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 소설] 생텍쥐페리 가 27번지_제2회

 

[중편연재]

 

 

생텍쥐페리 가 27번지 (제2회)

 

 

전삼혜

 

 

 

삽화-생텍쥐베리가-27번지

 

    2. 꽃이 그 뿌리로 스스로 걷기 시작할 때

 

    사막의 밤은 매일 다르다. 안나는 사막에 살기 시작할 때 그것부터 배웠다. 뜨거워진 공기가 차갑게 식어가며 낮의 사막은 모습을 바꾸었다. 차가움이 모래언덕을 덮고 낮의 열기가 꿈처럼 느껴질 때 안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왔다. 에바는 시트를 덮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안나는 주변을 한 번 휘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워프 게이트를 열었다.
    『지문을 인식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열렸다. 알몸으로 비행기 밖으로 나오기엔 사막의 밤은 차가웠다. 안나는 몸에 걸친 옷을 모두 벗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에야말로 죽을 수도 있어.
    매번, 매번 워프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되뇌는 주문.
    안나의 팔과 손가락 두 개는 의수였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부터, 오른쪽 검지와 중지는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 웨일-병원에서 시술한 의수이니 이미 신경계와 단단히 접착되어 있을 테고, 높은 확률로 오늘도 아무 문제도 없이 목적지에 닿게 되겠지만.
    온전히 태어날 때의 몸을 가진 사람도 지극히 낮은 확률로 워프에 실패했다. 하물며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 아닌 금속 덩어리를 단 몸이야, 그 확률은 더 높겠지. 게다가 웨일-병원이 만들어준 의수에 개조까지 했으니. 이건 다 내 업이야. 안나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하며 랜덤 워프 카드를 투입구에 넣었다. 랜덤 워프 카드는 목적지가 정해진 카드보다 가격이 훨씬 비쌌다. 하지만 이렇게 늘 쫓기는 몸인 이상 조금이라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매번 랜덤 워프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는 스탈린그라드.
    물론 오래 전 격전지였던 그곳은 아니었다. 워프 게이트의 모든 이름은 사용자가 붙인 것. 자신의 위치를 일부러 드러내는 이름을 쓰기도 했고, 자신을 감추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자신을 감추면서도 드러내는 이름을 쓰는 것은 몹시 어려웠지만 그건 그날 웨일을 빠져나온 모든 아이들이 가진 고민이었다. 안나는 눈을 감았다.
    도착한 곳에는 패스워드가 걸려 있었다. 지정된 시간 내에 패스워드를 맞추지 못하면 높은 확률로 경고음이 울리게 되어 있었다. 혹은 게이트 주인의 악취미에 따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좌표로 튕겨나가 버린다거나. 안나는 카롤링거가 워프 암호를 바꾸지 않았기를 빌며 지정된 패스워드를 눌렀다.
    『패스워드가 일치합니다.』
    목소리와 함께 어두침침한 거리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안나는 워프 게이트 옆에 항상 놓아두는 옷을 주워 입고 골목을 돌아 카롤링거가 사는 건물로 향했다. 사막과는 전혀 다른 곳. 밤에도 불야성으로 흥청거리며 골목마다 토사물의 냄새와 습기로 가득한 곳. 안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문을 열었다.
    침대에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아이가 나체로 누워 있었다.
    안나는 가까이 다가가 카롤링거의 허벅지를 의수로 꼬집었다.
    “아으아아아아.”
    신음 같은 비명이 낮게 깔렸지만 카롤링거는 일어나지 않았다. 안나는 혀를 차다가 침대 옆에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주사기들을 보고 이마를 짚었다. 그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온 내가 잘못이다. 안나는 한 번 더 힘을 주어서 카롤링거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이번에는 비명도 없이 카롤링거가 부스스 일어났다.
