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랭 사인

[2015 아르코창작기금]

 

 

올드 랭 사인

 

 

임정연

 

 

    전철이 멈추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뒤에서 몸을 찔러 돌아보자 술 한잔을 걸친 듯한 남자가 쥔 케이크 상자였다. 홈도 내리고 타려는 사람들로 번잡했다.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 틈에 섞여 계단을 내려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따듯했던 몸이 순식간에 식었다. 입에서 허옇게 입김이 나왔다. 마스크를 썼다. 캡 위에 파카모자를 덮어쓰고 걸음을 서둘렀다. 전철역 앞의 자선냄비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연말의 밤거리는 시끌벅적했다. 가게마다 조명이 번쩍거리고 음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들은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빠르게 걸었다. 공원 쪽으로 따라 내려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 앙상한 나무들과 텅 빈 벤치가 보였다. 뒤편 주택가는 조용했다.
    골목으로 들어서며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CCTV가 있나 살펴보았다. 없다. 안쪽 집으로 다가갔다. 담에 몸을 붙이고 집을 쳐다보았다. 불이 꺼져 있었다. 대문 사이로 불빛이 보이나 힐끔거렸다. 어두컴컴했다. 어디 간다고 하더니 빈집이 맞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골목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 담을 잡고 힘껏 뛰었다. 실패. 다시 뛰려고 하는데 골목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불빛이 다가왔다. 얼른 돌아서서 걸으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한 달 전에는 오토바이를 몰았다. 눈오는 날 이 집에 배달을 하고 돌아가면서 사고가 났다. 눈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다리가 부러져서 깁스를 해야했다. 3주 가까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장 치킨 집에서 잘렸다. 엊그제 방세를 못 내자 고시원에서도 쫓겨났다. 터덜터덜 추운 거리로 나왔을 때 이 집이 떠올랐다. 영감은 한 손으로 치킨을 받아들면서 한 손으로 전화기를 쥐고 있었다.
    “응. 연말쯤 봐서 한번 내려가지.”
    통화하는 영감의 목에 금목걸이가 번쩍거렸다. 거스름돈을 내주는데 장식장 안의 금 두꺼비가 번쩍거렸다. TV 다이 옆으로 도자기가 보이고 소파 뒤쪽 벽에 값비싼 골프채 가방이 서 있었다.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골목 끝으로 갔다. 발을 구르며 달려와 힘껏 뛰어올랐다. 겨우 올라탔다고 생각하는 순간 몸이 마당에 곤두박질쳤다. 쿵, 하는 소리에 놀라 숨을 멈췄다. 마당에 엎어진 채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인기척은 없었다.
    몸을 낮추고 계단을 올라갔다. 현관 유리문 앞으로 다가갔다. 젖은 수건을 꺼내 유리문에 대고 쳤다. 인터넷에 소리나지 않게 깨는 방법이라고 나와 있었다. 퍽 하는 소리에 혹시 누가 듣지 않았나 몸을 움츠리고 잠시 기다렸다. 안으로 팔을 디밀어 걸쇠를 더듬거렸다. 간신히 걸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문을 닫고 어두컴컴한 거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문틈으로 나오는 불빛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짜 빈집이 맞구나. 소파 뒤의 장식장이 보였다. 소형 플래시를 꺼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장식장 안에 금 두꺼비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플래시를 입에 물고 주머니를 뒤졌다. 인터넷에서 산 마스터키를 찾아 문구멍에 찔러 넣었다.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도무지 열리지가 않았다. 축축한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키를 돌리면서 문손잡이를 잡고 흔들었다. 잘하면 열릴 것도 같았다. 장식장이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났다. 온 신경을 쏟아 문을 따고 있는데 뭔가 딱딱한 것이 뒷머리를 내리쳤다. 어? 뭐지? 아무도 없었는데. 순간 정신을 잃었다.

