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의 계절 외 6편

[2015 아르코창작기금 시]

 

 

캔디의 계절

 

 

유지소

 

 

나날이 팽창하는
잔디를 위해서
더 많은 공원과 더 많은 무덤이 필요하다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당신의 세계는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 당신을 위해서
잔디 위에 누울 것인가 잔디 아래에 누울 것인가
양자택일의 질문이 필요하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외치는
작은 팻말의 권리와 의무를 위해서
동아줄로 테두리를 휘감은
잔디밭이 필요하다
그곳의 잔디는
우리의 손발이 닿기도 전에 삐릭삐리릭
신음 소리가 나는 피부가 필요하다
햇빛 짱짱한 날에도 공치는
늙고 병든 일용직 근로자의 일당을 위해서
잔디밭에는
자고 나면 한 뼘씩 자라나는
개망초나 쑥부쟁이 같은 키 큰 풀이 필요하다
비만 오면 잔디를 잡아먹는 벌레가 필요하다

 

잔디는 남아돈다
우리 옛집 마당과 아버지의 무덤을 뒤덮은 후에도
남아 있다

 

우리가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저 멀리서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 온다
토성이 폭발한 다음에 토성보다 먼 곳에서 온다
그를 위하여
더 많은 잔디 잔디 잔디가 필요하다

 

 

 

 

 

 

 

 

 

 

질투 수업

 

 

    오늘도 사각 타일을 질투합시다
    이렇게 매끄럽고 이렇게 희고 이렇게 반듯한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오 분마다 질투합시다

 

    빚쟁이가 오 분에 한 번씩 전화벨을 울려대는 것처럼
    붕어빵 틀이 오 분에 한 마리씩 붕어빵을 구워내는 것처럼

 

    사각 타일은 사각 타일끼리 모여서
    겨우 화장실 벽이거나
    겨우 화장실 바닥입니다

 

    사각 타일과 사각 타일 사이에 꽃피는 것은
    겨우 까만 물때이거나 까만 곰팡이입니다

 

    우리가 물방울이라면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처럼
    따로따로
    방울방울
    흩어져서 질투합시다

 

    물방울은 물방울끼리 모여도 여전히 물방울입니다

 

    그의 두 뺨에 두 가슴에 두 거기에
    맺히면서
    구르면서
    흘러내리면서
    끝끝내 얼룩을 남기면서 질투합시다

 

    이렇게 한결같고 이렇게 평화롭고 이렇게 속없는 사람
    또 없습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으로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으로
    오늘도
    전투적으로!

 

    마지막 질투를 개발합시다

 

    오 분 후에 사라질 거품이
    거품 위에 거품을 물고 엎어지는 것처럼
    오 분 후에 죽을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담배를 꼬나무는 것처럼

 

 

 

 

 

 

 

 

 

 

콩? 콩! 콩 .

 

 

콩이 굴러간다
생쥐처럼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한밤의 연인들이 굴러 굴러간다

 

질투와 연민 사이
식탁과 침대 사이
한 덩어리 그림자와 함께 굴러 굴러 굴러간다

 

달려라, 콩.
멈추면 죽는다, 콩.

 

탁자에 맹물을 한 잔 올려놓고
이별은 너를 기다린다
지금은
한 잔의 맹물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시간

 

한 잔의 맹물을 중심으로
검은 태양이 백 바퀴 또 백 바퀴 돌 때까지
결코 오지 말 것

 

너는 콩.
반쪽짜리 콩.

 

하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나면
두 개의 반쪽으로 갈라지고 만다
반쪽 난 콩은 아무 데로도 굴러가지 못한다

 

늦은 밤
혼자서 말없이
콧물을 훌쩍이며
콩나물국밥을 퍼먹는 사람

 

처음부터 한쪽밖에 없었던

모두, 너

 

 

 

 

 

 

 

 

 

 

폭염

 

 

    초록색은 초록색으로 지워야 들키지 않는다 한 개의 떡갈잎을 지우기 위해 두 개의 떡갈잎을 그린다 두 개의 떡갈잎을 지우기 위해 네 개의 떡갈잎을 그려야 하듯이

 

    떡갈잎의 생명은 톱니바퀴에 있다 톱니바퀴는 너를 자전거에 태우고 떡갈나무 숲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한다

 

    너의 입술과 내 입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떡갈나무 숲에서는 총알이 퓡― 퓡― 퓡― 날아다니고
    우리가 없는 어떤 나라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재촉하지 말자 아무것도
    불타는 대지를 깊은 한숨처럼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는 얼굴일지라도
    심장은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한다 악몽처럼 너는 나의 심장에서 뛰고 있다

 

    한 개의 너를 지우기 위해 두 개의 너를 그린다 두 개의 너를 지우기 위해 네 개의 너를 그려야 하듯이

 

    초록색은 바닷물이 다 마를 때까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곧 휴가가 시작되고
    아무도 없는 등대까지 우르르 몰려갔다가 우르르 돌아오는 밀물처럼
    나도 그렇다!
    나도 그렇다!는 속삭임이 우리 사이에 흘러넘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미칠 듯이 한 사람만 생각하면 모두 그렇다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

 

 

    0시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는 사람도 아니야! 할 때의 그 사람도 아니었다
    빠앙! 빵! 경적을 울리면서 달렸다 기분이 더러워진 당신이 허겁지겁 쫓아와서
    이봐요, 빵집 아저씨!
    내게 소리를 꽥 지른다면 나는 그 빵집 아저씨도 아니었다

 

