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점성학 외 6편

[2015 아르코창작기금]

 

 

책들의 점성학

 

 

장유정

 

 

    책을 폈을 때 가장 먼저 눈을 갖는 문장들로
    시작되는 예언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호기심과 위기감사이에는 침 묻는 손가락이 있다.
    새로운 해석은 늘 반신반의의 단락들이고
    간접의 상징들이 팔랑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떤 책도 한 사람이 걸어 들어가
    머무른 적이 없듯
    점성술에서 마음을 찾아내는 오래된 방식.
    좋은 구절을 뽑아 인용하듯
    일찍이 전해져 오던
    네 귀퉁이가 다 닳아 점치기 어려운 이름께나 알려진
    기획 의도는 어떤 대목에서 미간 되었을까?
    잃어버린 책을 찾듯
    순서 배열은 정연했고
    묵음된 숫자 같은 바벨들
    책 무게에 책꽂이가 흔들린 역사는
    무수히 많고 무수히 허물어 졌다.

 

    탁탁탁, 탁탁, 탁탁탁
    문을 두드리듯 쉼표를 찍는다.

 

    꿈속에서 걸어 나오듯 책속에서 걸어 나왔고
    곧 한권의 책으로 운명선이 바뀌듯
    저자의 변은 완결되었다.
    도서관의 많은 책들이 폐기될 때마다 새 책이 쏟아져 나온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그대
    구두점을 치는 방식으로
    책을 펴서 오늘의 운세를 점쳐 볼까요.

 

 

 

 

 

 

 

 

 

 

테트리스41단계

 

 

    허물어지고 다시 쌓이는 도시를 본다. 인부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벽돌더미 트럭에 싣고 있다.

 

    누군가 테트리스 게임을 한다.

 

    바람 불때마다 창문 덜컥이듯 블럭이 입방적처럼 일렬로 세워졌다. 돌의 구조는 구획 정연했고 크기도 똑같다. 트럭이 네모꼴로 공돌쌓기처럼 내려오고 높이 쳐들린 지붕위로 햇빛이 내려온다.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이형벽돌처럼 상하지 않는 벽돌 골라낸다.

 

    목전에 다다른 말들이 높이 더해가듯 더 이상 쌓을 수 없는 돌출들. 쉬지 않고 벽돌 올리자 담은 점점 높이 쌓여 간다. 빈틈 메우려 시공줄눈 같은 감탄사들이 사춤 된다.

 

    오늘은 여섯 장의 벽돌 내려왔다.
    반 지하 내려가는 몇 칸
    블럭 모양을 바꿀 때 L자는 안구돌출처럼 몸 무겁다.
    꿰어 맞추다 자칫 어긋나고 밑에 쌓였던 것들이 우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이날 사고는 차가 집 난간을 들이받았다.
    벌집 쑤셔놓듯 사고현장에서 부서진 트럭은 견인차가 끌고 갔다.
    성한 곳 거의 없는 벽돌의 산
    아이는 일어서서 무너진 집터 들여다본다.

 

    가장 낮은 곳에 쌓였던 이삿짐이
    다시 공중으로 쌓인다.
    그날 밤 도형에도 없는 모양으로 달빛이 내려왔다.
    참 어렵게도 이 단계까지 왔다.

 

 

 

 

 

 

 

 

 

 

주문을 취소하다

 

 

    말의 백과사전을 주문했다.

 

    차도르를 입거나 산맥을 넘어가거나 낙타를 타고 있는 말들을 주문했다.

 

    책은 소모되지 않는다.
    책의 생몰연대를 손으로 잡으면 한손에 다 잡힌다.
    빗나간 화살처럼 낙전된 언어들
    중간 중간 찢어져 나간 페이지
    눈을 감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 책의 입술모양

 

    쓰여 지지 않는 말들은
    생각에 잠긴 입모양을 하고 있다
    다문 입속에 가라앉은 말처럼
    기록되지 못하고 품절된 책들
    창고에 쌓여 있는 복제된 말들의 서書

 

    오랫동안 활자본을 연구했다
    책 뒤편엔 활시위 당겼던 기록이 인쇄되어있는 횟수처럼
    어떤 사전이던 승부 없는 전쟁 없듯
    말 품종에 관한 해설이 애장서처럼 빽빽하다.

 

    한번쯤은 입속에서 맴돌거나 가라앉았던 언어들, 누워 있거나
꽂혀 있거나
    처음과 끝은 항상 묵음된 소리 같은 입모양
    세워 놓은 활弓이다.

 

    너무 오래 읽고 있는 전쟁사처럼
    어깨가 의자에 파묻힐수록 클릭만 되어 있어
    팽팽했던 활시위 늘어져 메길 수 없다.
    그, 손에서 천천히 잡아당겼던 시위를 다시 내려놓는다.

 

 

 

 

 

 

 

 

 

 

배우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내부는 과거에 온 것처럼 꾸며놓고 한꺼번에 등장해야 하는 스탠드 인,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공장굴뚝이 검은 연기 토하듯 차량 한 대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간다.

 

    옛 이름과 얼굴은 잊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로
    청중 A이거나
    청중 B거나
    아니면 관객 a거나 b로 불렸을

 

    눈만 보이는 마스크들
    감춰진 얼굴 속에 토막 난
    이것은 한편의 즉흥극이네.

