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순간

[2015 아르코창작기금]

 

 

마법의 순간

 

 

최양선

 

 

 

목 차
1. 마술사 부자(父子)
2. 은밀한 거래
3. 박쥐의 실체
4. 새가 선택한 소년
5. 지하방에서의 마술
6. 용호파
7. 시온이의 흔적
8. 시온이의 마술
9. 솔선수범
10. 밤의 소년
11. 피할 수 없는 선택
12. 어긋난 계획
13. 죄의 고백
14. 희망의 끈
15. 이상한 징후
16. 박쥐의 실체
17. 재민의 결석
18. 새로운 마술
19. 미행
20. 약속
21. 마법의 순간

 

 

 

    1. 마술사 부자(父子)

 

    늦은 오후인데도 햇빛은 강렬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늘 쪽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마술사 부자(父子)만이 햇빛 아래 서서 온몸으로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지 덥네요.”
    시온이는 손을 이마에 대고 그늘을 만들며 말했다.
    “말복도 지났으니 조만간 시원해질 거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꽤 선선해지지 않았니?”
    마술사는 들고 있던 부채를 펴서 바람을 만들었다.
    “그러게요.”
    신호등에 녹색등이 들어왔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자, 마술사는 유흥가로 이어진 길을 바라보았다.
    “이 길을 걷다 보면 클럽이 보일 거다.”
    마술사는 말을 마치고 이어 발걸음을 떼었다. 시온이는 마술사 옆에 붙어 섰다.
    “아버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새로운 곳에서 시작은 언제나 설렘과 긴장감을 주지. 이곳에서 네 실력을 한층 높였으면 좋겠다. 지난번 너와의 호흡에서 충분히 그럴 만한 실력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지.”
    마술사는 흐뭇한 눈빛으로 시온이를 바라보았다.
    “인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길가에 간판을 보며 걷던 시온이는 앞쪽으로 손을 쭉 뻗었다.
    “저기, 파라다이스 클럽이 보여요.”

 

    한낮에 클럽 주변은 조용했다. 지하로 향하는 입구 위에 ‘파라다이스 클럽’이라는 부채꼴 간판의 글자만 형형색색 번쩍거리고 있었다. 마술사가 먼저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마술사 부자가 아래로 내려오자 청소를 하고 있던 웨이터가 다가왔다. 그의 가슴에는 박쥐라는 명함이 달려 있었다.
    “아직 영업 전인데요.”
    “우린 이 클럽에서 마술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사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는데.”
    “아, 그러세요? 절 따라오세요.”
    박쥐는 그들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박쥐가 노크했다. 사장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박쥐가 문을 열자 사장은 문까지 다가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박쥐는 뒤로 슬그머니 물러서서 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사장은 그들을 탁자로 안내했다. 네모난 탁자를 가운데 두고 사장과 마술사 부자가 마주 보고 앉았다.
    “덥죠? 시원한 음료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저희는 필요 없습니다.”
    마술사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뻘쭘해진 사장은 손을 비비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클럽에서 공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달 전에 지인을 만날 일이 있어 A시에 갔죠. 그 분이 술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클럽에 갔다가 우연히 선생님의 마술 공연을 봤죠.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더군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보면서 우리 클럽에서도 공연하며 좋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또 마술이 끝난 뒤에 사람들이 더 많은 술과 안주를 시키더라고요. 마술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허허.”
    사장은 양손의 엄지를 번쩍 치켜들었다.
    “말씀을 들으니 감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겠군요. 저희야 그쪽과는 3개월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었고 이쪽에서 돈을 더 주신다고 하니 마다할 일이 없죠.”
    마술사 역시 흡족한 듯 웃었다.
    “그럼 계약서를 작성할까요?”
    사장은 책상 서랍에서 계약서를 꺼내 와 마술사 앞으로 내밀었다. 사장은 탁자 위에 있는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 계약서 옆에 놓았다. 마술사는 계약 사항을 꼼꼼히 읽어 나갔다. 그 모습을 시온이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선생님, 그런데 말이죠. 왜 꼭 3개월씩만 공연을 하시는 건가요? 연장할 수는 없나요?”
    마술사는 사장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마술사의 눈빛에 냉기가 차올랐다.
    “마술 공연이라는 게 창의성이 중요하죠. 관객들에게 싫증을 주면 마술에 대한 환상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희는 이렇게 연속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사장님께서 워낙 부탁을 하셔서…….”
    “아, 네…….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요. 본가는 어디에 있나요? 계속 떠돌아다니시는 건 아닐 텐데.”
    “저희 사생활까지 보고 해야 하나요?”
    마술사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럴 필요는 없, 없죠. 뭐…….”
    당황한 사장은 말끝을 흘려보냈다. 마술사는 계속해서 나머지 내용을 읽었다. 마술사와 사장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한 부씩 나눠 가졌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대부분 저 혼자 공연하겠지만 가끔은 제 아들과 함께할 겁니다.”
    마술사의 말에 사장이 시온이를 보았다.
    “학생 아닙니까?”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마술사는 가방에서 학교에서 받아 온 공연 허가증을 꺼내 사장에게 주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로 조금씩 공연을 늘려 가고 있습니다. 대신 10시에 시작해서 11시 안에는 공연을 끝내고 바로 돌려보낼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야 뭐 아드님과 함께해서 완성도 있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마술을 선보인다면 마다할 일이 없죠.”
    마술사는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있으면 마술 도구들이 이곳에 도착할 듯한데요.”
    “예, 그럴 줄 알고 보관할 장소를 준비해 뒀어요. 무대 뒤에 잡구를 넣어 두었던 곳을 이참에 싹 비워 놓았습니다.”
    “미리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구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동공이 커졌다.
    “일주일에 두 번, 금요일과 토요일에 공연하기로 했죠? 내일이 금요일인데 바로 가능하나요?”
    “물론이죠. 무대를 자세히 볼 수 있을까요?”
    “절 따라오시죠.”

