 저 미용실은 못 보던 건데? 안경점이 없어지고 새로 생겼나 봐.
    “와하하!"
    지예는 후다닥 차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모자를 고쳐 쓰는 척 얼굴을 가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예 곁을 지나갔다.
    “야 진짜 웃긴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
    “말도 마. 내가 걔 땜에 아주 미친다니까.”
    참새처럼 재잘대며 지나가는 저 애들…….
    지예는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심호흡을 해야 했다.
    애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지예는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발짝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릎이 꺾여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괜히 왔어.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얘, 어디 아프니? 괜찮아? 아줌마가 도와줄까?”
    지나가던 아줌마가 말을 걸어서 무심결에 쳐다봤다가 지예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어머, 너 혹시…….”
    그 순간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얘! 잠깐만!”
    지예는 아줌마가 따라오기라도 할까 봐 이를 악물고 달아났다.
    “쯧쯧, 불쌍한 것, 불쌍해서 어쩔꼬? 쯧쯧쯧.”
    듣기 싫은 환청이 악착같이 들러붙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어서야 두 발을 멈추었다. 어지러워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손으로 무릎을 짚고 헉헉대는데 땀인지 눈물인지가 얼굴에서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윽윽.”
    목구멍에서 괴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깃댔다. 또 누군가 알아볼까 무서워 억지로 참고 도망치듯 걸었다.
    다시 찾은 지하철역은 집에서 두 정거나 지난 역이었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었고,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어이구 지예야, 어디 갔다 온 거야? 너 없어져서 할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어? 어디 가믄 간다고 말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떡해?”
    할머니는 지예를 부둥켜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지예는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기운도 하나 없었다.
    “어디 다친 데 없지? 무사한 거지? 아이고 이것아, 너 하나 남은 거 마저 잃으면 이 할민 못 산다, 못 살어. 자, 할미랑 약속해. 할미 두고 어디 안 간다고. 어디 가면 꼭 할미한테 얘기하고, 허락받고 간다고? 알았지? 어여, 약속해.”
    맥없이 종이인형처럼 흔들리고 있는 지예의 손을 끌어다 할머니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떨리는 할머니의 거칠고 메마른 손가락 힘이 억세게 전해지자 지예는 울컥했다.
    ‘할머니, 죄송해요.’
    “이제 이렇게 약속했으니까 꼭 약속 지켜야 한다.”
    할머니는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서야 놔주었다. 지예는 비틀비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쓰러졌다.
    “내가 느이 고모한테 전화해서 아주 혼꾸녕을 내줬어. 왜 혼자 나가게 부추겼냐고! 미친 것, 뭐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서 돌아다녀야 한다고? 그게 미친 것이지, 애를 혼자 내보내는 고모가 다 어디 있다느냐? 더군다나 너, 너는……. 그게 나이만 헛먹었지, 결혼해서 애를 낳아봤어야 부모 속을 알지,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나 매한가지다. 고모 말 듣지 마. 고모가 하랜다구 해선 안 돼, 큰일 나.”
    할머니는 고모 흉을 있는 대로 보고, 퇴근해 들어오는 고모한테 들입다 화부터 퍼부었다.
    “아니, 너는 정신이 있는 애냐? 없는 애냐?”
    현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다다다 쏘아붙이는 할머니의 지청구를 고모는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애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또 무슨 화를 당하면 어쩔 뻔 했냐, 이것아! 넌 고모가 돼가지고 어째 그렇게 생각이 없어?”
    그러나 고모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받았다.
    “에이,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쥐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는 이 에미 심정 몰라서 그러는 게야?”
    “알았어요,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난 인제 지예 절대 어디 안 보낼 거야. 어디 가드라도 꼭 내가 데리고 갈 거야. 암, 내가 꼭 잡고 있어야지, 그래야지, 그렇고말고. 나는 절대 지예 손 놓지 않을 거야. ……아이고 가슴이야, 물 좀 다오.”
    고모가 냉장고에서 꺼낸 물을 컵에 따라주자 할머니는 벌컥벌컥 들이켜고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내가 아까 쟤 기다리면서 또 속 태운 생각만 하면, 어휴.”
    할머니는 옷섶으로 눈물을 훔쳤다.
