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2014 아르코창작기금 장편소설]

 

 

날짜 없음

 

 

장은진

 

 

    179. 그게 온다고 한다.

 

    178. 붉은 우산을 펼쳤다.
우산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날씨는, 오랫동안 신고 벗어 놓은 더러운 양말 같았다. 어떻게 보면 오물이나 흙탕물 속을 데굴데굴 구른 양떼 같기도 했다. 이상기후로 일 년째 우중충한 하늘에서는 멈추지 않고 회색눈이 쏟아졌고, 그것은 순식간에 모든 걸 훔쳐갔다. 빛깔, 소음, 형태, 말, 방향, 표정, 냄새, 분주함. 그리고 성가시게 군다고 투덜댔던 도시의 무수한 현상들까지도. 온통 회색이라 어느 쪽이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땅인지, 섞어놓은 듯 경계는 모호하기만 했다. 그 애매함이 얼마나 심각하던지 몰래 뒤집어 놓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은 회색빛에 뒤덮인 도시를 ‘회색시市’라 명명했고, 서로서로는 ‘회색인人’이라 부르기에 이르렀다. 잿빛 세계는 얼핏 보면 넘겨도 넘겨도 비슷한 시어로 채워진 실력 없는 시인이 쓴 첫 시집 같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낡고 오래된 흑백 무성영화 같은 모습을 한 채 지루하게 앉아 있었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하품이 나왔다.

 

    177. 하늘에 시커먼 양말과 양떼들이 생겨나면서부터 지구의 체온은 매일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꽁꽁 얼어붙어서 그것은 자전하고 공전하는 것마저 멈춘 듯했다. 그래서 겨울이 아닌데도 겨울이 계속됐고, 밤이 아님에도 밤이 줄곧 이어졌다. 온도장치가 고장난 기계처럼 눈이 녹아야 하는 계절이 왔음에도 눈이 자꾸 쌓였다. 컬러 사진 같은 화려한 봄꽃 대신 흑백 사진 같은 축축한 회색눈만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졌다. 누가 봐도 그것은 심심한 색맹의 세계여서, 사람들은 회색 눈으로 저마다의 도시를 맨송하게 관찰해야만 했다.

 

    176. 물론, 폭설로 홍설洪雪이 진 후 도시는 더 이상 도시라 이름할 수도 없게 되었다. 도로에서 차는 사라졌고, 수도관은 얼어버렸으며 전기와 통신은 걸핏하면 두절되기 일쑤였다. 신경이 마비된 도시는 유능한 기능들을 하나씩 잃거나 빼앗겼다. 도시는 한때 재밌게 잘 갖고 놀다가 시시해졌다며 미련 없이 내다 버린 거대한 완구와 다를 바 없었다. 사람들은 예외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조차 잊었다. 해와 달, 별, 노을처럼 자연으로 통칭되던 것들을 못 본지 오래된 사람들은 옆사람에게 짜증난 목소리로 자신의 우울한 심정을 호소했다. 도시는 안식일을 지키는 허름한 유대인 마을처럼, 문명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멈추거나 닫히거나 거부되었다.

 

    175. 그제야 사람들은 태양이 자유자재로 그려주던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그림자가 점점 얕아지다 완전히 사라지는 걸 목격해야만 했다. 그것은 실로, 공포스런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매일 한 겹씩 그림자의 포를 떠간다고 느꼈고, 어떤 이는 하얀색 물감을 풀어 묽게 희석시킨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림자가 거의 없어졌을 즈음에는 어둠으로 검게 무장한 도시 사자使者가 발 밑에 가위를 집어넣어 싹둑 오려간 거라고 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눈 쌓이는 소리 사이로 바닥에 눌러 붙은 그림자를 뜯어내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회색눈 때문에 축축하게 젖어 무거워진 그림자들이 어디 커다란 공장에 종이나 옷처럼 차곡차곡 접혀 있거나 곱게 걸려 있을 거라고도 상상했다. 공장은 그림자를 훼손하려는 게 아니라 바짝 말려 언젠가 도시가 회복되면 돌려 줄 생각이라고. 하지만 그건 순전히 순진한 상상일 뿐이었다.

 

   174. 비슷해진 낮과 밤의 농도로 그림자를 도둑맞은 후 사람들의 얼굴은 저마다 해골바가지가 되어갔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해골의 윤곽을 창백하고, 메마르고, 투명해진 피부 뒤로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윤곽이 분명해질수록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인상이 되어갔다.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즈음 차이를 발견해 구별하고 차별한다는 건 성가신 일이 되어 있었다. 그 해골은 죽은 후에도 남는 것이니, 사람이란 결국 해골로 태어나 해골이랑 살다 해골을 간직하며 죽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얇고 불안한 표피를 덧입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173. 발을 내딛자 무릎아래까지 올라온 낡은 가죽부츠가 뽀드득 소리를 내며 단숨에 회색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살을 깨무는 추위 때문에 걸음 걸음은 고행이었다. 제 시간에 도착하려면 보폭을 빨리해야 했으므로 나는 회색인이 앞서 남겨놓고 간 발자국에 내 발을 살짝 얹어봤다. 압축된 발자국을 따라가니 걷기가 훨씬 수월했고, 속도도 제법 좋아졌다. 그는 회색인이 남기고 간 거라면 발자국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경고했었다. 발자국을 따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회색인 무리에 섞여 들 수 있어서였다. 내가 그런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하마터면,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하마터면, 내가 그를 잃을 뻔했었던 것이다.