 

    홀에선 웨이터들이 청소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술사 부자는 찬찬히 홀과 무대를 살펴보았다. 무대는 제법 넓은 편이었다. 무대 뒤편에는 드럼과 키보드, 베이스 등의 악기들이 놓여 있었다.
    “시온아 무대에 올라가 보자.”
    마술사 부자는 무대 중앙에 올라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조명 기구도 있었다. 무대 아래 손님들이 앉는 탁자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웨이터들은 곳곳에 흩어져서 마술사 부자를 구경했다. 마술사는 클럽 사람들을 일일이 눈여겨보았다. 입구에서 박쥐가 뛰어 들어와 사장에게 다가갔다. 마술사의 시선은 그에게 멈추었다.
    “사장님, 마술 도구를 싣고 온 트럭이 왔는데요.”
    “그래?”
    사장은 웨이터들에게 짐을 실어 무대 뒤 창고에 옮기라는 지시를 내렸다.

 

    웨이터들은 처음 본 마술 도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대한 거울과 창과 칼, 어른 한 사람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나무 상자도 있었다. 각종 색의 인조 꽃과 나무, 카드 등 마술 도구들은 다채로웠다. 사람들은 비둘기 앞에서 난감해했다. 새장이 세 개였는데 새장 하나에 열 마리의 비둘기들이 들어차 있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옮겨라.”
    사장의 한 마디에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이 다 옮겨진 뒤 시온이는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었다. 마술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사장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비둘기들에게 매일 모이와 물을 주고 새장 청소를 해 줬으면 합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그보다 내일은 무슨 마술을 할 예정입니까?”
    사장의 말에 마술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바로 보여드리죠.”

 

    웨이터들과 주방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홀로 모여들었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마술사 부자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시온이가 커다란 거울을 무대 중앙으로 밀고 들어왔다. 거울 아래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다. 거울 테두리에는 아르코 모양의 화려한 금색 장식이 둘러싸여 있었다.
    “시온아 지금 하는 것은 예행연습이니 온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거 알고 있지?”
    마술사는 시온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시온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이어 시온이는 창고로 들어갔다 나왔다. 시온이의 손에는 네모반듯하게 개켜진 검은색 보자기가 쥐어져 있었다. 어깨에 하얀색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시온이는 마술사에게 보자기를 건네주었다.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이더니 마술사의 어깨 위로 옮겨 앉았다.
    마술사는 보자기를 펼쳐 거울 뒤에 걸쳐 놓았다. 비둘기는 여전히 마술사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마술사는 거울 옆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무대 가까이 모여들었다. 박쥐만이 홀로 떨어져 입구 근처에 서 있었다.
    마술사는 거울을 움직여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거울 속에 담았다. 마치, 빛이 나는 커다란 그릇에 사람을 담으려는 듯이. 박쥐 역시 아주 작은 모습으로 거울 속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박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술사는 거울 뒤에 걸쳐 놓았던 검은 천을 허공을 향해 펄럭였다. 보자기 가운데는 검은 구멍이 있었다. 마술사는 보자기로 거울을 가렸다. 뚫린 구멍 크기만큼 거울의 앞면이 보였다. 마술사가 자신의 손을 어깨에 얹자 비둘기가 마술사의 손가락 위에 올라섰다. 마술사는 비둘기를 검은 구멍 속으로 집어넣고는 입구를 가운데로 그러모아 움켜잡았다. 마술사가 다른 한 손을 움직였다. 손의 움직임은 파도를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바람을 일으키는 듯 했다. 비둘기가 거울 속으로 스며들 듯 불룩했던 천이 편편해졌다. 모여 있던 사람들 속에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마술사는 일, 이, 삼, 숫자를 센 뒤 거울을 막고 있던 검은 천을 거두었다. 비둘기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때였다. 공중에서 파닥이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일제히 천장을 쳐다보았다. 하얀색 비둘기가 둥근 선을 그리며 공중을 날고 있었다. 쉬지 않고 한 바퀴 돌더니,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착지를 하려는 듯 아래로 향하던 비둘기는 박쥐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웨이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쥐를 보았다. 박쥐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당황한 듯, 제자리에서 서성거렸다.
    마술사가 휘파람을 불었다. 비둘기는 천장을 가로질러 마술사의 어깨에 앉았다. 모두가 감탄을 쏟아 내며 박수를 보냈다.
    “멋집니다.”
    사장이 마술사를 향해 말했다. 모두가 마술을 즐기는 사이 박쥐는 옆에 놓인 대걸레를 들고 바깥으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시온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마술사는 무대에서 내려와 사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 밖에도 몇 가지 마술을 더 선보일 것입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사장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쥐는 대걸레로 계단 아래서부터 위쪽으로 닦아 나갔다. 두어 개 계단을 남겨 놓았을 때 마술사 부자가 계단을 밟고 올라왔다. 박쥐는 걸레질을 멈추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마술사와 박쥐의 눈이 마주쳤다. 시온이도 마술사의 시선을 따라 박쥐에게 눈길을 옮겼다. 마술사가 계단을 거의 다 오르자 박쥐는 벽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마술사는 박쥐 가슴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았다.
    “비둘기가 갑자기 날아들어 놀랐을 것 같은데.”
    마술사가 말을 걸자 박쥐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
    “아무튼 고마웠네.”
    마술사가 웃으며 박쥐에게 말했다. 박쥐는 묵례를 하듯 고개를 숙였다. 순간 아래에 있는 시온이와 눈이 마주쳤다. 시온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띠고는 계단을 올랐다. 박쥐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계집애같이 생겨 가지고는.’
    박쥐는 마술사 부자가 사라지고 나서 나머지 계단을 마저 닦았다.

