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B 외 6편

[2014 아르코창작기금]

 

 

베란다 B

 

 

황혜경

 

 

    너는 항상 베란다 B에 있다 서 있다 기다리고 있나보다
    나는 항상 베란다 B에 있는 너를 향해 가느라 있다

 

    ~답게 ~답지 못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수월해지고 실체는 실재적으로 몸을 회복해야 쾌청하다며 너는 말했지 다행이다 너의 쾌청
   거울 앞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니? 처음에 나는 나를 생각하다가 너를 생각해 너는?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깃든 너를 바라봐

 

    너는 아직도 베란다 B에 있다 서 있다 잠시 앉았다가 또 기다리나보다
    나는 아직도 베란다 B에 있는 너를 뒤로 못하고 앞에 두고 가느라 있다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나열되느라 너와 나는 무수하게 줄을 서 있거나 여러 번 반복적으로 놓여있고
    시간이 매듭지어 놓은 딱딱한 꼭짓점들이 우리의 구도를 미완에서 완결 쪽으로 그리고 있고

 

    나는 발코니 A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전봇대 뒤에서
    내장이 쏟아질 듯 울고 있는 한 여자를 본 적이 있는데
    남자는 저만큼 점(點)이 되어 멀리로 가고 있다고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울음의 선혈이 붉게 한 번 더 감싸고 있었다
    어둠 바깥으로 두 번째 자궁의 내막처럼
    그리고 노을이 번지던 저녁
    빨대로 불어 띄우던 본드 풍선처럼
    소리가 붉었다 만지면 끈끈하게 색이 몸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너는 항상 베란다 B에 있고 베란다 B는 어디에든 있고
    너는 기다리고 있고 나는 너의 무엇을 계속 향해 갈 것이다
    발코니 A라고 했는지 베란다 B라고 했는지
    망각보다 우리가 더 가능해질 때까지

 

 

 

 

 

 

 

 

 

 

배경음악

 

 

    sound off

 

 

 

                   to 심(心)

 

                               정(情)

 

                        천

 

                                        사

 

          의

 

                                        활

 

                        동

 

              dear 심장

 

 

 

 

 

 

 

 

 

 

버려질 나는 아름답다

 

 

    핏줄들도 버리려고 할 때
    비극의 끝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아서 센티멘탈
    누구에 의해서든 버려질 나는 아름답다
    아닌 건 아니고 누추하지만
    살면서 어떤 바닥이 제대로 절정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
    몇 번이나 응원이 더 필요한 계절을 지나올 때도
    오늘의 바닥에 닿지는 못했다
    여분(餘分)을 믿는 것처럼 주머니를 뒤집었다

 

    이르고 도달해 나를 다 즈려 밟고 지나가야할 길
    누구에 의해서든 압축되어 버려질 나는 아름답다
    사람을 위한 과일이라기보다는 새들을 위한 열매인 듯
    하늘 바로 밑에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노란 모과를 보았을 때
    주인인 줄 알고 살았던 나의 생(生)에
    객(客)으로 초대받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불러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또,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로부터 체온을 나눠받는 혹한이다

 

    다 쓰고 씌여지고 버려질 나는 아름답고
    버려진 후에도 그 후에도
    몸에 집중하던 사람이 정신을 처음 마주하는 낯선 순간처럼
    정신에 몰두하던 사람이 몸을 처음 이해하던 그 날처럼
    제2의 암흑기 이후에
    몇 겹의 어둠이 옴짝달싹 못하게 더 에워싼 후에 꽁꽁 묶인 후에
    가장 밝은 것으로 나를 반짝이다가 나는 아름다워질거야
    그리하여 이미 지나온 시인의 시에서
    모르던 시간을 읽으면 나는 곧 후회로부터 긴 회한(悔恨)의 울음이 되어

 

    버려질 나는 아름답다

 

 

 

 

 

 

 

 

 

 

되새김

 

 

    소화되지 않는 시간과 동선, 눈떠보면 이 무렵 눈 감으면 저 무렵 눈떠 보면 이쪽 또는 저쪽 어디쯤에서 떠밀리고 있다
    주어(主語)만 골라 지우는 연습을 하다가 그냥 빈집에 전화를 해봤어

 

    길들이 어려워진다 다시 이 도시의 도로표지판을 최대한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와 시간의 간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는 말은 같은 말이었을까

 

    먹을 수 있는 것은 흰 종이와 검은 글씨들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배고픈 계절의 열매 아래 오래 앉아있었다 그때마다 저지르고 싶던 과일의 사치는 이런 것이었을까 엄마를 만나러 갈 때는 터질듯 탐스러운 홍시를 가득 사고 싶고 참으로 물렁하다 홍시 목구멍으로 넘기기 부드러운데 홍시는

 

    유약(柔弱)한 사람에게는 더 말뿐인 사람들을 더 알아가고는 있는데
    아직도 읽을 수 없는 문패의 그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주어의 정서에 전염된 개와 놓여있고

 

    움직여야 움직이는 건데 누가 움직이라고 한다고 또 움직여지지는 않는 오래된 주어
    바위에 대해 생각하면 떠오르는 해골산이 하나 있고
    바위로 둘러싸인 그 언덕, 피가 흐르다 한 곳에 모이는 시간이 있었다했다
    골고다 골고다 곪다가 깊게 패이는 피부의 가장 아래쪽이라고 했다

 

    소화되지 않는 시간과 동선, 퉤, 피가 섞인 노란 위액 속에 자꾸 모르는 씨가 하나 버려진 것처럼 보이고
    핥아보다가 대부분 부탁의 혓바닥을 자르고 싶어지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의 육체노동을 지켜보는 일은 느슨해진 노란 기저귀 고무줄을 당기듯 긴장을 주는 시간의 되새김 같았으나
    삼켜야 삼키는 건데 누가 삼키라고 한다고 완전히 삼킬 수는 없이 되새기는 주어
    새의 울대에 대해 생각하는 주어는 슬픈 소리를 더 고요하게 되새겨 보려하고

