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구두병원 외 6편

[2015 아르코창작기금]

 

 

11호 구두병원 외 6편

 

 

김주경

 

 

휠체어와 한 몸인 키 낮은 콘테이너
구두병원이라 불러도 틀림없는 댄스홀
온종일 질펀한 트로트가
넌출넌출 호객한다

 

허름해진 구두를 찍찍 끄는 남자도
뒤꿈치가 뭉개져 삐딱대는 여자도
나올 땐 한결같이 쿵짝, 스텝이 정확하다

 

이젠 뒷굽만 봐도 지난 삶이 읽힌다고
중심 잃은 구두의 살과 뼈를 다듬어
세상에 기죽지 마라 콧대도 세워준다

 

늦은 밤 어둠속에 몸을 펴는 휠체어
환지통 무릎으로 골목을 밀고 간다
놀랍다 저 천의무봉
온 생이
한 걸음이다

 

 

 

 

 

 

 

 

 

 

물의 여자

 

 

패스워드가 여자인 여기는 물의 나라
반쪽의 세상을 건너 반투명 벽을 열면
우르르 눈길이 몰려와 한차례씩 훑고 간다

 

축축한 입자들로 은밀해진 미로 속엔
물방울이 된 여자 물방울로 가는 여자
아직도 거친 허물 그대로 몸 불리는 여자

 

몇 가지 물건들로 영역을 확보하고
발목에 도드라진 바코드를 벗겨내면
바닥을 떠도는 얼룩 낯익은 피붙이들

 

등밀이기계가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야
하마터면 등짝이 흉터가 될 뻔 했잖아
여자가 여자를 벗고 물방울로 변신중이다

 

 

 

 

 

 

 

 

 

 

모기辯

 

 

나에게도 뜨거운 심장이야 있지만

 

한 번도 사랑 따위 구걸한 적 없었네

 

목숨이 담보되지 않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아.

 

매섭게 쏟아지는 킬러들의 백색경보

 

깜냥 없다 손가락질해도 흔들리지 않았네

 

사선을 넘어가는 날개

 

잠행은 시작 되고.

 

살아야 하는 이유로 팽팽해진 생의 가속도

 

식어버린 기도는 이제 잊어야 하네

 

뜨거운 단 한 줄의 비문, 난

 

내 사랑을 믿네.

 

 

 

 

 

 

 

 

 

 

오동동 복국거리

 

 

공갈빵 같은 복어의 뱃속이 궁금했을까
울컥 치미는 생목을 시큼하게 뱉어놓고
새벽녘 복국 골목으로
스며드는
저 사내

 

망할 놈의 세상을 백번도 더 죽이고
다시 살린 지난 밤 치열하게 달리던
불콰한 얼굴 군데군데
술독이 번졌다

 

독은 다시 독으로 풀어야 한다고
파랑이는 비린 속 뜨겁게 다독이며
아침이 또 일어선다
한 그릇
국물의 힘으로

 

 

 

 

 

 

 

 

 

 

다시, 또

 

 

어제는 안구건조증 진단을 받았네
눈물 없는 삶이라니 이 무슨 행운인가
한동안 가슴 설레었네
눈앞이 무릉도원이네

 

적막해진 눈자위 소금꽃을 피우네
비껴 간 초점들이 소환하는 신기루
나비 떼 날아오는지
깜빡, 능선이 붉어지네

 

옹이도 결을 풀면 더운 피가 돈다고
가래톳 서는 아침 길동무나 하라고
눈물을 리필하라시네
다시

눈물바람이네

 

 

 

 

 

 

 

 

 

 

꼬막을 읽는 저녁

 

 

창에 걸린 썰물 따라 널배를 밀고 나간
와온의 쪽방에서 꼬막정식을 먹는다
온 생을 뻘밭에서 뒹굴던
패각들의 성찬이다

 

자궁같고 요람같고 젖무덤같은 진구렁
무릎을 꿇어야만 잠행을 허락 하는
바다가 보내온 밀서
흐벅진 속살들

 

뭉긋한 뻘내가 입맛을 저울질한다
꼬막무침 꼬막전 꼬막탕 꼬막비빔밥…
지금이 딱 제철이라고
양푼가득 덤이다

 

짭조름한 밀서를 한 편씩 읽는 동안
솔섬까지 이어진 타래길을 지우고
'그래도 물질은 안했으야'
닻을 내리는 널배

 

 

 

 

 

 

 

 

 

 

베이비박스*

 

 

손만 잡고 잤는데 배가 불러 오더라고
무심코 건네받은 꽃물에 덜컥 젖어
열일곱, 신기루 같은
울음통이 자랐네

 

둥근 배는 체육복으로 적당히 가렸지만
몸 안으로 자라는 심장소린 끊지 못해
탯줄도 미처 떼지 못한
엄마를 낳았네

 

잘못 쓴 일기장 같은 자학의 시간들과
배내옷도 못 챙긴 첫울음을 함께 묶어
남몰래 담장 문을 여네
엄마를 버리네

 

저 문이 닫히면 어제는 삭제되고
나쁜 꿈을 꾸었구나, 기억도 편집될까
눈감고 귀 막은 골목길
울먹, 젖줄이 도네

 

 

   * 베이비박스 : 아기의 유기를 막기 위해 담장에 문을 만들어 아이를 넣어 둘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목사가 운영하고 있으며 이에 찬반논란이 있다.

 

 

 

 

 

 

 

 

 

 

 

 

 

 

 

 

작가소개 /김주경

2004년 《시선》에서 시 부문이 당선되어 등단.
201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2013년 《서정과현실》 신인작품상 시조 부문 당선.
《서정과현실》 편집차장으로 활동 중.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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