 

    위잉 위잉 하는 소리에 어렴풋하게 정신이 들었다. 뒤통수가 욱신거렸다. 손으로 만지려고 하는데 꿈쩍도 안 했다. 의아해서 쳐다보자 의자 팔걸이에 한쪽 팔이 묶여 있었다. 놀라 다른 손을 보자 똑같이 묶여 있었다.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자 역시 묶여 있었다. 그 옆에서 영감이 전동드라이버로 의자 다리를 볼트로 박고 있었다.
    “으으…”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나오지가 않았다. 입 속에 뭔가 쑤셔 박혀 있고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내가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는 어느새 벗겨져 있었다. 영감이 일어섰다. 몸을 버둥거렸지만 꿈쩍도 안 했다. 의자 다리가 모두 박혀 있었다. 영감이 전동드라이버를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손으로 얼굴을 붙잡았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으으.”
    전동드라이버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영감의 손가락이 스위치를 만지작거렸다. 충혈된 눈이 번쩍거렸다. 날카로운 쇠끌이 얼굴에 닿았다.
    “빈집 인 줄 알고 왔냐?”
    “으으…”
    “네가 내 집을 털어? 하, 이 맹랑한 새끼 보게.”
    “으으…”
    아니라고 도리질을 했다. 애원하는 눈빛으로 몸을 버둥거렸다. 영감이 뒤통수를 턱 하고 쳤다.
    “야, 힘 빼지마. 그런다고 부서질 의자 아니니까.”
    “사으주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몸을 비틀었다.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영감이 내 팔과 다리에 묶은 케이블 타이를 손으로 흔들었다.
    “하나 갖고 풀릴 수도 있겠네.”
    팔뚝에 하나씩 더 케이블 타이를 묶었다. 다리에도 하나씩 더 묶었다.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영감이 손으로 뒷머리를 턱턱 쳤다.
    “잘 있어.”
    탁하고 등뒤로 문이 닫혔다. 칠흑같이 깜깜한 방에 혼자 남겨졌다.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바깥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간다는 거야? 팔에 있는 힘껏 힘을 줘서 묶인 데를 뜯어내려고 했다. 케이블 타이가 파고들어 아팠다. 근데 언제 오지? 하루면 갔다 오나? 다리를 흔들어 풀어보려고 했다. 케이블 타이는 끄덕도 안 했다. 이틀? 설마 일주일? 일주일 넘어서 오면 어떡하지? 그럼 여기서 그냥 죽는 거야? 손톱으로 팔걸이를 긁으며 몸을 뒤틀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온몸에 힘을 불끈 줘서 의자 째 들어올려 보려고도 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에 계속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별 짓을 다해도 소용이 없었다. 묶인 데를 풀 수가 없었다. 입 속에서 울음이 터지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대로 여기서 죽는 걸까. 아아, 죽고 싶지 않다. 내가 왜 죽어야 하나. 울부짖고 싶은데 끅끅 소리만 나왔다. 그냥 금 두꺼비 하나만 슬쩍 하려고 들어왔을 뿐이다. 왜, 그런 짓을 하려고 했을까.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내렸다.

 