    “어, 안나다.”
    “그래.”
    카롤링거가 주섬주섬 바지를 걸치는 사이 안나는 익숙하게 부엌으로 가 물을 끓였다. 대도시의 식수는 음용 가능한 게 원칙이었지만 뒷골목으로 갈수록 하수도가 부실해 물의 질이 떨어졌다. 끓인 물에 차 티백을 넣은 안나가 옷을 다 입은 카롤링거에게 컵 하나를 건네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카롤링거는 입꼬리를 나른하게 올리며 컵을 받아들었다.
    “설탕 타 주지.”
    “니가 타 먹어요.”
    팔에 가득한 주사바늘 자국. 카롤링거는 머리카락을 뒤로 모아 묶으며 안나를 보았다.
    “벌써 네가 올 때가 되었나? 아닌데. 그러면 약 안 했지.”
    “응. 좀 특이한 일이 생겨서 그냥 왔어. 연락할 방법도 없고.”
    “아하아.”
    카롤링거는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C타입. 태내 약물 중독. 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심한 사지경련을 일으키고 때로는 기절하기도 한다. 카롤링거의 이름 첫 글자인 C는 그런 의미였다.
    태내는 개뿔.
    우리는 한 번도 ‘엄마 뱃속’에 있었던 적도 없잖아.
    카롤링거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안나가 입을 열었다.
    “카롤링거. 너 아직 기억하지? 우리가 본 것들.”
    “웨일에서?”
    카롤링거가 고양이 같은 노란 눈을 빛냈다. 눈 속에 약간의 조소와 공포가 담긴 채였다.
    “그걸 어떻게 잊어? 너를 잊는 게 빠르지.”
    안나는 피식 웃었다. 아직 기억력 감퇴는 안 왔나 보네. 하긴 그러니까 저렇게 약을 구해다가 맞고 있겠지. 마약에 가까운 진통제는 법률적으로는 전문의약품에 속해 의료진이 아니면 함부로 구할 수 없었다. 그 틈을 뚫고 밀거래 시장에서 약을 구하려면 뛰어난 머리가 필요했다. 어쨌거나 카롤링거는 약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고, 카롤링거를 그렇게 만든 것은 웨일이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카롤링거는 약물에 중독되어 있었다. 인공 자궁 안에서 인공 탯줄을 단 채로. 아마 내가 들어 있던 인공 자궁에는 액체 마약이 있었을 거야. 카롤링거는 찻잔 언저리를 핥으며 중얼거렸다.
    “기억나는 대로 다 말해봐.”
    “흐응.”
    이건 안나와 카롤링거의 만남 순서이기도 했다. 카롤링거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건물이었고, 그 건물을 지탱하는 것은 무분별한 진통제 투여였다. 진통제는 시시각각 카롤링거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네가 날 죽여야 할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는 카롤링거에게 ‘아직은 네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안나는 만날 때마다 카롤링거의 기억을 점검했다.
    “어느 파트가 좋아?”
    “인공 자궁 견학.”
    “오늘은 특이한 걸 듣고 싶어 하네.”
    카롤링거는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으로 침대 옆을 두드렸다. 하얗고 매끈하게 존재하는 열 개의 손가락. 안나는 그것이 부러워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카롤링거가 빠르게 기억을 끌어올려 자신과 안나가 공유하고 있는 과거를 뱉어냈다.
    “5살 때였지. 6살 때도, 7살 때도. 매해 웨일 재단 창립일이면 우리는 웨일 병원으로 갔어. 그리고 그 곳에서 인공탄생실을 구경했지. 다섯 살 때는 그게 원숭이 같다고 생각했어. 여섯 살 때는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고. 갔을 때마다 다른 단계를 구경해서 그랬나? 그게 우리라는 걸 안 거는 일곱 살 때였어. 이제 우리도 알 때가 되었다며 인솔자가 아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상세하게 들려주었지. 아, 정확히는 아이가 아니라 웨일-차일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말야.”
    그리고 시작된 이야기는, 에바가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이야기. 안나의 기억과 동일한 이야기. 안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야기였다.
