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이 숨쉬는 방

[2015 아르코창작기금]

 

 

도마뱀이 숨쉬는 방

 

 

탁명주

 

 

    바이브가 젖은 걸레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그 애의 발밑에서 나무 계단이 찌걱댄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내 눈치를 살피느라 뒤꿈치를 들어보지만, 조심하면 할수록 낡은 계단은 요란한 소리를 낼 뿐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이브가 어깨를 움츠리며 소리 없이 웃는다. 눈만 마주치면 웃음을 주고받는 대화법에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나는 어색해진 시선을 벽시계로 돌린다. 오전 열 한 시. 한국 시간으론 이미 열두시다.
    오늘도 최 사장에게선 연락이 없다. 송수화기를 집어 들고 마닐라 지역 번호를 누르다 주춤한다. 스페인계 필리핀 여자와 결혼한 최사장은 처가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필리핀의 여느 가족처럼 대가족인 셈이었다. 이미 오십 줄인 그보다 열댓 살이나 어린 그의 아내 자네트는 막내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자네트의 자매들과 그 가족들까지 그의 집에 바글바글 모여 사는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최사장이 직접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큰 낭패다. 그의 가족들이 쏟아내는 타갈로그어를 나는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슬며시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블라인드 틈에서 무언가 움직인다. 늘씬한 몸에 기다란 꼬리를 가진 도마뱀이다.
    놈은 창문 위 천장 모서리에 멈춰 있다. 속이 비칠 듯 투명한 꼬리가 연두색 몸통을 따라 날렵하게 휘어져 있다. 미동도 없이 형광등을 노려보는 놈의 시선 끝에서 가뭇한 날벌레 한 마리가 선회하고 있다. 빛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저 날벌레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파충류라면 질색인 나는 두 발을 소파 위로 끌어올린 채 놈을 주시한다. 방충망을 치고 살충제를 뿌려도 끊임없이 날벌레가 들어오는 것처럼 아무리 문단속을 해도 놈을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처음처럼 혐오스럽진 않지만 놈을 보고 나면 아직도 한동안 온몸이 근질거린다.
    드디어 놈이 움직인다. 놈의 꼬리가 경련을 일으키는 순간 형광등 불빛을 맴돌던 날벌레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날벌레의 공포가 그대로 목덜미에 와서 얹힌다. 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근질거리는 뒷목을 쓸어내린다.
    급하게 수로 속으로 파고드는 하숫물 소리가 들린다. 이층 화장실이다. 나는 움찔 놀라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바이브에게 방 청소를 맡기지 말라고 한 딸애의 당부가 떠오른 것이다. 한 달 전 잃어버린 반지를 화장품 바구니 안에서 찾아내고도 딸애는 여전히 바이브를 의심했다. 며칠 전엔 비누가 없어졌다고 소란을 피우더니, 오늘 아침엔 설탕 봉지가 비었다고 투덜거렸다.
    딸애 방의 문틈으로 바이브의 등허리가 보인다. 책상 밑으로 걸레를 밀어 넣는 그 애의 겨드랑이가 흠씬 젖었다. 카펫 좋아하는 나라에서 바닥 걸레질이라니, 하녀 애들이 한국식 방 청소를 힘들어하는 걸 모르는바 아니다. 그렇다고 더운 날씨에 개운치 않은 카펫 위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애가 딸애 방의 청소를 끝내고 건너오기 전에 재빨리 내 방을 점검한다. 여권과 얼마간의 비상금을 딸애가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챙길 것은 사실 페소가 든 지갑과 금붙이 따위 자잘한 것들뿐이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표가 날 물건들이지만 나는 시계며 액세서리를 외출복 주머니에 넣어둔다.
    아래층에 내려오자 희미한 진동음이 울린다. 휴대폰 벨소리다. 딸애가 두고 나가지 않은 이상 집안에 그런 물건이 있을 리 없다. 식탁 주위를 훑어보곤 방충망이 쳐져 있는 바이브의 방을 슬쩍 들여다본다. 옷걸이용 행어에 싱글매트가 전부인 그 방은 부엌에 딸려있는 하녀 방이다. 바이브를 들인지 석 달이 되어가지만, 한 쪽 구석에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이 놓여있을 뿐, 사람이 사는 방 같지 않다. 돌아서려는 순간 다시 진동음이 울린다. 바이브 방이 확실하다. 에코백 한쪽에 옅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저 애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던가? 딸애는 휴대폰을 쓰는 하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는 보나마나 남자친구가 있어서 하루 종일 텍스나 치면서 나갈 궁리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에 집안일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급료 받는 날 대책 없이 일을 때려치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주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일 년 이상 모아야 살 수 있는 저 비싼 물건을 저 애는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딸애한테 휴대폰을 들키는 날엔 저 애는 끝장이다.
    주차장을 지나 골목으로 나선다. 뛰거나 걷기에 좋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매트로 마닐라에서 멀지 않은 라스핀야스 시의 로즈 에버뉴, 이 블록엔 다른 한국인 가정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현관문 앞에 벗어놓은 신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치를 먹는 것만큼이나 좌식 생활을 고집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성인 까닭이다. 그걸 알고 나서는 불안했던 마음이 좀 편해졌지만 그렇다고 인사를 하고 지내는 사람은 없다. 처음엔 외국인과 마주치는 게 두려워서 집밖으론 나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경계를 풀게 된 것은 최사장의 아내 쟈네트와 그 가족들 덕분이다. 남편인 최사장과 달리 성격이 세심한 쟈네트는 이틀이 멀다하고 나를 초대했다. 그렇게 어울리면서 영어도 배우고 현지 생활에 적응하라는 그 나름의 배려였다. 쟈네트의 자매들과 카드를 할 때면 성격이 곰살맞은 쟈네트가 타갈로그어를 영어로, 영어를 다시 서툰 한국말로 통역해 주었다.
