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적인 사창가 외 6편

[2014 아르코창작기금]

 

 

금욕적인 사창가*

 

 

조동범

 

 

    당신은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버려진 콘돔과, 무감각한 당신의 마지막 자세가,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덧 오전 6시는 밝아오는가. 당신의 마지막 자세는 고개를 돌려, 남자가 빠져나간 자리의 텅 빈 허공을 감각한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곳에서, 휘파람은 오래전의 유적처럼 흐느끼고 있구나. 어느덧 오전 6시는 다가오고, 거룩하고 성스럽게 아침은, 여전한 어둠을 웅성거린다. 당신의 절정은 언제나 절제되어 있으며, 당신의 어제는 금욕적인 휴일 오전을 예비하며 무감각한 절망에 침묵할 뿐이다. 버려진 콘돔으로부터 당신의 마지막 자세는, 비릿한 절정의, 마지막 순간을 반추한다. 느리게 발기되는 성기처럼, 휴일 오전은 쉽게 도래하지 않는다. 정체된 고속도로마다 휴일 오전의 지리멸렬은 시작되고, 당신의 마지막 자세로부터, 열린 창문과 흔들리는 커튼은 이윽고 나른한 오전을 배회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금욕적인 휴일 오전이고, 당신의 마지막 자세는 금욕적인 모든 관계와 피크닉을 상상한다. 휴일 오전마다의 피크닉은 찬란한 하늘과 금욕적인 해안선의 한 끼 식사를 마련할 것이다. 신파처럼 한 모금의 담배는 피어오르는가. 당신의 마지막 자세만이 침대 위에서 고요히 울음을 터뜨리고 있구나. 그것은 아침상의 생선구이처럼, 혹은 미역국처럼, 그리고 흰쌀밥처럼 홀로 그곳에 남겨진다. 지리멸렬처럼 놓인 수건을 마지막으로 금욕적인 휴일 오전은 비롯될 것이다. 당신의 마지막 자세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금욕적인 휴일 오전을 위해 바쳐지고, 그것은 비릿한 콘돔이거나 생선구이, 혹은 미역국, 그리고 흰쌀밥.

 

 

    * 프랑스 사진작가 브라사이(Brassai)의 작품 <A Monastic Brothel>(1931).

 

 

 

 

 

 

 

 

 

 

 

어른 어른 그리고 어른

 

 

    당신이 나의 오랜 연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해변의 모텔에서 나는 당신의 어린 연인. 당신이 나의 심장을 어루만질 때 느닷없이 나의 가슴은 솟아오른다. 제단에 바쳐진 한 마리 양의 피가 초원에 뿌려지는 꿈을, 나는 꾼다. 먹구름은 고단한 음성을 내뱉으며 한숨처럼 몰려오고, 당신은 나의 성기를 만지며 쉽게 달아오른다.

 

    예언자는 어느 곳에 순결한 피를 바치는가. 당신과의 절정이 생각나, 나는 미칠 것만 같고,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의 모텔 침대에 누워 당신의 손을 잡는다. 채 자라지 못한 나의 음모와 무성한 당신의 음모가 만날 때 드라마는 시작된다. 주인공들의 사랑은 아름다우며 삼류들의 갈등은 정해진 결말을 향해 행복을 예고하는가.

 

    당신과 나는 드라마를 믿지 못한다. 예언자의 주술처럼 이끌리는 피의 전언도 물론 믿지 않는다. 휴일 오전의 해변 모텔에서 당신은, 그저 내게 미끄러져 들어오고 나는 오로지 담배를 피울 뿐이다. 한쪽 벽에 걸린 교복 치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피학의 절정을 감각한다. 가랑이진 곳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당신들은 나를 핥는다. 휴일 오전이고, 해변에는 자살한 연인들의 시신이 밀려오기도 한다.