    “합법적으로 구입한 인공 정자와 난자로 수정체를 만들어. 배아가 태아로 변하는 시기에 우리는 각각 다른 이름을 부여받고, 각각 다른 인간이 되지. 그러니까, 다른 타입 말야. A타입은 사지결손, B타입은 시각과 청각 등 감각기관을 제거하고, C타입은 약물을 투여해서 뇌를 맛이 가게 만들어. D타입에게는 영양 부족 등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서 근육이 제대로 발달하는 걸 방해하지. E타입은 조금 까다로운데, 멀쩡한 호흡기나 심장에 강제적 삽관 등을 통해 구멍을 내고. 여기까지? 아니면 계속?”
    카롤링거의 말을 손짓으로 끊은 안나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뒤를 이었다.
    “너희는 특별하게 선택받은 아이들이란다. 왜냐하면 너희들의 희생이 이 지구의 아이들을 구원하기 때문이야. 너희는 치료를 위해 만들어졌고,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될 거야. 그러기 위해 너희는 이곳에서 불편함을 견디고 숭고함을 배우며 보다 많은 인류를 위한 존재로 자라난단다.”
    “백 점.”
    카롤링거가 짝짝, 느리게 박수를 쳤다. 안나가 카롤링거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근육운동 좀 느려진 거 아냐? 박수 소리가 영 시원찮은데.”
    카롤링거가 일부러 힘을 주어 안나의 손을 뿌리쳤다.
    “섭섭한 소리를. 약 맞아서 그래. 아직까지 백 미터 달리기는 13초라고.”
    차가 식어가고 있었다. 안나는 잔에 뜨거운 물을 더 붓고 티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까랑까랑, 잔의 내부와 금속이 맞닿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이상한 애가 우리 집에 왔어.”
    카롤링거는 잔을 침대 옆 바닥에 내려놓으며 눈을 비볐다.
    “사막여우? 도마뱀?”
    “사람.”
    안나의 짧은 대답에 카롤링거가 빙긋 웃었다.
    “죽였어?”
    “아니.”
    안나가 카롤링거의 옆에 털썩 앉았다. 푹신푹신한 침대. 낯선 감각이었다.
    “그 애, 웨일에서 왔어.”
    카롤링거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방금 전의 느릿느릿했던 동작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 구석에 놓아들었던 가방을 들었다. 안나는 손사래를 치며 카롤링거를 말렸다.
    “퍼킹 마더가 보내서 온 거 아냐. 그랬으면 내가 여기 있겠냐?”
    카롤링거는 잠시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다 다시 안나의 옆에 앉았다.
    “뭐, 문 밖에 당장 퍼킹 마더께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끌어안으려고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아니라고 해 두자. 그 쪽이 내 마음이 편해.”
    “옳으신 말씀.”
    안나는 에바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해 설명했다. 웨일 재단, 사고가 나고 2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 그리고 에바가 웨일 재단을 어떻게 생각하고 탄생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는지까지. 이야기를 모두 들은 카롤링거가 혀를 쑥 내밀었다.
    “퍼킹 마더, 대박. 완전히 세뇌에 조작이잖아? 모든 애들을 C타입으로 만들었다는 거 아냐.”
    그 점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네. 안나는 오른손으로 뒷목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생각을 해 보면 그 애도 2년 전에 어느 정도 인식이 있을 나이였는데, 걔가 그렇게 기억을 하는 걸 보면 웨일에서 애들 머리에 무슨 짓을 해도 단단히 한 거구나. 카롤링거가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고 일어섰다. 빼빼 마른 몸이 형광등 불빛에 드러났다.
    “용감하달지, 무모하달지. 걔네도 우리처럼 조작된 애들이면 약물 내성이 있는 애들도 있을 텐데 모든 애들을 대상으로 기억을 조작했다고? 어머니의 사랑은 한이 없구나.”
    안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카롤링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거야.”