 

    172. 내가 서 있는 도로 반대편에는 오늘도 해골을 드러낸 회색인들이 숭고한 순례자처럼 어둠 속을 무리 지어 걷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르다면 발걸음이 눈에 띄게 분주해졌다는 것이었다. 행렬은 앞뒤로 끝이 안 보일 만큼, 꼬리에 꼬리를 물듯 길쭉하게 이어져 있었다. 도시에서 그것의 시작이 어디고 끝나는 지점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행렬이 시작된 건 세 달 전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할 것 없이 행렬이 멈추거나 끊긴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집과 생활도구를 버리고 직장을 관둔 채 간단한 옷가지와 음식물만 챙겨들고 회색시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것은 불길한 어둠처럼 실체 없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기나긴 피난 행렬이었다. 때문에 건물은 텅 비어갔고, 사람들의 위장은 허기졌다. 개중에는 눈폭풍과 추위로부터 몸뚱이를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담요로 머리끝까지 칭칭 휘두른 회색인들도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불가능한 욕망을 거세해버린 수도사 같기도 했고, 행렬에 동참하기 위해 깊은 무덤 속에서 방금 깨어난 망자들 같기도 했다.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뼈만 남은 자리를 헝겊으로 둘러 감추고 행렬로 끼여든 부패한 시체들 말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시체와 산 사람을 구별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한곳을 향해 고집스럽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 바라봤다. 하나하나의 그들은 거대한 회색 눈송이였고, 어느 누구의 걸음걸이도 튼튼하지 않았다. 하지만 온 세계가 눈 깊숙이 파묻힌 가운데 회색인들이 무수히 지나가고 또 지나간 길바닥만은 납작하게 짓눌려 튼튼했다. 단단하고 평평해서 그 길만은 왠지 내게도 평온하고 평안해 보였다. 나처럼 그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평온과 평안일 거라 확신한 사람들은 회색 행렬을 홀린 듯 따라나섰다.

 

    171.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회색인이 되어 도시를 벗어났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도 보름 전 짐을 챙겨 행렬을 따라갔다. 결국 회색인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들은 같이 가겠느냐고 홀쭉해진 볼을 하고 물었지만 나는 이곳에 남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이틀 간 설득하던 그들은 결국 내 의견을 받아들여줬고, 나 또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자 최후의 행동이었다.
    그들은 대신 도착하면 내게 편지를 쓰겠노라 약속했다. 보나마나 그 편지는 의심말고 행렬을 따라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곧장 오라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편지가 집으로 무사히 배달될 일은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회색시에는 소식을 전해줄 우체부가 없었다. 대부분의 우체부들 또한 직장을 관두고 회색 행렬을 따라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배달부뿐만 아니라 눈에 덮여 주소도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다른 것들도 점점 없어지거나 지워져갔다. 편지를 배달해줄 사람이 없어서인지, 주소를 찾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아직 그곳에 도착을 못한 것인지 이주일이 지났는데도 가족으로부터 온 편지는 없었다. 내 짐작대로.

 

    170. 나는 더 이상 편지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도 회색인이 되어버린 사람의 편지라면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회색시에 닥친 추위보다 더 춥고 냉정하게 말했다. 게다가 오늘은 사람들과 세계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그게 온다고 한 날이었다.

 

    169. 나는 다시 붉은 우산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날씨는, 아까보다 훨씬 더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속수무책일 정도로 굉장히 빠른 속도 변화였다. 구름은 소멸할 줄 모르고 무한 번식과 증식만을 거듭했다. 그래서 구름은 달과 별, 해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낮고 두껍게 깔린 구름은 팔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듯했고, 뒤꿈치를 조금만 들어올려도 손이 푹 담가질 것 같았다. 어둠의 농도는 아침이 아니라 오밤중이라 우겨도 깜빡 속을 정도로 짙어서 사람들은 시간 감각을 조금씩 잃어갔다. 그렇다면 저 구름의 두께는 어느 정도란 것일까. 인류가 평생동안 신어온 양말을 벗어서 걸어둔다면 가능할까. 아니 사람들은 죽으면 유품으로 더러운 양말만을 남겨두고 떠났던 것일까. 나중에는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하늘이 얼룩덜룩해지는 건지, 하늘이 얼룩덜룩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168. 그때였다. 나도 모르게 귀신에 홀린 듯 우산을 바닥에 끄집은 채 도로를 건너 회색 무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흡수되는 것인가. 나는 이 모든 것이 순전히 늘어진 양말과 양떼 모양의 구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땟국 흐르는 구름이 어두워서 압축된 길을 걷고 싶어진 것이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때묻은 눈밭의 방해를 받지 않고 평온하고 평안하게 걸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무릎을 허리보다 높이 들어올리지 않고 바닥을 딛어 본 지가 언젠지 기억이 가물 했다. 잠시 함께 걷다 무리에서 자유 의지로 이탈해 다시 내 갈 길을 가면 된다고, 가뿐해진 발걸음만큼이나 가벼이 생각하며 조금씩 걸어나갔다.

