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½ 외 6편

[2014 아르코창작기금]

 

 

나비½

-망나니

 

 

유미애

 

 

    저녁이면 반쪽 얼굴의 검이 운다

 

    내 정강이의 춤은 붉었다 무모한 복사뼈에 노숙하는 눈물은 귀가 없었다

 

    물려받은 칼 한 자루, 검은 머리채와 모래바람이 전부인 나의 왕국, 피어있고 싶었다 꽃의 생을 탕진한 후 사라지는 남방 꼬리, 날개이고 싶었다

 

    내 춤의 결말은 나비라 이름 붙인 삼류 행성, 뿌리가 썩어가는 동안에도 내 맨발은 형틀을 돌며 비틀비틀 스텝을 쫓았지만

 

    함부로 태어난 씨앗, 빈 술독의 달이 차고 흑발 늑대가 가난한 왕국을 등져도 내 피는 고백하지 않는다 꽃의 절정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릴 뿐

 

    여기, 꽃이 왔다 갔다 푸른 칼날처럼 비린 봄날이 있었다

 

    그리운 나비 아래 웅크려 별빛 같은 거짓말을 닦으면 다시는 허리 굽히지 마라 무릎을 내리치는 보라색 바람, 내 죄가 찬란해진다

 

 

 

 

 

 

 

 

 

 

멜로디언

 

 

    누이가 부르는 노래가 앵두처럼 흩어졌다

 

    물고기가 떠났다 밤이면 가슴 한복판으로 워커자국이 지나갔다

 

    어둠속에선 유난히 부끄러운 손, 어느 비굴한 사내의 겁 많은 속눈썹과 흰 손가락이 이미 내게 와 있었다

 

    어항 속 썩은 음표를 골라내며 누이가 울었다 더 이상 꽃물을 들이지 못할 거라는 기다란 몸, 우리의 봄은 늙은 별의 분화구처럼 어두웠다

 

    내 물고기는 어디쯤에서 물의 음률을 완성했을까 백수의 방을 지키느라 탈모중인 앵두나무, 비스듬한 그늘에 기대어 하늘을 보았다

 

    누이가 벗어놓은 신발이 탁탁 꼬리를 튕겨 올렸다 이건 수성, 저건 목성

 

    손바닥을 펴면 꿈틀거리는 다섯 쌍의 지느러미 구름이 더 깊은 늪을 만들고 있었다 어항에 문을 냈다 눈물자국을 따라 드러나는 빛의 행로

 

    주둥이 가득 꽃을 먹은 물고기 한 마리 흑백의 층계를 미끄러져 내렸다

 

 

 

 

 

 

 

 

 

 

꽃밭을 구르는 노래

 

 

지금, 꽃의 문은 반쯤 열려있다
사탕을 입에 문 고양이가 운다
박물관에서 구조된 사람처럼 슬픈 밤
화단을 걷는다
누구의 손에도 꼭 잡히지 않던 여자
눈물자국이 끝나는 자리에서 초경을 맞고
바람에 이끌려 가파른 골목으로 나갔던 것일까
한 쪽 눈썹이 찢어진 구두가 피를 뱉는다
그믐, 흉터에 갇힌 여자들이 앓는 밤
캄캄한 눈이 둥글어지면, 꽃아 마을로 가는 거다
술 팔아 얻는 건달 하나 어께에 지고
건들건들, 휘파람소리로 돌아오는 거다
바람을 사랑한 패랭이 여자처럼
머리채를 뜯기며 또 살아보는 거다
사내가 떠난 저녁이면 구두를 내던지며
오래된 비탈처럼 굴러가는 거다
길고양이와 막 눈뜬 꽃과 출구 없는 여자
가지런히 벗어놓은 첫 구두처럼
주인 모르는 이야기가 되어보는 거다

 

 

 

 

 

 

 

 

 

 

월소月梳*

-접촉

 

 

나는 꽃보다, 송곳니가 아름다운 짐승이 되기 위해
각두로 잇몸을 파헤친다

 

마지막 여름 발굴한 서른 조각의 침묵을 대물림하며
기다린다 그곳의 상처가 아물 때 까지
이 얕은 뼈 깊이, 그대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고일 때 까지

 

