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사 기담

[2014 아르코창작기금 장편소설]

 

 

겨울이 내 살을 만진다

 

 

양진채

 

 

   1

 

    기담은 꿈을 꾸었다. 종잇장처럼 얇고 소용돌이처럼 어지러운 꿈이었다. 수많은 불빛이 기담을 에워쌌다가는 부서졌다. 그것이 불빛이었음에도 기담은 불안했다. 둥글게 퍼지지 않고 날처럼 갈라지는 빛이 기담의 몸을 조각낼 것만 같았다.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빛이라고 해서 비껴갈 리 없었다. 기담은 빛을 어쩌지 못하고 웅크려 앉아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저 알알이 부서지는 빛을 어디서 보았던가. 황홀하지만 아프게 쏘아대는 불빛. 어디서, 어디서. 기담은 불빛에 눈이 멀어버린 짐승처럼 꼼짝 못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으나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아직도 불빛이 어지럽게 휘도는 듯했다. 기담은 끙, 돌덩이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돌아누우려다 어렵사리 그 빛이 제물포구락부에서 보았던 불빛이라는 걸 생각해냈다. 생각해냈다는 게 놀라울 만큼 오래된 기억이었다.
    요 며칠 꿈자리가 어지러웠다. 깨어도 꿈은 선명했다. 매일 똑같은 날을 살고 있는 기담에게는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꿈도 현실도 모두 제 삶이 아닌 것 같았다. 모두가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우편배달부가 대문을 두드린 것은 기담이 마루턱에 앉아 마당에 얼기설기 피어 있는 꽃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는 나비에게 눈길을 주고 있을 때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함자가 김 기자 담자 맞죠?”
    기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대로 찾은 모양이네. 할아버지 혹시 이정애란 분 아세요?”
    “……”
    기담이 뭔 말인가 알아듣기도 전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목구멍에서 무언가가 울컥 복받쳤다. 이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이 자의 입에서 이정애라는 이름이 나오다니. 기담은 짓무른 눈을 씀뻑였다. 이 생에서는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국제우편이에요. 할아버지, 제가 이 집 찾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이 동네가 내내 이름이 안 바뀌었다지만 이 지번만으로는 어림 없었….”
    기담은 우편배달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편지를 받아 쥔 손이 떨리고 무릎이 꺾였다. 가까스로 마루턱에 주저앉았다. 잊지 않고 있었단 말인가.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단 말인가. 그 먼 타국 땅에서 나를 잊지 않고 있어주었어. 기담은 우편배달부가 돌아간 뒤에도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비를 보았다. 산수국의 화려한 헛꽃 주위를 맴도는 나비.
    나비처럼 헛것에 홀린 것일까. 기담은 제 손에 쥔 편지를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차마 뜯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 뒤에 보낸 편지에 무엇이 쓰여 있을지 읽기가 겁이 났다. 기담은 편지를 서랍에 넣어두었다. 자리에 누웠다가도, 마당의 꽃을 보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기담은 쫓기듯 서랍을 열어 보았다. 거기 이정애, 그러니까 묘화의 편지가 있었다. 정환이 술에 취해 헛소리처럼 변사 흉내를 내며 영화 해설을 한 것은 그런 어지러운 날들 중 하루였다.
    막 잠이 들려고 할 때였다. 마루에서 사람 기척이 났다. 기담의 증손자인 정환이었다. 선혜의 셋째아들의 아이라고 했던가. 일 년에 한 번 얼굴보기도 힘든 촌수였다. 빼놓으려던 틀니를 다시 끼웠다. 녀석이 방문이라도 두드리고 들어왔다가 쪼그라든 입을 보게 될까봐서였다. 녀석은 기담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더니 얼마 전부터는 아예 짐을 싸들고 와서는 건너방에 기거했다. 영화를 만든답시고 설치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조심성 없이 나대는 걸 보니 술이라도 마신 모양이라고 생각하는데 녀석이 난데없이 소리를 높였다.

 

    청춘, 푸를 청, 봄 춘. 말 그대로 푸르른 봄의 시절, 청춘.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라면 얼마나 쓸쓸한 인생일까 싶지만, 또 그 놈의 끓는 피는 얼마나 많은 청춘들을 초조함과 방황 속으로 밀어 넣었던가. 그러나 어쩌랴, 슬퍼도 내 청춘이요 못나도 내 청춘인 것을. 울음을 머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그 청춘의 사연, 경성을 떠들썩하게 한 슬픔과 낭만의 연애사. 청춘의 십자로,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허겄습니다.

 