 

 

 

    2. 은밀한 거래

 

    철진이는 담벼락에 기대서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유심히 보았다. 빠르게 굴러가는 눈동자는 촘촘한 그물을 허공에 만들었다. 그물 사이로 한 남자아이가 걸려들었다.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몸집이 초등학생처럼 작았다. 그 아이의 몸에서는 외로움이 풍겨 나왔다. 몰려다니는 아이들 틈에 끼지 못했다. 아킬레스건에 모래주머니가 달린 것처럼 운동화를 질질 끌며 힘없이 걷고 있었다.
    철진이는 천천히 그 아이의 뒤를 밟았다. 아이는 다세대 주택이 밀집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자 철진이의 걸음 속도가 빨라졌다. 어느새 아이 뒤쪽에 바짝 붙어 섰다. 아이는 곁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철진이는 아이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가자.”
    아이는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순순히 철진이를 따랐다. 둘은 가던 방향에서 돌아 나와 큰길로 접어들었다. 철진은 친구처럼 보이기 위해 간간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걸었다. 녀석이 틈을 노려 도망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이의 어깨 위에 놓여 있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이십 여분을 걸어 낯선 골목으로 들어왔다. 어른 두 사람이 간신히 걸을 수 있는 좁은 골목이었다. 이곳에는 개발을 앞둔 빈 건물들이 많았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는 시린 공기가 활보했다. 주인에게 버려진 개와 길고양이들이 가끔 어슬렁거렸다.
    “힘들지? 좀만 참자.”
    아이는 바람에 묻힐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철진이는 골목 끝 귀퉁이에 있는 4층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빈 건물로 지은 지 30년이 넘어 페인트칠은 모두 벗겨져 있었다. 주변에는 쓰레기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아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철진이가 아이의 등을 밀었다. 아이는 계단을 빠르게 밟아 내려갔다. 지하에서는 어두웠고 습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철진이는 문을 열고는 아이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아이는 떠밀리듯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방구석에 작은 싱크대가 있었다. 싱크대 위에 가스버너, 컵라면, 생수, 술, 담배, 종이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싱크대 반대편으로 틈이 살짝 벌어진 검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 커튼 틈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철진이는 싱크대 앞으로 다가왔다. 입구가 뜯긴 봉지 안에서 과자를 꺼내 입 안에 넣었다. 눅눅해진 과자가 맛이 없어 생수로 목을 축였다.
    “잘, 잘못했어요.”
    아이가 갑자기 빌기 시작했다. 철진이는 피식 웃으며 아이 곁으로 다가왔다.
    “네가 뭘 잘못했는데?”
    “그, 그냥.”
    아이가 머뭇거리는 사이 철진이는 주먹으로 아이의 배를 쳤다. 아이는 놀란 듯 배를 움켜쥐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징징대지 마라.”
    아이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금방이라도 볼이 터질 듯이 붉은빛을 띠며 부풀어 올랐다. 철진이는 아이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치고는 발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이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야! 일어나.”
    철진이가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이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나가.”
    “네?”
    “그만 가라고. 여기서 있었던 일 끝까지 입 다물어라.”
    “아, 아 알겠습니…… 니다.”
    아이는 눈물을 삼키며 말을 더듬거렸다.
    “빨라 사라지라고!”
    아이는 문밖으로 튀어 나갔다. 철진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커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커튼을 양쪽으로 거두자 일인용 소파에 앉아 있던 재민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에 들어?”
    재민이는 다시 의자에 푹 기대앉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배 한 번 치고 어깨 때리고 발로 허벅지 차고 어째 순서가 하나도 달라지지 않냐? 외울 지경이야. 하품 나 죽는 줄 알았다.”
    재민이는 캑, 소리를 내더니 기도 어디쯤에 붙어 있던 가래를 끌어 올려 바닥에 뱉었다. 철진이는 가래가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것처럼 기분이 더러웠다.
    재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안에서 삼만 원을 꺼내 철진이 앞에 내밀었다. 철진이는 돈을 받은 뒤, 불만이 섞인 눈빛으로 재민을 바라보았다.
    “약속한 돈이랑 다르잖아.”
    “좀 더 받고 싶으면, 획기적인 것 좀 개발해 봐.”
    철진이는 치사하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재민이 앞에서는 약자일 뿐이었다. 철진이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가자.”
    “난 좀 있다가 가고 싶은데.”
    “그건 안 되지.”
    “아직 시간 있잖아.”
    “며칠 뒤에 토플 시험이 있어. 우리 학원에서 나랑 성주랑 포함해서 다섯 명만 시험을 봐. 성주를 이기는 건 물론이고 내 점수가 가장 높아야 한다고. 학원 가서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해.”
    철진이는 아쉬운 듯 원룸 안을 둘러보았다. 재민이는 소파 옆에 놓인 가방을 들고 앞서 나갔다. 철진이가 재민이를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 재민이는 열쇠로 문을 잠갔다. 철진이는 그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재민이가 열쇠를 가방에 넣으려는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지난번처럼 네 마음대로 문을 뜯고 들어가는 일은 절대 안 돼. 그때는 처음이라 봐준 거야.”
    재민이는 엄포를 놓았다.
    “알아.”
    재민이는 열쇠를 가방에 넣었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올랐다. 철진이가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재민이는 저만치 앞서 있었다. 그제야 억누르고 있던 화가 뿜어져 올라왔다. 철진이 눈에 건너편을 지나가던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고양이는 경계하듯 철진이를 쳐다보았다. 철진이는 바닥에 있는 돌을 주워 고양이를 향해 던졌다.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내며 담벼락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철진이는 고양이가 머물렀던 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자신이 화를 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의 목적이 재민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 있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재민이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2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재민이는 시간을 앞서가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늘 조금씩 뒤처지고 있었다. 철진이가 느끼기에 재민이 정도면 행복한 아이였다. 일단 재민이 부모님은 돈이 많았다. 이 건물도 재민이 아버지가 사둔 것이라고 들었다. 2등이긴 하지만 학교에서는 누구에게나 칭찬받는 모범생이었다. 있는 것들이 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엄마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철진이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최소한 오만 원을 예상했는데 삼만 원뿐이다. 이틀 뒤 용호파에게 갚아야 하기에 이 돈은 쓸 수 없다. 오만 원을 받았다면 만 원 정도는 꿀꺽 먹어 치웠을 것이다. 철진이는 박쥐를 떠올렸다. 돈 없고 갈 데 없고 배고플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박쥐뿐이었다. 철진이는 뛰기 시작했다.