    “어, 그래. 말해봐.”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흐릿하던 눈앞의 벽지가 점점 또렷해졌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순간 깨달았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흰색 양복 차림의 영감이 방을 왔다갔다하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서움보다는 두고 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왈칵 밀려들었다.
    “어. 이성호. 22세. 어, 어. 주민번호 불러봐. 931024-19XXXXX…”
    영감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얼른 눈을 감았다.
    “응. 그래, 전과는 없고. 최근에 XX치킨에서 배달 알바. 어, 그래 운전면허는 있고?”
    영감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수고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났다.
    “야, 치킨.”
    영감이 머리를 툭툭 쳤다. 눈을 뜨자 영감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치킨 배달했던 놈이구만.”
    순간 쪼인트가 날아왔다. 너무 아파서 끙끙거리기만 했다.
    “너 같은 놈 튀면 찾는 건 일도 아냐.”
    영감이 핸드폰으로 머리를 툭툭 쳤다. 그리곤 내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소리 지르면 죽는다.”
    영감이 눈을 부라렸다.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영감이 입에 붙은 테이프를 손으로 잡아뜯었다. 두려움에 아픈 줄도 몰랐다.
    “튀면 갖다 묻어버린다.”
    영감이 을러대고는 다리에 묶은 케이블 타이를 풀었다. 그리곤 양쪽 팔의 묶인 데를 풀었다.
    “나가.”
    영감이 뒤에서 등을 떠밀었다. 일어서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걸었다. 바깥은 어느 새 날이 훤히 밝아있었다. 겨울의 회색 하늘이 유리창 너머로 낮게 깔려 있었다. 영감이 입으라는 듯 내 파카를 던져주었다. 뭘 하려는 거지? 불안한 마음으로 파카에 팔을 꿰었다. 영감이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었다. 목에는 금목걸이가 번쩍거리고 팔에는 롤렉스시계를 차고 있었다.
    “신발 신어.”
    영감의 한 마디에 허겁지겁 운동화를 신었다. 영감은 래이밴 선글라스를 쓰더니 흰색 구두를 신었다.
    “걸어.”
    영감이 뒤에서 툭 쳤다. 지금 어디에 가는 거지? 불안한 마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렀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검은색 벤츠가 서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침 햇살에 차체가 반짝거렸다. 영감이 가방을 들고 뒷자리에 앉았다. 내게 운전석에 타라고 했다.
    “운전해.”
    어디를 둘러봐도 열쇠를 꽂는 데가 없었다.
    “…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버튼 있잖아.”
    손이 앞의 버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걸 누르자 부르릉 하고 시동이 걸렸다.
    “…어디로 가요?”
    “네비.”
    영감이 턱짓을 했다. 시키는 대로 네비를 세팅하고 출발했다. 무슨 차가 이렇게 큰 지 땀이 삐질삐질 났다. 작은 기스라도 나면 당장 죽이려고 들 것 같아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사거리로 나왔다. 곧장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빠졌다. 차가 미끄러지듯 달렸다.
    네비에서 시키는 대로 경부 고속도로를 탔다. 다시 호법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탔다. 횡성에 이르렀을 때 뒷좌석에서 영감이 말했다.
    “여기서 빠져.”
    주유소 옆 국도변의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횡성한우라고 큼직하게 써붙인 식당이었다. 유명한 맛집인 듯 대형 관광버스와 차들이 북적거렸다. 유리창 앞에 정동진, 동해, 라고 써 붙인 버스들도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흰 양복에 백 구두, 선글라스를 쓴 빡빡 머리의 영감은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하지만 영감은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국밥 둘.”
    영감이 큰소리로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영감은 열심히 수저질을 했다. 나는 건너편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어제부터 내리 굶었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뜨는 둥 마는 둥 하다 수저를 내려놓았다. 네비의 목적지에 가면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거기 가서 날 죽이려고? 자꾸 컵의 물만 들이켰다. 그때 어디선가 핸드폰 벨이 울렸다. 움찔 했다. 영감이 주머니에서 내 핸드폰을 끄집어냈다. 말없이 보더니 툭 던졌다. 얼떨결에 받았다.
    “왜 전화했어?”
    퉁명스럽게 말이 나왔다. 영감을 쳐다보았다.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냥, 잘 있나. 연말인데 집에 올 거니?”
    엄마가 물었다.
    “아, 몰라. 바빠. 끊어.”
    “성호야…”