    기담의 심장이 빠르고 높게 벌렁거렸다. 이 녀석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변사 흉내를 내고 있지 않은가! 그 옛날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를 연행 하고 있지 않은가! 기담은 이 사태를 종잡을 수 없었다. ‘청춘의 십자로’를 저 녀석이 어떻게 알고 저리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저 우스꽝스러운 변사 흉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기차는 달린다. 어둠을 지나면 밝은 세상이 나오는 법이지만 기차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철길 위만을 달릴 뿐이다. 아, 저 멀리 보이는 것이 경성역 지붕. 그렇다, 경성이다. 말은 키워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키워 경성으로 보낸다는 옛말처럼 온 조선의 청춘들은 오늘도 꾸역꾸역 경성으로 몰려든다. 청춘들의 사랑과 이별, 희망과 절망의 용광로, 여기는 1934년의 경성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마안!”
    기담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가미 어데서 그따우 대먹지 모단 지꺼리르!”
    기담은 자신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낯선 목소리가 귀에 들릴 때에야 자신의 생각과 똑같은 말이 허공을 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을, 말을 했다! 기담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혀를 잘린 이후 스스로 닫았던 입이었다. 어눌한 혀를 놀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입을 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무엇엔가 홀린 것 같았다. 녀석이 변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들지만 않았다면 기담은 평생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녀석이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할아버지가 말을 하다니! 녀석도 기담만큼이나 놀랐다.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서로 얼굴을 마주볼 뿐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정환이었다.
    “그러니 도와주세요! 할아버지가 절 좀 도와주세요!”
    정환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기담은 거칠게 방문을 닫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기담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고 숨을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되풀이 했다. 정환이 ‘청춘의 십자로’를 가지고 변사 흉내를 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고, 자신이 입을 열어 말을 했다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다. 녀석이 제 방으로 비척거리며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저런 놈이 증손자라고 나타났단 말인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어지러웠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관객 모두가 빠져나간 뒤의 정적. 변사를 그만 둔 뒤로 기담의 삶은 그 정적과도 같았고 그 정적이 맞춤 양복처럼 제 몸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외롭고 쓸쓸할 때조차 과거를 추억하지 않았다. 변사로서의 생이 통째로 그의 삶이 아닌 듯도 했고, 그 생만이 전부였던 듯도 했다. 고스란히 들어낸 삶. 그렇게 들어낸 삶이 다시 기담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기담은 얼마쯤 넋이 나가 있다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가 입을 벌려 틀니를 꺼내 닦았다. 틀니의 선명한 잇몸과 튼튼한 이가 기담을 질리게 했다. 기담의 이는 아래 앞니 두 개가 전부였다. 잇몸도 무너진 지 오래였다. 틀니를 껴도 음식을 씹는 일이 쉽지 않았다. 틀니를 끼우려다 말고 기담은 제 입을 크게 벌려 거울에 바짝 갖다 댔다. 늙은 짐승의 누리끼리한 이 두 개와 그 안쪽으로 축축하고 냄새나는 검은 동굴 속. 기담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침을 꿀꺽 삼켰다. 목뼈가 울뚝 솟았다가는 내려갔다. 한때는 저 목울대를 타고 말이 향연을 벌였다.
    ‘청춘의 십자로’. 정환의 어쭙잖은 흉내에 벼락같이 화를 냈지만 사실 와락 반가움이 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청춘의 십자로’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해서인지 변사를 흉내 낸 말투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기담의 벌렁거리는 가슴 한 편에서 일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리듬을 타던 정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정환이 매일 카메라를 들고 나가 무언가를 찍고 돌아오는 눈치였다. 한밤중에도 불이 켜진 날이 많았다. 저 아이를 붙든 영화란 무엇인가. 선생께 영화란 무엇입니까. 묘화의 물음이 다시금 떠올랐다. 영화해설을 하는 내내 화두처럼 붙들던 말이었다. 기담은 일어나 서랍을 열었다. 묘화의 편지를 쉬이 뜯지 못한 것은 그 옛날의 낭창한 날들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기담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을 것 같았다. 기담은 자신이 이 나이 되도록 정정한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요한 삶이 한몫을 거들었다고 믿었다. 이 밤, 기담은 그 모든 것이 다 소용없는 일이라 여겨졌다. 지금까지 버틴 것이 어쩌면 도려냈다고 생각하는 그 삶 속의 무엇, 묘화의 편지 같은 그 하나를 잡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담은 지칼을 꺼내 편지봉투를 열었다. 자꾸만 눈앞이 흐려져 글자들이 가물거렸다. 글자를 오려내기라도 하듯 한 자 한자 천천히 읽어나갔다. 거기에 묘화, 아니 정애의 숨결이 살아 있었다.

 