 

 

 

    3. 박쥐의 실체

 

    철진이는 파라다이스 클럽 입구 쪽을 기웃거렸다. 이 시간대에 박쥐가 입구를 청소했기 때문이다. 잠시 뒤 빗자루를 든 박쥐가 나타났다. 철진이는 주변의 동향을 살폈다. 클럽 관계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박쥐에게 다가갔다. 몸을 숙여 먼지를 쓸고 있던 박쥐는 익숙한 스니커즈를 보고는 허리를 폈다.
    “철진아.”
    “형, 오랜만이야.”
    철진이는 박쥐의 어깨를 툭 쳤다.
    “잘 지냈냐?”
    “그럭저럭. 먹을 것 좀 줘.”
    “자식, 나한테 맡겨 놨냐? 따라와.”
    철진이는 박쥐 뒤를 쫓았다.
    박쥐는 클럽 건물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클럽 건물과 그 뒤에 있는 건물 사이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정도의 둥근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클럽 건물 지하로 연결된 작은 구멍이 있었다. 예전에는 창문으로 쓰였으나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아 판자로 막아 놓았던 곳이다. 그런데 박쥐가 아무도 모르게 판자를 떼 버렸다. 금이 간 유리창을 없애고 두꺼운 비닐막을 쳐 놓았다. 박쥐는 이곳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주방과 연결되었다. 박쥐는 사람들 눈을 피해 주방으로 들어가 몰래 먹을 것을 빼 오곤 했다.
    “좀만 기다려.”
    박쥐는 판자를 치웠다. 비닐을 거두고 몸통을 뒤로 밀어 넣었다. 박쥐가 사라지고 나서 철진이는 얼른 판자로 구멍을 가리고 바닥에 앉았다. 철진이는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어 게임을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철진이는 게임을 멈추고 문자를 확인했다.
    [돈 잊지 않았지. 격하게 보고 싶다. 철진아.]
    철진이는 용호의 문자를 보자마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철진이는 잊지 않았다는 문자를 억지로 보내 버리고 게임을 이어 갔다. 잠시 뒤 판자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진이는 주변을 살피고는 판자를 옆으로 밀어 놓았다. 박쥐가 뭉쳐진 호일을 내밀자 철진이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박쥐가 나오기 쉽게 비닐 막을 위로 걷어 주었다. 박쥐는 구멍에서 나와 판자를 원래대로 막아 놓았다.
    철진이는 서둘러 호일을 벗겨 냈다. 안에는 방울토마토 십여 개와 반쯤 남긴 포도송이가 있었다.
    “돈가스는 없네.”
    철진이가 아쉬운 투로 말했다.
    “좀만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출출해서 먹어 버렸어.”
    철진이는 아쉬운 듯 방울토마토를 입안에 넣었다.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그럭저럭 괜찮았다. 철진이가 먹는 모습을 박쥐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철진이는 문득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박쥐의 눈빛을 보았다. 울창한 나무 그늘에 들어와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철진이는 그 청량함이 자신에게는 사치인 것 같아 일부러 박쥐의 눈빛을 피했다.
    철진이는 포도를 뜯어 먹으며 박쥐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세 달 전쯤이었다. 철진이가 용호파에게 돈을 주고 갈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었다. 6월 초인데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도시는 찜통이었고 밤이 되어도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철진이는 유흥가를 배회하다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곳에서 쉬고 싶어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곳에 박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웨이터 옷과 가슴에 달린 명함을 보고 철진이는 지하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진이는 다시 되돌아 나가려 했다. 그때 박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어도 돼.”
    그 말에 철진이는 다시 몸을 돌려 박쥐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어디선가 고소한 튀김 냄새가 올라왔다. 바닥에 있던 은박지 호일 위에 감자튀김과 돈가스가 있었다. 철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것을 눈치챈 박쥐는 호일을 철진이 앞에 내려 놓았다.
    “먹을래? 손님들이 남긴 건데 깨끗한 거야.”
    철진이는 단숨에 먹어 치웠다. 박쥐는 조용히 일어나 뒷길을 빠져나갔다. 이후에 철진이는 늦은 오후가 되면 박쥐가 클럽 문 앞을 청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멀리서 몇 번 박쥐를 지켜보았다. 박쥐는 늘 혼자였다. 웨이터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웨이터들이 막내, 막내 하는 것을 보고 이 클럽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만 짐작했다.
    재민이 아지트에 머물 수 없어 아쉬움이 들면 저절로 여기가 떠올라 찾아왔다. 벽에 기대앉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막혀 있던 판자가 갑자기 열리더니 그곳에서 박쥐가 나오는 것이었다. 철진이는 그곳이 클럽으로 이어진 비밀 통로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다. 박쥐의 손에는 음식이 쌓여 있는 은박지 호일이 있었다. 철진이는 박쥐와 자신의 형편이 비슷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철진이는 몇 번 더 박쥐와 마주쳤고 일주일 전, 이야기를 통해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박쥐는 자신보다 두 살이 많았다. 자퇴해서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 이 도시로 온 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았고 전에는 A시에 살았다. 그때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지만 아버지가 철진이 아버지 못지않게 개망나니여서 지금은 혼자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고시원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전화번호 등은 알려 주지 않았다. 철진이는 박쥐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박쥐에게는 음울한 비밀스러움이 풍겨 나왔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잔뜩 쥐고 있는 듯했다.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문득문득 칼날 같은 매서운 표정이 비어져 나올 때가 있었다. 또 그의 몸놀림은 재빠르고 날쌨다. 무엇보다 그의 손에는 상처가 많았다. 찢기고 할퀴어진 자국들이.
    철진이는 박쥐가 A시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번뜩 생각난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 용호에게 들은 내용이었다. 용호는 A시를 주름잡은 고등학생 일진 한 명이 후미진 골목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몸에 외상은 없었다고. 일단 병원에 실려 갔고 몇 시간 뒤 정신이 들었는데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그 일진은 병원에 입원했고 최종 병명이 조현병으로 판명이 났다. 그 아이를 추앙하며 졸졸 따라다니던 조무래기들은 바로 이인자에게 들러붙었다. 일진 아이는 평소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려 안면 있는 경찰이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개인적으로 그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일진 아이는 폐휴지를 주워 생활하던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자를 그렇게 만든 범인을 찾기를 원하지 않았다. 못된 짓을 해서 벌을 받은 것이라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였다. 그즈음 경찰은 다른 도시로 부임을 받으면서 그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그 일은 이쪽 세계 아이들 사이에서 한동안 가십거리가 되었다가 지금은 잠잠해진 상태다.

 

