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지훈문학관과 지훈 선생

[커버스토리]

 

 

지훈문학관과 지훈 선생

 

 

유종인

 

 

7월 표지 지훈문학관 - 2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222
http://jihun.yyg.go.kr/ 054-682-7763

 

그림 | 소공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모임 삼박자 멤버. 지은 책으로 『철학고양이 요루바 1, 2, 3』 『뜨거운 물고기』 『굿모닝 디지털 굿모닝 카툰』 등이 있다.

 

 

    어디서 낡은 피리 하나를 주워왔는데, 그것을 불 줄 모르는 나는, 괜히 겉만 어르고 달래듯 매만지다 책장 한켠에 두었다. 그것은 마치 좋아하는 고풍(古風)의 시편(詩篇) 마주하듯 곁에 두고 소란스레 떠들다가 가만히 침묵으로 매만지는 버릇과 같다. 나중에는 적막과 한 입술로 나지막하게 겨우 읊조리게 되는 시편이 지훈 선생의 시운(詩韻)이다. 시 한 편을 다 읊조리지 않아도 그 전체의 여운(餘韻)이 마음에 감도는 것도 지훈의 시가 갖는 묘한 매력이다.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문학관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55 주실마을 일원이다. 건평 170여 평에 이르는 목조 ‘ㅁ’ 구조의 기와집은 고풍스러움과 현대적 세련미를 동시에 갖췄다. 전시실과 세미나실, 관리사의 주요 시설이 있고 문학관 밖에는 지훈시공원과 주변 탐방로가 있다. 미망인 김란희 여사가 쓴 [芝薰文學館] 현판은 남성적인 결기와 후덕함, 더불어 단아한 맛도 드리워져 있다. 또 인근에는 지훈 선생의 생가인 한양 조씨(趙氏) 호은종택(壺隱宗宅)이 있어 선생의 어린 시절의 분위기와 후일 낙향 속에서 정진했던 당대 지훈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선생의 동상과 당신의 고졸한 맛이 느껴지는 시를 돌에 새긴 공원을 둘러보며 가만히 읊조려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바위에 새긴 선생의 마음이 리듬을 타고 허공을 떠도는 푸른 사슴의 말들로 청아하고 애상에 잠기다 고즈넉해지지 않을까.
    문학관에 들어서면 선생의 저 유명한 「승무(僧舞)」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어느 젊은 날의 나는 인천에서 경기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중얼거린 적이 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내 교외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날 젊은 비구니를 보았던가 보다. 그의 회색 승복보다 그의 말갛게 민 머리에 눈이 갔을 터이다. 다만 아름답고 고운 것도 슬픔의 한 뉘앙스나 정서적 결을 지닌다는 것에 슬쩍 마음이 기운 것인가 보았다.
    지훈 선생은, 지조론을 쓴 학자이자 시인이며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문학인의 결기를 세운 민족의 지사였다. 삶과 문학과 행동을 일치시키기는 지난한 일임에도 선생은 그 길을 마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문학적 감수성은 동서양을 아우른 문학적 온축(蘊蓄) 위에 서려 있는 그만의 취향과 지향이었던 셈이다. 선생은 젊은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와 플로베르, 보들레르에서부터 동양의 불교 금강경과 화엄경이며 노장(老莊)에 이르기까지 섭렵의 폭이 깊고 넓었다. 결국 서양적 기교주의는 선적(禪的) 무기교주의로 나아갔고 주지(主知)주의적 매혹은 자연과의 교감 속으로 그윽이 번졌다. 거기에 민족적 현실과 개인적 애수(哀愁)의 생래적 분위기가 더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의 시 「낙화(落花)」는 여러 시인의 낙화 가운데서도 단연 압권이다.
    유려한 시적 리듬과 자연에 대한 애수에 찬 늡늡한 서정, 시대와 존재의 환경에 대한 우수어린 시선 등이 이 시에서 서늘한 분위기를 얼러낸다. ‘…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던 선생의 눈길이 머물던 마당의 환한 적막을 내 가슴에도 한켠 들여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외세의 침략과 수탈과 강점의 시대 속에서도 시인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지사적(志士的) 결기를 함께 지녔던 선생의 시는 그 가슴으로부터 울컥 토해 내지는 듯하다가 그윽한 정서의 체에 거른 듯 단정하고 담백한 선미(禪味)마저 감돈다. 그 울음은 강울음의 거짓이 아니요, 그 울음은 소멸과 생멸의 흐름 위에 놓은 모든 숨탄것들에 대한 연민과 그윽한 응시의 결과인 것이다. 즉 단순한 분노나 슬픔의 감정적 표출로서의 울음을 품고 넘어 선량하고 순수한 것들의 안타까운 운명에 대한 포월(抱越)적 사랑의 일단으로서의 울음인 것이다. 그 울음은 곧 시인의 존재 양식이기도 하다.’