 

    해변의 방풍림이 타오르면 검은 해로부터 어둠은 새어나온다. 교복을 입은 내가 해변 모텔의 현관을 나설 때, 당신은 내게 손을 흔들지 않는다. 기약할 수 없는 검은 해는 이제 천천히 어둠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타오르는 숲을 향해 나는 달려가고, 당신은 가랑이진 나로부터 어른 어른, 공명음처럼 텅 비고 유령처럼 사라진다.

 

 

 

 

 

 

 

 

 

 

에어포트

 

 

    활주로의 저편으로부터 비는 내린다. 당신은 문득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떠나온 고향의 한그루 베고니아를 반추한다. 시들어가는 베고니아를 떠올리며 당신은, 망명지의 정처 없는 특별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가 내리고, 어느덧 눈은 내린다. 환승터미널의 밤과 낮은 매뉴얼에 따라 안전하고, 시차에 익숙지 않은 환승객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망명지로부터 회신은 도래하지 않는다. 당신은 환승터미널의 벤치에 앉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입국할 수 없는 미래를 중얼거린다. 오래된 도시와 멸망한 부족의 폐허는 화물칸에 방치된 채 하역되지 않는다. 당신은 장전되지 않은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기로 한다. 비행을 마친 국적기들은 아름다운 남태평양과 적도 인근의 적란운을 떠올리며 평화롭다. 떠날 수 없다면 사라져야 한다고, 당신은 중얼거린다. 오래전에 배달된 신문을 펼치면, 사라진 신화와 전설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폐기되고 있었다. 안데스의 산맥들이 들려주는 기원전의 신화가 들리는 듯도 했지만, 환승터미널의 밤은 그저 외롭고 여전히 쓸쓸했다. 무수히 많은 좌표로부터 당신의 절망은 전송된다. 하지만 특별기는 도착하지 않으므로, 떠날 수 없다면 사라져야 한다고 당신은 중얼거린다. 당신은 문득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와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을 향해 구름은 흘러갈 것이다. 일기예보는 적중하지 않고, 국경선 너머에서 반정부군의 시신은 타오른다. 살아남은 당신은 문득 매트릭스의 전화기를 떠올린다. 활주로 너머로 밤은 찾아오고, 당신의 환승터미널은 끝도 없이 폐쇄된다. 당신은 연어샐러드가 제공되는 기내식을 주문하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당신은, 장전되지 않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기로 한다. 착륙에 실패한 국적기는 이윽고 밤의 폐허가 되고, 망명지로부터 특별기는 날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은 끝이 났는가.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시베리아로 날아가지 못한 철새는 피뢰침에 매달려 번개를 기다리고 있다. 지상에는 여전히 착륙에 실패한 여객기가 참혹하고, 망명지를 떠난 특별기의 폭파 소식은 그러나, 당신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 김광균의 「추일서정」을 변주.

 

 

 

 

 

 

 

 

 

 

리허설

 

 