 

    안나는 카롤링거에게 몇 가지 약물 이름을 적은 종이를 넘겼다. 종이에는 에바에게 필요한 호흡기 계통 약물 목록이 적혀 있었다. 약물 목록을 쭉 훑어보던 카롤링거가 흥미롭다는 듯 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데리고 살려고?”
    “그럼 돌려보내? 우리 다 죽으라고?”
    “죽이시겠니. 자비로운 마더 웨일께서.”
    “그래. 기억 좀 조작하고 다시 충실한 어머니의 실험체로 삼으시겠지.”
    안나의 빈정거리는 말에 카롤링거는 큭큭 웃었다.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안나의 등에 대고 카롤링거가 지나가듯 말했다.
    “에제키엘이 죽었어.”
    안나의 손이 잠시 멈췄다.
    “왜?”
    “약을 못 구해서. 베시가 알려 주더라.”
    “베시는 잘 있고?” “시각장애야 평범해 보여서 눈에 잘 안 띄니까. 같이 있는 애들도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네.”
    안나의 의수가 허공에서 잠시 헛돌자 카롤링거가 다가와 도와주었다.
    “베시나 다른 애들, 만날 생각은 없어?”
    “없어.”
    안나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카롤링거는 머쓱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었다.
    “다들 너 보고 싶다고 하던데. 아델하고 네가 없었으면 우린 아직도 웨일에 있을 거 아냐.”
    “있기만 했을까. 그래도 난 아직 걔네들 보고 싶지 않아.”
    보면 떠오를 테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웨일에서 웃던 날이. 차갑게 식어 돌아온 친구의 관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추도사를 읊으며 꽃을 뿌리던 날이. 아델이 시트를 걷어 올리기 전까지 친구의 죽음을 단순히 사고사라 믿던 날이. 너희와 사랑하며 살아가던 그 날들이.
    안나는 문을 열며 카롤링거의 뺨에 입을 맞췄다.
    “잘 있어. 카롤링거 웨일.”
    카롤링거가 양 팔로 안나의 어깨를 안았다.
    “또 만나. 안나 웨일.”

 

    우리는 모두 웨일의 아이들. 한 날 한 시에 태어나도록 만들어진 사람들. 그래서 우리의 성은 모두 웨일. 안나 웨일, 아델 웨일, 카롤링거 웨일. 에제키엘 웨일. 그리고 또 수많은 웨일. 비행기 안에서 잠에 빠져 있을 그 애는 에바 웨일.
    안나는 다시 비행기 앞 워프 게이트에 도착해 시크릿 모드를 확인했다. 아직 이상은 없었다. 금속으로 된 의수는 낮의 열기를 견디지 못했다. 복사열. 태양이 내쏘는 열을 흡수하고 다시 받아치는 사막의 저항을 안나의 팔이 모두 흡수했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생텍쥐페리 27번가를 발견하기 전까지 낮 시간을 엄폐물 뒤에 숨어 고통을 견디며 보냈다. 모래바람. 열기. 아주 가끔 쏟아지는 비. 그리고 그 뒤에 피어나던 다양한 새싹들의 푸르름.
    형제라고.
    인류를 위해 태어난 고귀한 존재라고.
    그런 말을 할 거면 우리들에게 미래를 꿈꿀 머리 따위는 주지 말았어야죠. 마더 웨일. 엄마고래. 퍼킹 마더. 빌어먹을 우리들의 어머니.
    가장 지능이 낮은 C타입의 애들도 알아버릴 얄팍한 진실을 우리에게 내보이지 말았어야죠. 당신이 멍청했어. 우리는 온실에서 평화롭게 키워지는 식물이었지. 언젠가 뿌리가 뽑히고 잘려 줄기와 꽃만 남긴 채로 꽃다발이 되어 팔려나갈 것도 모른 채로 말이야.
    그래서 어머니, 당신은 우리 이후의 아이들에게는 더 강력한 방법을 행했나 보죠?

 