    “엄마,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지예 생각만 했지 늙은 어머니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는 걸 고모는 깨달았다.
    “엄마, 다신 안 그럴게.”
    아무런 힘도 없는 말이었고, 그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하는 약속이었지만 고모는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어머니의 슬픔을 달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 늙은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아무래도 일월성신 제석천왕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 보구나.”
    고모는 가물가물 잠이 오고 있었다.
    “참으로 용하지 않니? 어제 기도하는데 좋은 기운이 보인다고 그러더니 이런 일이 있을라구 그랬구나.”
    “…….”
    “방안에만 콕 틀어박혀 있어서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는데, 너 지난번에 지예가 아침마다 참친지 꽁친지 통조림 가져간다고 그랬잖아? 그때도 만신님 치성이 통해서 그랬던 거야. 그놈의 교회 발 딱 끊길 정말 잘했어. 그때도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우리 애들 금방 찾아주고.”
    할머니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어이구 가슴이야.”
    할머니는 이불을 젖히고 벌떡 일어나 앉아 한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엄마, 또 가슴이 답답해? 괜찮아요?”
    “또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구나. 어이구 가슴이야.”
    할머니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엄마.”
    고모도 잠이 싹 달아나서 일어나 앉았다.
    “엄마, 인제 그만 울기로 했잖아. 지예 생각해야지.”
    “그려, 지예를 위해서라도 내 이 악물고 살아야지.”
    “인제 시작이야, 엄마. 지예가 다시 학교에도 가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러도 다니고, 우리 엄마한테 ‘할머니, 할머니.’하면서 애교도 부리고 그럴 거야, 우리 지예 얼마나 애교가 많았어?”
    “많았지. 샘도 많고 애교도 많고.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였는데.”
    “곧 다시 그렇게 될 거야. 심부름도 잘하고 우리 엄마 안마도 해드리고 까르르 웃기도 잘하고, 예전처럼.”
    “예전처럼?”
    “응, 예전처럼. 꼭 다시 그런 날이 올 거야.”
    고모는 반드시 그런 날이 오리라고 굳게 믿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그렇게 되어야만 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었다. 고모는 기필코 조카에게 생을 되찾아 주리라 다짐했다.
    “맞아, 그런 날이 꼭 올 거다.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나는 믿는다. 만신님이 그러셨거든.”
    할머니는 눈물을 닦고 이부자리에 누웠다. 죄인처럼 웅크린 모습이 안쓰러워서 고모가 다리를 쭉 펴주었지만 할머니는 이내 옹송그렸다.
    “엄마, 다리 좀 펴.”
    “놔둬라, 이게 더 편하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조그맣게 몸을 모으고 나지막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모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할머니의 기도소리는 금세 끊겼다. 대신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점집 무당을 철썩 같이 믿고 따르는 것이 못마땅한 고모였지만, 무당이 알려준 주문도 외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할머니는 애처로웠다.
    산비탈 중간쯤에 자리 잡은 이 집으로 이사 오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언덕을 올망졸망 뒤덮은 지붕들 위로 삐죽 솟은 삼색 깃발이었다. 빨강, 노랑, 하얀 천이 차례대로 매달려 나부끼는 그 점집은 지예의 방에서 제일 잘 보였다. 할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삼색 깃발 나부끼는 점집을 찾아갔고, 그리고 교회를 끊었다.
    희한하게도 할머니는 점집에 다니고부터 마음의 안정을 얻기 시작했다. 지금도 잔뜩 찡그린 이마를 펴지 못하고 주무시고 계시지만 그래도 이런 정도라도 잠들 수 있게 된 건 틀림없이 무당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십 수 년 다니던 교회에서는 얻지 못하던 평안이었다. 무당한테 큰절이라도 올려야하나?
    “흐음.”
    할머니가 한숨을 토해내며 돌아누웠다. 그리고 잠꼬대인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 애들 진혼굿을 해줘야 하는데…….”

 

 

 

 

 

 

 

 

 

 

 

 

 

 

 

 

작가소개 /홍은경

서울 출생.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누구세요?」가 당선되어 등단.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중편소설 「길-아름다운 동행」이 가작으로 입선했고, 장편동화 「이단옆차기」로 소천아동문학상 신인상을 수상.
저서로 『황금 똥을 누는 아이』, 『고양이가 왜?』, 『어린이를 위한 잠재력』, 『힘센 게 최고야』,『당나귀 도서관』 등이 있음.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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