    선생님께.
    이 편지를 쓰기까지 많은 날들을 망설였습니다. 이제 와서 이 편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선생님께 닿기나 할까, 닿는다면 또 어쩔 것인가. 답도 없는 물음을 합니다. 늙도록 늙지 않는 미련을 어쩌지 못해 결국 펜을 들었습니다. 세월은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전화만 있으면 여기서 한국에 있는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컴퓨터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오고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많은 세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폴페로라는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바닷가 마을이어서 저녁이면 포구까지 산책을 나가기도 합니다. 제가 살던 그곳과는 많이 다르긴 해도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오후 세 시만 되면 어두워지는 이곳 겨울은 뼛속까지 시립니다.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린 느낌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선생님이 저를 기억이나 하실까 두려움도 있습니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으니까요.
    어쩌자고 이렇게 펜을 들었는지, 이 편지를 끝맺을 수는 있을지, 우편으로 붙일 수 있을지 겁이 납니다. 이 편지는 바람이 전하는 말. 바람처럼 떠돌다 가뭇없이 사라질 편지일지도 모르겠지요.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고 나오는 길에 문득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선생님이 그리워졌습니다. 진즉에 어떻게든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한 걸 후회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잘살았습니다. 그런데 아프다니까,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까 왜 선생님이 떠오른 것일까요. 새벽 바닷바람이 폐를 망쳤을 거라고들 합니다. 그래도 눈을 뜬 새벽이면 바닷가로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물포의 그 바다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립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암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어 도무지 풀어지질 않습니다.
    선생님, 살아, 계신가요?
    극장 안을 가득 울리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잘살아왔는데, 갑자기 선생님의 모든 것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암세포의 움직임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이 편지가 떠돌다 사라지지 않기를,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담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잠이 든다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밤새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몇 번이고 수화기를 들었다가 다급하게 울리는 기계음에 끊고 또 끊었다.
    새벽녘에 잠이 든 기담은 점심때에야 일어났다. 어젯밤 그 소란에도 꿈쩍없이 자던 선혜가 여러 번 들여다봤을 시간이었다. 기담은 물때가 표시된 달력을 살펴보고는 옷을 챙겨 입었다. 선혜가 밥을 차리려 했지만 손을 내저었다. 정환이 오늘은 외출도 하지 않은 채 기담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기담은 지팡이를 찾아들고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정환은 기담이 어디를 가려는지 영문도 모르고 신을 꿰었다.
    안개가 걷히지 않고 꾸물거렸다. 길이 좁아지고 낮은 슬레이트집이 몇 채 보였다. 유리문의 색 바랜 선팅지에는 바지락칼국수니, 주꾸미 볶음이니 하는 메뉴가 간판 대신 붙어 있었다. 플라스틱 둥근 의자가 어두운 가게 한 귀퉁이에서 포개진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 게와 새우 조개 등을 함지박에 담아 파는 곳을 몇 사람이 기웃거렸다. 바람이 불었고 바다 냄새가 맡아졌다. 칼국수 집 맞은 편, 높은 담장이 쳐진 골목 안으로 기담이 발을 들여놓았다. 왼쪽은 공장 시설물을 막기 위해 마름모꼴 철망이 쳐서 있었고 오른쪽엔 회백색 담이었다. 둘이 걷기에도 좁은 골목이라 정환은 기담의 뒤를 따라 걸었다. 골목을 두 차례 꺾어들자 막다른 집처럼 난데없이 포구가 드러났다. 정환이 아연했다. 이 동네에 정환이 가보지 않은 길은 수두룩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골목길을 지나 포구가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작은 포구였다. 생선을 파는 열 평 남짓한 횟집이 왼편으로 몇 군데가 있을 뿐 오른편으로 두어 걸음만 옮기면 바로 아래가 바다였다. 포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곳이었다. 배를 댈만한 곳도 없었다. 멀리 신도시의 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이 도시에 이렇게 작은 포구가 골목 사이에 숨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기담이 그 중 가운데 횟집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시네요? 게다가 배는 벌써 들어왔다가 나갔는데. 어떻게, 늘 드시던 대로 병어찜 하고 소주 드릴까요?”
    풋고추와 오이 당근을 썰어 담은 접시를 내려놓으며 주인이 말했다. 기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왔을 때는 이가 성치 않은 걸 알고 풋고추니 하는 것들은 내오지 않는데 정환과 같이 오니 주는 모양이었다. 이제 푸른 것들, 싱싱한 것들은 기담의 것이 아니었다. 데치거나 삶거나 쪄야 했다. 무른 것, 부드러운 것, 씹히지 않고 삼킬 수 있는 것들이 좋았다. 이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새롭거나 낯선 것들은 불편했다. 늘 먹던 것, 늘 입던 것, 늘 가던 곳이 좋았다. 기담은 서비스로 홍합탕을 내오는 여주인의 주름진 눈가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기담은 늘 물때에 맞춰 산책을 나왔다. 방에 걸린 선박회사에서 나온 달력에는 매일 하루에 두 번 만조와 간조가 표시되어 있었다. 만조 시간보다 두 시간 반쯤 일찍 나서면 물이 들어오는 걸 만날 수 있었다. 산책은 물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매일 반 시간 꼴로 늦춰졌다. 해가 진 뒤에 물이 들어올 때는 나가지 않았다. 그럴 때는 꼭 물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지 않고 포구를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기담이 포구 주변을 돌 듯, 묘화도 해안가를 돌았던 것일까. 이 작은 포구는 배가 들어와야 잠깐 활기를 띠었다.
    기담 눈치를 보며 주춤하던 정환이 소주를 몇 잔 들이켜더니,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 어젠 죄송했어요.”
    기담이 정환의 빈 소주잔에 술을 채웠다. 그 잔을 정환이 비웠다. 기담이 채우고 정환이 마시고, 그 잠깐의 간격 동안 바다를 보았다. 몇 잔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언제부턴가 정환이 취해 있었다. 병어찜은 머리와 뼈만이 남아 제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제 술이 깨기도 전에 다시 취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정환이 할아버지, 하고 기담을 불렀다.
    “할아버지, 저는 독일영화가 좋아요. 롤라런이란 영화가 있는데 진짜 끝내줘요. 제가 열 살 때 나온 영환데, 물론 저야 한참 뒤에 봤죠. 열 번도 더 봤어요. 톰 튀크베어라는 감독이 만든 거에요. 한마디로 롤라가 뛰고, 뛰고, 또 뛰는 이야기에요. 20분 안에 10만 마르크를 구하지 않으면 조폭에 의해 죽게 되는 애인 마니를 위해 롤라는 뛰어요. 단순무식한 영화예요. 근데 톰은 시간을 비틀어 세 번이나 똑같은 상황을 펼쳐내요. 첫 번째 뜀박질에서는 경찰 총에 맞고 쓰러진 놀라의 눈으로 줌인하고, 두 번째 뜀박질은 첫 번째와 비슷하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마니는 죽게 되죠. 세 번째는 마니의 플래시백. 롤라는 다시 뛰어요. 결국은 누구도 죽지 않고, 덤으로 10만 마르크도 갖게 된다는 해피엔딩이죠. 롤라와 마니. 20분. 세계는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할아버지, 귀찮더라도 들어주세요. 이 영화가 놀라운 건 카메라가 그들을 비추지 않을 때는, 비디오 모니터 영상이라는 다른 장치로 칸을 나눠서 ‘여기는 우리의 세계다.’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어요. 또 중간에 만나는 우연적인 인물들의 미래를 플래시효과와 함께 몽타주로 보여주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잠깐씩 드러내고 있죠. 인간은 그 시간과 색깔만 다를 뿐 언제나 같은 상황 속에 놓이는 거예요. 사소한 순간의 선택이 인생 전체로 이어지는 거예요. 톰이 만든 현란한 기교와 스타일은 드라마와 맞물리며 이미지와 담론을 마구 만들어내요. 그러니까 톰이 걸작 중에 걸작인 <향수>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향기를 눈으로 볼 수 있게 영화로 만들려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 저는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어요. 사실 졸업 작품으로 만들기는 했죠. 그건 제가 봐도 허접했어요. 50대 존재감 없는 가장을 다룬 영화였는데, 그 영화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차요. 그런 거 말고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있을 거 같아요.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가 변사였다는 얘길 순간,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아세요? 롤라런을 처음 봤을 때처럼 흥분해서 그날 얼마나 미친놈처럼 거리를 쏘다녔는지 몰라요. 그냥 마구 쏘다녔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거든요.”
    정환이 영화 얘기를 주절거릴 동안 물이 빠져나가고 갯고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가 들어오지 않으니 울어대는 갈매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정환이 분명 영화 얘기를 하는 줄은 알겠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무성영화 시절 변사는 영화의 꽃이자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의 기담은 영화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아니, 온통 영화만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담을 영화를 봐도 도대체 뭔 말인지, 뭔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며칠 전 정환이 보여주었던 영화를 떠올렸다. 농사짓는 노인과 삼십 년을 함께 산 늙은 소의 마지막을 다룬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녀석의 애비가 텔레비전을 최신으로 바꿔준 덕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말씀만 하시면 다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했다.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소가 죽고 묻히게 될 때는 눈가를 씀벅이기도 했다. 생이 이렇게 허무한가, 생각했다. 아직 전화부에는 친구들의 이름과 번호가 그대로 있는데 이젠 걸어야 받을 수 있는 번호도 몇 개 안 남았다. 친한 친구나 친척들이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과거가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전화부책에만 살아 있는 그들은 이젠 묻힌 과거가 되었다.
    골목을 빠져 나온 기담은 잠깐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정환이 비틀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기담은 안개에 쌓여 온통 어른거리는 것 투성이를 바라보았다. 기담은 잊지 않았다. 처음 기철과 영화 보던 때를. 기담은 영화를 보고 온 뒤 며칠 동안, 영화의 장면 장면이, 해설을 하던 변사의 목소리가 그대로 떠올라 뒤척여야 했다. 배를 타고 나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와 맞먹는 어떤 세계가 극장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떨리던 며칠 뒤 다시 극장을 찾았을 때 기담은 자신의 길이 오롯이 여기 있음을 알았다. 그때 뛰던 심장 소리를 지금도 기억할 수 있었다. 지금 정환의 가슴에서도 그 소리가 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2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대형 선풍기는 더운 바람만 내보내고 있었다. 화장실 암모니아 냄새, 땀 냄새, 젖내, 암내, 값싼 분 냄새까지 온갖 인간 군상이 풍기는 냄새가 총망라된 극장 안은 숨 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선풍기 모터 엔진이 과열되었는지 고무 타는 냄새까지 한 겹을 더했다. 왼쪽 앞자리에 앉은 기생들은 연신 합죽선을 활랑활랑 부쳐댔다. 그 뒤로 아낙네들이 앉고, 오른쪽엔 남정네들이 앉았다. 자리는 좁게 끼어 앉고도 모자라 통로까지 꽉 들어찼다. 용케 들키지 않고 변소 창문을 타고 넘어온 아이 몇도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을 터였다.
    객석은 탄식이 흐른다. 벌써부터 코를 훌쩍이는 이, 손수건을 꺼내드는 이로 술렁였다. 기담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귀는 변사 김익호를 향해 열어놓은 상태였다.
    영화 속 주인공 정순이 아버지 묘를 바라본다. 그녀의 손에는 독약이 들려 있다. 김익호는 목울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보통 때보다 높고 가늘고 구슬프게 뽑는다.