 

    167. 생경하지만 바닥은 튼튼하고 미끄러웠다. 미끈거려서 굳이 발을 바닥에서 떼지 않고도 쉽게 걸을 수 있었다. 쉬워서 자꾸 가고 또 가게 되었다.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계속 미끄러지듯 걷다보니 나중에는 제법 능숙한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가다 보니 이대로라면 엄마 아빠도 곧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여동생을 만나면 편지 발신 여부와 매미 울음소리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회색인들의 주장대로, 이곳이야말로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66. 문득 든 생각이 얼음성처럼 허무하게 부서진 건 바닥의 미끄러움 때문이었다. 압축된 땅은 강철보다 딱딱한 상태여서 무척 아팠다. 넘어지는 순간 옆사람의 팔을 붙잡았는지 나로 인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앞뒤로 도미노처럼 다각다각 순차적으로 쓰러졌다. 장작처럼 말라 있는 데다 힘이 없어서 더 쉽게 넘어간 것 같았다.
    “행렬을 따라가선 안 돼!”
    쓰러진 순간 그의 목소리가 찬물처럼 들려왔다. 말이 사라지고 나서는 사람들이 나에게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는 행렬의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내 허벅지와 머리를 아이젠을 신은 발로 인정 사정없이 걷어찼다. 보행 보조장치인 등산 스틱이나 스키 폴, 혹은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지팡이로 때리기도 했다. 이마가 찢기고 피가 났다. 붉은 우산은 처참하게 망가져 더 이상 못쓰게 돼버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더 있다가는 밟혀 죽을 것만 같아 무리에서 짐승처럼 기어나와 도로를 건너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상상만큼 그곳에 평온과 평안은 없었다. 나는 회색인에게 또다시 홀릴까 두려워 앞만 보고 죽도록 뛰었다. 우산이 없어서 무겁고 칙칙한 회색눈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지만 춥다거나 불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에 발이 걸려 몇 번인가 넘어졌지만 푹신한 눈밭이라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넘어졌다고 욕하는 사람도 때리는 사람도 없었다. 조용했다. 나 뿐이라 이쪽은 잠잠했다.

 

    165. 하지만 조용과 잠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눈밭으로 꼬꾸라졌을 때 오 미터 앞쯤에서 무언가가 퍽,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인데도 어두워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제 무게를 못 이기고 승복한 눈덩이인가. 그러길 바라며 나는 차디찬 눈밭을 짚고 일어나 소리가 난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럴 리가.
    젊은 부부인지 연인인지 알 수 없는 남녀가 눈밭에 피를 흘리며 비통한 자세로 너부러져 있었다. 눈을 헤치고 목에 손을 갖다 대보니 이미 두 사람 다 즉사한 상태였다. 해골만 남은 몸뚱이에서 나올 피가 어딨다고 그것은 팥빙수 위에 뿌려먹는 달달한 딸기시럽처럼 회색눈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회색 눈 위로 조용히 퍼지는 그것은 자극적일 만큼 선명했다. 흑백영화 속에서 느닷없이 빨간 드레스나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가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눈이 빨간색이었다면 피 따위는 눈에 띄지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피를 적나라하게, 길을 걷다 불쑥불쑥 접하게 되는 사람들 중에는 일 년 전에 내린 빨간눈이 차라리 그립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때는 아무도 눈 위로 떨어져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감히 죽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때의 빨간눈이 우리에게는 불길하고도 끔찍한 피 자체일 뿐이었다. 당시만 해도 죽음은, 다른 방식으로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따로이 존재하는 현상이었다.
    남녀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손을 잡고 동시에 뛰어내린 것 같았다. 꽉 잡고 있던 손은 바닥에 닿는 순간 충격을 받고 풀어졌는지 제멋대로 사방으로 꺾여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졌다. 부러지고 비틀린 팔들을 수습해 이어주는 건 내게 쉬운 일이었다.

