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소설]울적한 다토_제4회

 

[중편연재]

 

 

울적한 다토 (제4회)

 

 

양선형

 

 

 

 

    4

 

    나는 영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얼마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파손된 벽장을 바라보고 있었고, 문짝 도처에 뚫린 구멍들, 구멍 안에서 좀처럼 새나오지 않는 고립된 어둠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영수의 문자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저기에 정말 동생이 있나. 그것은 정말이지 확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일까. 나는 구멍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내벽은 무른 개흙으로 빚은 것처럼 절어 있었다. 나는 팔을 안쪽으로 밀어붙였다. 모서리 즈음에서 무언가 납작하게 만져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구멍에서 팔을 거둬들였다.
    손바닥이 검댕이 묻은 것처럼 새까매져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다. 검댕을 씻어낸 손바닥은 이미 붉은 빛깔로 부르튼 채였다. 나는 싱크대 안에 양손을 담근 채로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금세 잦아들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성한 몰골이 아니었다. 꼭 걸레짝 같았다. 나는 밥을 먹고 싶었고, 쉬고 싶었고, 씻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잠을 자고 싶었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영수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형님들이 널 찾아.
    나는 영수의 문자를 무시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에 뚝배기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뚜껑을 열자 된장찌개가 있었다. 이미 쉬었는지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뚝배기를 닫았다. 이때 나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한다면 좀 바쁘게 하고 싶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들, 혹은 자질구레한 여러 일들, 먹고, 자고, 싸고, 씻고, 그러한 수순들을 정신없이 밟아가고 싶었다. 동생을 벽장 안에 내버려둔 채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란 동생의 시신을 벽장 안에서 들어내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명했다. 나는 영수에게 답장을 했다. 미안. 할 일이 있어. 영수에게 답장이 왔다. 형님들이 화가 많이 났어. 복수할 거래. 지금도 네 주소를 묻고 있어. 날 인질로 잡았대. 나는 영수의 문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영수의 문자가 끊겼다. 나는 밥솥을 열었다. 밥솥은 비어 있었다. 허탈한 기분이었다. 나는 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신호음이 들렸다. 전화를 받은 이는 영수가 아니었다. 형님들이었다. 형님들이 내게 무슨 말을 했다. 목소리가 험악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있어라. 거기에 있어라. 그러면서 저들끼리 수화기를 바꿔들며 욕을 했다. 이제 네 목숨은 없는 걸로 생각해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나는 형님들이 내게 왜 그러한 말들을 퍼붓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형님들은 나를 향한 분노를 거둬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한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나를 구타할 명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널 개조하려는 거야. 너라는 또라이를 한 명의 어엿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려는 거지. 나는 머리가 아팠고, 하마터면 전화를 끊을 뻔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은 사람은 영수였다. 영수는 나직한 목소리였다. 속삭이듯이, 심약하게, 영수가 형님들이 뱉은 말들을 더듬더듬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말들이 영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화가 났다. 영수가 내게 거짓으로나마 그런 말들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혹은 영수가 형님들의 요구에 묵묵히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영수가 기침을 했다. 목소리 사이로 간격이, 간격들 사이로 더 넓은 간극이 생겼다. 영수의 목소리가 뚝뚝 잘렸다. 메아리가 들렸다. 이제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영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형님들의 목소리도, 환청도 아니었다. 그것은 망가진 스피커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잡음들, 개성이 실종된 단조로운 외마디 음절들이었다. 누군가 형님들과 영수의 음성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었다. 수화기를 들고 있는 일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보다 형님들의 존재가, 말의 내용보다 형님들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매우 두렵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

 