    그렇게 다정했던 쟈네트가 돌변하여 냉랭해질 거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코너를 돌자 잘 가꾸어진 인도인의 정원이 보인다. 어마어마하게 큰 잭푸룻 열매가 정원 밖으로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익을수록 달콤하면서도 과육의 결을 따라 씹는 맛이 있는 저 과일을 볼 때마다 늙은 호박이 생각난다. 솜털이 부숭부숭한 호박 넝쿨에나 매달려 있어야 어울릴 것 같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땐 인조 과일인 줄 알았다. 굵은 나무둥치에 그런 과일이 매달려 있는 게 너무도 엉뚱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긴 엉뚱한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필리핀에 와서 낯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여있는 것이나 쟈네트가 한국인인 최사장에게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엉뚱하긴 마찬가지다. 쟈네트와 잘 지냈던 지난 시간 역시 비현실적이다.
    쟈네트의 불편한 탐색전은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저 최사장이 우리 집에 드나드는 걸 경계하는 정도였다. 곧 쟈네트의 탐색은 피곤한 심문으로 발전했다. 언제나 이해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그녀 덕분에 나는 사소한 것일수록 말로 설명하기가 구차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쟈네트의 질문은 명쾌했다. 왜 너의 딸 문제를 내 남편에게 물어 보냐는 거였다. 한국인 남자와 여자가 아이들 교육이나 현지에 관한 그저 일상적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만나는 걸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최사장은 하루 한 번 정도 산책하는 길에 가볍게 들렀다가 한두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돌아갔다. 그 일이 쟈네트의 입장에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사장은 비즈니스 때문에 나를 만나는 거라 변명이라도 했지만, 그녀를 설득시킬 언어실력을 갖추기 못한 내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쟈네트의 눈치를 보느라 발길이 뜸해지기 전 최사장은 집에 올 때마다 한국 식료품점에 들러 라면을 사오곤 했다. 오랜 타국생활에 오죽할까싶어 두말없이 라면을 끓여 김치를 내주곤 했다.
    걸음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모퉁이를 돈다. 두 바퀴를 돌았을 뿐인데 뒷목이 후끈거린다. 더 걷기엔 너무 더운 한낮이다. 딸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최사장 집엘 들러 볼 궁리를 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언제까지 쟈네트의 눈치만 보면서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일이다. 애초에 서류를 접수하면서 최사장은 비자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말했다. 나온다는 날짜를 두 주일이나 지나쳤지만 필리핀 행정을 고려해 볼 때 그 정도는 늦는 것도 아니었다. 최사장이 수시로 이민국에 드나들면서 담당자를 닦달한 덕분에 그나마도 진전이 있었다. 몇 달 전 두 눈 멀쩡히 뜨고 차 값을 날릴 뻔했을 때도 최사장은 큰 도움을 주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서늘하다.
    중고차 매매를 겸해 식당을 하고 있는 윤사장을 알게 된 건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이 들어올 때마다 식사를 하러가던 한식당 주인이었다. 몇 번 만나 안면을 익혔다고 쉽게 그를 믿어버린 것이 불찰이었다. 도요타에서 만든 소형 콜로라를 인수하던 날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집까지 차를 가져온 사람은 낯선 필리핀 사내였고 영어를 썼다. 사내의 말 중에 요행히 ‘사인’ 이란 단어를 알아들었다. 사내가 내미는 서류에 서명을 하자 그는 두꺼운 입술을 말아 올리며 웃어 보이곤 트라이시클을 잡아타고 떠났다. 그가 골목을 벗어난 후에야 번호판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윤사장은 즉석에서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 내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차를 판 사람과 연락이 두절되었으며 그런 일은 흔하다는 것이 윤사장의 대답이었다. 당황스럽고 한편 분해서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데, 달러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으니 번호판일랑 걱정하지 말라고 최사장이 위로했다. 그리곤 운전기사 알란을 데려와서 일단 차를 쓰게 해주었다. 차량등록 서류를 꾸며 새 번호판을 뽑아오는 동안 고속도로나 공항을 출입하면서 적잖은 벌금을 물어야 했지만 아쉬운 대로 차를 쓸 수 있었다. 그 즈음, 딸애는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멋모르고 경찰에 신고했다가 은행에 잡혀 있는 매물이라는 것이 밝혀져 차만 뺏겼다는 말을 듣고 왔다. 최사장이 있어 그래도 우린 다행이라고 딸애 앞에서 자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쨌든 그 사소한 실수로 미화 팔백불이 번호판 값으로 더 들어갔다. 그나마도 최사장이나 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영어라면 젬병인 남편이 아니라 최사장이 옆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한 낮의 더위 속에서 들어오니 집 안이 그늘 속처럼 시원하다. 대나무 소파에 누워 TV를 켠다. 아리랑 채널에선 클래식 연주회를 방영하고 있다. 다른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연속극이나 영화 같은 볼 만한 프로가 없다. 청소를 마친 바이브가 빨래를 안고 뒷마당으로 나간다. 저 애는 하수구로 비누 거품을 흘려보내면서 더운 오후시간을 견딜 것이다. 처음 집에 들이던 날 부엌 한 쪽에 딸린 식모 방에 짐 정리를 마치고 저애는 뒷마당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눈빛에 두려움을 담고 있는 아이였다. 며칠 겪어보니 손끝이 야무지고 바지런한데다 눈치가 빨랐다. 딸애는 바이브가 영어 발음도 좋고 공부도 웬만큼 한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한인가정을 전전하던 경력 때문인지 어지간한 한국말 정도는 알아들었다. 몇 명의 하녀가 거쳐 갔지만 처음으로 눈에 차는 아이였다. 한인사회의 관례라면서 처음 하녀를 들이자고 한 것은 딸애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녀처럼 보이는 제 엄마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 후 딸애는 한 달이 멀다하고 일하는 아이를 갈아 치웠다. 생선 몇 토막이 없어졌다거나, 청소를 더럽게 한다거나 외출이 잦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딸애는 세상의 냉혹함을 바닥까지 알아버린 늙은이처럼 굴었다. 때때로 찬바람이 도는 딸애의 행동이 염려스럽기도 했지만, 그래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입시를 치를 무렵 답답증이 치솟을 정도로 소심하고 말이 없던 아이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딸애의 어디에 그런 성깔이 숨어 있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혼자서는 똑바로 말 한마디 통할 수 없는 나로서는 딸애가 하녀를 들이든 내쫓든 참견할 여지가 없다.