 

    164. 그보다 회색시에서 시체를 만나는 건 더 이상 끔찍한 일도 특별한 사건도 아니었다. 레지던트 의사였던 내겐 더욱 흔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진짜 두려운 건 사람을 등 떠밀게 만드는, 불안이라는 투명한 손이었다. 무형의 그것은 사람들을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초조한 기다림에 지쳐 자기가 자기 몸을 파괴하도록 유인하고 유도했다. 끝보다 먼저 끝장나도록 홍시처럼 물러진 심장을 조종하거나 스스로 목을 조르라고 명령했다. 심약한 사람들은 악마의 명령에 착실하게 복종했고 그것은 지긋지긋한 회색눈을 쳐다보며 사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다. 종종 바닥에 쌓인 회색눈이 완충작용을 해줘서 죽기 위해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렸음에도 목숨을 건지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다시 살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도하기 보다 더욱더 극심해진 고통과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야만 했다. 저주처럼, 어떤 사람에게 회색눈은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163. 저주를 피해 원하는 것을 얻어낸 그들의 불행은 이제 끝났다. 나는 달리다 말고 잠시 뒤돌아 손을 잡고 누워 있는 연인을 쳐다봤다. 그들이 벗어놓고 간 두 켤레의 양말과 푸른 목장에서 기르던 두 마리의 양이 지금쯤 하늘 어딘가에 걸려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무섭거나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둘이었기에. 손을 잡고 있었고, 한날한시였기에.
    회색눈은 금세 시신의 존재를 지우고 있었다. 몇 분 뒤면 아무도 저 자리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회색시에는 많은 시신이 눈 속에 그대로 파묻혀 있었다. 부패하지 않아 시취도 나지 않았다. 설사 난다해도 냄새마저 눈이 덮어버렸다. 그렇게 회색눈은 아름다운 건 물론이고 추한 것도 동시에 없애고 가려버렸다. 혹독한 겨울이라 좋은 건 그거 하나였다.

 

    162. 나는 그들을 빌딩 옥상에서 떠민 형체 없는 손바닥이 내 등을 만지러 쫓아올까봐,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될까봐 눈밭을 가르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퍽퍽, 하고 뒤에서 또다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두 번이나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그대로 얼음기둥이 되어 다시는 앞으로 달려나갈 수 없을 것이기에. 그러면 영원히 그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뒤에 남은 사람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회색눈이 알아서, 조용하고 말끔히 장례를 치러 줄 것이다. 그건 회색시에서 회색눈이 유일하게 잘 하고 있는 짓이었다. 대견하다고 칭찬 받을 만한 일이었다.

 

   161. 그게 온다고 한다.
   그 말이 정말 현실로 닥쳐올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간곡히 그 말을 의심하고 싶어졌다. 아니,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어떤 악마의 얼굴을 하고 올까. 전쟁처럼 올까, 전염병처럼 올까. 혹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로 이미 우리 곁에 앉아 있었던 건 아닐까.

 

    160. 삼십여 분을 앞만 보고 달린 끝에 저기, 기차 한 량을 닮은 길쭉한 컨테이너박스가 혼미하게 보였다. 너무 추운데다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컨테이너박스는 끊겨버린 철도 위에 오도가도 못한 채 서 있는 기차처럼 멈춰 있었다. 나는 가죽장갑 낀 손으로 양 눈을 번갈아 가며 세게 비볐다. 입구로 들어서는 십 미터 부근부터 회색눈이 가르마처럼 양쪽으로 빗겨져 있는 게 보였고, 조그맣게 뚫린 창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군고구마 속살을 닮은 샛노란 전깃불이 가녀리지만 분명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꿈이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진짜 군고구마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위해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거친 숨을 고르며 평평한 아스팔트를 안내 받듯 뚜벅뚜벅 걸어 컨테이너박스 문을 열고 들어갔다.

 

    159. 그러나 안에는 약한 훈기만 떠돌 뿐 그와 반半은 없었다. 만져보니 난로 속 장작불이 꺼진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군고구마도 있을 리 만무했다. 잘 견디다 그도 결국 발자국에 홀리고 만 것이다. 하마터면 따라갈 뻔한 적이 있었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진짜로 따라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눈 속으로 혹은 눈 너머로 사라져갔다. 현실을 깨닫고 나자 갑자기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게 온다는 데 괴물의 얼굴을 혼자서 마주할 수 있을까. 나는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내 손바닥에 자낙스 세 알을 쏟은 뒤 물도 없이 입으로 털어 넣었다. 하필 그때 백열등이 깜빡이다 나가버렸고, 세찬 바람이 창문을 크게 한번 꼬집으며 지나갔다. 나는 한꺼번에 닥쳐온 여러 가닥의 이 불행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막막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물에 젖은 차디찬 이불처럼 어깨를 덮쳤다. 혼자가 돼버린 나를 폭압적으로.

 

    158. 난로의 잔기와 과다복용한 약에 취해 나도 모른 사이 웅크린 채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깨어보니 몸에 축축하게 붙어 있던 회색눈은 어느새 말라 있었다. 잠에 빠진 동안 정전이 끝났는지 백열등은 다시 둥그런 빛을 견고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마침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왔다. 너무 추워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그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고 말았지만 행렬에서 낙오되어 먹을 걸 찾아 들어온 회색인이란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침입자인 것이다. 나는 조금 뒤로 물러앉았다. 무리에서 낙오되거나 이탈한 회색인은 무례하고 위험하고 난폭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꼭 회색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점점 야만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을 만한 걸 찾아 주변을 재빠르게 살폈다. 책상 위 대나무통에 가죽을 재단할 때 쓰는 갖가지 칼과 가위들이 뾰족하게 꽂혀 있었다.