 

    지훈 선생이 요즘으로 치면 동인활동을 했는데, 그것은 다 알다시피 청록파(靑鹿派) 참여다. 해방 후 좌파 진영의 선정적 활동에 대립하여 순수문학과 시적 순수의 옹호를 그 기치로 삼은 젊은 시인의 결사체이기도 했다. 당대 그들은 순수한 영혼의 감성을 지닌 공통분모가 있었으나 그 시적 개성의 발현에 있어서는 참신하게 서로 갈렸다.
    청록파 시인 셋이 길을 걸었다. 그러면 항상 지훈이 가운데서 걷고 두진과 목월이 양옆에서 걸었다. 지훈은 성큼성큼 걸어 앞섰으며, 두진은 매번 뒤처졌고 그 둘 사이엔 목월이 있었다. 그 셋의 걸을 때 모습을 보면, 지훈은 항상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걷고, 두진은 직선적인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 채 걸었으며, 목월은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보며 걸었다 한다. 이렇듯 걷는 모습이 다르듯이 이들의 성격이나 시세계 또한 달랐다. 본래적 자연에 대한 사랑과 동경이라는 바탕은 큰 차이가 없었다. 직역하자면 청록파의 ‘청록(靑鹿)’은 푸른 사슴이다. 사슴에 대한 실제적인 측면이든 상상의 이미지든 상관없이 푸른 사슴은 이들 세 시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위상을 스스로 밝힌 것이 아닌가 싶다.   
    지훈(芝薰)의 시는 고풍스러움과 선적(禪的) 아취(雅趣)가 여실했다. 그런 그의 시편 중에서도 비극적 여운이 감도는 한국적 정한(情恨)의 포에지(poesy)가 감도는 시편이 있다. 떠도는 나그네의 심회가 체념(諦念)과 달관(達觀)을 갈마드는 그 속내에는 시대와 운명을 함께 사는 시인의 처지가 오버랩 되곤 한다.

 

보리 이삭 밀 이삭
물결치는 이랑 사이
고요한 외줄기 들길 위으로
한낮 겨운 하늘 아래 구름에 싸여
외로운 나그네가 흘러가느니

 

우피牛皮쌈지며 대모玳瑁 안경집이랑
허리끈에 느즉히 매어두고

 

간밤 비바람에
그물모시 두루막도 풀이 죽어서
때 묻은 버선이랑 곰방대 함께
가벼이 어깨에 둘러메고

 

서낭당 구슬픈 돌 더미 아래
여흘물 흐느끼는 바위 가까이
지친 다리 쉬일젠 두 눈을 감고
귀히 지닌 해금奚琴의 줄을 혀느니

 

노닥 노닥 기워진
흰 조고리 당홍 치마
맨발 벗고 따라오던 망내 딸년도
오리목木 늘어선 산골에다 묻고 왔노라

 

솔나무 잣나무 우거진 높은 고개
아스라히 휘도는 길 해가 저물어
사늘한 바람결에 흰수염을 날리며
서러운 나그네가 홀로 가느니

 

 – 조지훈, 「율객(律客)」 전문

 

 

 

    담배쌈지를 자주 펴는 용고뚜리가 아니라면 장죽을 등허리에 꿰거나 대모(玳瑁) 안경집에서 동그란 안경을 꺼내 쓰며 떠도는 엘리트인 나그네, 그는 지친 다리를 쉴 적엔 구슬프고 정겨운 소리를 잘 얼러내는 해금(奚琴)도 켜곤 하였는가 보다. 풍류를 깊이 지녔으나 한 시대의 분위기에 그저 안주할 수 없는 나그네는 ‘흰 저고리 당홍 치마/맨발 벗고 따라오던 막내 딸년도/오리목 늘어선 산골에다 묻고 왔’던 참척(慘慽)의 아픔을 겪은 ‘서러운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개인사의 곡절로만 운위되는 대목이 아니라 어쩌면 지훈 선생이 살았던 당대 민족적 현실과 겹쳐지는 분위기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본다. 그런 시인이 시대를 위무하고 존재의 허무를 헤쳐 나가는 길은 해금을 켜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노래, 바로 시의 오롯한 길을 걷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율객(律客)은 천한 난민이나 부랑자가 아니라 시대와 세상의 희로애락을 감수하고 그걸 한국적 서정의 한 음률로 걸러내려는 지극한 응시의 소산일 수 있다. 그처럼 시인 지훈은 당당하게 동양적 서정과 관념의 정수를 밝히며 뚜벅뚜벅 시의 걸음걸이로 놓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너무 서둘러 먼 길을 떠났다. 명민한 학자로서 고난의 민족 현실에 뜻을 보인 지사로서 무엇보다 그윽한 동양정신의 시적 포에지를 견지한 시인으로서 그는 좀 더 많은 노래를 남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호처럼 지초(芝草)의 향기처럼 그의 시편들은 여전히 그윽하고 유장하기 그지없다.
    그런 시인의 등 뒤에서 동시에 저 영원한 자연의 숲으로 내닫는 푸른 사슴의 맑은 울음소리가 허공으로 오래 번져 가는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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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 유종인

– 인천 출생. 1996년 《문예중앙》 시 신인상.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 외 몇 권,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 산문집 『염전』 등. 지훈상․송순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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