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 담다 외 1편

[신작시]

 

 

남다, 담다

 

 


최현우

 

 

    남겨진 것에 뚜껑을 덮으면
    담겨진다

 

    시간을 나눌 줄 몰랐던 때에
    밤은 하루를 닫기 위해 덮어버린 절대적인 손바닥이었다
    주술을 하는 사람들은
    불을 지펴 어둠을 밀어내며 신의 일부를 연다고 믿었다

 

    겨울이 오고
    삶에서 만났던 모든 겨울들이 오고
    그때 맞았던 어느 겨울의 뜨겁던 눈이
    오늘의 뺨에 내려 필사적으로 녹고
    나눠 먹었던 캔 커피를 쥐던 때처럼
    턱 밑으로 두 손을 모으게 되고

 

    나는 그렇게
    증발이 없는 열을 껴안고

 

    건드리지 않았는데 컵이 떨어져 깨지면
    눈물을 닫아야 할 때

 

    액체가 된 날과
    고체가 된 날
    아무리 주문을 외우고 제사를 치러도
    나는 나에게서 불현듯 쏟아진다

 

    영혼에 홈이 가득 패어있는 사람은
    매일 밤 마음과 시간을 반대로 돌려 끼우려 했던 사람이다

 

 

 

 

 

 

 

 

기로

 

 

    밤늦게 불광천 징검다리를 건너다 발이 빠졌을 때 한낮의 오리들을 생각했다 차갑게 밀려드는 물의 감촉, 어두운 몸에서 오른발만 환해지는 동안 오리의 식탁에 함부로 침범하는 느낌을 생각했다

 

    “한 번 쯤은 취해서 빠지게 될 거야”작년 여름의 예언을 기어코 실행한 오늘, 매부리코와 수정구슬, 별과 구름과 찻잔 속의 찻잎 없이도 당신이 나의 모양을 예감할 수 있었다니

 

    어떤 하루는 감각으로 저장되고 지나버린 신체가 유령이 되어 나를 불쑥 지나간다

 

    오리가 나를 먹어치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울음소리로 당신의 목소리를 쫓아낼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발 하나가 물속에 남아 오리의 꿈을 매일 밤 악몽으로 끌어가면 그들은 아침마다 물속에 얼굴을 처박고 더러운 신발과 신선한 물고기를 구별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젖지 않은 부분과 젖은 부분이 개천을 함께 건넌다 그때, 물가에 앉아 담가두었던 발이 당신이었는지 나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오른발이 빛나는 동안 비로소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시인 최현우_2

작가소개 / 최현우 (시인)

– 1989년 서울 출생.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문장웹진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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