 

    157. 칼을 향해 달려들려는데 나보다 먼저, 그리고 한층 잽싸게 묵직한 것이 덤벼들어 나를 제압했다. 허기진 나는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무참히 뒤로 무너졌고, 회색인의 말라비틀어진 혀가 내 목덜미와 얼굴을 마구잡이로 빨아댔다. 불쾌하고 불결했다. 그보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색인도 허기진 상태인지 내 살점을 뜯어먹을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팔뚝으로 얼굴과 가슴을 지키며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발버둥쳤다. 협박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갑자기 숨막힐 정도의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눈을 뜨고 회색인을 잡아죽일 듯 한 눈초리로 노려봤다.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쳤고, 마주친 그 눈이 양옆으로 가늘게 늘어지더니 말했다.
    “걱정 하나는 줄었군.”

 

    156.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회색인이 점퍼에 연결된 모자를 벗었고, 목에 칭칭 휘두르고 있던 긴 목도리도 풀어헤쳤다. 모자와 목도리에 차곡차곡 겹쳐 있던 회색눈이 바닥으로 뭉텅 떨어져 사라졌다. 눈썹을 찌푸리고 똑바로 쳐다보니 회색인은 회색인이 아니라 행렬을 따라갔다고 속단했던 그였다. 그와 반이었다. 반은 내 옆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반갑다는 듯 제딴에는 최선을 다해 꼬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반이 한차례 몸을 부르르 털자 소름 돋으리 만치 차가운 물기가 내 얼굴로 날아왔다.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나는 반의 목덜미를 재빨리 끌어안았다. 그러자 반이 허락 받았다는 듯 내 얼굴을 다시 아무렇게나 핥기 시작했다. 얼굴은 끈적끈적한 침으로 범벅이 됐고, 아이스크림이 혀에 감기듯 얼굴은 금방 따뜻해졌다.

 

    155. “아침부터 어디를 갔나 온 거예요?”
    나는 반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퉁명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땔감이랑 먹을 것 좀 구하러.”
    “반은 두고 가도 됐었잖아요.”
    “외출하고 싶다고 보채서.”
    “밖은 춥고 위험해요. 게다가 몸도 안 좋은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나는 주검처럼 침묵했다.
    “힘들 텐데도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제법 잘 걷더라고. 저 녀석 원래, 눈 좋아하잖아.”
    내 얼굴을 핥을 때와 달리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반을 그가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것은 나를 반하게 만들었던 그때의 그 눈빛이었다.

 

    154. 내가 젖은 반의 털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사이 그는 난로를 살폈다. 그가 난로 속으로 땔감을 넣은 뒤 미국 유명작가의 소설을 찢어 불쏘시개로 썼다. 걸작이라 그런가 불쏘시개 불은 장작으로 금방 옮겨 붙었다. 그러고는 배낭에서 고구마를 꺼내 은박지에 한 알씩 쌌다. 손놀림은 그답게 차분하고 꼼꼼했다. 꼬깃꼬깃하고 탁한 은박지는 전에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들이었다.
    “나 고구마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좋아하잖아.”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서요?”
    내 말에 그는 죽음처럼 침묵했다. 그러나 그 또한 대답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디서 구했어요?”
    “사거리 마트 창고를 뒤졌더니 간신히 몇 개 나왔어.”
    “이번에도 그냥 가져왔어요?”
    “본의 아니게. 돈을 주고 싶었는데 받아주는 계산원이 없더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계산원도 없지만 줄 돈도 없었다는 것을.
    “나도 집에서 나오는 길에 슈퍼 털었는데.”
    “정말?”
    “평소 소비자가격 그대로 받아서 얄미웠었거든요. 외상도 안 해주는 데다 불친절하고.”
    나는 그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그와 똑같은 짓을 방금 하고 왔다는 투로 말했다. 실은 악착같이 ‘생활’과 ‘생계’를 지켜내려 노력 중인 집 앞 구멍가게에서 소비자가격 그대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와 놓고는. 그것도 물물교환으로 회귀한 시대에.
    “뭘 가져왔어?”
    “그냥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몽땅 쓸어왔어요. 한번 볼래요?”
    배낭을 열어 가져온 물건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려는데 그가 아니, 라고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는 다른 궁금한 걸 천천히 끊어서 물어왔다.
    “부탁한 건, 구해, 왔어?”
    그가 일부러 나를 보지 않고 묻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를 쳐다보지 않고 질문에 고개만 가만히 끄덕였다.