    소리를 죽여 놓은 TV화면에 음식을 먹는 사람들 모습이 비춰진다. 김이 오르는 통통한 면을 양념에 비벼 포크로 말아 올린 여자가 음식을 입안에 넣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딸애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다. 갑자기 국수 생각이 난다. 야채가 골고루 들어간 비빔국수의 상큼한 양념 맛이 혀끝에서 살아난다. 시원한 멸치국물에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식욕이다. 이곳에 온 후로 고추장에 비비거나 변변찮은 야채를 넣은 멀건 된장찌개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냉장고를 뒤진다. 야채라곤 감자 몇 알과 양파뿐이다. 비빔국수를 포기하고 냄비에 물을 얹는다. 시원한 국물을 낼만한 것이 마땅찮다. 밍밍한 국물은 생각만 해도 비위가 상한다. 할 수 없이 포기김치 한 쪽을 꺼내 잘게 썰어 넣는다. 김치 통을 집어넣으려다 다시 뚜껑을 열어본다. 담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겨우 두어 쪽이 남아있을 뿐이다. 딸애가 라면을 좋아해서 김치가 헤프긴 하지만 최사장이 드나드는 것도 아닌데 이건 좀 너무하다. 내일이라도 당장 김치를 담아야할 모양이다. 일 년 내 바기오에서 생산되는 배추가 한국의 고랭지 배추처럼 갓이 얇고 달다. 양념값이 비싸기는 해도 아무 때고 김치를 담아먹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막 끓기 시작하는 국물에 내장을 발라놓은 멸치 몇 마리를 넣는다. 국물 맛을 내기엔 그래도 멸치가 최고다. 멸치의 아가미가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냉동실에서 가락국수를 꺼내 냄비 속에 넣는다. 국수가 푹 퍼질 때까지 냄비의 뚜껑을 닫아둔다. 잠깐 동안 필리핀에 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김치를 넣고 끓인 국수는 남편이 좋아하는 별식이다. 모처럼 집에 있는 날이거나 늦은 밤 출출할 때면 어김없이 국수를 주문했다. 숱하게 끓여주긴 했지만 마주 앉아 국수를 먹어본 기억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건 맑은 장국에 말아먹는 잔치국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최사장 부부와 점심을 먹을 일이 있을 때마다 잔치국수를 끓여냈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쟈네트 때문이었다. 닭죽이나 잔치국수는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먹는 르까우 수프와 비슷해서 쟈네트도 좋아했지만 가끔은 최사장과 단둘이 먹기도 했다. 그는 오랜 외국생활이 입맛까지 바꾸진 못하는 모양이라며 김치와 함께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맛나게 그릇을 비웠다. 최사장의 발걸음이 뜸해진 뒤부터는 그나마 잊고 살았다.
    뚜껑을 열자 진한 국물냄새와 함께 뽀얀 김이 올라온다. 거품을 걷어내고 소금 간을 맞춘다. 익은 김치의 칼칼한 맛에 침이 고인다. 반찬도 없이 혼자 식탁에 앉아 국수 대접을 비우던 남편이 떠오른다. 지난 달 잠깐 들어왔을 때 풍치를 치료중이라 입맛이 없다면서 꺼칠한 턱을 문지르던 모습이 겹쳐진다. 뚜껑이 덜그럭거린다 싶더니 순식간에 국물이 넘어 가스 불이 꺼진다. 냄비를 들어내고 불판 주위를 훔치다가 행주를 던져버린다. 이런 건 바이브가 할 일인 것이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젓는다. 구수한 냄새가 그럴 듯하다. 냄비 째 식탁에 옮겨놓고 국수를 한 젓가락 집어먹는다. 혓바닥을 들어 올리는 순간 너무 뜨거워 얼결에 삼켜버린다. 불덩이 하나가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것 같다. 가슴 전체가 파열된 것처럼 화끈거린다.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들이킨다. 어이없게도 눈물이 쑥 빠진다. 젓가락을 개수통에 던져 넣고 남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남편은 건조한 목소리로 나중에 연락하마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늘 이런 식이다.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평생 따스함이라곤 없는 사람, 어떤 상황이든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그가 이럴 땐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바깥일이든 집안일이든 내 의견 따위는 필요치 않은 사람, 그것이 무관심 때문인지 혹은 묵살해야 할 만큼 내가 모자라기 때문인지 고민하지 않기로 한 다짐을 되씹는다. 물통을 챙겨들고 다시 식탁에 앉았지만 이미 입맛은 달아난 후다.
    빨래를 널고 들어오는 바이브에게 식탁을 가리킨다. 한국 음식도 곧잘 먹는 그 애가 윗입술을 살풋 열며 웃는다. 접시를 가져다가 국수를 덜어내는 그 애를 따라 나도 국수를 떠서 식탁에 앉는다.
    “마사랍.”
    바이브가 눈웃음을 보내며 작게 중얼거린다. 맛있다는 말이라는 건 알겠다. 영어는 물론이고 타갈로그어도 잘하는 최사장에게서 귀동냥한 말이다. 트라이시클을 타거나 물건 살 때 필요한 말이라며 그는 몇 가지를 더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온세(하나), 도세(둘) 따위의 숫자 몇 개와 가난(오른쪽), 갈리와(왼쪽)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말뿐이다. 이제는 딸애가 이 나라 말을 웬만큼 한다. 교과목 중에 타갈로그어가 들어있기도 하지만 이곳 친구들과 억척스레 어울린 결과다. 한숨을 쉬며 국수를 집어 올린다. 불어서 젓가락만 닿아도 국수발이 뚝뚝 끊긴다. 수저통에서 숟가락을 꺼내 바이브에게 건네주고는 숟가락에 국수를 얹어서 보여준다. 나를 따라하며 살포시 윗입술을 열어 보이는 바이브에게 마주 웃어준다. 종일 집안에 둘이 있다 보면 딸아이보다 바이브가 더 살가울 때가 있다. 요즘 들어 딸애는 바이브와 비슷한 또래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그악스러워졌다. 가끔은 그런 딸애가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필리핀으로 건너온 지 근 일 년, 내가 도마뱀 따위와 싸우면서 아리랑TV에 익숙해지는 동안 딸애는 무섭게 이민사회에 적응해갔다. 