 

    은식 씨! 죽음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겠지요? 제가 이렇게 죽더라도, 내 몸이 이 독약으로 말미암아 다 타들어가더라도 내 사랑은 결단코 죽지 않을 거에요. 내 사랑은 절대 타들어가지 않을 거에요. 영원히, 영원히 당신 품에 안길 거에요. 이제 저는 갑니다. 은식 씨! 당신의 가슴속에서 저를 영혼토록 살게 해주세요.

 

    여기저기서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정순은 화가 은식을 사랑하지만 엄마와 오빠에 의해 원치 않는 이와의 결혼을 강요당하고, 이제 죽음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정순은 죽음 직전에 오빠에게 발견되지만 독이 서서히 몸에 퍼지고 있었다. 오빠는 정순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집에 와 있던 은식의 품에 안긴다.

 

    정순 씨! 어쩌다가 이리 되었단 말이요. 가려거든 함께 갈 것이지,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 테요. 이제라도 당신을 내려놓지 않으리다. 아직 남아 있는 따뜻한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전신에 흐르는 따뜻한 피가 다 식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당신을 이렇게 안고 있으리다.
청춘이 가는구나, 애달픈 청춘이구나. 이 둘의 사랑을 누가 갈라놓았단 말인가. 무엇이 이리도 야속하단 말이냐. 아, 청춘, 청춘,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청춘의 꽃이여.

 

