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여행 ⑥] 가난 관광 : 전시되는 삶, 사람

 

[여행에세이_이 또한 여행⑥]

 

 

가난 관광 : 전시되는 삶, 사람

–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양재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Siem Reap)에서 고대했던 앙코르와트 유적지보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건 ‘가난’이다. 시엠레아프를 여행하면서 가난을 외면하기란 억지로 숨을 참는 일만큼 어렵다. 그것은 공기처럼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다. 아무리 모른 체하려고 해도 어느새 폐 속으로 스며들고야 만다. 호텔의 풀이나 나무 그늘이 드리운 정원이 있는 카페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늘어져 있어도 문득문득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것이다. 눈을 감아도 냄새로 맡을 수 있다. 그것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의 냄새, 오토바이 삼륜 택시인 뚝뚝 기사들의 땀에 전 시큼한 몸내, 길거리 좌판에서 페트병에 담아 파는 불순물이 섞인 휘발유의 역한 냄새이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코를 막아도 귀로 들을 수 있다. 그것은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박자를 맞추듯 들려오는 “뚝뚝?” “뚝뚝?” “뚝뚝?” 하는 호객 소리와 사원 앞에서 맨발의 아이들이 주문처럼 돌림노래처럼 외치는 “원 딸-라으!” “원 딸-라으!” “원 딸-라으!”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자료 기준 2014년 캄보디아 1인당 국민소득은 1,084달러 수준으로, 집계한 183개국 중 154위이다. 뭇 사람들이 습관처럼 주워섬기는 ‘세계 최빈국’은 아니지만, 가난한 나라들 중 비교적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많이 여행 가는 곳이라, 직접 보고 느끼고 전하는 바 또한 많아 그런 오명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캄보디아보다 아래 순위의 나라들이 차드, 세네갈, 탄자니아부터 최하위 말라위까지 대부분 아프리카에 속해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시엠레아프는 캄보디아 최대의 관광도시로 도로며 수도, 전기, 기타 편의시설 등이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되어 있지만,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금세 민낯이 드러난다. 곧 쓰러질 듯한 판잣집들, 도랑에 넘쳐나는 쓰레기들, 피곤에 찌든 표정들. 가난의 얼굴은 사람과 돈이 흘러드는 도시에서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는 법이다.
    내가 시엠레아프에 머문 이 주 동안 매일 지나다녔던 중심도로 한복판의 야시장이 불에 타 전소됐다. 새벽에 일어난 불로 야시장 건물 위층의 주택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여덟 명이 죽었대요. 그 중 네 명은 아이들이었어요.” 영어를 제법 하던 뚝뚝 기사가 앞을 보고 운전하며 전해주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등이 슬펐다. 나중에 기사를 보니, 불이 난 지 사십 분이 지나서야 겨우 소방차 한 대가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소방관들이 호스를 들고 시간을 끌며 상인들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도 보도되었다. 그사이 안타까운 생명들이 시커먼 연기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죽어갔다. 새까맣게 타 어지러이 널린 잔해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 세계의 일원으로 이들의 가난에 책임이 있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이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놔, 난 여기 앙코르와트 보러 온 거야! 놀러 온 거라고! 게다가 현지인들한테 돈을 쓰고 있잖아!’라고 저항해 봐도, 구걸하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8년간 매달 유엔 산하 아동구호기구인 유니세프에 소액이나마 기부해왔다. 그러나 카드에서 자동이체로 매달 얼마간의 돈이 빠져나가는 것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동떨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도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 은근히 뿌듯해했던 게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노동이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생업 전선에 내몰린 아이들. 화폐경제와 교환가치의 개념을 이해하기도 전에 1달러짜리 지폐의 물성에 사로잡힌 아이들. 순결한 욕망만이 이글거리는 공허한 눈은 나의, 세계의 모든 악덕을 고스란히 비추는 무시무시한 거울 같아 마주 보기가 힘겨웠다.
    캄보디아의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을 발표치 그대로 믿는다면, 이들이 하루 평균 버는 돈은 3,000원 남짓이다. 관광객들에게 1달러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그걸 알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1달러를 선뜻 쥐어주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이유이다. 그래서 이른바 ‘공정여행’ 가이드북이나 기사 따위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말고, 대신 먹을 것이나 학용품 등을 주라고 제안하는 것을 읽었다.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였다. 과자나 연필 등을 건넸지만, 기뻐하거나 만족해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한 번 슥 내려다보고는 예의 “원 딸-라으!”를 기계처럼 되풀이했다. 그게 제 일이라는 듯. 내 노동을 모욕하지 말라는 듯. 그 다음부터 나는 자꾸 목소리가 기어들어갔고 걸음을 재촉해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톤레사프 호수의 수상마을에 가서는 도망치는 것조차 못 했다. 배 위에 있었으니까. 톤레사프 호수로 가는 길은 시엠레아프를 잇는 다른 많은 도로처럼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흙먼지가 시야를 뿌옇게 가리고 눈코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한 시간 여의 드라이브 끝에 호숫가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단체관광 패키지의 필수 코스이자 시엠레아프에서 제일 가까워 톤레사프 하면 으레 들르는 총크네아스 수상마을에 가기 위해서였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마저 세울 땅이 없는 이들이 우기가 되면 범람을 반복하는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마을이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혼자였기에 어디 끼어 탈 만한 배가 없나 둘러보았지만 무조건 한 일행 당 돈을 지불해야 한다며 30달러를 내란다. 도대체 이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관리인에게 찜찜한 기분으로 돈을 내밀고 졸지에 작은 배 한 척을 전세 내어 개인 기사 겸 가이드까지 동반해 거하게 수상마을 유람에 나선 꼴이 되었다. 혼자 낯선 남자와 배에 오르는 게 께름칙했지만, 아직 소년의 태를 벗지 못한 스무 살 가이드 칸은 더없이 상냥한 말벗이 되어주고 사진사가 되어주었다. 톤레사프의 짙은 흙탕물을 가르며 선선한 늦은 오후의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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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시엠레아프에서 톤레사프 호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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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잠시 기분 전환이 되었던 뱃길

