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을 투입하라 외 6편

[2015 아르코창작기금]

 

 

계엄군을 투입하라

 

 

이종문

 

 

    화물연대 부산지부가 총파업을 선언하여
    이른 바 물류대란이 코앞에 다가오자,
    급해진 중앙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했다

 

    고료도 없는 시를 매일 써온 시인들도
    드디어 도분이 나 총파업을 선언하고,
    당분간 시 짓는 일을 일체 작파키로 했다

 

    뭐라고? 그래봤자 눈도 깜짝 않는다고?
    천만에, 그럴 리가? 다급해진 대통령이
    공권력 투입한다며 으름장을 놓겠지, 흥!

 

    이 놀라운 사태 앞에 경악한 대통령이
    국가적 위기라며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말로 계엄군들을 투입하게 될지 몰라

 

    그래 부디 그 계엄군을 투입하라 투입하라
    시인이 작파를 해도 공권력을 투입하는
    기차고 신명난 세상, 그게 꿈이니까 얼쑤!

 

 

 

 

 

 

 

 

 

 

그 장엄한 소멸 앞에

 

 

    천근千斤
    미친 놀이
    왈칵, 밀어닥친 저녁

 

    꼬부랑
    할머니가
    유모차에 개를 싣고

 

    금호강 고수부지를
    가다 서다
    걷는다

 

    개는
    강물 위의
    타는 놀에 취해 있고,

 

    문득 할머니도
    아득히
    취해 있다

 

    천지간 화엄 만다라
    그 장엄한
    소멸 앞에

 

 

 

 

 

 

 

 

 

 

봄날

 

 

    봄날이다
    문진표 들고
    건강검진 가는 봄날
    미친 벚꽃들이 팝콘을 터뜨려서
    아침을 쫄쫄 굶어도
    배고프지
    않은
    봄날!

 

    명품
    핸드백에
    채변통을 담고 오는
    킬 힐 여교수를 병원 어귀에서 만나
    슬며시 미소 지으며
    눈인사만
    하는
    봄날!

 

    봄날이다
    백목련이
    피고 지고 하는 봄날
    일단 지고 나면 그 하이얀 나비 떼도
    서너 번 코 풀고 버린
    휴지되고
    마는
    봄날!

 

 

 

 

 

 

 

 

 

 

이래도 안 갈 끼가?

 

 

    어버이 ‘親’字를 써놓고 가만히 들다보면
    나무 위에 올라서서 보는 이가 어버이다
    집 떠난 아들딸들이 하마 오나 보는 이가

 

    마당에서, 대문에서, 한 길에서 기다리다
    급기야 동구나무 제일 꼭대기에 올라
    짧은 목 길게 빼고서 이리 중얼대는 이가

 

    “안 오면 섭섭냐고? 나 하나도, 안 섭섭해
    어릴 때 재롱 보며 참 많이도 웃었잖아
    그 옛날 그 재롱 값을 아직 반도 못 갚았어

 

    게다가 이 난세에 내 맘대로 떨궜으니
    쌀 양파, 고추 마늘, 철철이 다 부쳐줘도
    그 죗값 다 못 갚았어, 영영 죄다 못 갚겠어

 

    보고 싶지 않느냐고? 그야 물론 보고 싶지
    애간장 죄다 타고 미치도록 보고 싶지
    하지만 섭섭진 안 해, 아직 빚이 너무 많아”

 

    내일은 어버이 날 우리나라 어버이들
    일제히 동구나무 맨 꼭대기 위에 올라
    짧은 목 길게 빼신다, 이래도 안 갈끼가?

 

 

 

 

 

 

 

 

 

 

웃지 말라니까 글쎄

 

 

    시인 아무개의 양아버지 되는 분은 삼대 양자 집에 양자로 들어가서 세상에, 딸-딸-딸-딸-딸, 딸 다섯을 낳았다요.

 

    미치고 환장하고 애간장 탄 그 어른이 용하다는 점쟁이께 점을 치러 갔는데요,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아들 수가 없다 네요.

 

    급기야 이사를 가 또 딸 셋을 내리 낳고 아들 아들 빌며 아홉째를 낳았는데, 아 글쎄 딸 쌍둥이가 튀 나왔다 카더라요.

 

    눈물로 온 집안이 뒤범벅이 되었는데 내 일이 아니라고 호호 하하 웃지 마요, 그래도 자꾸만 웃네, 웃지 말라니까 글쎄

 

 

 

 

 

 

 

 

 

 

고추장을 칠한 산에

 

 

    겨우
    스무 살 먹은
    영국의 한 시인이

 

    고작
    쉰 번 밖에
    봄을 볼 수 없다면서,

 

    아 그냥 벚꽃을 향해 종종걸음 쳤다 하네*

 

    올해
    아흔인 엄마
    몇 번 더 봄을 볼까?

 

    어디
    봄뿐이랴,
    가을인들 뭐가 달라

 

    모시고 나가야겠네,
    고추장을
    칠한 산에

 

 

 

 

 

 

 

 

 

 

下棺

 

 

    풀잎 끝

 

    이슬 하나

 

    투욱 -,

 

    떨어진다.

 

    가슴에

 

    쿵 -, 하고

 

    큰 바위가 떨어지고

 

    들판이

 

    요동치더니

 

    이윽고

 

    고요하다

 

 

 

 

 

 

 

 

 

 

 

 

 

 

 

 

작가소개 /이종문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고려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졸업.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저녁밥 찾는 소리』, 『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 하지 뭐니』, 『묵 값은 내가 낼게』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나무의 주인』이 있음.
현재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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