 

    153. 컨테이너박스 안이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사방의 철벽들이 녹고 있다는 뜻이었다. 반은 오랜만의 외출이 고단했는지 두꺼운 밍크 담요 위에 배를 깔고 잠이 들었다.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표정은 그런 대로 평온해 보였다.
    “오는 길에 죽은 사람들을 봤어요.”
    고요하게 잠든 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내가 말했다.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반의 예민한 귀가 한번씩 솟구치다, 꺼졌다. 우리가 하는 얘기를 자면서도 엿듣는 모양이었다.
    “흔한 일이잖아.”
    그가 은박지 입힌 고구마를 난로 속으로 하나씩 집어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답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었다.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고, 살아가려면 환경에 맞게 달라지고 적응해야 했다. 잔인하면 잔인하게. 아니, 그는 변한 게 아니라 그저 수긍하려 노력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바로 눈앞에서 떨어져 죽는 걸 처음으로 목격했어요.”
    “그랬군.”
    “연인 같았어요.”
    “무서웠어?”
    “네.”
    “넌 의사잖아.”
    “시체가 무서웠다는 게 아니에요.”
    “그럼?”
    “나도 똑같은 결단을 내리게 될까봐요.”
    “그럴 땐 가장 좋아하는 걸 생각해.”
    “뭘요?”
    “옆에 있거나 가깝게 있는 것들.”
    “예를 들면요?”
    “나와 반. 그리고.”
    “그리고요?”
    그가 젓가락으로 뜨거운 난로 속을 뒤지며 말했다.
    “요 고구마.”
    젓가락 끝에는 둥근 덩어리가 검게 꽂혀 있었다.

 

    152. 그가 잘 익은 고구마 네 알을 쟁반에 담아 내왔다. 새까매진 은박지를 뜯고 그중 제일 큼직한 걸 골라 그가 반으로 구수하게 갈랐다. 깨끗한 김이 나고, 따뜻한 색감의 노란 문이 활짝 열리자 침이 고였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서 좀 창피했다. 그가 좀더 큰 반쪽을 건네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팔을 뻗으려 하자 그가 고구마를 들고 있던 손을 자기 쪽으로 당겨버렸다. 이 와중에 장난치는 것인가, 싶었는데 그의 심각해진 얼굴을 보니 장난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미간에 두 개의 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화가 났다는 의미였다.
    “오른쪽 이마, 상처는 뭐야?”
    내 딴에는 안 보이게 한다고 애를 썼는데도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가 이마를 가리고 있던 내 머리카락을 마저 옆으로 쓸어 넘겼다. 손길이 다소 거칠었다.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피가 고였는데도 안 아프다고? 어쩌다 그랬어?”
    “……”
    “말해.”
    “……”
    “어서.”
    그가 속상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자국을 따라가다……”
    “뭐?”
    “그냥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내가 누누이 말했지. 발자국은 밟아서도 건드려서도 안 된다고. 눈을 맞춰서도 안 된다고.”
    “아무 일 없이 돌아왔잖아요.”
    “없긴 뭐가 없어. 다쳤잖아.”
    “죽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다 죽는 거야.”
    “어차피 다……”
    “아직은 아니잖아.”
    그가 고구마를 쟁반에 사납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토록 무섭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151. 그가 팔을 뻗어 간이 장식장에서 급하게 꺼내온 것은 중앙에 빨간색으로 십자 표시가 되어 있는 구급상자였다. 한번도 쓴 적이 없는지 상자가 하얘서 적십자 표시가 유난히 자극적으로 보였다.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린 연인이 눈 위에 쏟은 피만큼이나 붉고 진하게.
    “내일 할래요.”
    그가 탈지면에 소독약을 묻혀 이마에 갖다대려 하자 내가 얼굴을 반대쪽으로 틀어버렸다. 소독약 한 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지지 않겠다는 듯 그도 턱을 억지로 틀어 올려 핀셋으로 상처부위를 퉁명스럽게 두드렸다. 악력 때문에 보지 않으려 해도 그의 얼굴이 똑바로 보였다. 가만 보니 피부는 푸석하고 얼굴 또한 많이 야위어 있었다. 해골의 윤곽이 그에게도 닥친 것이었다. 내 얼굴도 그와 닮아 있겠지.
    “이 정도 상처는 내일 치료해도 안 늦어요. 상처도 아니어서 치료 안 해도 상관없다고요. 난 의사예요.”
    소독약이 너무 찬데다 상처부위가 쓰라려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게다가 소독약을 너무 많이 묻혀서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늘 할 거 하고, 내일은 내일 할 거 하면 되잖아.”
    “……”
    “너 유능한 의산 건 알지만 중이 제 머리 깎는 거 봤어? 별거 아닌 상처라도 이런 건 남이 해줘야 하는 거야. 자기가 하면 무서워서 제대로 못한다고.”
    “그래서 함부로 다루는 거구나. 자기 상처 아니라고.”
    “아파?”
    “엄청요.”
    “그 정도로 아프면서 내일 하자고 한 거야?”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
    그가 소독을 끝내고, 손등으로 관자놀이와 뺨으로 흘러내린 약물을 닦아준 뒤 밴드를 붙여줬다. 역시나 손길은 좀 거칠었다. 이상한 건 다치길 잘했다며, 심장이 아까부터 내내 두근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르르 떨다 익어버렸을 심장. 설렘이었다. 계속 돼도 상관없을. 아니 계속 됐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발자국은 왜 따라간 거야?”
    그가 밴드가 잘 붙여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이마에 자기 얼굴을 바짝 갖다대며 물었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서 그가 뭐라 했는지 잠시 잊어버렸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응?”
    “말했잖아요.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두려워서가 아니고?”
    “……”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의 말대로 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두려웠던 것일까.
    “하마터면 따라갈 뻔했었다는 거네.”
    그가 구급상자를 정리하며 말했다.
    “네. 하마터면.”
    “하마터면 못 만날 뻔했었다는 거네.”
    “네. 하마터면.”
    “우리는 끝까지 따라가지 말자.”
    치료를 끝낸 그가 고구마 반쪽을 건네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껍질을 벗기지도 않은 고구마를 덥석 베어먹었다. 겉은 쭈글쭈글 했지만 속은 달고 구수했다. 고작 고구마 반쪽에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은 게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먹는 소리에 반이 잠에서 깨어났다.