 

    숨겨야만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듯이
    가릴 것 많아진 세상
    미리 웃거나 화내거나 슬픈 얼굴들
    한 꺼풀 벗어버리면 옛 표정 나올까?

 

    갈수록 진화되는 큰 눈과 벌어진 입, 시대의 유적 같은 기쁨과 아픔이 지나갔다.

 

    살아있네, 살아있어
    가깝고도 먼 동작들, 영원한 피난처
    나는 변장술에 능했나요?
    마스크효과처럼 착용하는 순간 흐름을 바꿔 덮어버리는 광대놀음 같은 소리들

 

    어디선가 죽은 이의 모습처럼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과도히 의식한 기록은 지금 여기로 재현된다.
    연기의 폭 넓히듯
    벌써 시커먼 연기가 새벽하늘로 무럭무럭 치솟았다.

 

 

 

 

 

 

 

 

 

 

적산

 

 

    인간이 집을 고집하는 이유는 추운 몸 때문이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새어나가는 몸의 열기
    오래된 집은 창문만 바꾼다고 방음되지 않는다.
    곡면유리처럼 불러진 배
    한여름 뜨거운 싱크대처럼 소요됐던 재료들
    부위별 일조량을 조사하고 햇볕의 품질을 누적하여 경비를 계산한다.

 

    비고란에는 수령을 참조한 이름표들이 붙어있다.
    내부와 외부의 계단처럼 변동을 주는 건 바람
    창은 창틀 안에서 소리를 차단하고 울기도 하고 제 울음을 듣기도 한다.
    바람이 열고 닫는 호흡법은
    면밀한 검토로도 예측할 수 없다.

 

    다 새어나가고 홀쭉해진 몸이 창밖을 본다.
    건축용어사전에는 공사비를 예측하는 작업,
    또는 가격에 중점은 소실에 그 의미를 두기도 한다.
    따뜻한 시간 얼마를 산출하는지
    빛은 창의 바깥 면에 붙은 한기를 데우는 온기로 집계반영 된다.

 

    구름의 노임단가를 곱하고 지체보상금을 적용하는 설계도서처럼 푸르렀다 붉어지는 시반들
    실리콘처럼 서서히 굳어가는 몸
    지상에서 가장 처음이자 늦게 도착하는 감각은 소리다.
    멀리 오동나무 사이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풀리듯 초점 잃은 눈동자
    몸의 알 수 없는 틈으로 새어나가는 마지막 체온처럼
    그녀의 궤적이 서서히 풀어졌다
    아름다웠던 집은 이제 폐가가 된다.

 

 

 

 

 

 

 

 

 

 

항아리 뚜껑은 언제 잠겨 지나

 

 

    어머니의 푸념 속에는 가시가 박혀있었다. 참새 몇 마리 가시나무 울타리에 앉아있고 입을 오므린 항아리들이 안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항아리 같은 꽃병에 한 다발 국화꽃 꽂는다.

 

    비가 몇 번 왔다가 지나갔다. 귀가 깨져 임시로 소쿠리를 덮어놓은 항아리. 시간이 지나 면서 생긴 얼룩 같은 반점들 둥둥 떠올라온 어린 구더기들을 가시라 했다.

 

    서서히 묵으며 익어가는
    유달리 복부가 불거져 나와 있던 항아리
    봄바람 건듯 불면
    장독대는 된장과 간장 등으로 가득 띄워졌고
    막 봄을 길어 올린 치마 걷고 소매 걷어 부치면 아직 발그레 얼굴이 추웠다

 

    항아리는 빈 것이 열쇠다. 아직 토지대장에 지번으로 남아있고 누구나 열 수 있지만 열어 봐야 소용없는, 와장창 깨지지 않고 서있는 빈집. 가장자리부터 물기 말라 뒤집어 놓을 라 치면 화분의 흙처럼 줄어있는 항아리들. 어느 틈으로든 다 새어나가면 빈집이 된다.

 

    항아리 속 가시들이 짭짤한 보름달을 파먹고 있다.

 

 

 

 

 

 

 

 

 

 

가방

 

 

    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신원처럼 가방이 발견되었다. 생몰연대가 들어 있는 무거운 입 표피와 몸체 사이 분말법으로 바람이 있었다. 질긴 식도와 튼튼한 위장 가늘고 긴 주둥이를 열지 않겠다는 단호함 감식반이 내용물들을 살폈다. 그 누구도 저렇게 소중하게 다뤄준 적이 있었을까?

 

    우두커니 먼 창밖을 보듯 누워있는 가방 때론 명백한 사인 옆엔 오리무중의 이유가 있다. 오래 넣고 다닌듯한 냄새가 쏟아져 나오고 손수건을 꺼내고 눈살을 찌푸렸다.

 

    추위와 공포로부터 가죽이 필요했다. 비늘판같이 딱딱한 가죽. 먹어야 산다는 명제는 지금 희비의 극점을 재고 있다. 열려진 입에서 결박에서 풀리듯 화장품과 거울 등 결정적 단서가 될 행적이 위액처럼 쏟아져 나왔다.

 

    단단한 턱과 이빨을 치명적으로 신뢰한, 속을 다 열어젖힌 내시경처럼 상품번호와 로고가 찍혀있는 수색작업도 병행했다. 집요한 탐구가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소개 /장유정

1961년 경기도 평택 출생
단국대 문예창작과 석사 졸업.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떠도는 지붕」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그늘이 말을 걸다』가 있음.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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