    철진이는 다 먹고 남은 앙상한 포도 가지를 뒤 건물 담벼락 너머로 휙 던져 버렸다. 철진이의 관심은 박쥐에게로 향했다.
    “형은 뭘 믿고 날 다시 부른 거야?”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박쥐는 흘리듯 말을 건넸다.
    “그건, 형도 나처럼 막살았다는 얘기야?”
    “…….”
    박쥐는 입을 다물었다. 박쥐는 철진이가 과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으려 하면 언제나 함구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말문을 열었다.
    “널 포기하지 마.”
    박쥐는 단호하게 말했다. 철진이는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자신을 벌레취급 하는데, 어떻게 스스로 포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지.
    “그런 얘기는 됐고. 이 생활 힘들지 않아? 밤낮이 바뀌잖아.”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게 내 몸과 맞아.”
    “그래서 이름을 박쥐라고 지은 거야?”
    “생각 없이 지은 이름인데, 네 말을 듣고 보니 말이 되네. 그런 건 왜 물어?”
    “나도 학교 잘리게 되면 여기서 일해 볼까 해서.”
    “무슨 소리야?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좆같네. 엄마랑 똑같은 소리만 해대고.”
    철진이는 침을 뱉듯 말을 던졌다. 박쥐는 듣고도 못 들은 척 철진이의 말을 넘겼다. 철진이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긴 요즘처럼 더울 때는 학교가 그리워. 수업 내용은 어차피 자장가니, 한숨 자면 그만이고. 시원한 에어컨에, 밥에……. 최소한 배고플 일은 없지.”
    철진이는 어서 방학이 끝나기를 바랐다. 집에 가 봐야 먹을 것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엄마의 등골을 빨아먹는 개망나니 아버지와 점점 거칠어져 가는 엄마와는 한순간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기초 생활 수급자도 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평범해지도록 노력해.”
    철진이는 박쥐가 자꾸 동문서답을 하는 듯했다. 철진이는 박쥐의 눈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도 내게 신경 따위 쓰지 않아. 나 같은 거 사라져 버린다고 누가 걱정이나 하겠어. 이런 내가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형은 진짜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박쥐는 가슴이 울컥했다.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고 싶어. 꼭. 클럽에서 일하면서 번 돈은 모두 모으고 있어. 손님들이 남긴 안주를 끼니로 때우고.”
    “아버지가 몰래 찾아와서 돈을 훔쳐 달아났다며. 근데 또 돈을 모은다고? 등신 아냐?”
    “…….”
    박쥐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철진이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박쥐의 눈에서 살기 어린 빛이 번득였다. 철진이는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버지처럼 사는 건 죽어도 싫어.”
    그때 박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액정을 살펴본 박쥐는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더니 전화를 받았다.
    “무, 무슨 일이죠?”
    박쥐의 입술이 파들거렸다.
    “고시원비는 언제 완불할 건지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이번 주까지 완불하지 않으면 방을 빼셔야 합니다.”
    수화기 너머 여자 목소리는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바쁘니 전화 끊을게요. 일하러 가야겠다.”
    박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철진이는 박쥐에게 곤란한 일이 생긴 것을 알고는 알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쥐는 뒷길을 빠져나갔다. 중간쯤에서 갑자기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 철진이를 보았다.
    “어디서 뭘 하든, 시시티브이 조심해.”