    엄마가 뭐라고 했지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영감이 못마땅한 듯 날 쏘아보고 있었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 영감이 양복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 한 움큼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물로 입을 헹구더니 일어섰다.
    겨울 햇살이 창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네비가 시키는 대로 구불구불한 국도를 내달렸다. 점점 시골로 가는 듯 텅 빈 들판만 나왔다. 검은 까마귀 떼가 겨울 하늘을 떼지어 날아갔다. 초조해서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불안했다. 시골 읍내가 나왔다. 좁은 거리에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읍사무소가 보이고 보건소가 나타났다. 읍사무소 건물에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읍내를 지났다.
    창으로 다시 들판이 펼쳐졌다. 텅 빈 논에 쌓아놓은 볏짚도 보였다. 길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앞에도 뒤에도 따라오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눈앞에는 허허벌판과 흰 눈을 뒤집어쓴 산자락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적한 길로 접어들수록 더 초조하고 불안했다. 백미러를 힐끔거렸다. 뒷좌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영감이 기침을 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영감이 창을 내리고 카악 침을 뱉었다.
    얼마쯤 가자 작은 마을이 나왔다. 집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다. 영감이 느티나무가 서있는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영감이 차에서 내렸다. 담배를 피워 물고 차 앞에 서 있었다. 햇살에 목에 건 금목걸이가 번쩍거렸다. 마을회관에서 나오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뉘신지?”
    “옛날에 이 동네 살던 사람인데…. 야, 너 영복이 아냐?”
    “예, 맞는데요. 혹시 태수 형님?”
    “그래, 나 태수야. 김태수.”
    영감이 헛기침을 하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하이고. 진짜 태수 형님 맞네요. 이게 얼마 만이요?”
    까만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가 영감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한번 오신다고 하더니 정말 오셨네요.”
    영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들썩였다.
    “자자, 얼른 들어가십시다.”
    할아버지가 마을회관 쪽으로 영감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럴까?”
    영감이 돌아서다 말고 날 쳐다보았다.
    “너도 들어와.”
    “…예.”
    기가 죽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저 젊은애는 누구요?”
    할아버지가 날 돌아보았다.
    “어허, 내 기사.”
    “그려, 기사도 들어가자고.”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손짓했다. 얼떨떨한 채 끌려 들어갔다. 마을회관 안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뿐이었다. 우리를 보자 누군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거 옛날에 우리 옆집 살던 태수 형님 알지?”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 할아버지가 설명했다.
    “어어…”
    누군가 대답했다.
    “그 태수 형님 오셨어.”
    어떤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다가왔다.
    “진짜 태수야?”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 맞네. 맞아.”
    “어, 그래. 오랜만이야.”
    서로 손을 잡고 흔들었다.
    “자자 이리 앉으시고. 뭐 좀 내와봐.”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할머니들이 뿌루퉁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할아버지가 쭈뼛거리며 영감을 쳐다보았다.
    “겨울이라 마땅한 게 없네. 형님, 차나 한 잔 드실래요?”
    “차는 무슨. 술이나 한잔하자. 야, 치킨. 읍내 가서 사와.”
    내게 소리쳤다.
    “…예.”
    머리를 꾸벅하는데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 할아버지가 말했다.
    “하, 형님. 그럴 거 없소. 요샌 여기도 다 배달돼요.”
    “그래? 내가 한턱 낼 테니까 시켜봐.”
    영감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한쪽에 있는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장 사장? 회관에 지금 열 명 정도 있으니까 먹을 것 좀 가져오고. 형님, 저 술은?”
    전화기를 쥐고 영감을 돌아보았다.
    “소주하고 맥주 시켜.”
    “쏘주하고 맥주 가져오고.”
    할아버지가 전화에 대고 소리쳤다.
    “양주도 두어 병 가져오라고 해.”
    영감이 말하자 할아버지가 다시 소리쳤다.
    “양주 좀 가져오고.”
    안에서 벌어지는 풍경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한쪽에 서서 주눅들어 있는데 앞에 있는 할머니가 옷을 잡아당겼다.
    “총각도 앉아.”
    얼떨떨한 채 주저앉았다. 영감을 힐끔 쳐다보고는 할머니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할머니, 읍내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요?”