    기철이 팔꿈치로 기담을 쳤다.
    “야, 조용히 좀 해!”
    기담은 그때에야 자신도 모르게 변사의 말투를 흉내 내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흉내를 내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영화에 몰입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대사를 따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극의 전개가 빠를 땐 속으로 웅얼거리는 수준을 벗어나 목소리가 커졌다. 기담에게도 오늘이 저번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똑 같은 영화고 이미 한 차례 봐서 뻔할 수 있었는데도 더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순전히 김익호 변사 덕이었다. 오늘 그의 말재간은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유연했고, 격정적이었고 재치 있었다.
    청춘의 꽃이여. 마지막 해설의 여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우르르 일어나는 관객들로 극장 안이 혼잡했다. 기담은 출구로 걸어 나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기생 명선의 손을 잡고 나가는 여자에게 눈길이 머물렀다.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은 한 올 흐트러짐이 없었고, 단아한 이마에 외까풀 아래 눈은 시원하게 트여있었다. 그 안의 검은 눈동자는 잘 익어 떨어지기 직전의 검붉은 버찌처럼 맑고 깊었다. 게다가 앙 다문 입 매무새는 영화를 보는 내내 흐트러짐 없었던 듯 보였다. 명선을 향해 설핏 웃을 때면 양 볼에 팬 보조개가 한껏 성숙해보이기도 했다. 기담은 그 여자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기담이 눈을 못 떼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그의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온갖 군상들이 모여 있는 극장 안에서 영화 한 편에 한 생이 흘러간 듯한 표정들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낼 것 같지 않은 도도함이 있었다. 근접하기 힘든 위의가 서렸다. 처음 보는 이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처음은 아닌 듯도 했다. 그 이가 스치고 지날 때까지도 기담은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어쭈, 얘 봐라, 아주 혼이 나갔네. 야, 침이나 좀 닦어라.”
    기철이 옆구리를 쳤다.
    “명선이 옆에 있는 여자, 기생인가?”
    “모르겠는데. 근데 어디서 본 얼굴인데, 가만있어봐라. 그거 참, 생각날 듯 생각날 듯 안 나네.”
    기철이도 명선 옆의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가 저 여잘 어디서 봐?”
    “아, 글쎄 어디선가 봤다니까. 내가 또 사람 기억 하는 데 선수잖냐.”
    기담은 명선 옆에 있는 여자를 본 순간, 유리를 떠올렸다. 기담은 그 유리를 제물포구락부에서 처음 보았다. 제물포구락부는 조계지 안에 있는 양인들 사교장이었다. 지금은 조계지가 없어지긴 했지만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계지에는 일인, 청인, 양인들이 각자 땅을 차지하고 살고 있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웅봉산 아래, 가장 좋은 땅이었다. 일본인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조계지를 형성한 뒤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웬만해선 근처도 안 가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기담은 일부러라도 그쪽을 넘나들었다. 새롭게 밀려드는 거대한 흐름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조계지 안이었다. 밀려드는 신문물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여 변화하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 J구락부에서 호화 연회가 벌어졌다. 기담은 유리창 너머 홀 안에 있는 양인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잣대는 없었다.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홀 안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악기 소리들이 간혹 들리는 웃음에 섞여 문밖으로 새어나왔다.
    벽안碧眼의 여인들은 한결같이 터질 듯 한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허리를 잔뜩 졸라맨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주름이 겹겹으로 잡혀 활짝 편 목단처럼 부푼, 발목까지 닿는 화려한 드레스는 기담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남자들은 흰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었다. 그 양복이란 게 윗옷이 앞은 허리까지 덮고 뒤는 엉덩이까지 새초롬히 내려온 게 매미가 날개를 접은 모양 같았다. 양인들에게 옷이란 추위나 더위를 막아주고 가릴 곳을 가리는 용도가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 넘는 여유와 멋이 묻어났다. 그렇게 치장을 하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술을 마셨다. 먹고 사는 것조차 녹록치 않은 기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잡을 수 없는, 그러나 어떻게든 잡고 누리고 싶은 것이었다. 그 여유가 부러웠다. 기담은 그렇게 넋이 나간 채 오랫동안 홀 안에 눈을 박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담은 그것을 보았다. 유리라고 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잔에는 붉은 술이 담겨 있었다. 양인들은 술을 마시기 전 두어 번 그 유리잔이라는 것을 둥글게 흔들었는데 그때마다 유리잔에 담긴 검붉은 술이 타원을 그리며 흔들리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투명하고 단단한 저것, 얇으면서도 매끄럽게 빠진 저것, 유리. 기담은 사기나, 놋, 은잔은 보았지만 저리 맑은 재질의 그릇은 본 적이 없었다. 무엇이든 그 유리라는 것에 담기면 거짓을 부릴 수 없는, 어떤 것도 감추지 않고 온전히 다 드러내야 할 것만 같았다.
    홀의 천장 한가운데서 알알이 수백 개나 줄줄이 매달려 등을 감싸고 있으면서 불빛을 수만 갈래로 나눠 어둠을 희롱하듯 영롱하게 빛을 반사시키는 것도 투명한 유리였다. 물처럼 맑으면서 사기처럼 단단한 저것. 천정에 매달린 맑은 저것은 유리잔과는 또 달랐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제 모양과 두께, 깎인 형태에 따라 완만하게 둥글기도 하고 형편없이 가늘게 뭉개기도 하고 되쏘기도 했다. 어떤 것을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야 세상의 색이란 색은 몽땅 빼낸 채, 맑은 빛깔로 도도한 자기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저것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저것을 만들어낼 줄 아는 저 양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란 말인가. 기담은 오랫동안 그 유리란 것에 홀려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코를 짓누를 듯 막고 있는 창문도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유리 덕분에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기담은 검지로 유리 끝을 대어보았다. 차갑고 맑고 단단한, 그러면서도 얼음과 다르게 녹지 않는 냉정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유리라는 이름을 안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그런 모든 것의 재료가 ‘유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담은 자신도 모르게 유리, 하고 내뱉었다. 유리라고 발음하는 순간 맑고 투명하여 무엇이든 비추고 빛을 발하는 그것이 그 앞에 서 있는 듯했다. 기담은 훗날 그런 전등을 샹들리에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 샹들리에라는 것은 유리가 아니라 크리스탈이란 이름의 돌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유리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그날의 그 눈부시게 빛나던 별빛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 이름만큼이나 우아한 등불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명선 옆에 있던 여자를 본 순간 유리가 떠오른 것은. 그 여자의 맑은 이마 때문이었는지,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눈빛 때문이었는지, 가까이 하기 어려운 위의 때문이었는지 기담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제물포구락부에서 보았던, 아련하게 취해버릴 것만 같은 그 영롱한 유리 불빛, 유리잔 안에 흔들리던 포도주, 코와 볼에 닿던 유리의 차가운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기담은 고개를 흔들었다.