 

    마을에 다다르자 세숫대야나 양동이 같은 아슬아슬한 물건을 타고 “원 딸-라으!”를 외치는 아이들과 고개도 제대로 못 가누는 젖먹이를 들어 보이며 애처로운 눈으로 하소연하는 젊은 아기 엄마가 탄 배에 둘러싸였다. 오, 맙소사. 나는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돈 대신 라면을 건넨 것이다. 아이들도 아기 엄마도 받아들기는 받아들지만 역시나, 고맙다는 말도 기쁜 기색도 전혀 없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저녁 한 끼를 해결할 음식이 아니다. 나는 그제야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비즈니스’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했다. 이름을 붙인다면 ‘가난 관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독점으로 운영되는 선착장, 배를 타면 자연스레 유도하는 ‘기부 물품 가게’(라면과 생수 등을 쌓아놓고 이 물품을 사서 직접 마을의 학교에 가져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악어를 풀어놓고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식당, 수상마을의 누추한 풍경을 한층 극적으로 장식하는 양동이 탄 아이들과 아기를 들어 보이는 젊은 엄마. 이들이 가난을 ‘가장’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톤레사프에 떨어지는 노을뿐 아니라 그 비참함을 보러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실제로 극소수의 관광객들만 알음알음 찾는 프렉또알이라는 조류 보호구역에 갈 때 지나쳤던 몇몇 수상마을들은 훨씬 평화롭고 깔끔하고 살림이 나아 보였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여유가 묻어났고, 우리 일행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가장 가난한 아이러니라니. 그 상냥하고 잘 웃던 칸은 뭍에 닿자마자 갑자기 얼굴을 바꾸어 내 손을 붙잡고 우는 소리로 하소연을 시작했다. 집에 자기가 책임져야 할 어린 동생들이 몇이고, 어머니가 아프시고, 뱃삯은 회사에서 다 가져가고……. 녹다운 직전에 마지막 KO 펀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5달러짜리 지폐를 쥐어주고 황급히 선착장을 빠져나와 다시 뚝뚝을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온몸에는 땀과 흙먼지와 자기혐오가 범벅이 돼 들러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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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톤레사프 호수에 떨어지는 노을만은 무심히 아름다웠다.

 

    여행 마지막 날,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뚝뚝을 타고 공항 터미널 바로 앞에 편히 내렸다. 체크인을 하고 큰 짐을 부치고 나서야 메고 있던 작은 배낭에서 선스프레이를 발견했다(항공 보안 규정에 따라 100밀리리터 이상의 용기에 든 액체류는 반드시 수화물로 부쳐야 한다). 한 3초쯤 고민하다가 3분의 1도 안 쓴 3만 원짜리 선스프레이를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게이트로 향했다. 나는 이 여행에서 무언가를 배웠을까?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까?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재화
 

– 대학에서 언론정보학 등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편집자로 1년 중 10개월은 돈을 벌고 2개월은 여행하며 살고 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에 ‘여행의 뒷모습’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blog.naver.com/moodforlife

 

 

   《글틴 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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