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내 살을 만진다 외 6편

[2014 아르코창작기금]

 

 

겨울이 내 살을 만진다

 

 

안주철

 

 

우리 집은 노을이 필요하지 않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끓는 물을 대야에 붓는다. 저리 가.
겨울을 피해 방으로 들어온 늙은 개 워키가
구석에서 새끼를 낳는다. 낳다가 좁은 방을
돌아다니며 피를 흘린다. 몇 마리일까?

 

워키가 낳은 새끼 등에서 꼬불거리며 수십 마리
물고기들이 천장을 향해 헤엄을 친다.

 

소금 한 줌을 대야에 뿌리고 나는
물이 뜨거운지 뜨겁지 않은지 엄마에게 말해야 한다.
물이 식는 속도를 센다.
물고기를 세는 방법으로
물고기가 더 이상 도망가지 않을 때까지

 

엄마의 발가락을 감고 있던 붕대가 풀리자
피가 쏟아진다. 엄마는 등을 돌린다. 나는
저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등 너머에 엄마의 발가락이 보인다.
발가락 끝이 벌어지고 뼈 한 마디가 톡
대야에 떨어진다.
대야에 붉은 꽃잎이 한 장 두 장
오래도록 펼쳐진다. 한 송이가 될 때까지

 

물을 버리기 위해 대야를 들고 밖에 나가
엄마의 허연 뼈 한 마디를 들고 서서 고민한다.
누구에게 엄마라고 불러야 하지?

 

거울 속에 다시 노을을 끓는다.

 

나는 내 살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장미의 설계도

 

 

장미 두 그루를 뜰에 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무려 여섯 명이다. 그중 한 명이 나이지만
빼도 관계는 없다.

 

뜰에서 파낸 노을이 지고 있다.

 

장미 두 그루는 따로따로
한 번 죽어서는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만든다.
몇 발자국을 보태야 서로 닿을 수 있는 장미 두 그루는
새로운 마당에 꽃을 피워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오늘 뜰을 바꾸지는 못한다.

 

장미는 꽃을 피운다.
가시도 정성스럽게 가꾼다.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가꿀 때
장미는 장미를 뛰어넘어서 핀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면
제 가시를 지나치기도 할 것이다.
죽어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죽어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장미 두 그루는 완벽해질 것이다.

 

잎이 피지 않은 장미 두 그루는 오늘
장미와 장미 사이에
기다란 꽃을 피우고 말았다.
다가갈 수 없는 꽃을 한 송이 설계하고 말았다.

 

 

 

 

 

 

 

 

 

 

버릇없는 설계도

 

 

미인은 언제나 거울이다. 미인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거울 속에 뛰는 심장이 아니다. 미인은 거울의 심장.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미인은 기준, 놀라운 계절.

 

성기를 만지면 다른 나라에 여행 온 기분이다.
내 살을 만질 때에도 여권이 필요하다. 나는
또 어디를 통과하고 있을까?
아내보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먼저
찍는다고 해도 쓸쓸함의 정도에 선두가 있고 후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시 여권이 필요하다.

 

물컵 뒤 미인의 손이 과장된 굵기로 굴절되면
죽은 사람의 얼굴이 된다. 저 손은 움직일 때마다
유언이다.

 

다 모였는데 내가 없다. 또 다시 완벽하다.
내가 나를 반대한 서류를 정리해야 한다면 나는
커피를 마저 마시지 못할 것이고 성공에 도착하면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비추는 거울을 깰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거울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산조각이 나는 것은 또 한 번의 완벽한 기회일 뿐이다.

 

흙벽에 바른 신문을 이제 읽지 않아도 저녁 멍석 위에서
거칠게 익은 감자조림을 밥에 얹어 먹고 나면
어둠이 차례로 일가족을 촛불 밝힌 방으로 밀어넣는다.
어둠 속으로 한 단 두 단 뜨는 별들이 당신이 살던
고향 집으로 오해하지 마라. 당신은 내가 앉은 의자 옆으로
걸어와 앉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그린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뿐이다.

 

기념비가 가득한 묘지에 눈 내리는 저녁이다.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제 노래에 취해
눈을 감고 병실에 누운 사내의 운명이
슬픔과 꽃과 같이 환하지만 창 밖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의
울음. 그게 사랑이냐? 죽어 가는 자를 위한 음악치곤
너무 단조로운 거 아니냐? 자신이 어디에 내리는지
모르는 눈이 묘비명을 지나 어두운 구석에 쌓인다.

 

길가에 얼어붙은 고양이가 출구다.
그러나 저 문은 이미 누군가 빠져나간 낡은 문이고
닫힌 문이고 폐기된 문이다.

 

 

 

 

 

 

 

 

 

 

살아남은 사람

 

 

마을에 마지막 남은 사람이 숨을 거두었다.

 

나는 풀들이 야금야금 씹어 삼킨 마당 구석에서
석유를 듬뿍 먹인 쥐꼬리에 불을 붙였다.
저 편에 돼지껍데기를 물고 가는 개떼가 보였다.