최사장이 소개한 국립학교의 서머스쿨에 참여하면서 그 애는 한인 교회에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애의 모든 정보통은 교회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애는 튜터를 소개받아 시간표대로 영어를 배웠다. 하지만 UP나 아테노 등 알아줄만한 명문대에서 공부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명문고의 전철을 착실히 밟아야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딸애는 그런 자신의 상황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마닐라를 중심으로 통학이 가능한 대학마다 원서를 쓰더니 사우스빌 국제대학에 들어갔다. 이학년 이상을 다니면 유학이 인정되어 한국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만한 정보를 가지고 유학을 주선한 최사장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었다. 딸애가 튜터를 만나는 동안 나는 모기와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정원을 청소했다. 그리곤 망고나무 아래 한국에서 가져온 오이나 호박, 상추 등 채소의 씨앗을 심었다. 배배 꼬인 열대 야채류를 사먹느니 직접 키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벙어리나 다름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울타리 안의 허드렛일로 시간을 소모하는 일뿐이었다. 때문에 집안에 드나드는 시간제 어학선생들은 모두 나를 하녀로 알았다. 딸애가 엄마라고 나를 소개하면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설거지를 끝내고 방에 들어간 바이브가 아무 기척이 없다. 소파 위에 길게 누워 팔걸이에 다리를 걸친다. 대나무소파는 시원하긴 하지만 그리 안락하지 않다. 드르르, 손끝에서 미싱 땀이 박혀나간다. 십여 년 전 남편이 하던 의자 부품 공장이 부도를 맞았을 때 재봉사 일을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수영복 공장의 시다 일이었다. 그 때만해도 딸애가 어려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 전 우체국에서 일했던 내게 공장 일은 낯설었다. 턱없이 어린 미싱사들에게 거친 소릴 들어가며 일을 익히는 동안은 몹시도 고됐다. 남편 공장은 변변찮은 규모에 불황까지 겹쳐 어렵게 돌린 자금을 쑤셔 박기 일쑤였다. 아무 희망도 없는 공장을 붙들고 미련 떠는 남편 때문에 내가 타고 앉은 재봉틀은 생계수단이 되었다. 기술이 늘면서부터는 쏠쏠한 재미도 있었다. 기능성 수영복의 특수 원단을 다루는 건 까다로운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높은 수당을 받았다. 변두리일망정 서울에서 버티면서 남들처럼 딸애를 학원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다 재봉사기술 덕분이었다. 오십 견을 앓고, 호흡기 알레르기를 달고 살면서도 억척스레 버텨낸 덕분에 계를 부어 목돈을 만질 수도 있었다. 내가 남모르게 자부심을 갖는 것도 그렇게 모은 비자금 때문이었다. 물론 남편이 모르는 돈이었다. 알았다면 공장운영비로 벌써 날아가고 없었을 거였다. 미련하게 생겨서 일복만을 타고난 줄 알았던 손이 호사를 맞았음에도 자꾸만 그 때가 그립다. 재봉틀을 만질 때의 편안함을 잊을 수 없다. 당년 여름을 겨냥한 새 디자인의 수영복을 한 계절 앞서 신소재 원단으로 뽑아낼 때의 통쾌한 손맛, 그 뿌듯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톱 끝을 더듬어 본다. 검지 끝에서 운 좋게 거스러미가 걸린다. 손톱을 찢어내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다가 마늘을 생각해낸다. 발소리를 내며 달려가 창고를 뒤진다. 양파자루에 든 통마늘을 찾아들자 뿌듯하기까지 하다. 창고 문을 닫는 소리에 바이브가 냉큼 달려 나온다. 가는 팔로 마늘자루를 받는 바이브에게 손사래를 쳐보지만 막무가내다. 손을 귀에 대며 한잠 자라고 몇 번을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바이브는 금방 두 손을 마주 잡고 비는 시늉을 한다.
    “쏘리 맘, 쏘리 맘”
    난감한 일이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바이브에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심부름을 시킨다.
    “코리안 그로세리에 가서 라이스 사가지고 와, 라이스.”
    주머니에서 천 페소짜리 지폐를 꺼내주자 바이브의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워터멜론도 하나 사.”
    “예스 맘, 온리 완?”
    말뜻을 알아들은 바이브가 눈웃음으로 검지를 세운다. 차도 없이 한국슈퍼에 다녀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바이브가 나간 뒤 한글판 마닐라 소식지를 꺼내서 펼친다. 활자 위에 통마늘을 쏟아놓고 잰 손놀림으로 마늘을 까기 시작한다. 쪼개낸 마늘의 디딜 싹을 잘라내는데 엄지 안쪽이 쓰리다. 손에 익지 않은 칼날이 상처를 낸 모양이다. 독한 마늘의 수액이 묻어나면서 살갗이 아려온다. 그러나 싫지 않다. 속껍질까지 벗기면서 열중해 있는데 전화 벨소리가 끼어든다. 차 쓸 일이 있으면 집으로 들어오겠다는 딸애의 전화다.
    “최사장 집에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최사장을 좋아하지 않는 딸애 눈치를 보며 슬쩍 묻는다.
    “연락도 없는걸, 뭐.”
    딸애가 핀잔을 놓는다.
    “아쉬운 쪽에서 찾아 다녀야 한번이라도 더 신경을 쓰지. 그게 이 나라 식이라며?”
    “몰라, 혼자서 가든 말든 맘대로 해.”
    딸애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말은 그렇게 해도 문제를 피해갈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안다. 서울에 머물러 있었다면 딸애는 결코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선택할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필리핀이라는 히든카드가 없었다면….
    두해 전, 딸애는 입시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유기했다. 그런 딸애를 부채질 한 건 남편이었다.
    “못난 것들은 집구석에 있어.”