    “뭐, 어디 간다고?”
    할머니가 잘 안 들리는지 몸을 기울였다. 영감을 다시 힐끔거렸다.
    “읍내 가는 버스요.”
    “저짝 큰길 나가서 타지. 근데 지금은 없어…”
    할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겨울에는 차가 일찍 끊어져.”
    “…네?”
    어깨가 툭 떨어졌다. 그때 영감이 이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흠칫했다. 얼른 할머니한테서 떨어져 구석에 몸을 기댔다.
    마을 회관의 문이 열리고 어떤 남자가 철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출입문으로 몰려갔다. 열린 문틈으로 바깥에 서있는 봉고차가 보였다. 남자가 차에서 음식을 내리고 있었다. 저걸 타고 도망칠까. 뒤통수가 찌릿해 쳐다보자 영감이 쏘아보고 있었다.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봉고차가 간 뒤 다시 한 떼의 노인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모두 영감에게 아는 체를 했다. 해가 지자 할머니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들만 남아 계속 술을 펐다. 잠시 뒤에 요란스럽게 화장을 한 여자들이 들이닥쳤다. 눈웃음을 치며 할아버지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뒤쪽 벽에 기대앉아 있는데 눈꺼풀이 내리눌렀다.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영감은 벌건 얼굴로 계속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야, 치킨. 일어나.”
    누가 발로 툭툭 몸을 찼다. 번쩍 눈을 뜨자 앞에 영감이 서 있었다. 입술에 묻은 침을 닦으며 후다닥 일어섰다. 벽에 몸을 기대고 정신없이 떨어져 있었다. 어느새 창 밖이 환했다. 마을회관 바깥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밤새워 술을 퍼서 모두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하지만 영감은 멀쩡했다. 성큼성큼 차로 가서 뒷자리에 척 올라탔다. 나도 눈치를 보며 운전석에 앉았다. 우리를 회관으로 데려갔던 할아버지가 천천히 가라고 붙잡았지만 영감이 들를 데가 있다며 거절했다. 백미러로 마을회관이 멀어졌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손을 흔들었다.
    영감이 가자고 하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마을에서 10여분 떨어진 뒷산이었다.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을 계속 올라갔다. 겨울나무에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앉았다. 길이 끊어지자 영감이 차를 세우라고 했다.
    “내려.”
    “…예?”
    가슴이 덜컥했다.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앞과 뒤는 사람의 발길이 뜸한 숲이었다. 잎이 져버린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왜 이런 곳으로 데려왔을까. 드디어 올 것이 온 걸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도망치는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어떻게? 앞에는 산, 뒤에도 산. 옆에는 영감. 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영감이 트렁크에서 천 가방을 꺼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축 처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 속에 날 죽일 연장이 들어있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젯밤 도망치는 건데. 그렇게 정신없이 떨어진 걸 후회해봤자 이제는 소용이 없었다. 입술을 물었다.
    “걸어.”
    영감이 가방을 들고 날 앞장세워 산을 올라갔다.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자꾸 흙길에 운동화가 미끄러졌다. 계속 산을 올랐다. 주위가 어둑어둑했다. 길도 없고 그늘진 곳은 얼어 있었다. 어둑어둑한 저 앞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영감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바스락 하는 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눈앞이 뿌예졌다. 비틀거리자 영감이 어서 가라는 듯 등을 찔렀다. 영감은 시든 잡풀이 있는 둔덕에 멈춰 섰다.
    “거기 서.”
    영감이 소리쳤다. 그리곤 가방을 열었다.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걸 보고 바닥에 엎어졌다.
    “사…살려주세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영감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들렸다. 뭘 하는 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악, 살려주세요.”
    “뭐하냐?”
    슬몃 고개를 들었다. 영감은 양손에 뭘 쥐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땅에 박고 싹싹 빌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땅에 엎어진 채 몸을 덜덜 떨었다. 영감이 뒤로 물러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영감은 시든 풀로 뒤덮인 무덤 앞에 서 있었다. 날 죽이려는 게 아니었나?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영감은 여자 향수를 한쪽 무덤 위에 칙칙 뿌려댔다. 그리곤 양주 뚜껑을 열어 옆의 무덤 위에 줄줄 뿌리기 시작했다. 영감이 무덤 앞에 털썩 앉았다.