    전화를 끊자 순식간에 어스름이 몰려들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것처럼 대문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 나를 현관으로 이끌고 있는지, 무엇이 나의 다짐, 절대로 문을 열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패퇴시키고 있는지 쉬이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대문의 빗장을 풀고 있는 나의 손을 말릴 힘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었고, 문밖의 누군가를 향해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무력함을 마음 깊이 체감하고 있었다.
    거기 다토가 있었다. 다토는 처음 어머니에게 고백의 말을 전하려 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꽃다발은 싱싱해 보였다. 붉은 꽃잎마다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는 양손으로 다토의 꽃다발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꽃잎들이 낱낱이 나부꼈다. 꽃다발이 팽팽해졌다. 꽃잎들은 부드러웠고 물기가 많았다. 나는 꽃다발 안으로 양손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손안의 대궁을 흔들어댔다. 꽃들이 꽃다발을 놓지 않는 다토와 그것을 빼앗으려는 나 사이에서 동아줄처럼 비벼지고 있었다. 이내 다토가 꽃다발을 놓았다. 나는 나동그라졌다.
    다토가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꽃다발을 파헤치고 있었다. 꽃들 사이에서 동일한 색깔의 꽃이, 꽃잎들 사이에서 자꾸만 새로운 꽃잎이 출현했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머리 위로 뭔가가 얹어졌다. 그것은 다토의 손이었다. 다토의 손이 천천히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다토를 뿌리쳤다. 면전에 다토의 다리가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밀치면 그대로 쓰러질 것처럼 왜소한 다리였다. 나는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다토를 넘어뜨리기 위해서였다.
    내가 거짓말을 했어.
    내가 거짓말을 해서 동생이 죽었어.
    나는 다토에게 뭔가를 애원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범인이 아니다. 나는 죄인이지만 결코 범인이 되지는 못한다. 범인은 다토, 동생을 벽장 안에 감금한 나의 어머니다. 나는 쓸모가 없다. 쓸모가 없어서 범인이 되지도 못한다. 다토는 간신히 서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의 동요가 가슴께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대로 무릎을 곧추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리를 붙들고 서럽게 울었다.
    울음이 사그라지자 온몸에 힘이 빠졌다. 다토가 나를 훌쩍 뛰어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손등으로 여남은 눈물을 닦아내면서, 나는 벽장 옆에 내버려둔 야구배트를 생각했고, 배트로 여러 번, 반복해서, 다토의 머리를 가격하는 상상, 함몰된 얼굴, 처참하게 널브러진 다토의 시신, 차가워지기만 하는 동생,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차례차례 상상했다. 이러한 상상이란 머릿속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광경, 함부로 저지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었고, 다토는 잠시 벽장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재차 내게로 돌아왔다. 이내 다토는 내게 동남아어로 뭔가를 장황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듣거나 알아듣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 말투였다. 그는 뭔가를 매우 난처해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입장을 내게 간절하게 전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자연스레 그가 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매우 꺼려하며, 황급히 이 집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주섬주섬 현관에 떨어진 꽃잎들을 줍고 있었던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이때 나는 비열한 다토가 나를 팽개치고 현관 밖으로 도주하길 바랐는데,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그를 원망하고, 도망치는 그를 따라가, 걸머쥔 배트로 그의 머리를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으며, 맥이 풀린 다리를 널브러진 신발들 사이에 부려놓은 채, 여전히 거기 머물러 있었다. 다토는 나의 동향을 감시하는 것 같기도, 나를 위로하는 것 같기도, 나를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자신의 처지를 매우 비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울적한 기색이었다. 언제나 약이 오르는, 종잡을 수 없는, 한 점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 울적함이었다. 그것은 상태가 아니라 일종의 장애 같았다. 다토를 표현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장애. 다토의 조건.
    다토는 벽장 앞에 이부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문짝을 통째로 뽑아냈다. 경첩이 빠져 있었다. 다토가 동생을 벽장 안에서 안아들었다. 동생은 창백했다. 양팔이 보랏빛으로 멍들어 있었다. 조금 부은 것 같기도 했다. 동생이라기엔 지나치게 차분한, 젖은 빨래처럼 늘어진 육체였다. 다토가 동생을 이부자리에 눕혔다. 이내 다토는 동생의 골반을 주무르며 뭉친 몸을 풀어주려 했다. 나는 동생에게 갔다. 다토와 함께 동생의 뻣뻣한 몸을 주무르면서, 나는 동생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동생은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입가에 피딱지가 남아 있었다. 최후의 순간 입술을 깨물었던 모양이었다. 반투명하게 감긴 눈꺼풀 아래로 아직 빛을 잃지 않은 눈동자가 흐릿하게 비쳐 보였다. 마치 옅은 빛깔의 얼룩처럼 말이다. 나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시신의 느낌은 오래 묵힌 지점토를 연상시켰다. 주무른 자리가 파랗게 변색되었다. 변색된 자리는 사슬 모양이었다. 동생의 무릎이 이부자리에서 반 뼘 가량 떠올라 있었다.