    초기 웨일의 아이들은 치료를 받으면 다시 웨일 재단의 학교로 돌아왔다. 어째서였을까?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서? 아델도 왼쪽 허벅지 아래에 의족을 단 채 돌아왔다. 아이들은 떠나는 사람에게 축하했고 돌아온 사람을 환영했다. 그러나 아델의 표정은 한없이 지쳐 보였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 아델은 하늘을 노려보는 일이 많아졌다. 사시사철 푸른 하늘. 비가 오고 바람은 불지만 웨일 재단은 언제나 봄처럼 따스했다. 아이들은 가을의 낙엽과 여름의 장마와 겨울의 눈을 모니터를 통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부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장마는 의수를 녹슬게 하고, 눈은 걸음을 불편하게 하고, 낙엽은 시야를 가리는 장해물이 되니까. 사계절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른이 되어 떠나는 아이가 아직 한 명도 없었을 때, 아이들은 열여덟 살이 되면 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웨일 재단을 떠나기 싫다는 두려움을 함께 갖고 잠들었으며 일어났다.
    안나가 의수 수술을 받기 며칠 전, 아델이 함께 산책을 하자고 했다. 아직 신경이 덜 붙었다며 굳이 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아델의 팔짱을 끼고 안나는 새싹들이 자라나는 숲을 걸었다.
    “안나.”
    “응.”
    아델이 물었고, 안나가 대답했다.
    아델이 옅게 웃으며 안나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너는 수술을 받고 싶어?”
    “응.”
    왼팔 아래의 허전함을 완벽한 의수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두 손으로 컵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세수를 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 우산을 들고도 다른 한 손으로 가방을 들 수 있다. 그 당연한 것을 왜 아델은 묻고 있는 걸까.
    “수술을 하다가 죽는 애들도 있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차갑게 식어 관에 담긴 채 돌아왔다. 그러나 그 애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아프지 않았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에 모두들 눈물을 훔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친구를 잘 보내주자. 모두가 죽은 아이의 가슴 위에 한 송이씩 꽃을 올려놓고 나면 관은 소각로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건 낮은 확률이잖아. 게다가 난 의수 수술인걸. 비교적 간단하다고.”
    짐짓 씩씩한 척 안나가 가슴을 폈다. 아델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한 번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나.”
    “응.”
    “웨일로 돌아오면, 내 말을 기억해.”
    “어떤 말?”
    아델은 안나의 머리를 잡고 끌어당긴 후, 귓가에 속삭였다.
    “마더 웨일은 성인이 된 자식을 원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었을까.
    안나는 병원에서 울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집어던지면서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의수는 놀라울 정도로 신경과 정확하게 접합되었다. 원하는 대로 구부러지고 펴지며 안나의 뇌가 보내는 행동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단지 안나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수술이 팔꿈치 아래가 없는 왼팔뿐 아니라 아무런 이상이 없던 오른손에도 행해졌다는 것이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서도 신경 이상이 발견되었어. 조속히 의수 수술을 하지 않았으면 네 오른손마저 아마도.”
    “듣기 싫어!”
    안나는 자신에게 설명하는 의사를 향해 물컵을 집어던졌다. 물컵은 정확하게 날아갔지만, 의사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그것을 피해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안나, 우리를 믿어.”
    의사는 안나를 억지로 침대에 눕히고 빠르게 진정제를 투여하며 속삭였다. 그 손으로도 피아노를 칠 수 있어.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잘 칠 수 있을 거야. 우리를 믿어. 네 오른손은 네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죽어가고 있었어.
    그 말을 믿어야 할까?
    믿어야 했다. 행복하려면. 그러나 안나는 그럴 수 없었다.
    웨일 재단으로 돌아와 피아노를 두드렸을 때, 손끝에 닿는 건반의 감촉은 예전과 달랐다. 왼손을 쓸 수 있게 되어 양손을 이용한 자유로운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른손 끝으로 누르던 건반의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무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뇌가 보내는 신호대로 손가락에 힘이 주어질 뿐. 검지와 중지로 누르던 화음의 감촉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안나는 울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안나가 진정할 때까지 학교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 말은 아델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델을 만나야 했다.
    아델이 필요했다.
    안나는 학교로 돌아와 아델을 찾았다. 지팡이 없이도 흔들림 없이 걸어오던 아델은 안나의 꽉 쥔 오른손을 보고 비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웃기지 마! 뭐가 너도야? 왜 처음부터 말 안 했어?”
    의수가 뇌의 명령대로 움직여 아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아델은 짜증스럽다는 듯 안나의 손을 떼어냈다.