    역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서 기담은 가지에 매달린 살구만한 개복숭아를 잡아챘다. 소맷부리에 대충 문지른 그것을 씨가 씹히지 않도록 베어 물었다. 입 안은 신맛과 떫은맛으로 얼얼했다. 몇 번 씹고는 뱉어버렸다. 먹던 것도 길가 한쪽에 던졌다. 입 안을 감도는 떨떨하고 뻑뻑한 맛이 묘하게 기담을 당당하게 했다.
    “너 변사 흉내를 제법 내던데?”
    “아까는 시끄럽다더니?”
    “아까는 아까고. 비싸게 굴지 말고 한 번 해봐, 내가 잘 들어줄게.”
    기담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은식 씨! 죽음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겠지요? 제가 이렇게 죽더라도, 내 몸이 이 독약으로 말미암아 다 타들어가더라도 내 사랑은 결단코 죽지 않을 거에요. 내 사랑은 절대 타들어가지 않을 거에요. 영원히, 영원히 당신 품에 안길 거에요. 이제 저는 갑니다. 은식 씨! 당신의 가슴속에서 저를 영혼토록 살게 해주세요.”
    “캬아, 내가 여자라면 당장 속곳 벗어던졌다.”
    “하여튼 생각하는 거라곤. 임마, 남의 순정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으면 되겠냐?”
    김익호 변사는 여배우 목소리를 가늘게 뽑았지만 기담이 생각할 때, 이 극에서의 여배우는 가늘어도 당차고 그러면서도 애절한 여운이 남아야 할 것 같았다. 김익호가 흉내 내는 목소리와는 다른 진폭과 장단이 필요했다. 기담은 몇 번 같은 대사를 외워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목소리에 취해 코끝이 찡해졌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목소리 흉내는 기막히게 낸다는 소릴 들어오던 터였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담은 대사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어떤 부분은 김익호보다 더 실감나게 할 자신이 있었다.
    봄가뭄을 해갈이라도 하려는 듯, 어제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그 덕분인지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던 수채에도 제법 맑은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공기도 한결 맑아 오늘 같은 날은 인천역으로 가면 행락객 깨나 구경할 터였다. 행락객들은 경성에서 오는 신문물이었다. 바다에서 들어오는 신문물이 물건들이라면 경성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신문물은 사람이었다. 사람 구경도 재미가 쏠쏠했다. 기담은 기세 좋게 흐르는 마을 옆 개울 물소리를 들으며 다시 김익호가 했던 영화 한 대목을 흥얼거렸다. 갑자기 기철이 그의 등짝을 억센 손바닥으로 퍽 소리 나게 후려치며 말했다.
    “그렇지! 생각났다! 그 여자, 터진개에 빠진 너를 구해준 여자!”
    “무슨 소리야? 나를 구해준 여자라니?”
    “아까 기생 명선이 옆에 있던 여자, 그때가 언제냐, 작년 여름 장마 때 터진개에 빠진 너를 구해준 여자라구.”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틀림없다구. 내 눈, 내 기억력은 아무도 못 당할 걸!”
    기담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정말 그때 그 여자였을까. 기담으로서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러나 터진개에 빠져 죽을 뻔 했던 기억은 지금도 몸서리쳐지도록 선연했다. 전날 밤부터 아침까지 내린 장맛비로 수로의 물은 한껏 불어나 기세 좋게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수로를 가리키며 물고기들이 휩쓸려 내려온다고 소리쳤다. 동네 아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담벼락에 걸린 바구니 등속을 들고 수로로 달려갔다. 어른들은 집집마다 부엌이나 광으로 들어온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어떻게든 집을 빠져 나와 쏜살같이 수로로 내달렸다. 빗줄기는 그쳐 있었지만 정말 물고기들이 불어난 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돌다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서서 일렬횡대로 바구니를 갖다 댔다. 기담은 무릎까지 스치는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차가운 물살을 그 틈새에서도 즐기고 있었다. 물고기들이 바구니 사이를 용케 빠져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바구니에는 금방 어른 손바닥만한 통통한 물고기들이 가득 찼다. 그렇게 얼마를 잡았을까. 기담은 허리가 아파 뒤로 몸을 젖혔다. 그 순간, 돌다리가 흔들리면서 휘청거리는가 싶다니 바로 물속으로 빠졌다. 어어. 그리고는 어찌해볼 수도 없이 물살에 쓸려 떠내려갔다. 기담은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것을 잡으려 했지만 물고기를 잡느라 힘이 빠져서인지 무엇인가를 잡았다가도 놓치곤 했다. 기담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몸이 얼어붙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희미하게 누군가 겨드랑이를 껴잡는 게 느껴졌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물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렸을 때, 빙 둘러선 아이들의 파랗게 질렸던 얼굴이 한순간 펴지는 게 보였다. 살았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정신차려봐. 기철이 세차게 기담의 뺨을 두어 차례 갈겼다.
    `그 뒤로 아이들이 기담을 보면 실실 웃었다. 기철에게서 기담을 구해준 사람이 또래 여자라는 소릴 들었다. 못 보던 여자애라고 했다. 아이들이 뛰어 내려가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 여자애는 한치 망설임도 없이 치마끈을 풀고 속바지 차림으로 뛰어들어 기담을 구했다는 것이다. 수영 솜씨도 놀라웠지만 기담을 끌어낸 뒤에도 기담의 배 위에 올라타 두 손바닥을 겹쳐 대고 누르기를 반복하며 정신을 차리게 했다는 것이다. 기침을 하며 물을 토해낼 때에야 기담에게서 내려와 태연히 벗어두었던 치마를 둘러 입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내려가더라는 것이다. 모두 놀라 얼이 빠져 있을 때였고, 깨어난 기담에게 정신이 팔려 그 여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랐다고 했다. 기철은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했고, 당찬 기세가 놀라웠다고 했다. 그때, 그 이마며 눈매가 극장에서 본 명선 옆에 있던 여자와 똑 같다는 것이다. 기담은 한 동안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귀찮기도 했지만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준 그 여자가 몹시 궁금했다. 그 뒤로 아무도 그 여자를 보았다는 아이가 없었다.