    명절이 되어 큰집에 가면서 남편이 뱉어낸 말이었다. 그 순간 딸애의 눈빛에 떠오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입시생을 둔 집에는 안부인사도 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말이 있지만, 내 입장에서도 한 번 뜨악해진 친인척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풀 방법이 없었다. 남편은 불행을 제공한 딸애를 맹렬히 원망했다. 일체의 시선을 방문으로 차단시켜버리고 들어박힌 딸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애 입장에선 모두가 한 패로 보였을 거였다. 딸애의 서랍에서 흰 알약 병을 발견하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 무렵 남편이 사업차 알고 지내던 최사장이 귀국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딸애 소식을 들은 그가 필리핀 유학을 권했다. 처음엔 그렇게 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것의 가능성에 열렬히 매달리게 되었다. 모든 지겨운 것들로부터 벗어나기에 그 보다 좋은 방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정을 해놓고 보니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재수생에게 주어지는 ‘벌금 천만 원에 집행유예 일 년!’ 이라는 불명예 선고를 전화위복으로 만들 기회가 온 거였다. 계획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차피 한집 건너 한 명씩 유학을 떠나는 마당에 비행기로 네 시간 거리면 서울서 부산 거리밖에 더 되냐고 친인척들에게 변명을 하면서 나는 이상한 기대감으로 들떴다. 그러면서도 열대 지방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막상 준비를 하려니 막막했다. 그래서 그 준비라는 것이 뭘 사거나 챙기는 것이 아니라 주로 포기하는 쪽이었다. 단단히 얽혀있다고 믿었던 삶의 덩굴손은 서운할 만큼 쉽게 나를 놓아주었다.
    딸애가 들이닥쳐 닦달을 하기 전에 하던 일을 정리한다. 알 마늘을 대접에 담는데 ‘장기비자 최소비용…’ 이라는 활자가 눈에 들어온다. 마늘 껍질을 밀어내며 살핀다. 밑 부분이 찢겨져 나가고 없다. 어차피 광고인 다음에야 믿을 게 뭐란 말인가. 숫자를 명시해서 보여주지 않는 비교급은 아무 쓸모가 없다. 껍질과 함께 신문을 말아치우면서 쓴 입맛을 다신다. 뭔가 중요한 정보를 놓친 것만 같아 허전하다. 이미 벌여놓은 일이지만 남들처럼 장기비자 만들어서 해마다 연장하는 것이 속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은퇴 비자만 있으면 이 나라에 사는 동안 자국민 이상으로 우대 받을 수 있고 딸애가 졸업장을 받는데도 훨씬 유리하다는 최사장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관절질환을 가진 부유한 노년들이 이주하여 노후를 보내기에 필리핀은 기후나 물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조건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기에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에서도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 거라고 했다. 예치 비용은 한화로 칠천만 원 이상이고, 언제라도 비자를 반납하면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민국 찾아다니며 비자 연장하는 것도 신물이 난 터였다. 접수를 받고 승인을 내주는데 이틀을 고스란히 잡아먹는 이민국 직원들의 행정이 갈수록 딸애의 성질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결국 남편 모르게 가지고 굴리던 비자금 칠천만원을 몽땅 밀어 넣었다. 이미 건너간 돈의 액수를 생각할 때마다 혀끝이 말려든다. 입안에 고여 든 쓴 침을 삼키고는 신문 뭉치를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스킨로션에 썬 크림을 두드리는 걸로 대충 화장을 마무리한다. 여름옷 일색인 몇 개의 외출복 중에 투피스를 찾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어찌된 일인지 바이브가 늦는다. 바람한 점 없는 창밖을 둘러보고 리모컨을 찾아든다. 아리랑 채널에선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한국인 남녀 앵커가 진행을 하는데, 영어로 진행하는 것도 모자라 중국어와 일본어가 자막으로 지나간다. 진원지를 알 수 없는 근지러움이 서서히 번지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본다. 만화와 함께 광고만 줄 창 내보내는 카툰 네트워크의 광고음악이 지나간다. 무심코 발등을 후려친다. 염병할 놈의 모기다. 벌건 피가 손바닥에 묻어 나오길 기대했지만 손자국만 발등에 찍혔을 뿐이다. 용케 집안의 어두운 그늘에 몸을 감추고 있다가 밤사이 집요한 공격을 가하는 열대 모기가 활동을 시작한 모양이다. 무의식적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아니나 다를까, 도마뱀 한 마리가 천정에 붙어있다. 놈은 언제나 사냥감과 동시에 눈에 띈다. 콘센트에 꽂힌 채 증발되어 가는 액체 모기향을 확인한다. 분무용 살충제나 전기 모기향 따위로 해충들과 싸우는 건 미련한 짓임이 분명하다. 골목의 가로수나 정원수들은 주로 야자수나 바나나 혹은 망고나무, 이름 모를 아로마 따위의 달달한 과육을 맺는 것들이다. 진딧물이나 벌레들이 꼬이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꿀을 풍부하게 섭취한 곤충을 매개로 먹이사슬이 형성되는 것이다. 언젠가 최사장이 말했다. 이곳의 먹이사슬에서 몸을 피하는 방법은 산지 과일의 수액을 체내에 채워 넣는 것뿐이라고. 열대 과일을 주식으로 삼는 원주민은 물것을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앓느니 죽지.’
    도대체 적응이 안 되는 열대 과일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입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망고와 뭉클한 고린내로 비위를 뒤집는 두리안 따위를 먹느니 차라리 모기와 싸우는 게 낫다.
    천장에 길을 내듯 천천히 발을 내딛던 도마뱀이 형광등을 지나쳐 현관문 쪽으로 다가선다. 엄지 손톱만한 나방이 유럽풍 현관문의 스테인드글라스에 거푸 몸을 부딪치고 있다. 모자이크 무늬의 유리조각으로 갈라져 들어오는 빛이 나방의 날개에 혼혼하게 녹아들면서 한 빛깔이 된다. 놈들의 사냥을 여러 번 지켜보았지만 마지막 순간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놈의 머리가 재빨리 움직이는 순간에 끝나버리는 사냥의 과정은 시야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혓바닥이 나와 날 곤충을 접수하는 장면은 느리게 확대되어 뇌리에 박혀 있다. 딸애가 보던 그림책이거나 교육용 비디오에서 본 장면일 거였다. 놈과 나방의 거리는 불과 두어 뼘 정도로 가까워져 있다. 나방이 착지를 시도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잔뜩 긴장한 채 목을 움츠린 놈은 지금 나방의 움직임 속에서 단순한 반복성을 읽고 있을 것이다. 놈의 시선을 감지한 걸까 빛의 농도가 짙은 아래쪽으로 나방이 이동한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현란한 빛깔에 종횡무진 몸을 부딪는 나방을 따라 놈이 용의주도하게 움직인다. 빛과 빛 사이로 들어간 놈의 형체가 아련하다. 빛 속에서 놈이 푸른 입김을 토해내는 것 같다. 후끈한 열기 속에 놈의 기다란 꼬리가 녹아드는 듯 희미해진다. 숨 막히는 공간 안에 오직 빛살만이 가득 들어차 있다. 놈의 꼬리가 환영으로 드리워진 곳에서 한 뼘쯤 아래, 나방의 날개 짓이 살아난다. 빛을 탐하는 나방의 춤이 빨라지는 순간 얇은 초리 하나가 빛을 가른다. 부신 빛살 속에 놈도 나방도 보이지 않는다.