 

 

 

 

 

 

 

 

 

 

맴도는 각오

 

 

       *
    섣불리 마음먹은 적은 없다 쉽게 작심하지는 않는다

 

    생각하는 일이 무서운 빙하기 같아서 개인적으로, 라는 전제를 도피처로 앞세우고 주관에 왕관을 씌워 상석(上席)에만 우두머리처럼 꼿꼿이 세워 앉히는 사람들, 마을 사람들에게 넘버 1을 공표(公表)하는 그 자신, 억지스럽다 참고하는 부록처럼 나는 강요하는 이웃 옆에서 맴맴, 맴도는 각오를 뉘앙스로만 흐느끼고 있었으나

 

       *
    A가 안되면 B도 가능하고 안 되면 아쉬운 대로 C를 상대해도 되는 너를 벼리는
    나의 각오는 영영 나와 무관하게 하는 것과 볼 수 없게 하는 것
    (시들고 그만 갈까했는데 또 시가 들고)

 

    늘 당신들은 먼 얘기들만 나누고
    하루 다음 끔찍한 하루가 코앞인데
    당신들은 서정적으로, 나는 비감(悲感)하게
    전원을 향해가는 당신들은 상투적으로 우아하고
    나는 누군가 버린 개와 현실적으로 12년을 살았다
    개와 느끼는 동거의 감각 변함없이 협동적이고

 

       *
    지구 반대편에 있다고해도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은 듯 맴도는 각오와 전환하는 표정으로 묻습니다 그 곳의 날씨는 어떤가요? 하루 다음의 하루가 내내 어떠냐는 질문이겠지요 알 수 없는 공기가 길들을 뿌옇게 가리고 먼 나라가 궁금해지는 아침입니다

 

       *
    쉽게 삼 일 만큼 작심하지는 않겠습니다
    (시들고 그만 갈까했는데 다시 시가 들고 연주하는 여름과 겨울 베짱이)

 

    똘똘 뭉쳐 각오하겠습니다
    곰팡이를 배우던 여름이 한 번 더 가면
    균의 침투에도 지지 않는 몸의 각오로 더 물리칠 수도 있을까요
    삶이 백지에 짓고 낳고 만들고 쌓고 있으니
    문 밖의 겨울로 홀딱 벗겨서 밀어내지는 않고
    성립시키겠지만 이루어지도록 이루어내겠지만

 

    각오가 크게 맴도는 것을 보니
    점점 벌어지는 더 큰일들이 오고 있나봅니다

 

 

 

 

 

 

 

 

 

 

아니다風으로

 

 

    생가해보면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입술, 눈썹,
    너도 내게 닿으면 아니다 교접(交接)으로도 주인이 아니고
    목이 없는 주어가 철심을 박고 쇳소리를 내던
    칠드런 허스키 보이스 밤이 새도록 차가운 공명
    도리도리 아이의 손은 내 손가락을 감아쥐고 있다
    죽은 자가 드러누운 유리관 한쪽 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예를 들면 그 아이는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뛰어오는
    순간으로 여겨지곤 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멍이 드는 것은 아니죠
    닿기까지 힘에 겨운 작은 평발을 갖고 있어요
    비가 오는 날에는 나가지지 않아요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대답했지요
    이불에게는 기대하지 않아요
    수긍하지 않으면 안녕이니까
    시큰둥하게,와 무기력하게,는 분명하게 구분해주세요
    나는 도리도리 아이를 지니고 있어요

 

    노란 장화를 신고 빗물 펌프장을 지나다 갑자기 비를 만난 것은 아니다 물을 부어버리는 순간
    내부를 갖지 않은 것은 밖이 아니다, 라고 낙서를 하고 말았다
    지금도 아픈 것은 아니다
    사랑의 전사들이 말놀이를 하다 한숨을 쉬다 담배 개수를 세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남자가 아니다 여자도 아니다
    씨앗에 눈물이 뿌려질 때
    건강한 소화기관이 아니다
    똥을 싸고도 반성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적을 모른 척 하고 시간이 달만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후에야 텅 빈 것은 안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나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나는 아직 모른다

 

 

 

 

 

 

 

 

 

 

합심(合心)

 

 

    있던 자리에 있던 것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 치우지 못하겠고 소외의 끝까지 혼자 걸어갔다고 착각할 때 새로운 소속감으로 둘러싸는 것들 고맙다
    호감을 갖고 교감을 시도할 때가 합심의 시작인가

 

    이 마음은 종일 이 생각이 지배하지 그러나 저 마음을 옮겨 적을 때 글자들이 더 빨라져 엉망이 되는 것은 저 마음에서 비롯된 생각을 데려오는 도중에 이 마음이 놓칠까봐 놓친 생각으로 마음들이 못 견디며 돌아눕고 못 잘까봐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는 나를 개인적으로 단속했는데

 

    먹이만 물어다 놓고 가는 바람난 어미새처럼 사방팔방으로 집중하지 못할 때는 무엇에 들떠 있을 때인가 어디에 달떠 있을 때인가

 

    두 마음을 합하여 이루어낸다는 것은 육체와는 멀고 정신과는 가까운 일인가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는

 

    첫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 때처럼 머리를 맞대고 신중하게

 

 

 

 

 

 

 

 

 

 

 

 

 

 

 

 

작가소개 /황혜경

1973년 인천 출생.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모호한 가방」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가 있음.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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