    기적소리가 들렸다. 기차가 역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개찰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색색의 한복이나 양장을 빼입은 젊은이들이 많았다. 양산을 든 여인, 챙이 넓은 베레모에 공작의 깃털까지 꽂은 여인, 중절모를 쓴 남자들도 보였다. 그들은 역사를 빠져나오자마자 코를 킁킁거려 바다 냄새를 맡았다. 부푼 가슴이 오르내렸다. 그렇게 바다 냄새나는 곳을 향해 걷다보면 날리던 연분홍 벚꽃들이 모자나 양산 위로 내려앉았다. 몇 년 전 철도국에서 월미도에 유원지를 조성한 뒤로는 점점 행락 인파가 늘었다. 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역사에서부터 월미도까지 이어진 둑길을 따라 벚꽃놀이를 즐겼다. 바닷물을 데워 만든 해수탕을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날이 갈수록 월미도는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경성에서 한두 시간이면 바다를 볼 수 있으니 나들이로는 단연 최고였다. 게다가 월미도 조탕은 해수탕이었다. 그 물로 목욕하고 나면 웬만한 피부병은 다 낫는다는 소문 때문에 더욱 인기가 높았다. 전국각지에서 찾아들지만 아무래도 경성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수 온천을 즐기고 일본식 요정인 용궁각까지 다녀오는 코스는 돈 있는 치들이라면 누구나 즐기고, 또 즐기고 싶어 하는 코스였다. 용궁각은 밀물 때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물에 잠겼는데 그럴 때 용궁각은 그야말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해 노을 지는 저녁이면 저녁대로, 안개 낀 날이면 운무에 가려진 대로 운치를 더했다.
    기담은 기철과 역사 한쪽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경성에서 오는 사람들과 지방 사람들은 차림새에서부터 달랐다. 한복을 입었건, 양복을 입었건 묘하게 달랐다. 기담은 그들을 한 눈에 분간할 수 있었다. 그게 기담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그들도 기담을 그렇게 알아볼 것 같아서였다. 갯가 촌놈이라고.
    기담과 기철은 그들을 따라 둑길을 걸었다. 바닥은 온통 연분홍 꽃길이었다. 만개한 벚꽃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난분분했다. 다른 해보다 꽃들이 유난스레 많이 피었다. 기담과 기철은 포구로 향했다. 포구까지 가는데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행락객에 묻혀 봄을 누려보는 호사를 부리고 싶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이 불었다. 기담은 앞에 가는 여인의 양산 위로 하늘하늘 벚꽃잎 몇 장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꽃잎은 양산에 수놓은 꽃처럼 잘 어울렸다. 문득 극장에서 보았던 그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에게도 저런 양산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기담은 문득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그 여자와 벚꽃놀이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오던 그 손길이 되살아났다. 물길에 휩쓸려가는 꿈속에서조차 그 손길은 부드러웠다.
    멀리 내항에는 정크선이 들어왔는지 지게꾼들이 배에서 내린 물건을 실어나르느라 바빴다.
    처음 갑문이 열리던 날 기담은 아버지와 월미산 중턱에서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갑문이 열리고 다시 닫힌 뒤 바닷물이 차오르고 배가 움직일 때까지 뒷짐을 진 채 몸을 건들건들 흔들며 정크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포구의 배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육중한 흰 정크선은 산등성이 먼 거리에서 보기에도 눈에 확 띄었다. 바다를 압도하고도 남을 위용이었다. 기담도 아버지가 숨 쉴 때마다 희미하게 풍겨 나오는 곡주 냄새를 맡으며 배가 느리게 움직이는 모습을 무연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버지가 주변을 둘러보고 헛기침을 하더니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몸을 틀고, 바지춤을 내려 오줌을 쌌다. 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줌 소리가 정적을 뚫고 풀밭에 푸두둑 떨어졌다. 기담도 바지를 내리고 허리에 두 손을 얹은 다음, 배를 내밀고 잔뜩 힘을 주어 오줌발을 내쏘았다. 그렇잖아도 마렵던 차여서 오줌줄기는 잠깐 동안 기세 좋게 뻗어나갔다. 멀리 있는 배가 오줌줄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두렵구나. 서책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던, 보도 듣도 못한 세상이 저 배에 실려 들어오고 있구나. 개벽세상이 진정 이것이란 말인가.
    아버지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금 뒤에 말했다. 기담은 그때의 아버지의 한탄과 풀숲에 떨어진 오줌방울과 정크선의 흰 빛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기담이 소리를 불어넣고 싶어 안달하는 영화도 그날의 정크선에 실려 들어온 한 세상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담은 두려움 속에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어떤 것도 놓치지 않았다.
    배 안에는 처음 보는,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물건들이 그득하다고 했다. 하꾸라이라 불리는 박래품들은 짐을 풀지도 않은 채 기차에 실어 경성으로 갔다. 정교한 세공품, 금박을 입힌 향로나 불상, 향이 곱고 고운 분화장, 갖가지 빛깔의 비단, 비누 등도 있었다. 아마 유리로 만들어진 무언가도 있을 터였다.
    동네는 들썩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계지의 일인들이나 청인들은 날로 늘어 여기가 누구네 땅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기담은 이 땅에 분명 길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몰래 영화를 보고 역이나 항구를 기웃거리지만 막노동꾼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창고 같은 공장에 갇혀 하루 종일 나무를 토막내거나 얼음을 얼리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을 변신시켜줄 길이 머지않아 보이리라고 생각했다. 어떤 실체와 맞닥뜨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기담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지금껏 자신과 동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 하나 착 붙어 있질 않았다. 늘 거리감이 있었고, 비껴났고, 부유하는 듯했고, 비위가 상했고, 불명확했다. 그래서 언제나 목말랐다. 어딘가에 자신의 진짜 삶이 준비돼 있는데 아직 그곳을 못 찾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애가 탔다. 그런 기담 앞에 나타난 것이 영화였고 변사 김익호였다.
    기담은 장막에 비치는 움직이는 사람들로 기겁할 만큼 놀랐고, 곧바로 영화에 빠졌고, 변사의 말에 홀렸다. 그 홀림 속에서 기담은 자신의 길을 보았다. 말을 똑 부러지게 하거나 남 흉내를 잘 내는 것이 이렇게 뿌듯한 자부심으로 온 적이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실체와 맞닥뜨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그러니까 더럽고 구질구질한 썩은 냄새나는 굴껍데기와 다를 바 없는 삶의 유일한 탈출구로 여겨졌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확신에 가까웠다. 영화 같은 삶을 꿈꾸었다. 기담은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담은 그런 생각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을 뿌리치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동안 기담은 끊임없이 그 여자를 의식하고 있었다. 단 한순간의 만남이었는데 물속을 뛰어들 때처럼 기담의 삶속으로 성큼 들어와버린 그 여자를 어쩌지 못했다