    그 말만 남기고 클럽을 향해 뛰었다. 철진이는 골목에 길게 늘어진 박쥐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에 접혀 있던 날개가 양쪽으로 펼쳐져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박쥐, 박쥐라면…… 동물과 새 사이에서 이간질하던 종자잖아. 쳇!”
    철진이는 박쥐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의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몸소 체험한 바였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용호파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달려들고 빼먹을 것이 없으면 버리는 것이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규칙이었다. 박쥐 역시 언제 어떻게 본색을 드러낼지 몰랐다. 중요한 것은 박쥐의 본색 자체가 아직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진이는 붉은 노을빛이 어룽진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4. 새가 선택한 소년

 

    다음 날, 마술사는 늦은 오후 클럽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창고 안으로 들어가서 마술 도구들을 살펴보았다. 마술사는 새장 앞으로 다가섰다. 모이통에는 곡식이 충분했고 깨끗한 물이 담겨 있었다. 바닥에는 똥 몇 덩이가 있었지만 이 정도면 말끔하게 청소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울어대는 비둘기들의 소리에 마술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쉿!”
    마술사의 한 마디에 요란하게 울어 대던 새들이 조용해졌다. 마술사는 창고 안을 서성거리며 밤에 공연할 마술에 대해 생각했다. 카드 마술과 어제 보여 주었던 거울 속으로 사라지는 비둘기 마술을 연결해서 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조 역할이 필요했다. 마술사는 비둘기가 선택한 소년, 박쥐를 떠올렸다.
    마술사는 무대로 나왔다. 무대 아래에서 정리하고 있는 웨이터에게 박쥐 소년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계단 청소하고 있을 걸요?”
    “그 아이를 창고로 불러 주겠소?”
    “그러죠.”
    마술사는 조용히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절 찾으셨어요?”
    카드를 정리하고 있던 마술사는 박쥐의 얼굴을 보았다.
    “부탁할 것이 있어 불렀네.”
    마술사는 새장 문을 열고는 안쪽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손목에 앉자 마술사는 그대로 팔을 뺐다.
    “이 새를 기억하나?”
    “…….”
    “자네 어깨 위에 앉았던 새지. 이 새가 자넬 선택한 거야.”
    “무슨 소립니까?”
    “자네가 특별하다는 거지.”
    “새가 날아들면 특별한 겁니까?”
    퉁바리 섞인 박쥐의 말에도 마술사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자네에게는 마술의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
    “마술은 눈속임, 손 기술 뭐 이런 것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같은 마술을 해도 특별한 매력이 발산되어 관객에게 신뢰감을 주는 자들이 있지. 노력으로 넘지 못하는 아우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시간 없어요. 돌려 말하지 마세요.”
    마술사는 새의 머리와 등을 쓸어내렸다.
    “오늘 무대에서 날 도와 달라는 뜻일세. 아마……. 오늘 밤 마술을 할 때도 이 새는 자네를 찾아갈 거야. 그건 진정 새의 몫이니까. 내가 진짜 마술을 부리지 않은 이상 이 동물에게 강요할 수 없다네. 그때, 내가 자넬 부르면 무대 위로 올라와 주게. 이후에 할 마술에서는 어려운 건 없네.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되니까.”
    박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이유에서건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술사는 박쥐가 선뜻 허락하지 않자 옆에 놓인 가방에서 돈 봉투를 꺼내 박쥐 앞으로 내밀었다.
    “이것도 일이니 대가는 지불해야지?”
    박쥐는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저 돈이면 급한 고시원비가 해결되겠지?’
    박쥐의 마음이 흔들렸다.
    “좋아요.”
    마술사는 박쥐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손에 돈 봉투를 쥐여 주었다.
    “고맙네.”