    내가, 웃고 있었다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처럼 내가,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없고 나 혼자서 환했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지났고 내일은 멀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무도 묻지 않은 채 조용히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당신 열쇠는 당신에게 주었고 내 열쇠는 내 주머니에 있다 나와 상관없이 강물은 흐르고 신호등은 바뀌고 별은 빛나고 들개는 죽었다 당연하고 당연하고 당연했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터널이 나타났다 라이트를 켭시다 지금부터 당신은 터널을 통과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불빛이라면, 나는 이미 두 개의 불빛, 불빛을 켜고 달리고 있었다 내 불빛은 충분히 밝고 빠르고 넘친다

 

    절 한 채가 나타났다 촛불을 켜세요 지금부터 당신은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오
    미안하다, 나에겐 빌어야 할 소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이 순간 당신 이모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순간 당신이 손을 번쩍 들고 이모, 여기 소주 두 병요! 나를 부른다면 당신은 운명적으로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유령이 될 것이다

 

    0시의 도로는 리본에 묶여 있다 어떤 리본은 길고 노랗고 어떤 리본은 짧고 하얗다 도로는 내게 배달된 소포 같다
    나는 리본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리본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리본의 매듭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한 개의 빗방울이 떨어지고 조금 이따가 몇 개의 빗방울이 더 떨어졌다 이 길 위에서 내가 아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해도 길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똑 똑 똑. 기지개를 켜시겠습니까? 그럼 당신은 천년 동안의 무덤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찔레꽃

 

 

    철책을 따라 걷고 있었다 …… 다시 묻는데 내 죄가 뭐죠? 등 뒤에서 불쑥 누군가가 물었다 뒤돌아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월의 끝이었고
    대낮이었고
    얼룩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밤새 훌쩍훌쩍 울던 소쩍새도 조용하였다

 

    가끔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어렸을 때 저것은 구렁이가 우는 소리다 그렇게 말했었다 나보다 여린 동생은 저것은 귀신이 우는 소리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불을 덮어썼었다
    대낮이었고
    집에는 어른이 없었고
    우는 벌레도 없었다

 

    내 죄가 뭐죠? …… 말씀해 보세요 누군가 또 말했다
    철책에는 사유지라고 쓴 나무 팻말이 걸려 있었다 출입 금지라고 쓴 나무 팻말도 걸려 있었다
    지금 여기,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철책 안에 두 기의 무덤은 없었다고 칠 것

 

    잊지 말자― 비석 밑에 노란 리본을 매어 놓은 것처럼 노란괴불주머니가 만발한 무덤은 없었다. 그렇게 말할 것
    감자밭이 있었고 감자밭 둘레에는 옥수수 들깨 고추 호박 그리고 찔레 덤불이 있었다 어떤 찔레꽃은 피고 있었고 어떤 찔레꽃은 지고 있었다

 

    다시 묻겠는데,
    내 죄가 뭐죠?
    내 죄가 뭐예요?
    내 죄가 뭐냐구요?

 

    누구일까 나를 따라 걷고 있는 이 목소리는
    방금 내 왼발과 함께 웅덩이에 빠진 이 목소리는
    웅덩이에는 어제 내린 비가 고여 있었고 작년에 떨어진 낙엽이 가라앉아 있었고 오늘 떨어진 꽃잎이 몇 개 떠 있었다

 

    음력 사월이었고
    음력 사월에는 내 생일이 있었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나는 철책을 따라 걷고 걷고 걷고 있었다 찔레수염 진딧물은 찔레 순을 따라 걷고 걷고 걷고 있었다

 

 

 

 

 

 

 

 

 

 

십자드라이버

 

 

   오늘은 냉이만 캤어요 좋아요 쑥도 안 캐고 미나리도 안 캐고 냉이만 캤어요 좋아요 냉이에서는 냉이 냄새가 나요 좋아요 쑥에서 쑥 냄새가 나는 것처럼 냉이에서는 냉이 냄새가 나요 좋아요 미나리에서 미나리 냄새가 나는 것처럼 냉이에서는 냉이 냄새가 나요 좋아요 냉이는 냉이를 믿는 거 같아요 좋아요 쑥이 쑥을 믿는 것처럼 냉이는 냉이를 믿는 거 같아요 좋아요 미나리가 미나리를 믿는 것처럼 냉이는 냉이를 믿는 거 같아요 좋아요 내가 나를 믿는 것처럼 냉이는 냉이를 믿는 거 같아요 좋아요 냉이에는 냉이꽃이 피어 있어요 좋아요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있어요 좋아요 쑥에 쑥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냉이에는 냉이꽃이 피어 있어요 좋아요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있어요 좋아요 미나리에 미나리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냉이에는 냉이꽃이 피어 있어요 좋아요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을 때도 있어요 좋아요 당신 얼굴에 당신이 피어 있는 것처럼 냉이에는 냉이꽃이 피어 있어요 좋아요 오늘은 냉이만 캤어요 좋아요 쑥도 안 캐고 미나리도 안 캐고 냉이만 캤어요 좋아요 우리 집에서 가장 크고 긴 십자드라이버로 캤어요 좋아요 빨간 손잡이가 빨간 피를 흘리는 십자드라이버로 캤어요 좋아요 꽃이 핀 냉이는 안 캐고 꽃이 안 핀 냉이만 캤어요 좋아요 울타리 안에 있는 냉이는 안 캐고 울타리 밖에 있는 냉이만 캤어요 좋아요

 

 

 

 

 

 

 

 

 

 

 

 

 

 

 

 

작가소개 /유지소

경북 상주 출생.
2002년 《시작》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제4번 방』,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가 있음.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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