 

    기담은 기철과 부두로 향했다. 부두와 가까워질수록 온통 조기 천지였다. 집집마다 마당에 조기를 널어 말리지 않는 집이 없었다. 벌써 4월 끝자락이니 이제 6월까진 부두가 가장 흥청거릴 때였다. 대나무통을 바다 깊숙이 꽂아 귀를 대고 있으면 조기를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바다 깊은 곳을 대롱에 의지해 귀를 대고 있으면 한 여름 논에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조기떼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전국의 배들이 조기떼를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지금 연평도에 모여 있는 배들도 저 아래 흑산도에서부터 조기떼의 움직임을 쫓아온 배들이었다. 몇 천 석의 배들이 바다 위에서 먹고 자면서 조기떼를 따라 움직였다.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 연평바다로 돈 실러 가세.”
    “연평바다에 포개진 조기 우리네 배가 다 잡아가세.”
    벌써 여기저기서 뱃노래가 흥청거리며 흘러나왔다. 조기가 얼마나 많았으면 포개져 있다고 노래했을까. 기철은 이때쯤엔 바다에 빠져도 조기가 떠받쳐줘서 죽을 일은 없다고 했다. 기를 돋우는 생선이었고, 바다의 돈이었다.
    “어여 어여디여차 어여, 조기야 부서야,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왔느냐. …연평바다에 들어오는 조기, 양주 부부만 냉기구서, 다 잡아냈다 어여디여차 어여.”
    조기철에는 어디서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노래는 조기가 연평도를 떠날 때까지 돌림노래처럼 끝없이 돌았다.
    부두에 가까워질수록 꽹과리 소리가 요란했다. 구경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많았다. 풍어제를 여는 모양이었다.
    구경꾼들 사익 고개를 디밀었다. 무녀가 새끼 흑돼지인 지숙을 던지고 있었다.
    “동방에 청제용왕, 남방에 적제용왕, 사해수부 용왕님네 다 머리 큰 지숙으로다 배를 지고 연평도 풍어제를 기원하니 항아동천 주옵소서.”
    무녀의 주문이 끝나자 지숙을 바다에 던졌다. 꽹과리 소리와 밀려드는 사람들로 더는 구경하기 힘들었다. 기철의 손을 잡아 끌었다.
    기철은 연평도에 파시가 설 때쯤 상선을 타고 막일꾼으로 따라가 조기를 받아 오는 일을 하기도 했다. 조기잡이 배들은 조기를 따라 움직이며 잡아야 해서 잡은 조기를 실어갈 배가 필요했다. 그런 일들이 바다 위에서 이루어졌다. 잡은 조기를 흥정하고 팔고, 이동하는 동안 바다 위에는 수 천 석의 배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시장이 섰다. 파시(波市)였다. 파시에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돈이 넘쳐났고, 객주집이 넘쳐났고 여자와 술이 있었다. 조기떼의 울음소리가 계속되는 한 어촌 촌구석의 불은 화려하게 타올랐다. 바다와 면한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조기 파시가 이루어지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고된 노동이 흥 속에 묻혔다. 며칠 뒷면 기철도 곧 배에 오를 것이다. 그러면 한 동안 녀석의 주머니는 두둑할 것이고, 그 주머니를 따라 여자들이 붙을 것이다.
    사실 기담은 언제가 조기 철인지 잘 몰랐다. 다만 언젠가 부두에서 조기를 싣고 나오는 리어커에 벚꽃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기담은 벚꽃이 지기 시작할 때면 조기철인 줄 알 뿐이었다. 언젠가 조기를 발라 먹으며 머리에서 한얀 돌을 끄집어낼 때에도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리어커를 끌어가던 일꾼과 그 리어커에 널부러진 조기들, 그리고 멈춘 듯 그 위로 떨어지던 꽃잎을 기억했다. 조기 머리에서 나온 하얀돌이 꽃잎과 닮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포구는 온통 조기를 팔고 사고 나르느라 난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지전을 만져볼 수 있는 이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너도 나도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매달려도 될 만큼 조기가 넘쳐났다. 크기에 따라 값어치가 차이가 났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조기들이 집집마다 채반에 받쳐 말라갔다. 밥상에 조기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때기도 했다. 그때는 제물포 전체가 들썩였다.
    물이 차고 배가 들어오면 부두는 늘 수십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깃발을 펄럭이며 몰려들었다. 배에서는 철따라 새우, 꽃게, 전어, 우럭, 갈치, 가오리 등이 그득했다. 사람 키만큼 큰 민어가 배마다 넘쳐날 때도 있었다. 뱃전에 늘어선 젓갈 파는 가게들. 싱싱한 비린내만큼 팔딱 뛰는 생선들, 그 속을 파고드는 사람들의 온갖 고함과 지게꾼들의 바쁜 걸음만큼 길을 비키라고 외치던 소리, 질펀한 웃음소리. 술집마다 생선으로 끓인 탕이 있었고, 술이 넘쳐났다.
    배가 들어올 때 활기차던 몇 시간만 지나면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 부두는 조용해졌다. 그 다음은 갯벌의 시간이었다. 낙지를 잡거나 바지락을 캐고 굴을 따는 동네 아낙들의 바쁜 손놀림만이 있었다. 바다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기철이 기담의 소매를 잡아끌어 줄줄이 늘어선 매운탕 집으로 들어섰다.
    “홍란이는 공장 잘 다니지?”
    술이 몇 잔 들어가고 탕이 식어 비린내가 날 무렵 기철이 물었다. 기철이 술까지 사주며 기담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홍란의 소식인지도 몰랐다. 기철은 무심한 듯 물었지만 오래전부터 기철이 기담의 여동생 홍란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반상의 경계가 없어진지 오래였다. 더구나 기담처럼 다 망한 집에서 겨우 밥을 먹고 사는 처지의 양반은 더 이상 아무도 양반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기담도 일찌감치 양반의 대우를 포기했다. 아버지의 뒷짐진 인생으로 집안은 충분히 고통 받았다.
    아버지는 홍란이 성냥공장에 취직해서 탄 첫 월급 중 얼마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둑길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뒤 그대로 절명했다. 염천에 마신 낮술이었다. 혼자 마신 술이라고 했다. 대뜸 술집에 들어와서는 안주도 없이 탁주를 들이켰다고 했다. 아버지가 낮에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은 거의 없었다. 딸이 성냥갑에 풀칠을 해서 번 돈이라는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양반이 아님을, 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연명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서 그랬을까.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기담은 경황이 없는 중에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문상객은 많지 않았다. 중복과 말복 사이였고, 이틀째부터 병풍 뒤의 시신에서는 썩는 냄새가 났다. 아침에 만든 음식들이 저녁 무렵이면 쉰내를 풍겼다. 문상객들은 서둘러 절을 했고, 술 몇 잔으로 죽음을 위로하고 황황히 사라졌다. 밤새 놀음을 하는 치들도 없었다. 기철만이 내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을 도왔다. 누구보다 크게 울어준 이도 기철이었다. 기철은 정이 많았고 사람을 좋아했다. 제 부모나 식구들에게도 잘 했다.
    삼우제를 지내고 돌아와 기담은 깊은 잠을 잤다. 극성스런 매미 울음이 잦아들고 해가 넘어간 지 꽤 되어서야 일어났다. 물에 만 밥을 신김치와 먹고, 아직도 향내와 시취가 남아 있는 안방을 방문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무언가 옥죄였던 것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홀가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치근대는 것을 은근슬쩍 즐기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내색을 하지 않는 홍란 때문에 기철은 은근히 애가 타는 눈치였다. 기담이 보기에도 홍란은 풍만한 가슴이며 잘록한 허리, 눈초리가 새초롬하게 올라간 게 남자 몇은 족히 홀릴 계집처럼 보였다. 기담은 기철의 물음에 그렇지 뭐, 하고 얼버무렸다.
    기철은 사람은 좋았지만 뜨내기처럼 살았다. 조기철에는 배를 탔고, 미두취인소를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꼬드기기도 했다. 건달이긴 했지만 어쩐 일인지 기철은 기담을 잘 따랐고, 기담 역시 기철이 좋았다. 기철이 매제가 된다고 해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갯가의 삶이 다 그랬다. 부두에 정박했다 떠나는 배처럼 모두들 뜨내기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으로 미곡 실은 배가 오고가는 것을 간파하고 부두에서 떠도는 소문 중에서 신빙성 있는 정보를 모아서는, 미두꾼이 미곡을 팔고 사는 일에 끼어들어 얼마 정도의 개평을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추수도 하지 않은 쌀을 놓고 풍년이 될 것인지 아닌지, 점을 치는 미두 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철은 수중에 돈만 좀 있으면 미두에 뛰어들어 당장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큰돈을 내놓는 이는 없었다. 기철은 떠돌기를 좋아하고 진득하게 일을 못하고 건들대기는 하지만 머리는 빨리 돌아갔다. 얼마간의 돈도 모아놓은 듯했다. 기담은 술잔을 들이켜는 기철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홍란에게는 기철이 제 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담은 취기가 들어 기철과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무언가 기담의 콧등으로 내려앉았다. 벚꽃이었다. 일인들은 벚꽃을 좋아한다지. 한꺼번에 피었다가는 단숨에 절정을 맞고 지고 마는 꽃. 사무라이의 꽃이라고 했던가. 기담은 혼자 중얼거리다 꽃잎을 씹었다. 옅은 꽃 향에 단맛도 조금 배어났다. 기담은 문득 울적해지는 심사를 가누기가 힘들었다. 담벼락에 이마를 댔다. 낮에 극장에서 보았던 여자를 떠올렸다. 푸르도록 흰 눈자위며 그래서 더 빛나는 검은 눈동자는 좀처럼 잊힐 것 같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 여자 생각을 지그시 누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 같은 여자. 기담은 유리에 가슴을 베인 듯했다. 어쩌면 오래도록 아물지 않을 것 같았다.
    <중략>

 

 

 

 

 

 

 

 

 

 

 

 

 

 

 

작가소개 /양진채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 장편소설 『변사 기담』, 공저로 『선택』, 『인천, 소설을 낳다』 등이 있음.
「구멍」으로 제2회 스마트소설 박인성 문학상을 수상, 2016년 문학비단길 작가상 수상.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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