깨진 두 구멍은 당신과 나의 눈
엎드려 흰곰의 노랫말을 외우면 맘모스의 하늘에 금이 간다
약봉지를 비운 나무가 강물로 귀를 씻어내는 저녁

 

나는 돌칼보다 작은 슬픔으로 짠 악보를 끼고 눈 덮인 플랫폼을 달린다

 

검은 시간의 반란
상아피리소리에 하나 둘, 강의 입술이 부풀고
낙과를 줍던 나그네의 눈썹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당신의 손자국에 나를 얹으면 출렁 휘어져오는 음률

 

나는 가시나무로 깎은 월소月梳를 쥐고
밀려드는, 길이 무성해질 온몸의 털을 빗으며
히죽, 웃는다

 

 

    * 얼레빗

 

 

 

 

 

 

 

 

 

 

얼룩무늬 꽃

 

 

꽃의 진심은 왜곡되기 쉬웠다

 

불쑥 달려드는 손, 오래 떠돌았다
잡히지 않는 것을 쫓느라 치마가 해지는 줄 몰랐다

 

아홉 하늘을 가진 서쪽 땅
피리소리 들리는 밤이면 흰말이 내려와 상한 뿌리를 거둬갔다

 

방탕한 꽃, 어느덧 꿈속에는 비뚤어진 발자국과 거친 말울음소리

 

꽃은 아홉 하늘을 건너갔다 홑치마가 자줏빛으로 변했다
벌어진 문고리마다, 천년 기워온 상처의 내력을 새겨 넣었다

 

구부러진 손이 피리를 불자 이마 반듯한 말이 찾아왔다

 

비틀거리는 꽃의 누각, 취한 말의 몸에 얼룩이 박히고
하늘의 가르마가 엉클어질 때 다시,

 

꽃의 미간이 찢어졌다

 

 

 

 

 

 

 

 

 

 

탑돌이

 

 

마지막 꽃다발을 던지면 네가 올 거라
노을이 끓고 있는 문 밖에 넌 서 있을 거라
나는 사슴이 떠난 시간 한 쪽에 너를 앉히고
맑은 술잔을 건넬 거라
남은 슬픔과 해진 가죽을 난로 속에 넣으며
우린 그럴 거라
둥글게 익은 달빛을 처마에 걸고
꽃 같은 상처의 등을 포갤 거라
이 비탈에도 새가 우는 아침이 오고
부지런한 너는 구름으로 사슴을 빚을 거라
돌을 깎아 뿔을 만들 거라 탑을 쌓을 거라
한 층씩, 탑의 기단이 쌓일 때마다
나는 구부러진 손톱을 잘라줄 거라
돌 쪼는 소리 번져가고 사슴의 심장이 뛰려할 때
밤새 엮은 화관을 쓰고 연못으로 달려갈 거라
세상이 온통 검은 망치소리로 가득할 때
마침내 너는 연장을 버리고 마을로 갈 거라
오래된 염원처럼 눈이 내리고
탑을 돌던 지상의 여인은 제 손톱을 들여다 볼 거라
사슴은 까마득할 거라 첫 겨울의 백일홍
꽃의 문 밖에는
더 붉은 저녁이, 서 있을 거라

 

 

 

 

 

 

 

 

 

 

나는 몹쓸 방을 가졌다

 

 

하늘을 향해 문을 열 수 없는 방이 있다
머리 위, 새의 지저귐만 믿고 우린 이 별로 왔다

 

떠나온 곳의 흙냄새를 서술하려는 순간
꽃의 주변을 장식하던 새들이 사라졌다

 

벗어놓은 모자의 체온이 떨어진다
오래전, 씨앗 하나를 들여놓고 빗장을 걸은 방

 

욕망의 구멍들이 돌멩이처럼 단단해질 때
방은 세입자들을 불러 모아 수작을 부린 것일까
오랜 눈보라에 평형을 잃고 꽃과의 신의마저 잊었던 걸까

 

습기와 태양문신

 

향기를 다려 입은 방이 새 냄새를 긁어낸다
세모 네모, 마름모와 예각의 종소리
허공에 걸린 위험한 방

 

 

 

 

 

 

 

 

 

 

 

 

 

 

 

작가소개 /유미애

경북 문경 출생.
2004년 《시인세계》 신인상에 「고강동의 태양」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손톱』이 있음.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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