    “다들 갔네.”
    영감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후 하고 길게 연기를 뱉었다.
    “하긴 나도 좀 있으면…”
    영감이 중얼거렸다.
    산에서 내려와 읍내로 나왔다. 짧은 겨울 해가 지고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영감은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리곤 또 약을 한 움큼 털어 넣었다. 나도 억지로 먹었다. 좀 전에 산에서 죽는 줄 알았기 때문에 꾸역꾸역 먹었다. 혹시라도 튀려면 힘이 있어야한다. 식당 주인이 선반에 있는 텔레비전 소리를 키웠다. 화면으로 보신각 주위에 몰려나와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밝고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가 비추자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네. 올해도 보신각 주위에 인파가 끝없이 밀려들고 있네요.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기 위해 사람들이 속속 모이고 있습니다. 올해도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이렇게 보신각 타종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슴이 벅찹니다. 이제 올 한해도 앞으로 6시간 남짓 남았습니다.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였다. 컵의 물을 마셨다. 아, 오늘이 마지막 날이구나. 별다른 느낌은 나지 않았다. 건너편의 영감의 눈치를 살폈다.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아까 산에서 해치웠을 것이다. 영감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어깨가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살았다는 거 하나로도 올해가 간다는 게 섭섭하지 않았다.
    식당을 나왔다. 영감이 환하게 네온사인을 밝힌 다방 앞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서 손톱을 다듬고 있던 여자가 쳐다보았다.
    “아, 어서 오세요.”
    방실방실 웃으며 발딱 일어섰다.
    “박양아, 김양아. 손님 오셨다.”
    그 소리에 수족관 너머에서 여자들이 달려나왔다. 생글거리며 영감의 양옆에 달라붙었다.
    “어제 서비스 좋더구만.”
    영감이 여자들의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었다.
    “어머, 출장 부르신 사장님이시구나. 또 오셨어요?”
    “사장님. 이쪽에 앉으세요.”
    여자들이 한쪽 자리로 영감을 데려갔다. 영감은 여자들을 양쪽에 앉히고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얼굴이 흐물흐물했다.
    “넌 저쪽 가 있어.”
    영감이 턱으로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가서 등을 돌리고 앉았다. 하지만 뒤에서 여자들과 웃고 떠드는 소리가 다 들렸다. 카운터의 여자가 내 앞에 커피를 놓고 갔다. 한 모금 마셨다. 쓰고 달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머리 위의 텔레비전을 흘끔거렸다. 가수들이 몰려나와 떠들고 있었다. 의자 끄는 소리가 나더니 영감이 여자들과 함께 일어섰다.
    “넌 여기 있어.”
    영감이 힐끔 쳐다보더니 여자들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방을 나갔다. 종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쭈뼛쭈뼛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갔다. 카운터의 여자는 껌을 씹으며 손톱을 손질하고 있었다.
    “…저.”
    “응?”
    여자가 흰자가 많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시로 나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요?”
    “지금?”
    여자가 손톱을 후 하고 불며 쳐다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끊겼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 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식은 커피를 홀짝였다.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렸다. 영감이 여자들을 양옆에 끼고 들어섰다. 영감이 여자들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사장님 또 오세요. 꼭 오세요.”
    “사장님, 힘도 좋으셔…”
    두 여자가 영감에게 가슴을 비벼댔다.
    “어험.”
    영감이 어깨를 폈다. 여자들이 다방 앞까지 따라나와 손을 흔들었다. 여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랐다. 영감이 뒷좌석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의자에 기대앉아 느긋하게 빨았다. 영감이 재를 턴 담배꽁초를 창 너머로 퉁겼다.
    “뭐, 내가 폐암으로 6개월 밖에 못 산다고. 미친 새끼들. 이렇게 팔팔한데 무슨 소리야.”
    영감이 창문을 닫으며 투덜거렸다.
    “의사 새끼들 그거 다 돈 벌려고 그러는 거야. 입원 같은 소리하네.”
    영감이 씨근덕거렸다.
    “…어디로 가요?”
    “올라가야지.”