    빛에서 시선을 거두자 실내가 캄캄하다. 이내가 낀 듯 흐릿해진 눈을 깜짝거려본다. 차츰 윤곽을 드러내는 거실 공간 어딘가에 놈이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모기에게 물린 발등의 가려움증만이 현실이라는 걸 말해 줄 뿐이다. 발등을 벅벅 긁으며 나는 기왕에 시작한 거 모조리 사냥해 버리라고 놈에게 주문을 건다. 어차피 먹이 감이 있는 한 놈의 사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창문 너머로 맞은편 집 대문이 열린다. 낯이 익은 하녀가 대문을 손으로 받친 채 길 밖을 살핀다. 야자나무에 둘러싸인 아름드리 고무나무가 밑동까지 드러난다. 열대 나무의 가지에 붙어 더부살이하는 온시디움이 통통한 뿌리를 늘어뜨린 채 그늘에 묻혀 있다. 건기에도 우기처럼 보이는 짙은 그늘 속에서 눈썹이 꿈틀대는 새까만 남자가 걸어 나온다. 긴장이라곤 없는 표정에 어두운 피부를 보자 더위가 훅 끼친다. 그는 뚜껑을 개조한 은색 지프를 타고 느리게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그 길을 하녀가 오래 내다보고 서있다. 하녀의 눈길을 따라 무심코 골목을 살피다 깜짝 놀라고 만다. 양손에 짐을 든 바이브의 어깨에 웬 남자가 몸을 의지하고 있다. 헐렁한 바지 한쪽이 고꾸라질 듯 절고 있는 남자의 팔이 기형아처럼 가늘다. 집 앞에 다다르자 바이브는 길가 야자나무 그늘에 그를 앉혀놓고는 말없이 돌아선다. 바이브를 따라오던 그의 눈빛이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바이브의 어깨에서 길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온 바이브가 아무 일 없었던 듯 눈웃음을 보내며 봉지 속에서 종이 다발을 꺼내놓는다. 한글판 마닐라 소식지다. 깜냥에 생각해서 가져온 꼴이다. 부엌으로 걸어가는 그 애의 등이 흠씬 젖어 있다. 쌀과 수박이 꽤 무거웠던 모양이다. 게다가 남자까지 매달고 오다니. 바깥의 남자는 야자나무에 익숙한 자세로 몸을 기대고 있다. 낯익은 모습니다. 거리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처럼 낡은 천 조각으로 머리를 싸맨 그를 본 적이 있다. 가끔 집 근처 화단에 걸터앉아 있었던 남자다. 남자친구는 아닌 것 같고, 바이브의 오빠나 동생인가?
    소형 콜로라가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딸애의 목소리가 급하게 현관문을 연다.
    “그 아저씨, 무슨 연락 없었지? 장미언니랑 통화했는데, 그 집 매니저가 어제 비자 찾아왔데. 우리도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 보라던데?”
    장미라면 딸애가 다니는 한인교회 서집사네 외동딸이다. 한국슈퍼를 겸하고 있어 이따금 마주치면 인사를 주고받아 안면은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처음 최사장과 비자문제를 논의할 때 딸애가 대행 업자에게 비자업무를 의뢰한 서집사네 이야기를 했었다. 딸애는 최사장보다는 전문 대행업자가 일을 더 빨리 처리해 줄 거라고 했지만, 어차피 비용을 들이는데, 최사장에게 의뢰하는 것이 그 동안의 신의에 보답하는 거라 생각했다. 최사장이 한국 사람과 어울려봐야 좋을 일 없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교민사회와 교류하는 것에 대해 남편은 더욱 회의적이었다. 사기를 친 사람은 없고 당한 사람만 모인 데가 한인사회라는 거였다. 사실을 확인해 볼 길은 없지만 온갖 사기꾼들이 사냥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이라는 게 한인회에 대한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한인들이 사고가 많이 나는 건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아저씬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나선 거 아니야? 빨리 가서 확인해 봐.”
    냉큼 돌아 나가는 딸애를 쫓아 차에 오른다. 야자수 아래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남자는 자동차 엔진 소리에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남자의 머리 위로 농익은 야자열매가 떨어질 듯 위태롭다. 최사장네 대문 앞에 다다를 때까지 바이브가 남자를 집안으로 불러들였을까 하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최사장 집 정원에 들어서자 쟈네트가 뚱한 얼굴로 맞이한다. 딸애와 나누는 이야기가 어림잡아 최사장이 출타했다는 말 같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지 쟈네트의 얼굴이 몹시 초췌하다. 한 켤레의 샌들처럼 붙어 다니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남편에게 사업가라고 소개를 받기는 했지만, 최사장은 실상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골프장 회원권을 이용해서 한국인 관광객에게 골프 가이드나 하면서 소일하는 걸로 보였다. 그는 국내 경기가 불황이라곤 하지만 골프 관광은 갈수록 호황이라며 틈만 나면 골프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들어선 골프가이드가 할 만 하다며 꽤 재미를 보는 눈치였다. 남편이 들어올 때마다 회원권 하나 사서 같이 가이드 업이나 하자고 씨도 안 먹힐 말을 조르곤 했다. 내게도 한가할 때 배워뒀다가 동반 여행하는 부인들을 상대로 가이드 하면 좋지 않겠냐고 권했지만 최사장이나 되니까 할 수 있는 팔자 좋은 이야기였다. 기술자로 시작한 남편도 골프를 배울 새는 없었지만 나 역시 골프공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른다.
    쟈네트의 자매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딸애가 기특하면서도 설명 한마디 없는 것이 한편으론 서운하다. 해소질환을 앓고 있는 쟈네트의 엄마가 곁에 와 앉는다. 우묵한 노인의 눈에 물기가 고여 있다. 내 손을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웃는 노인에게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노인이 알아듣기라도 한 양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쟈네트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그녀의 언니 아이자가 딸애에게 뭔가 수군거린다. 번갈아 쟈네트를 흘끔거리는 것이 그녀의 기분이 엉망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다.
    “뭐라는 거니? 쟈넷트가 왜 화났데?”
    참지 못하고 끼어든다. 딸애는 못들은 척 아이자의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발로 딸애의 무릎을 툭 건드리자 그때서야 돌아본다.
    “아저씨가 그저께부터 안 들어 왔데. 아저씨 생일파티 하던 날 왔던 김사장님 있잖아, 그분하고 같이 골프장 간다고 나갔다는데, 어제 그 집에 찾아가서 물어보니까 지난주에 보고 나선 연락 없었다고 그러더래. 전화도 안 받고 아저씨랑 지금 완전히 연락 두절 인가봐. 그래서 어젯밤부터 쟈네트가 울고불고 난리라는데.”