 

    마술 공연이 시작될 무렵, 객석에는 사람들이 반 이상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은 편하게 술을 들이켰다. 몇몇 테이블에서는 벌써 취한 자들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무대에 화려한 조명이 내리쬐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위로 옮겨졌을 때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섰다.
    “파라다이스 클럽만의 특별한 이벤트! 마술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이어 밴드의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드럼은 절정을 이뤘다가 멈추었다. 무대 위에는 거울과 함께 마술사가 등장했다. 박쥐는 리허설 때와는 다른 곳에 있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곳에 일부러 숨어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비둘기가 진짜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마술이 시작되고 비둘기가 거울 속으로 사라지자, 사람들이 흥분했다.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비둘기가 천장을 날아오르자 조명은 비둘기를 비추었다. 박쥐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비둘기는 손님들 틈에 끼어 주문을 받고 있는 박쥐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핀 조명은 박쥐에게 내리쬐었다. 박쥐는 눈이 부셔 팔등으로 눈을 가렸다.
    “비둘기가 선택한 소년, 잠시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마술사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박쥐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며 무대를 향해 걸었다. 박쥐의 발걸음에는 불편함이 묻어 있었다.
    박쥐는 마술사와 나란히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마술사는 박쥐의 어깨 위에 있는 비둘기를 자신의 손목에 올려놓았다.
    “이 비둘기는 주술사입니다. 주술사 비둘기는 이곳에서 가장 슬픈 운명을 지닌 사람을 찾아 선택하죠.”
    마술사의 이야기를 들은 박쥐는 그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속이 덜컥거렸다. 마술사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주술사 비둘기는 이 소년이 지닌 슬픈 운명을 바꿀 기회를 주기 위해 선택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술사는 박쥐를 바라보았다. 박쥐의 두 눈 속에 두려움이 있었다.
    “마음 편하게 가지렴.”
    마술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술사는 테이블 위에 있는 열쇠를 집었다. 열쇠는 마술사의 손바닥보다 약간 더 길었다. 마술사는 관객들을 향해 열쇠를 보여 주며 말했다.
    “저희 아버지 역시 마술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열쇠가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준다고 말했습니다. 전 믿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마술을 보고 믿게 되었지요.”
    마술사는 손을 내밀어 사람들이 열쇠를 볼 수 있도록 몸을 움직였다.
    “이 마술이 진짜라고 믿어 주세요. 이 열쇠가 진짜 운명을 바꾸어 줄 것이라고.”
    마술사는 열쇠를 탁자 위에 놓고는 박쥐를 거울 옆에 있는 커다란 상자 앞으로 이끌었다. 상자에는 화려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마술사는 상자 문을 연 뒤 박쥐에게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박쥐는 두려움을 안고 상자 안에 몸을 넣었다. 마술사가 문을 닫자, 박쥐는 컴컴한 어둠 속에 갇힌 듯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공 있는 듯 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의 두려움이 편안함으로 바뀌면서 몸의 긴장이 풀렸다. 박쥐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안락함은 처음인 것 같았다.
    마술사는 닫힌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술사는 탁자 위에 놓았던 열쇠를 상자의 열쇠 구멍에 넣었다. 열쇠는 구멍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술사는 한 손님에게 잠시 올라와 달라고 말한 뒤 그에게 직접 문을 열게 하고 열쇠를 구멍 속에 넣어 보라고 했다. 남자는 온 힘을 다했지만 문이 열리지도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제 절 믿으시겠죠? 이 소년의 운명이 바뀔 수 있게 제가 주문을 걸죠. 만약 제 주문이 효과가 있다면 이 열쇠가 운명의 상자 문을 열 것입니다. 제가 열쇠를 바꿔치기할지도 모르니 이 열쇠는 다른 손님에게 잠시 맡기겠습니다.”
    마술사는 열쇠를 건넨 뒤 상자를 돌리며 주문을 외웠다. 상자 표면에 그려진 무늬가 뒤섞이며 신비한 문양을 만들어 냈다. 조명과 음악이 기묘한 분위기를 살려 주었다. 마술사는 춤을 추듯 몸을 움직였다. 관객을 향해 손짓하며 사람들의 기를 끌어모았다. 마술사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었다. 그의 말은 라틴어 같기도 했다.
    상자가 돌아가는데도 박쥐는 어지럽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진 듯 마음이 편안했다. 감은 눈 사이로 자신이 겪지 않은 사건들이 뒤엉켜 펼쳐졌다. 하지만 혼란스럽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은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환상이거나 꿈 같았다.
    마술사의 주문이 끝난 뒤, 마술사는 손님에게 열쇠를 받았다. 열쇠를 구멍 속에 넣자, 열쇠가 들어갔다. 마술사는 웃으며 열쇠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철컥, 상자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박쥐는 눈을 떴다. 단잠에서 깨어난 듯 아쉬웠다. 마술사는 박쥐를 상자 안에서 꺼내 주었다.
    “자, 소년의 미래를 위해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수고했네.”