    영감이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차가 국도로 올라섰다. 차들이 좀 늘었지만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속도를 올렸다. 어둠 속으로 국도 변 가로등이 휙휙 지나쳤다.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였다. 네, 그럼 보신각 주위에 나와 있는 시민 한 분과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다시 볼륨을 낮췄다. 앞의 차들이 속도를 늦추더니 멈춰 섰다. 경찰차 하나가 국도 변에 붙어 서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왜 그래?”
    영감이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음주단속 하는 것 같은데요.”
    “뭐?”
    영감이 목을 빼고 앞을 살폈다. 얼굴을 찡그렸다.
    “차 돌려.”
    “…예?”
    “짭새 있는 거 안 보여. 차 돌려.”
    영감이 뒤에서 머리를 내리쳤다. 놀라 재빨리 차를 돌렸다.
    “야, 빨리 밟아.”
    영감이 소리쳤다. 허둥지둥 엑셀을 밟았다. 요철을 쿵쾅거리며 넘었다.
    “마구 밟아.”
    영감이 뒤에서 닦달을 했다. 마구 밟았다. 벤츠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다른 차를 추월해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옆으로 빠져.”
    갈림길에서 영감이 소리쳤다.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마구 내달렸다. 따라오는지 어쩌는지 돌아볼 새도 없었다. 계속 달렸다. 앞에 저수지 같은 게 보여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차가 옆으로 죽 미끄러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영감한테서 겨우 살아났는데. 미친 듯 브레이크를 밟아댔다. 차가 간신히 멈춰 섰다. 저수지가 코앞이었다. 온 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조금만 더 갔더라면. 놀라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야, 차 빼.”
    영감이 뒤통수를 때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차를 빼서 달렸다. 영감이 시키는 대로 시골길을 빠져 나왔다. 국도로 접어들기 전 앞과 뒤를 살펴보았지만 경찰차는 없었다. 다시 고속도로로 올라와 차들의 흐름 속으로 들어갔을 때 영감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짜식들, 지들이 어떻게 쫓아와.”
    어깨를 들썩이며 거들먹거렸다.
    “잘했어. 제법인데.”
    등을 툭 쳤다. 나도 엉겁결에 따라 웃었다.
    “그래도 번호판 본 것 같은데요…”
    “괜찮아, 상관없어.”
    영감이 다시 크하하 웃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고속도로는 차들로 붐비고 있었다. 10분 째 꿈쩍도 안 했다. 중앙분리대 건너편도 마찬가지였다. 내려가는 차들로 미어 터졌다.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에 움찔 했다.
    “받아.”
    영감이 뒤에서 핸드폰을 툭 던졌다.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엄마다.”
    “왜, 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뒤통수로 손이 날아왔다.
    “전화 받는 싸가지하고는.”
    영감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아니 그냥 말일이고 해서.”
    “난 잘있어.”
    “밥은 먹었고?”
    “으응.”
    “그래, 그냥 전화해봤어. 끊는다.”
    “예.”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며 영감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디오 좀 켜봐.”
    영감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네, 이제 올 한 해도 10여분 남짓 남았군요.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무는군요. 보신각 앞에 10만 명이 모였다는 소식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 뒤로 올드 랭 사인이 흘러나왔다. 때맞춰 하늘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유리창에 싸락눈이 내려앉았다. 나도 영감도 창 밖을 내다보았다.
    “야, 치킨.”
    “…예?”
    “이 차 운전이나 해라.”
    “…지금 하는데.”
    웅얼웅얼했다.
    “앞으로 계속 하라고.”
    “…예?…예.”
    머쓱하게 백미러를 쳐다보았다. 영감도 딴청을 피우듯 담배를 물고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차들이 조금씩 속도를 냈다. 나도 달리는 데 열중했다. 차가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보신각의 타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근처로 몰려나온 사람들이 지르는 함성이 와와 메아리쳤다. 그 소리에 맞춰 주변의 차들이 빵빵 클락션을 울렸다.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치들도 있었다. 미친놈들. 영감이 연기를 뿜으며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차는 계속 가다 서다하고 있었다. (끝)

 

 

 

 

 

 

 

 

 

 

 

 

 

 

 

 

작가소개 /임정연

1967년 전남 영암 출생.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단편소설 「야간비행」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으로 『스끼다시 내 인생』, 『아웃』, 장편소설 『질러!』가 있음.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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