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백일장 수상작품 함께 읽기②]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시

 

[청소년백일장 수상작품 함께 읽기②]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시

 

 

박찬세(시인)

 

 

 

 

    “굽어진 두 개의 생각이 한 송이의 시를 피워낸다.”

 

    ‘원미동’ 하고 발음하면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주변인으로서 살아가는 소시민들. 골목골목 숨어 있는 슬픔과 아픔, 사랑과 희망이 떠오릅니다. 골목은 참 딱딱합니다. 툭, 툭, 잘 부러집니다. 골목이 부러진 곳에서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람들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골목은 가끔씩 조용하고 가끔씩 소란스럽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원미동 골목길에 올해도 어김없이 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2015년 제14회 전국지용백일장 고등부 장원

  골목길

 

    고양예술고 3학년 김대연

할머니는 피부가 얇아
심장의 푸른 길이 잘 보였다
그 길은 늘 가쁘게 뛰었고
할머니는 당신의 언니가
울고 있어 그런 거라고 하셨다

 

원미동의 골목에서
할머니는 한 마리의 벌
꽃이 피어난 자리를 맴돌며
언니가 걸어올 골목길을 걷겠다고
노래하는 강인한 날갯짓

 

기울어진 담장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내가 붙잡은 할머니의 길이 울렁이고
골목의 끝에서 피어난 꽃은
할머니와 닮아 있었다

 

앉은 바닥이 북쪽의 연탄보다
따뜻하다고 할머니의 언니는
눈과 목에 안개를 안으며 말했다
오는 길, 얼마나 많은
골목길에 숨어들었는지
마주한 손에 그려진 붉은 생채기

 

가시에 긁힌 손 위로 할머니처럼
푸른 길이 이어져 있었다
비로소 맞잡은 두 개의 푸른 길이
한 줄기의 물길처럼 뜀박질했다
위에서 아래로 한 줄로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원미동의 골목 방,
굽어진 두 개의 길이
도란도란 한 송이의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피부가 얇아진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일 겁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에 숨겨놓은 푸른 길들을 보여주는 것인가 봅니다. 푸른 길속에서 잃어버린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원미동 골목길, 화자는 노쇠한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의 언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언니는 아마도 먼 북쪽에서 동생을 만나기 위해 험난한 길을 오고 있을 겁니다. 기울어진 담장에 그림자가 어릴 때마다 할머니의 푸른 길은 울렁거렸을 겁니다. 기다림이 할머니를 닮은 한 송이 꽃으로 필 때까지 할머니의 언니는 수많은 골목길에 숨어들었을 겁니다. 골목길에 숨어들 때마다 불안과 두려움이 붉은 생채기로 피었을 겁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언니가 긴 시간을 뒤로 하고 손을 맞잡은 원미동 골목길 “두 개의 푸른 길이/ 한 줄기 물줄기처럼 뜀박질”하고 “위에서 아래로 한 줄로서/ 쏟아져 내”립니다. “북쪽의 연탄보다 따뜻”한 “원미동의 골목 방”에서 “굽어진 두 개의 길이/ 도란도란 한 송이의/ 꽃을 피워”냅니다.

 

 

    “늦은 밤 시는 구부러진 길을 살핀다.”

 

    지금은 대부분의 장례가 병원 장례식장이나 일반 장례식장에서 치러지지만 집에서 장례를 치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방 병풍 뒤에 고인을 모시고 빈소를 차렸습니다. 대문과 골목에 조등을 달아 밤새 길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마당에 쳐놓은 천막 아래 문상객들이 앉아 음식을 나누고 한구석에서는 화투판을 벌여 상가의 밤을 지키기도 하였습니다.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시끌시끌 잔칫집같이 떠들썩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슬픔을 함께 나누던 때가 있었습니다.

 

2015년 제14회 전국지용백일장 일반부 장원

  골목길

 

    서울 삼성고 3학년 박주은

사랑방 병풍이 뒤집어지자
표본이 된 할머니가 골목길 속에 갇힌 것은
머나먼 설화가 아니다.

 

벽에 걸린 몇 해 전 칠순잔치 사진을
아버지는 담담하게 집어 들었다
막다른 길을 돌아가듯 죽음을 너무나
쉽게 준비하던 순간들

 

여우비가 상여 위로 한두 방울 떨어지고
골목길 어귀의 수선화는 고개를 숙인다
나는 세 번째 마디로 유리창을 두드린다

 

흑백사진 속 할머니는 대답이 없고
생과 사를 나누는 가장 좁은 길, 시옷을
나는 애처로이 쓰다듬었다

 

영정 위로 쏟아져 내린 시옷 모양의 검은 갓끈
늦은 밤 조등만이 구부러진 길을 살피는 곳
할머니는 그 골목길 위를 걷는 중이다
드문드문 이어진 이야기들은 매듭으로 연결되고
어머니는 느슨한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셨다
사랑방에선 시집올 적 해 오셨다는 장롱만 빈속을 앓았다
마당을 넘어 먼 길 떠난 할머니는
지금 생몰의 어디쯤을 마무리 중인 걸까

 

검은 끈만 치우면 잔칫날을 불러일으킬 것만 같던
유년시절의 기억들
양 갈래의 줄기는 기억 속에서 바래어가고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 국화 앞에서
못 다한 생을 풀어놓기라도 하듯
골목길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화자의 기억 속에서 불러낸 할머니의 장례식은 저승사자의 갓끈 같은 검은 끈만 치우면 잔칫집 같았을 겁니다. 그래서 칠순잔치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는 기억이 떠오르고 여우비가 상여 위로 떨어지던 기억도 같이 불려 나왔나 봅니다. 검은 끈에서 기쁨과 슬픔, 생과 사를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길을 읽어 내는 화자의 눈이 놀랍습니다. 조등만이 밝히는 굽은 길을 지나 할머니는 생몰의 어디쯤을 마무리 중인 걸까요? “양 갈래의 줄기는 기억 속에서 바래어가고//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 국화 앞에서/ 못 다한 생을 풀어놓기라도 하듯/ 골목길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말하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여운을 길게 남깁니다.
    이 시를 몇 차례 읽고 나니 시는 어쩌면 염을 하듯 “드문드문 이어진 기억들을 매듭으로 연결”해서 “빈속을 앓”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작가소개 / 박찬세(시인)

–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글틴 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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