    마술사는 박쥐의 어깨를 다독였다. 박쥐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아직도 두 발이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상자 안에 있는 동안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듯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슬픈 운명이라는 말과 그 운명을 바꿔 준다는 마술뿐이었다.
    “어이, 여기 주문 좀 받아.”
    근처 테이블에서 술 취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야, 뭐하고 있냐? 빨리빨리 움직여!”
    선배 웨이터가 박쥐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제야 박쥐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많아진 술 주문 탓에 웨이터들은 바빠졌다. 주문을 받은 박쥐는 마술사를 찾기 위해 고개를 무대 쪽으로 돌렸다. 마술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박쥐는 창고 쪽으로 뛰어갔다.
    일을 마친 마술사는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자신이 썼던 마술 도구들을 점검한 뒤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박쥐가 불쑥 다가왔다.
    “잠시만요.”
    마술사가 그를 돌아보았다.
    “당신의 마술, 진짜는 아니죠?”
    박쥐가 다짜고짜 말을 던졌다.
    “진짜라니?”
    “비둘기가 절 선택한 것, 슬픈 운명이니, 또 제 운명이 바뀌었다는 등.”
    진지하게 말하는 박쥐를 보고는 마술사가 큰 소리로 웃었다.
    “이건 공연이다. 마술 공연. 쇼라고.”
    “알아요. 그런데 당신이 그 말을 했을 때 상자 안에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이상하다니?”
    마술사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 그게…….”
    박쥐는 상자 속에서 느낌 감정을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슬프지 않은 운명이 어디 있겠니? 아직 어려서 모를 테지만 대부분의 인생이 다 힘들고 고통스럽지. 앞으로도 도움 청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잘 부탁한다.”
    마술사는 서둘러 돌아섰다. 박쥐는 아쉬운 눈길로 마술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온이는 모텔 로비, 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모텔 주인 여자의 아버지,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로비 의자에 앉아 종일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시온이는 문 쪽을 바라보며 마술사를 기다렸다. 첫 공연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방에만 있을 수 없었다. 시온이는 바지 주머니가 걸리적거렸다. 주머니 안에는 여러 개의 사탕이 있었다. 길에서 교회 전단지와 받은 것들이었다. 시온이는 사탕을 꺼내 노인 앞으로 내밀었다.
    “할아버지 사탕 좋아하세요?”
    노인은 고개를 내려 시온이를 보았다.
    “좋아하고 말고.”
    “이거 다 드세요.”
    시온이는 할아버지 손바닥에 사탕을 올려놓았다.
    “고마워. 예쁘장하게 생긴 학생.”
    할아버지는 껄껄껄 웃으며 다시 텔레비전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마술사가 낯선 상자를 들고 모텔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시온이는 냉큼 마술사 쪽으로 달려갔다.
    “자지 않고 왜 내려와 있는 거니?”
    “오늘 공연이 어땠는지 궁금해서요.”
    “들어가서 얘기하자꾸나.”
    둘은 모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마술사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상자 안에서‘야옹’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온이 상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죠?”
    “고양이란다.”
    마술사는 상자를 열었다. 검은 고양이가 노란 눈을 반짝이며 야옹, 야옹 울고 있었다.
    “공연에 필요해서 오면서 한 마리 샀단다.”
    “주인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잘 숨겨야지.”
    시온이의 말에 마술사가 대답했다. 마술사는 상자 속에서 고양이를 꺼내 쓰다듬으며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조용해졌다. 마술사는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상자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다.
    “공연은 아주 좋았다.”
    “얼굴만 봐도 알 것 같아요. 아주 좋아 보이세요. 생기가 느껴져요.”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아무튼, 박쥐라는 아이가 우리 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이군요.”
    시온이의 얼굴도 밝아졌다.
    마술사는 의자 옆에 놓은 가방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어 시온이에게 건네주었다. 그 거울은 거울 마술에서 쓰인 거울을 크기만 축소해 놓은 듯했다. 둥근 형태와 테두리 장식까지 모양이 같았다.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네. 아버지.”
    시온이는 검은 가방 속에 거울을 넣었다.
    “월요일이 개학인데 맞춰 놓은 교복은 찾아 놓았지? 다른 준비도 다 된 거고?”
    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씻으마. 먼저 자고 있어라.”
    마술사는 욕실로 들어갔다. 시온이는 침대에 누웠다. 양팔을 엇갈려 머리를 받치고 새로운 학교생활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작가소개 /최양선

1974년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로 제1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
저서로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 『지도에 없는 마을』, 『너의 세계』, 『밤을 건너는 소년』이 있음.
2011년 『지도에 없는 마을』로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에서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

 

《문장웹진》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