 

    *

 

    우리는 함께 어머니를 기다렸다. 다토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동생의 시신에 두터운 겨울용 이불이 덮여 있었다. 나는 집밖에 나가지 않았다. 다토도 마찬가지였다. 다토는 며칠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나는 동생 옆에서 잠을 잤다. 잠에서 깨고, 하루가 지나고, 다시 잠을 자고, 잠에서 깨어도 다토는 제 기숙사로 귀가하지 않고 있었다. 하루가 빠르게 유실되었다. 우리는 함께 있었다.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식사를 했다. 이부자리는 평평했다. 나는 이불을 들추지 않았다. 나는 종일 다토를 바라보았다. 다토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다토에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하고 묻지 않았다. 다토의 생각이 더 깊어지고 더 진지해질수록 그 생각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전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우리의 언어는 우리가 하는 생각에 한참이나 모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라리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한 상태로 서로를 강렬히 미워할 것이다. 내 경우엔 그렇다. 나는 다토가 밉고 이 집으로부터 다토를 몰아내고 싶다. 다토가 내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의 동거가 어머니가 집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여겼다. 어머니가 돌아오면 첫마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어떤 어조로 당신의 흉악함, 당신의 끔찍함,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 결과의 실체를 똑똑히 고발할 수 있을까? 영수의 말처럼 나는 어머니를 흠씬 패줄 것이다. 흠씬 패준 다음 동생을 덮은 이부자리를 걷어내 불쌍한 동생, 이미 부패한 동생의 시신을 어머니에게 헌정할 것이다. “헌정”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동생의 시신을 어머니의 눈 속에 묻어버릴 것이다. 강제로 묻어버릴 것이다. 그곳에 동생의 벽장을 안치할 것이다. 다토는 말리겠지.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니까.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약자의 사랑이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다토를 사랑하지 않고,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사랑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제 무릎 아래 착착 쌓아갈 뿐이다.
    나는 어머니가 동생의 죽음에 삶을 저버릴 만큼의 충격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동생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을지도 몰랐다. 오히려 태연자약하게, 팔짱을 끼고 서서, 시신의 처분에 골몰할지도 몰랐다. 다토는 그것을 돕겠지. 다토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동남아에 남겨둔 가족들을 사랑하니까. 나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
    어느 날은 동생이 죽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부자리 밑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나는 환기를 하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다토가 창문을 닫았다. 나는 다시 창문을 열었다. 다토가 닫았다. 집이 그늘에 뒤덮였다. 어느 날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다토가 음식을 권했다. 우리는 집안에서 한 발도 나서지 않았다. 다토는 울적한 불침번 같았다. 나는 다시 밥을 먹었다. 다토는 자신의 얼굴을 제 주먹으로 갈겨댔다.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것인지, 몰려드는 잠을 쫓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토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매일 몸의 반절을 덜어내고 있는 듯했다. 자고 일어나면 다토는 어제의 다토가 아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매일 잠을 잤다. 잠은 매일의 칸막이였다. 집안을 뒤덮은 적막 속에서 매일은 하루와 분간되지 않았다. 적막에는 세부가 없었다. 달력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헤아리지 않았다.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으로 형님들이 들이닥쳤다. 시각은 정오였다. 형님들은 예전부터 나를 벼르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두려운 내용을 담은 문자가 쏟아졌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발신자는 으레 영수의 번호였다.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형님들은 아지트에서 봤을 때와는 판이한 인상이었다. 모두들 초췌해 보였고,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으며, 넋이 나가버린 듯했다. 나는 형님들을 올려다봤다. 형님들이 나를 밀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문간이 형님들로 인해 혼잡해졌다.