 

    150. 그게 온다고 한다.
    그 현상을 처음 알아낸 사람은 누구고, 그 말을 최초에 한 사람은 누구며, 제일 먼저 퍼뜨린 사람은 또 누굴까. 나는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무수한 시작들과 시작들의 시작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시작들의 종말에 대해서도.

 

    149. 그가 회색 도화지 만한 창문을 소맷부리로 문지른 뒤 거대한 양말과 양떼 세탁소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썰매 두 대가 연이어 지나가고 있었다. 불안하고 심각한 그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 어딘가에 동작버튼이 달려 있다면 꾹 눌러주고 싶었다. 버튼을 누르면 통이 세차게 돌아가고, 깨끗한 물 속으로 알록달록한 세제 입자가 섞여 나와 하얗게 빨아줄 것만 같았다. 그러면 더 이상 눈은 내리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림자와 재회할 것이며, 회색인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살림을 꾸려나갈 것이다. 부모님과 여동생도.
    하지만 저 세탁소는 양말과 양떼를 빨 의사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러므로 시커먼 하늘은 세탁소가 아니라 양말과 양털 쓰레기장이라 불러야할 것이다. 아니면 양말과 양털 모으는 데만 급급한 고집불통 수집가거나. 나는 저 냄새나는 쓰레기 수집가로부터 내 양말과 양떼를 지켜내고 싶었다. 그와 반의 것도.

 

    148. 하늘이 처음부터 저렇게 시커맸던 건 아니었다. 물론 회색눈이 처음부터 내렸던 것도 아니었다. 그게 온다는 징조는 회색이 아니라 빨간색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갑자기 대낮 도심 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린 것이었다. 그것도 빨간빛을 머금은 가랑비가. 빨간비라니.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손바닥에 비를 받아 자기 옷에 문질러보았다. 마치 자기 몸 어딘가에서 피가 배어 나온 듯 옷은 순식간에 빨간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핏물이라 우겨도 속을 만 했다. 진짜 피인지 확인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허공을 향해 입을 벌려 맛을 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가랑비를 가볍거나 대수롭지 않은 장난쯤으로 치부하고 넘기려했다. 누군가 주목을 받고 싶어서, 혹은 타락한 도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혼내주려고, 아니면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신도를 끌어들일 목적으로 돼지 피를 탄 물을 상공에 은밀히 살포한 거라고.
    그러나 장난으로 가볍게 여기기엔 가랑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색깔도 진해졌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손에서 놓고 놀란 토끼눈으로 하늘만 올려다봤다. 구름도 노을진 것처럼 새빨개졌다. 사람들은 구름이 빨간색이라 빨간비가 내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구름이 하얘지면 빗방울도 예전처럼 투명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날이 바뀌고 달이 지나도 구름은 여전히 빨갰고 빗줄기도 그러했다.
    간헐적이지만 빨간비는 두 달 동안 계속됐다. 도시 곳곳 빌딩에서는 피눈물 흘리듯 빨간 물이 외벽과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렸고, 강과 호수도 석류를 갈아넣고 저은 것처럼 빨간색으로 변해갔다. 두 달이 지나고 나서는 기온마저 급격하게 떨어졌다. 빨간비는 꽁꽁 얼더니 빨간 결정이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고, 도시는 온통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마치 가을이 되어 도시자체가 단풍이라도 든 것 같았다. 빨간 페인트 통에 담갔다 건진 것 같기도 했다. 공기가 워낙 차서 빨간눈은 녹지 않고 켜켜이 쌓여만 갔다. 얼지 않은 도시는 없었고, 춥지 않은 집은 없었다. 세상은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거대한 아이스크림 케이크 같았지만 아름답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고약한 날씨는 사람들의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정신을 어지럽혔으며,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진짜 미쳐버렸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빨간 빛깔은 낮의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147. “회색인이 도로까지 길을 넓혔어.”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던 그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갔다. 정말이었다. 나는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회색인들은 눈으로 막혀 있던 차도를 미끄럽고 납작한 인도로 바꿔놓고 있었다. 도로마저 장악한 것이었다. 행렬을 따라나선 회색인이 몇 시간 사이에 두 배로 불어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행렬의 진군 속도 또한 아까보다 빨라져 있었다. 그만큼 낙오자도 속출했다. 오늘이라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시간은 촉박했다. 사람들은 쓰러진 낙오자들을 징검다리처럼 무참히 짓밟고 지나갔다. 부축하거나 일으켜 세우려는 시도 따위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건 시간 사치였다. 낙오자들은 그대로 눈 속에 갇혀 얼어죽었고, 회색눈은 죽음의 흔적을 지우느라 바빴다. 그 바쁨을 돕기 위해 구름은 더 부지런히 회색눈을 만들었다.
다시, 폭설이었다.

