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연극에세이④] 한 편의 연극을 함께 만든다는 것의 의미

 

[소소한 연극에세이④]

 

 

한 편의 연극을 함께 만든다는 것의 의미

– – 제24회 경기도 청소년 연극제 예선 참가작 「방과 후 앨리스」 공연을 끝내고 난 뒤 –

 

 

정유정 (경기영상과학고등학교 교사)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 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보내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 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가수 : 샤프 『연극이 끝난 후』 중

 

연극에세이-p2

 

    방학 첫날인 7월 21일. 여러 사건과 사고를 거치면서도 2달 동안 최선을 다해서 연습한 연극 「방과 후 앨리스」를 비로소 무대 위에 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지도 교사로 참여해서 고등학생들과 꽤 많은 연극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을 만드는 동안 나는 연극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문제 상황들에 직면했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면서 작품 제작 과정 이 외의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덕분에 섭섭하고,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영상제작 동아리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경험을 하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들과 즉각적으로 결과물이 보이지도 않고, 한 회 공연을 위해서 몇 주 혹은 몇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단 한 번, 그것도 무대가 있는 곳에 직접 와서 봐야만 관객이 될 수 있고 투자한 것에 비해서는 늘 적게 얻어 갈 수밖에 없는 공연예술 동아리를 만든 것은 딱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자신이 한 번 맡은 역할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둘째, 내가 가진 부족한 점을 타인의 장점으로 채우고, 타인의 부족한 점은 나의 장점으로 채워 나가는 것의 행복을 연극 작업을 통해서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연극은 다양한 장르 예술들의 통합으로 만들어진다. 영상처럼 분업화되어서 각자가 맡은 역할만 잘 해내도 완성된 틀을 갖추거나 단 한 사람의 희생만으로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서 찬사 받을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의 완벽한 공연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갖고 달려간다. 연습 과정 중에 그것을 이끄는 사람은 ‘연출’이다. 그렇지만 연출은 과정의 리더일 뿐 결과물은 무대 위에 서서 연기하는 배우와 정해진 큐에 맞게 조명과 음향을 틀어줘야 하는 스텝들의 몫이다. 연극의 결과는 작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은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발현되는 작품의 에너지를 보고 작품을 판단하게 된다. 즉, 편집 과정을 통해서 결과물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쥐고서 완성된 작품의 마지막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영화 연출과 달리, 연극 연출은 자신이 온전하다고 생각하고 만들어 낸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마지막 과정에 참여한다. 아마도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고,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려진 필연적인 결론일 것이다.
    연극을 올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공연 장소와 일정이 정해져야 한다. 물론 공연장처럼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무대에서만 작품을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있고,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특별한 무대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공연장이 될 수 있다. 요즘은 카페 등의 공간을 빌려서 낭독 형식의 공연을 하기도 하고, 자연 경관을 세트 삼아서 실경 뮤지컬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그리고 참여하는 인원을 고려해서 적합한 ‘희곡’을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물론, 희곡이 먼저 정해지고 공연 장소와 일정을 잡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오디션’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정하게 된다.
    이번 공연은 청소년 연극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희곡 선정의 가장 큰 기준은 ‘청소년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루며, 처음 연극을 하는 학생들도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몇몇 희곡 작가들이 청소년 희곡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면서 엮어 낸 희곡집 『B성년』에 수록된 김나정 작가의 「방과 후 앨리스」란 작품을 보게 되었고, 동아리 학생들이 모두 참여해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장고현(17세)과 복남열(17세)이 ‘청소년의 문제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방과 후 앨리스’라는 컨설팅 업체에 각각의 사연을 지닌 학생들이 고민을 의뢰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첫 연습에서는 대본을 감정 없이 함께 읽고, 각자 맡고 싶은 역할을 생각하기로 했다. 희곡이라고는 국어 교과서에서밖에 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공감이 가는 캐릭터를 마음을 담아서 연기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다음 시간에 역할을 결정하려고 의견을 조율하다 보니 각자가 스스로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역할을 하겠다고 해서 큰 문제없이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개인이 잘하는 것보다도 서로의 호흡을 맞춰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 연극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연습에 많이 빠지는 사람은 비중이 좀 작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인 없는 상황의 감정을 적혀져 있는 대사를 암기해 무대 위의 다른 배역과 주고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늘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이 한 사람의 삶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극중에서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상대방이 그대로 받아주지 않았을 때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대화가 오고가야 했다. 때로는, 아주 격한 감정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절대로 소통될 것 같지 않았던 문제도 결국에는 모두가 원하는 합의점에서 결론을 내리고 무대 위에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만들고, 결국 사람을 통해서 한 편의 공연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 연극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동시에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의 자아가 너무 크게 자리 잡아서 남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청소년들에게는 꽤나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예정되었던 공연 바로 전날, 갑작스럽게 메르스로 인해 공연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심에 잠겼던 일. 기말고사가 끝나기 바로 전날,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들에게 공지된 경연 일정. 개인 사정으로 공연 일주일을 남겨두고, 한 달 반 넘게 연습해 온 주연 배우가 경연에 참가할 수 없게 되어 동아리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후배가 그 많은 대사를 며칠 안에 다 외우고, 얼떨결에 무대에 서게 된 사연.
    10년이란 시간 동안 전공자이자 직업인으로 연극 작업을 해 왔음에도 또 한 편의 작품을 마주하면서 이토록 고단함을 느꼈는데, 처음 연극이라는 것을 접하고 한 편의 단막극을 완성하는 과정을 겪어내면서 경기영상과학 고등학교 공연예술 동아리 【화양연화】 학생들은 얼마나 고충이 컸을까. 하지만 첫 도전에는 늘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2달이라는 연습 과정을 묵묵히 잘 버텨내고, 급작스럽게 주연 배우가 교체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목적한 대로 40분 동안 무대 위의 배우들과 무대 밖의 스텝들이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경험은 앞으로의 삶에 크나큰 추억으로 남아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꺼내보고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거라 굳게 믿는다. 동아리 이름을 마주하는 매일의 순간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화양연화’라고 지었을 때 우리는 이미 연극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ps. 지금까지 연습하면서 보여주었던 최상의 연기와 호흡을 무대 위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준 배우들, 큰 극장에서 음향과 조명 콘솔을 처음으로 만져봤을 터인데 큰 실수 없이 큐를 맞춰 준 스텝들 덕분에 2달의 기나긴 연습 일정은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첫 참가임에도, 앨리스 역할을 맡은 학생의 연기상 수상은 즐거운 방학을 보내라는 또 하나의 선물이 되었다. 모두들 참으로 수고가 많았고, 무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자전거를 빌려 준 안기현 학생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연극에세이-p1

 

정유정 (경기영상과학고 교사)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졸업.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석사 수료. 고양시 연극협회 소속으로 연극연출 활동하며, 경기영상과학고등학교 촬영조명학과에서 연극영화 교사로 재직 중.

 

 

   《글틴 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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