    그것은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까. 그리하여 그것은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거나 아침이 오기 직전의 제의처럼 펼쳐집니까. 해변에는 이별하는 연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파도는 해안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며 무너집니까. 그리하여 바람이 불어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중해의 낭만은 아닐 것입니다. 연인들은 키스를 하며 혀와 혀가 맞닿는 순간의 절정을 애써 잊으려 합니다. 세상의 모든 신파는 이별하는 연인들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이윽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것은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까.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태양은 침몰하고, 오늘을 예비하는 무수한 연인들이 어제의 어제와 그리고 끝날 수 없는 어제로부터 끊임없이 오늘에 당도합니까. 증기기관차는 폭설의 해변을 지나 다음 역을 향해 달려갑니다. 레일은 폭설에 경악하며 끊임없이 폐기되고, 증기기관의 두근거리는 기적은 벼랑 끝을 향해 가는 피스톤의 철제 바퀴로부터 간결한 두 줄기 획을 기억합니다.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온 편지는 아직도 우편함에 있습니까. 아니면 개와 늑대의 해변을 당신은 아직도 서성입니까. 기차는 연착을 거듭하며 폭설의 해변에 끊임없이 당도합니다. 기차의 종착역은 알 수 없다고 개와 늑대의 해변은 침몰과 융기를 거듭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중얼거립니까. 증기기관차의 화부는 달력을 뜯어, 뜨겁게 타오르는 증기기관의 불씨를 한 장 한 장 복기합니다. 1월 1일의 뜨거움으로부터 12월 31일의 뜨거움에 이를 때까지, 화부의 눈물은 마를 줄 모릅니까. 이 모든 것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므로, 이별하는 연인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이거나 혹은 또 다른 당신이거나, 끊임없이 폐기되고 생성되는 과거와, 그리하여 미래입니까. 철길을 따라가면 침몰을 거듭하는 태양은 발굴됩니까. 아니면 오래 전에 죽은 자들의 육체는 생생하게 발기합니까. 철길의 끝으로부터 해변 호텔의 간판은 불을 밝히고, 관계하는 모든 연인들은 사산된 아이들을 끝도 없이 사정합니다. 그것은 모든 기원입니까.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모든 기원은 비롯됩니까. 기원은 아주 먼 곳에 있느냐고 당신은 화부에게 질문을 던져보지만, 화부는 타오르는 달력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갈 뿐입니다. 연인들의 이별은 끝이 없습니까. 아니면 다음 역을 향하는 증기기관과 사산된 아이들을 사정하는 밤이 끝이 없습니까. 그리하여 화부의 달력은 타오르고, 12월 31일로부터 1월 1일의 모든 최초는 타오르고, 혹은 사라집니까.

 

 

 

 

 

 

 

 

 

 

렌트

 

 

    차창으로 바람은 물렁하게 저녁을 속삭인다. 지평선 너머로 모래바람은 불어오고, 렌트, 당신은 속도를 높여 죽은자들의 지평선 너머를 상상하며 절망에 빠진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흑인 영가의 음역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것은 알 수 없다고 렌트, 당신은 천천히 읊조린다.

 

    렌트, 쿵쾅거리는 엔진은 육기통이다. 여섯 개의 피스톤은 단 하나의 속도가 되어 이곳을 떠나려 한다. 죽은자는 어느새 무덤을 나와 붉은 사막과 붉은 언덕이 있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가. 도로의 끝에 과연 끝은 있는가.

 

    일기장은 타오르며, 저녁 어스름을 들려주던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진다. ‘누구의 것도 아닌 이번 생이여’라고, 라디오의 늙은 가수는 노래하며 흐느낀다. 렌트, 길의 저편에는 오래 전에 죽은 동물의 냄새가 피어오르는구나. 불길한 무덤처럼 부풀어오르는

 

    한줌 태양을 향해, 단 한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생을 향해 렌트, 당신의 속도는 사라지는구나. 핸들을 잡은 나의 손은 렌트, 당신의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 채 길의 끝을 그저 가늠해볼 뿐이구나. 내 것이 아닌 별빛을 바라보며 렌트,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육기통의 엔진처럼 두근거린다. 어디선가 붉은사막의 밤을 서성이던 여우의 울음소리가, 언제나 허상인 렌트, 당신의 비밀을 속삭인 듯도 하였다. 그리하여 렌트. 쿵쾅거리는 엔진은 육기통이고 그것은 영원토록, 당신과 나의 심박이 되지 못하는구나. 렌트

 

 

 

 

 

 

 

 

 

 

캐리어

 

 

    캐리어를 펼치면 이윽고 시차는 흘러나온다. 여분의 바지와 셔츠 몇 벌. 먼곳을 걸었던 발자국도 터덜터덜 헐렁하게 걸어나오고, 이국의 향초는 시차를 태우며 과거나 미래, 혹은 호명할 수 없는 것들을 홀연히 회고한다. 당신은 그림엽서를 정리하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믿을 수 없다고 중얼거린다.