    무언가 묵직한 것이 가슴 밑바닥으로 툭 떨어지더니 심박이 빨라진다. 최사장을 철석같이 믿고 싶지만 어쩐지 마음이 다급해진다. 살점 같은 비자금 칠천만원, 하지만, 그 걸 가지고 잠적할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어쩌면 그는 한국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혼을 한 후에 자유롭게 살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 문제로 가끔 한국 갈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럴 때면 골프 가이드를 핑계로 이삼일 다녀와도 믿거라 한다고. 쟈네트를 자극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그가 잠적한다는 건 불가능 한 일이다. 팔 년이나 함께 살아온 어린 아내와 자신의 삶을 두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한 이곳은 그의 사업장이 아닌가. 복잡한 생각을 추스르며 딸애에게 눈짓을 주고 일어난다. 아이자와 할머니에게 딸애가 인사를 하는 동안 속에서 화증이 올라와 집 밖으로 먼저 나온다. 쟈네트가 따라 나온다. 불같은 질투로 불편하게 했어도 실상 쟈네트는 애교가 많은 성격이다. 풍성한 표정을 담아내던 커다란 눈이 텅 비어서 그녀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형편없이 수척해진 까무잡잡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불길하다. 차에 오른 딸애가 쟈네트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혼잣말을 한다.
    “웬 잠수야, 그 아저씨 김사장님 말구 또 누구한테 작업 들어갔나?”
    최사장이 사람 사귈 때 밤낮없이 붙어 다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음이 신산하다. 딸애는 여전히 입을 비죽거린다.
    “김사장 집엘 가보면 어떨까? 알란한테 혹시 집 아냐고 물어봐.”
    “김사장님도 모른다고 했다잖아. 근데 왜?”
    “그래두, 쟈네트한테 말 못할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지 알아?”
    말끄러미 내 눈을 바라보던 딸애가 알란에게 말을 건다. 알란이 차를 돌려 머큐리 골목으로 돌아간다. 최사장 집을 지나 한 블록쯤 더 가서 차가 선다. 알란이 딸애를 돌아보며 손짓을 한다. 김사장네 집은 앉은 터가 최사장 집보다 넓다. 차 문을 열자마자 집 안에서 달려 나온 흰 개가 대문을 기어오르며 짖기 시작한다. 덩치가 커다란 김사장이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인사를 건네자 다행히도 나를 알아본다. 그는 뭘 물어보기도 전에 알만하다는 얼굴로 최사장 안부를 들려준다. 최사장이 시세보다 싸게 골프장 회원권을 사준다고 해서 최근 들어 자주 만났다는 말이다. 이미 지난주에 최사장 소개로 회원권을 샀고, 그 후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최사장 그 사람, 자기 회원권도 팔리게 됐다면서 다시 안 할 것처럼 골프채까지 헐값에 넘겼어요. 덕분에 난 횡재한 셈이지만.”
    김사장이 덧붙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묻는 그에게 쟈네트가 걱정해서 들러봤다고 둘러댄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중얼댄다.
    “길어야 두어 달 남은 회원권을 누가 샀다는 건지 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돌아본다.
    “한국하고 달라서 그 회원권이라는 게 계약기간 끝나면 아무 권한 없거든요.”
    그가 변명하듯 덧붙인다. 마치 그가 모든 걸 정리했다는 말로 들려 괜스레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무 소득도 없이 머리만 복잡해져서 돌아왔다. 한국식품점에 들러보자는 딸애를 혼자 다녀오라고 달래놓고 차에서 내린다.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걸 황망히 바라보다 문득 골목을 둘러본다. 야자수 밑에 앉아 있던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최사장 때문에 바이브와 남자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선다. 부엌 쪽에서 옅은 비린내가 맡아진다. 건성으로 봐도 당황한 빛이 역력한 바이브의 눈인사를 받으며 식탁에 가서 앉는다. 비린내 외엔 어디에도 수상한 느낌이 없다. 뒷마당으로 나가면서 부엌방 문을 닫는 바이브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난감하다. 바이브의 방에 있을 것이 분명한 남자를 쫓아내야 할지 모른 척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당장 말도 통하지 않는 바이브에게 뭘 추궁하거나 명령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바이브가 뒤뜰에 나가 빨래를 걷는 동안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는 설거지통에 컵을 내려놓는다. 물받이 통에 엎어져 있는 그릇들이 방금 설거지를 끝낸 듯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글판 마닐라 소식지를 챙겨들고 부러 발소리를 내면서 이층으로 올라간다. 딸애가 들이닥치기 전에 무사히 남자가 빠져나가 시끄러움을 피하기를 바랄 뿐이다. 설마하며 창밖을 내려다보자 머리에 천을 싸맨 남자가 주차장을 통해 골목으로 나서는 게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의 헐렁한 바지가 바닥을 쓸면서 기우뚱거리는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집 안에 사람을 끌어들이다니. 얌전한 줄 알았던 바이브에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열린 창으로 눅진한 바람이 들어온다. 시트가 정돈된 매트 위에 맥없이 드러눕는다. 도대체 최사장은 어떻게 된 걸까? 김사장을 만난 것이 오히려 더 헷갈리게 한다. 최사장이 골프장 회원권을 팔든 말든 그런 건 관심 밖이다. 문제는 그가 비자를 찾아올 이 시점에서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애지중지하던 골프채를 넘겼다는 게 더욱 불길하다.
    계단을 뛰어오르는 발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딸애다. 흥분한 딸애의 안색을 살핀다.
    “아줌마 만났어. 같이 등록한 사람들은 다 나왔는데, 뭐 잘못된 거 아니냐고, 빨리 알아보래. 최사장이라는 분 믿을 만한 사람이냐고 묻던데?”
    뭐라고 대답해줄 말이 없다. 딸애는 그저 장기 비자라고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자를 손에 쥐기 전엔 그것이 은퇴비자라고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처음 은퇴비자 이야길 듣고 망설였을 때, 최사장은 비자금 있을 거 아니냐고, 비밀은 지켜 줄 테니 안전하게 잘 묻어놓으라고 나를 안심 시켰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비밀이었을까?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는 딸애의 눈빛이 불편하다.
    “바이브 말이다. 남자를 집 안에 들이는 것 같더라.”
    딴청을 부리며 바이브 이야기를 꺼낸다. 딸애의 눈빛이 심하게 일렁인다.