 

나는 사내의 살점을 한 점 한 점
이 세상에서 받아보지 못한 공손한 손끝으로 뜯어내며
소문보다 빠르게 사라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사내의 살점과 뼈를 추려 싸리나무 잠박에 널었다.
살점과 뼈와 눈이 뽕잎 뜯는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말라갔다.

 

황사가 불었다. 새로운 사막이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로 지은 나의 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모아 두었던 사람들의 눈으로
창문으로 날아드는 모래바람을 막아냈다.

 

눈동자에 모래가 박히자
나의 창문들이 울기 시작했다.
빛과 희망을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

 

벽도 지붕도 이제 거의 완벽했다.
마을엔 이제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죽었는데 이상했다.
뼈가 모자랐다. 아무리 다시 세어도 눈동자가 부족했다.

 

한 사람 분이었다.

 

 

 

 

 

 

 

 

 

 

노인이 되는 방법

 

 

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다. 식탐 때문에
혼자 밤늦게 산책을 해도 두렵지 않다.
미인이 쓰러져 뒹구는 술집 근처에 살기 때문에
혼자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사람도 없고
애써 기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도 심심하다. 친구는
사라진 일자리에 빠져있고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미인의 다리가 궁금해서
아내와 통화를 해도 할 말이 없다. 애인이라도
생겼다면 거짓말이라도 정성스럽게 할 텐데.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신기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을 몇 장 찍으며 나를 속인다.

 

혼자 밥을 먹으면 눈물이 난다. 식욕이 없어서
혼자 산책을 하면 외롭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서
혼자 영화를 보면 구석에 가서 울고 싶다.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 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집을 지나친다.
더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보디빌더

 

 

자신을 들여다보는 운동처럼 쓸쓸하고 우울한 게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거울을 닦고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
거울을 가꾸는 우울한 운동.

 

보디빌더, 위태로운 근육에 경계를 세우고
힘을 차곡차곡 쌓는다.

 

사내의 첫 퍼즐 조각은
사내의 출발은
균형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 위태로운 가슴이다.
하체보다 상체를 사랑하는 사내의 편벽.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사내의 생각들.

 

사내, 거울 앞에서 또 다시 가장 자신 있는
포즈를 취하며 거울에 안긴다.

 

거울 밖으로 터져날 것 같은 사내의 표정에
나는 늘 놀라지만
거울을 사랑하는 운동처럼 격한 운동이 있을까.

 

균형을 상실해가는 사내의 체격과 힘을 생각하고
사내의 밤일을 생각하고
사내의 마지막 비애는 몇 그램일지 생각하다가도
아, 사내의 근육은 얼마나 눈부시고 튼튼한가.

 

거울 없이 한 발자국도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는
운동처럼 심란한 운동이 또 있을까.
보디빌더, 오늘의 마지막 포즈를 눈동자에 새기며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양계장

 

 

    집으로 돌아갈 때 저는 골목을 이리저리 물고 다니는 개같이 쓰레기를 쌓아놓은 전봇대 옆이나 물결을 이어붙이며 흘러가는 하천을 서성댑니다. 제가 가질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고 버려진 장난감이라고 해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저는 실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양계장 아래 천천히 쌓이기 시작하는 오늘의 먼지 위로 아카시아 그늘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햇빛을 통과시키는 먼지의 잔잔한 미소같이 앉아서 저는 장난감을 처음 만난 아이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하나하나 뜯어냅니다. 양계장 그늘이 어둠속으로 서서히 빨려들어 가는 저물녘까지 저는 찌그러진 바퀴를 펜치로 펴야 합니다. 이건 장난감을 만나기 위한 헛된 소망이 아닙니다. 이건 새로운 예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하루 일을 다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빛과 어둠을 저울질하던 노을같이 저는 계란을 달아야 합니다. 해가 지면 어둠이 골목에 버려진 깨진 거울에 달라붙습니다. 반사되는 것도 어둠이고 깨진 틈새로 알을 까는 것도 어둠입니다.

 

    군부대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스케이트에서 뜯어낸 가죽을 질겅질겅 씹으며 소란, 중란, 대란, 특란을 분별합니다. 한때 둥근 달을 저울에 올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참으로 불행했습니다. 제가 다시 노리는 건 철조망 너머 군인들의 쓰레기장입니다. 어제는 바닥이 누렇게 눌어붙은 콜드크림을 주웠습니다. 개새끼들! 명령하지 않으면 나이를 먹지 못하는 군인들이 욕을 하며 돌을 던지고 쉽게 웃습니다.

 

    오늘의 일은 이제 막 끝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어디에서 저를 주워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 제법 어둠이라고 발음해도 될 것 같은 밤입니다.

 

 

 

 

 

 

 

 

 

 

 

 

 

 

 

 

작가소개 /안주철

1975년 강원도 원주 출생.
2002년 《창작과비평》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여 등단.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이 있음.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문장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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