    형님들은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문간이 비좁았기 때문이다. 나는 형님들 사이를 훑어보며 영수를 찾았다. 영수는 없었다. 대문 밖에는 아직도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형님들이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형님들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대단한 각오를 마친 사람들 같았다.
    우리가 말했지.
    널 죽이겠다고.
    형님들 중 누군가가 말했지만 누가 말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형님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면서 눈앞으로 주먹을 흔들어댔다. 나는 약간 우스웠다. 형님들은 분명히 뭔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기색이었다. 실제로 형님들은 현관 주변에만 포진해 있었다. 쉬이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집안에 혹시 누군가 있지는 않은지, 있다면 그 사람이 대체 누군지, 내 어깨너머를 곁눈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뒤편엔 다토가 서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토의 뒤편에는 동생의 시신이 있었다. 다토가 스르르 내 옆으로 왔다. 형님들이 다토의 행색을 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형님들과 대치했다.
    헐벗은 다토의 눈알이 눈두덩 사이로 툭 불거져 있었다. 형님들이 우물쭈물했다.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때 다토가 형님들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다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토는 평소처럼 걸어갔다. 휘청거리듯,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더딘 걸음으로, 마치 위태로운 사닥다리에 올라서듯 말이다. 몇몇 형님들이 주춤거렸다. 형님들은 갑작스레 눈앞에 근접한 동남아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형님들 뒤쪽에서 아우성이 들렸다.
    너 이리와.
    형님들 중 하나가 말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무리의 면전까지 다가선 다토가 형님들 중 하나의 멱살을 붙들었다. 이거 놓아. 놓아요. 형님들이 다토를 한꺼번에 둘러쌌다. 겹겹이 덧쌓인 형님들의 중심에 다토가 있었다. 홀연히 있었다. 멱살을 붙들린 형님이 두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소심한 저항이었다. 다토는 멱살을 움켜쥔 채 목석처럼 가만히 있었다.
    다토는 납빛이었다. 그렇게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다토는 지금 겁에 질려 있다. 공포 속에서 공포를 감추기 위한 무연함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를 하고 것이다. 형님들이 다토를 밟기 시작한다면 다토는 꼼짝없이 형님들의 발길질에 제 등짝을 내주어야 한다. 형님들은 다토를 그야말로 처절하게 밟아버릴 것이다. 다토는 형님들에게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소하고 무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토와 함께 얻어맞을 것이다. 형님들은 말하겠지. 이게 바로 응분의 대가라는 거야. 물론 형님들이 내게 어떠한 응분을 갖고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겁을 먹은 쪽은 형님들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공손한 자세로 제 단전에 두 손을 겹쳐놓고 있었다. 꾸벅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쏘아봤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다토가 잡은 멱살을 풀어주었다. 형님들이 부리나케 현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꽁지가 빠지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우스운, 그러나 지나치게 예의바른 퇴장이었다. 형님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 다토가 내게로 왔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뜨거운 욕탕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붉으죽죽했다. 나는 형님들을 물리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토는 다토, 내가 아는 다토는 그러한 대단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가소개 / 양선형(소설가)

1990년 광주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제 14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소설『스나크 사냥』이 당선되어 등단.

 

 

   《글틴 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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