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아르코창작기금 시조]
立冬
이교상
허투루 안 살아도 그렇게 산 것 같은
텅 빈 저 나뭇잎들 가계부 들여다본다
바스락, 마른 한숨이
구석에 더께 쌓인
비바람 삼켜먹고 익을 대로 익은 홍시
해탈을 꿈꾸는지 몰아沒我에 빠져 있다
까치가 무리를 지어
초저녁 파먹을 때
그 누구를 기다리나, 안거에 들지 않고
이끼 낀 너럭바위 만다라 그 지문으로
산문 밖 비탈에 서서
내 속을 매만지는
해인에서 보내온 화첩
이승의 아름다운 한 채 집 앞에 앉아
백지 같은 내 생을 흔들어 깨운 가을
섬나라 그 수평선 펼쳐
복사뼈 매만진다
지상의 모든 불면 깻단처럼 묶으면서
양장본 시집으로 엮고 있는 햇살이여
추스른 그늘진 시간,
뒤란을 퇴고한다
군말이 필요 없는 선홍빛 행간이지만
단풍나무 고백 같은 서문을 적어놓고
해인의 저 바람소리로
이중섭의 가을
1. 빈집
한평생 빈 몸으로 울울해진 얼굴처럼 습한 벽 끌어안아 희미해진 둥근 거울 이 세상 그림자에 갇혀 쨍그랑, 눈이 멀고
2. 먼 길
돌담을 따라 걷다 넘어져 발목이 삔 개옻나무 몸 파먹어 바싹 마른 햇살들 멀리서 바라만 봐도 명치뼈가 아프다
3. 귀가
저물녘 해안도로 그러안은 노을처럼 마침내 붉은 바다 되감은 몸을 안고 가볍게 수평선 속으로 날아가는 물새들!
筆生
몸 붉은
장엄이다,
솟구쳐 오른 해는
소소한
풀잎 풀꽃 그 내성
휘어감아
흐르는
허공의 바다
지상에
내려놓고
해물파전에 대한 評說
어둠을 끌어안고 고상한 척 하지 마라
그냥 좍좍 찢어서 먹어야만 제 맛이지
절정의 그 꼭짓점 위해
건배사 하는 저녁
거품 가득 넘치는 술잔을 비울 때마다
뼛속에 스며들어 거친 각질 모두 벗긴
둥둥섬, 저 아득한 벼랑
앞섶이 반짝인다
막무가내로 달려든 나방의 단애 같은
밀려온 먼 파도가 잠재운 혀 짧은 밤
뒤엉킨 네온사인 골목
욕망의 뒤끝 같다
소용골 부추꽃
음각한
보름달을 훗승으로 띄워놓고
돌아온 그날처럼 다시 떠난 그 밤처럼
마음껏, 불면을 펼치는
호접몽 저
뭇별!
꽃의 환유
내 안에
잠긴 그대 혼자 몰래 보느니
보느니, 막사발에 찍힌 흔적은 막사발의 마음이고 막 산 사람의 그림이고……
화들짝,
졌다가 다시 피는
그대 눈을
보느니
|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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