 

    캐리어를 펼치다 말고 당신은, 바다가 물러선 서해의 해안선과 파국에 이른 일몰의 새떼를 떠올리기로 한다. 갯벌을 드러낸 바다처럼, 마주할 수 없는 시차는 사라지는가. 서해안은 믿을 수 없다고, 당신은 창백한 일몰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캐리어의 깨진 모서리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흘러나온다. 상하이발 비행기를 타고 당신은 멀지 않은 미래에 당도한 것이다.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당신은 믿는다. 지나간 사랑도 잊기로 당신은, 결심한다. 정주할 수 없는 시간으로부터 시차는 흘러나오는가.

 

    캐리어에 남은 모래의 알갱이로부터 지난밤의 폭풍은 회고되는가. 당신은 세탁기에 넣은 바지와 셔츠 몇 벌. 그것의 주머니로부터 쏟아지는 슬픔. 서해안에 두고온 패총 따위를 상상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거대한 조개무덤은 발견되는가. 당신은 문득 외로워지기로 결심한다.

 

    캐리어를 닫으면 어느덧 시차는 사라지고 마는가. 다리 밑에 던진 약혼반지처럼 모든 것은 종료되는가. 당신은 캐리어를 닫지 못하고 한참을 흐느끼지만, 구름은 어느 곳으로도 흘러가지 못한다. 상하이행 비행기가 폭파되는 악몽만이 지루하게 반복되며, 당신의 시차는 영원토록 그곳에서 사라지고, 잊히고, 통곡을 거듭할 뿐이다.

 

 

 

 

 

 

 

 

 

 

철의 역사

 

 

    그리하여 철의 역사는 시작된다.
   두근거리는 망치질과 뜨거운 풀무질이 시작되는 오전으로부터 그것은 시작되고, 자작나무숲과 버려진 동굴을 지나치는 철도와 증기기관의 무쇠는, 그 어떤 애초를 향해 질주를 거듭한다. 철도의 끝이 잊을 수 없는 미지로 끓어오르면, 대장장이의 상반신은 붉게 타오르고, 그리하여 철의 역사는 마침내 전설을 완성하는구나. 기차역을 바라보며, 대장장이의 망치는 쉼없이 쿵쾅거린다. 대륙의 끝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기차의 기적(汽笛)은 무쇠처럼 달고 차갑구나. 대장장이의 상반신이 온 힘을 다해 쟁기나 호미 따위를 어루만지면, 철의 역사는 시작되는구나. 뜨거움과 한 몸이 되는 증기기관의 화부를 떠올리면, 누군가는 투신을 상상하며 슬픔을 시작한다. 그렇게 철의 역사와 속삭임은 시작되는가. 그러나 단단한 첨탑 위로 철의 역사가 무너질 때, 뜨거움은 차갑고 단단한 선로의 목적지를 애써 상기하지 못한다. 그것은 물러설 수 없는 세계대전의 등고선과, 전사한 군인들의 버려진 유해처럼 쉽게 잊히고 사라진다. 차갑게 식은 대장장이의 도시락 뚜껑을 열면 죽어버린 새들의 날개와 부리는 흘러나온다. 그리하여 대장장이의 망치질과 담금질은 하나의 군(群)을 이루며 증기기관의 숨가쁜 여정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철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는구나. 쟁기와 호미를 다루는 미지의 농부를 떠올리며 대장장이가 풀무질을 할 때. 증기기관차의 화부가 철도의 끝을 예감하지 못할 때. 뜨거움은 영원히 타오르지 못하며 끝없이 쿵쾅거린다. 대장장이의 망치질과 증기기관차의 화부는 철의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가. 두근거리는 망치질과 담금질, 혹은 기차의 기적은 무쇠처럼 달고 차갑구나. 그리하여 철의 역사는, 두근거리는 그 모든 몰락을 향해 사라지고 마는구나.

 

 

 

 

 

 

 

 

 

 

 

 

 

 

 

 

작가소개 /조동범

1970년 경기도 안양 출생.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가 있으며, 산문집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평론집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등이 있음.
딩아돌하작품상, 미네르바작품상, 김춘수시문학상을 수상함.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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