    “남자였어? 근데 엄마가 봤어?”
    “왜 가끔 집 앞 야자나무 밑에 앉아 있곤 하던…, 다리를 좀 저는 것 같던데, 아까 심부름 갔다 오면서 남자를 데려와선 거기에 앉혀 두더라.”
    “맞지? 벌써 언제부터 이상했어. 라면 박스가 비어있질 않나, 김치며 생선은 어떻고. 또 뭘 손댔는지 알아. 없어진 거 있나 잘 찾아봐. 내가 뭐랬어. 도둑을 끼고 살았잖아!”
    발딱 일어난 딸애가 쪼르르 계단을 내려간다. 조용히 해결하긴 글렀다. 곧 이어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가냘픈 울음을 내뱉으며 거푸 조아리는 ‘쏘리 맘, 예스 맘’ 소리도 들린다. 한참 후에야 계단을 쿵쾅거리며 딸애가 올라온다. 불호령이 떨어질 거 같았는데 조용하다. 들여다보니 딸애는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에 문자를 찍고 있다.
    “일 한 거 계산해 줬니?”
    “도둑질한 것 물어 달래면 주겠어? 지난주에 계산해 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줘?”
    딸애가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인다.
    “이백 페소면 될텐데….”
    “내버려 둬. 저런 애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돼. 쟤네들이 왜 신세 못 고치는지 알아? 버는 것보다 구걸하는 게 쉽고 구걸하는 것보다 훔치는 게 빠르니까 안 고치는 거야. 그건 못 고치는 게 아니고 안 고치는 거라고.”
    고개도 들지 않고 덧붙인다.
    “일자리 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주제넘게 거지를 끌어들여. 우리가 무슨 자선 사업하러 온 줄 알아?”
    맞는 말이긴 하다. 한숨을 뱉어내곤 방으로 돌아와 블라인드를 내린다.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바이브를 보고싶지 않다.
    “엄마, 우리도 하숙 치면 어떨까?”
    언제 따라왔는지 딸애가 문지방에 서서 묻는다.
    “한국 유학생들 음식 때문에 고생하잖아. 안되면 초보만 상대하지 뭐. 이민국이며 서머스쿨, 튜터 같은 건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어. 돈만 많이 받으면.”
    오랜만에 들어보는 쓸 만한 말이다. 노는 손을 써먹을 좋은 궁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유학 오고 싶어 하는 니 친구들 다 불러들이지 뭐.”
    아래층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입술을 옥다문 채 눈을 맞추던 딸애가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곧 뾰족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빠 전화야!”
    내가 미처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에 빨리 받으라고 채근을 해댄다. 저 애의 극성은 국제통화료 때문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발길이 굼뜨고 무겁기만 하다. 가까스로 수화기를 받아들고도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하다.
    “최사장한테 연락 받은 거 없어요?”
    “맨날 전화통만 붙들구 사는 줄 아냐?”
    인사도 없이 최사장 소식부터 묻는 것이 불만스러운 듯 구박이다. 딸애 눈치를 보며 슬쩍 최사장의 잠적을 알린다. 남편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잠잠하다. 곁에 서서 통화에 귀를 기울이던 딸애가 현관에 벗어놓은 바이브의 슬리퍼를 집어 문 앞에 놓인 쓰레기통 옆으로 던져놓는다. 무엇 하나도 버리지 않는 바이브가 미처 챙기지 못한 모양이다. 부엌으로 걸어가는 딸애를 눈으로 쫓으면서 김사장 이야기를 전한다. 남편은 그제야 싱거운 목소리로 툭 내뱉는다.
    “그렇게 사업 벌이고 다니는 사람이 가긴 어딜 갔다구 그래?”
    “맨날 들고 나와서 자랑하던 명품 골프채 있잖아, 그것까지 김사장이라는 분한테 헐값에 넘겼다니까, 더 사도 모자를 판에 회원권까지 팔아먹은 게 그럼 당신은 안 이상하단 말이야?”
    흥분한 내 목소리에 잠시 숨을 고르던 남편이 신음을 뱉듯 중얼거린다.
    “개자식, 어쩐지 잠잠하다 싶었더니.”
    “무슨 말이야?”
    “아냐, 알았어. 나중에 다시 할게.”
    미진한 말로 전화를 끊으려는 남편한테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른다.
    “끊지 마, 여보. 뭔데 그래, 무슨 일이지 나두 알아야 될 거 아니야!”
    그제야 열없이 풀어놓는다.
    “골프장 회원권 싸게 잡아 놨다고 밤낮 졸라댄 게 벌써 은제부터냐. 당신한텐 말 안 했지만, 좆두 일거리 없어 죽을 지경인데, 지난달부턴 숫제 문 닫는 날이 많아서 이참에 나두 들어가려구 공장 넘겼잖어.”
    “맙소사. 그럼 그 돈으로 골프장 회원권을 샀단 말야?”
    대답이 없다.
    “설마 두어 달밖에 안남은 최사장 껄 샀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두 달이라니?”
    남편이 다급하게 묻는다. 그 목소리 때문에 가슴이 졸아든다.
    “그게 계약기간 끝나면 여기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래잖아! 그런 거 아니지?”
    대답대신 끙 하는 신음소리가 건너온다.
    “개자식, 다 처먹고 날른 거 아냐, 이런….”
    무슨 말인가 더 건너올까 싶더니 그대로 전화가 끊긴다. 뇌일혈이 덮친 듯 어지럽다. 가슴 속에 꾸역꾸역 먹물이 고이는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소파에 주저앉아 뻣뻣해져오는 목덜미를 쓸어내는데 바이브의 슬리퍼 옆으로 언뜻 연두색 꼬리가 보인다. 쓰레기통 뒤에서 도마뱀이 느리게 모습을 드러낸다. 오싹 목 줄기에 소름이 돋아 리모컨을 집어던진다. 쓰레기통을 맞추고 떨어진 리모컨에서 야단스럽게 건전지가 굴러 나온다. 용케도 조준을 피한 채 벽으로 기어오르는 놈의 꼬리가 유연하다. 갑자기 온 집안이 도마뱀 소굴 같다. 방안 구석구석에 사냥감을 노리며 숨어 있는 놈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집안뿐이 아니다. 도처에 우글거리는 놈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축축한 혓바닥을 날름대며 단물을 찾아 눈을 번들거리는 저 놈의 유연한 몸뚱이. 그 징그러운 살 비늘 속에서 화 한번 낸 적 없는 최사장의 얼굴이 느물대며 웃고 있다.

 

 

 

 

 

 

 

 

 

 

 

 

 

 

 

 

작가소개 /탁명주

서울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인하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으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창작전문 과정을 수료함.
200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부업」이 당선되어 등단.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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