 

    146. 폭설과 어둠 때문에 창문을 아무리 내다봐도 밖의 사정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다고 밖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아 더 초조하고 조바심 나고 불안했다. 상상은 현실보다 늘 끔찍했다. 상상이 잔인할수록 무리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 견딜 수 있어서였다. 갑작스런 재난이나 위험이 닥칠 때마다 사람들이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건 희망 따위가 아니라 상상이란 끔찍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표정을 보니 그도 지금 나만큼이나 끔찍하고 잔인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불을 꺼뜨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난로 옆에 딱 붙어 앉아 장작만 넣고 있었다. 불이 꺼지면 환상도 사라질까봐 동이 날 때까지 성냥을 켰던 성냥팔이 소녀처럼 불꽃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컨테이너박스 안은 따뜻하고 따뜻해서, 나중에는 좀 나른한 기운까지 더해졌다. 그러자 이 안이 전쟁통 같은 바깥 상황과 분리되어 딴 세계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남은 건 이곳과 우리뿐인 것 같았다.

 

    145. 딴 세계처럼 느껴지게 한 건 달궈진 난로뿐만 아니라 그림자 때문이기도 했다. 컨테이너박스 안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주먹만한 백열등 때문이었다. 백열등이 빚어내는 그림자는 결코 변하거나 달라지는 법이 없었다. 길이며 명암이며 모든 것이 한결 같았다. 한결 같아서 멍청하고 재미없어 보였고, 재미가 없어서 유심히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인공이 만든 인공 그림자이기에 애정도 어딘지 인공적인 데가 있었다. 인공적이어서 애정을 그리 오래주게 되지도 않았다. 그림자가 있어서 안정되는 게 아니라 그림자가 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상함 때문에 컨테이너박스만은 어떤 침입에도 끄덕 없을 것 같았다. 어떤 강한 바람과 추위도 천장을 뚫거나 벽을 허물지 못할 것 같았다. 여기라면 달라지는 것 없이 내일이 있을 것 같았다.    그와 반이 함께 있는 여기만은 어떻게든 무엇으로든 보호받을 것 같았다.

 

    144. 내가 손가락으로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는 걸 본 그가 난롯불을 지켜보며 그림자에 대한 얘기를, 옛날 얘기하는 데 소질 있는 할머니처럼 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그는 그림자를 잃어버린 소설 속 한 사내의 이야기를 해준 뒤, 그림자는 육체의 증거이자 영혼의 외적 현시라는 난해한 말을 이어서 했다. 흡혈귀에게는 그림자가 없다는 도시 괴담 같은 으스스한 이야기도 했다. 그중 가장 맘에 드는 건 서양 회화의 시초가 그림자에서 비롯됐다는 얘기였다. 그리스 코린트에 한 도공의 딸이 살고 있었는데 전쟁터에 나갈 애인과의 이별이 안타까워 램프 불빛에 생겨난 애인의 옆모습을 동굴 벽에 그려 놓은 게 그림의 시작이 됐다는 서사였다. 듣고 보니 ‘그림’의 어원이 ‘그림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내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궁금해?”
    “네.”
    “어떻게 됐을까?”
    “글쎄요.”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모르겠어요.”
    “맞춰봐.”
    그가 자꾸 꾸물대자 나중에 화가 좀 나려고도 했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줘요.”
    그때 누군가 컨테이너박스 문을 무례할 정도로 마구 두드려댔다. 무리에서 이탈한 회색인인가. 밖의 누군가는 쏟아지는 눈만큼이나 다급해 보였다. 그와 나는 하던 말을 까먹은 채 커다래진 눈으로 서로의 얼굴만 한동안 쳐다봤고, 모처럼 옆으로 누워 곤히 자고 있던 반도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작가소개 /장은진

1976년 광주 출생.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가 있음.
2009년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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