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아침 외 6편

[2014 아르코창작기금]

 

 

비 갠 아침

 

 

차영미

 

 

풀여치
한 마리

 

파르르
젖은 날개를 턴다.

 

비 갠
아침,

 

들판도
덩달아

 

푸드득
초록 날개를 편다.

 

 

 

 

 

 

 

 

 

 

가 시

 

 

“너 하고 안 놀아.”

 

혜진이에게
민정이에게
진옥이에게

 

내가 했던 말
오늘 낮
단짝 현주에게 듣기 전엔

 

정말 몰랐다.

 

그 말에
그렇게
크고 뾰족한 가시가 있다는 걸

 

 

 

 

 

 

 

 

 

 

할아버지 집 가는 길

 

 

할아버지 앞장 서 걸어가시면
누렁소 끔뻑끔뻑 따라가는 길
송아지 겅중겅중 쫒아가는 길

 

검둥개 졸랑졸랑 따라가는 길
산그늘 어둑어둑 내려앉는 길
굴뚝새 쯔빗쯔빗 날아가는 길

 

할머니 저만치서 기다리는 길
저녁별 함께 나와 서성이는 길.

 

 

 

 

 

 

 

 

 

 

매운 길

 

 

다리 아픈 우리 엄마
동네서 제일 큰
철규네 파밭에서 일합니다.

 

철규는
반에서 제멋대로인
내 짝지입니다.

 

엄마는 아침마다
똑같은 말을 합니다.
철규랑 잘 지내야 한다고.

 

오늘은 참다 참다
짝지랑 싸웠습니다.

 

넓은 파밭 멀찍이
돌아가는 길

 

알싸하게 코가 맵습니다.
뿌옇게 눈이 맵습니다.

 

 

 

 

 

 

 

 

 

 

길모퉁이

 

 

길모퉁이를 돌던 버스
휘청!
허리가 휘어진다.

 

저 모퉁이만 돌면
몸을 바로 세우고 버스는
다시 힘차게 달리겠지.

 

하지만, 재작년
큰아빠
돌아가실 때

 

휘청
허리 꺾이신 할머니는
지금껏 말문 닫고 계신다.

 

우리 할머니
아직도 길모퉁이
아프게 돌고 계시나 보다.

 

 

 

 

 

 

 

 

 

 

우리 동네 골목길

 

 

우리 동네 골목길은
꼬불꼬불 구불구불.
술래잡기 할 사람! 부르면
나지막한 지붕 아래 작은 창이
달캉, 달캉, 열리지.
낯익은 얼굴들이
쏙쏙 고개를 빼고
나갈게 기다려!
신나게 대답하지.
술래에게 잡힐까
조마조마한 우리를
꼬불꼬불 골목길은
대문 뒤로, 굴뚝 옆으로
꼭꼭, 숨겨주고
여긴 아무도 없어!
시침을 뚝 떼지.
구불구불 골목길은
왁자지껄 신이 나
깨꽃 같은 별들이 뜰 때까지
우리랑 놀지.

 

 

 

 

 

 

 

 

 

 

해님은 미안해서

 

 

가뭄 든 과수원 사과들
작년보다 씨알 잘다고
할머니 밤낮 걱정하시던 걸
들었나 보다

 

비님 대신
할머니 과수원에서
내내 뛰어 놀았던 해님은.

 

미안해서
달콤한 꿀
사과 속에
꼭 꼭 넣어뒀나 보다.

 

 

 

 

 

 

 

 

 

 

 

 

 

 

 

 

작가소개 /차영미

경남 밀양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1년 계간지 《아동문학평론》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동시집 『학교에 간 바람』, 『막대기는 생각했지』가 있음.
2013년 이주홍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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