    “말한다면 네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는데?”
    말한다면. 그래서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아니, 병원에 가지 않을 방법이 있었을까? 선생님들이 안나의 말을 믿어주었을까? 안나 자신도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고 싶다는 소망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안나는 흐려지는 눈앞을 차가운 손등으로 훔치고 아델을 쏘아보았다.
    “넌 어디야?”
    아델은 말없이 웃옷을 벗었다. 막 자라나기 시작한 가슴이 드러나고, 상체가 드러났다.
    아델의 오른팔은 합성된 사진 같았다. 어깨부터 일부분은 금속이었고, 나머지 팔은 원래의 팔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가끔 잊어버려.”
    다시 옷을 입으며 아델이 안나에게 웃어 보였다. 안나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왜, 말 안 했어……”
    “말했잖아.”
    아델이 몸을 굽혀 안나를 끌어안아 세웠다. 안나의 뺨이 닿은 아델의 어깨에서 체온보다 낮은 온도가 느껴졌다.
    “말했다 해도 네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겠어.”
    아델은 비교적 빨리 수술을 받은 편에 속했다. 아델과 안나는 다른 교실로 옮겨져 수업을 받게 되었다. 운동장이나 복도에서 아직 수술을 받지 못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전대로 인사를 했다. 더러는 안나와 아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아델과 안나는 그럴 때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웃었다.
    합병증이 시작될 거야. 캐서린이 병원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아델은 안나에게 속삭였다. 우리야 신체 결손 타입이니까 한 번에 여러 시술이 가능했지. 하지만 B타입은? C타입은? 그 애들은 합병증이 생길 거야. 그래서 다시 웨일 병원으로 돌아가겠지.
    캐서린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수술이 성공적이지 못해 입원을 오래 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안나는 책상 밑으로 아무도 모르게 아델의 손을 쥐었다. 살짝 쥔 손에 으스러지듯 답장이 돌아왔다.
    그리고 아서가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죽었다. 아서의 장례는 규칙에 따라 학교장으로 치러졌다.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아서의 가슴 위에 한 명씩 붉은 장미나 흰 백합, 노란 튤립을 놓았다. 아서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발목 아래가 없었다. 시트는 가슴 아래를 전부 덮고 있었다. 아델은 안나에게 눈짓했고, 안나는 아델이 시트를 걷어 올릴 틈을 주기 위해 일부러 왼팔을 잡고 소리를 지르며 뒹굴었다.
    “선생님, 아파! 이쪽 팔, 이상해요!”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린 틈을 타 아델이 아서의 몸을 덮고 있던 시트를 걷었다.
    아서는 오른쪽 손이 없었다.
    금속으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손 모양의 석고 모형이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선생님들이 달려오는 사이 대다수는 안나를 보았고, 몇 명은 아델을 보고 있었다. 그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안나에게 통증을 줄이는 약물을 주사하고 나서 선생님들이 돌아올 때까지 아델은 그 시트를 들고 서 있었다. 선생님에게 시트를 넘기며 아델은 건조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오른팔에 감각이 좀 둔해서.”
    그날부터 평화롭던 웨일 재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러는 선생님에게 가서 물었다. 아서는 왜 그렇게 되었냐고. 선생님들은 모든 아이들을 모아놓고 훈시했다. 안나를 봐, 오른손 중지와 검지도 수술했잖아? 너희가 모르는 사이에도 너희 몸에는 이상이 생길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추가 수술을 하기도 해. 그러다가 의료 사고가 생긴 거야. 아서의 일은 분명히 불행한 일이지.
    하지만 그 애는 인류의 행복을 위한 고귀한 희생자야.
    복도에서 안나를 마주한 아이들은 더 이상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왼팔로 쏠리던 시선이 이제는 오른손으로 쏠렸다. 안나는 주먹을 쥘 수도, 펼 수도 없어 어정쩡하게 오른손을 뒤로 감추고 다녔다. 아델은 아이들이 모이는 통신망에서 수없이 밀려드는 질문을 받았다. 그곳이 감청되지 않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안전했다. 어른들은 아델이 아직 일을 꾸밀 줄 모르는 어리숙한 아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아델은 침착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랜덤 워프 카드를 소량씩 밀반입했고, 학교 화학실에 있는 재료를 훔쳐다가 건물을 날리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금이 갈 정도의 폭발물을 만들었다. 오른손과 왼손은 원래 한 쌍이었던 것처럼 그 모든 일을 차질 없이 해냈다. 그 사이 안나는 아이들을 모았다. 가장 구시대적이고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교실과 교실로 옮겨가는 틈새에서, 식당 문을 나가면서 쪽지를 주고받았다.
    더러는 이 재단을 택했다. 아서처럼 죽을 확률이 있더라도, 아델이나 안나처럼 원하지 않는 시술을 받을 위험이 있더라도 자신의 몸이 온전해지는 가능성을 택했다. 더러는 안나의 편에 섰다. 아델은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재단을 택한 아이들이 수술을 받으러 갈 때까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병원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살아남았는지, 혹은 죽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다른 시설로 옮겨갔다고만 했다.
    “다 죽은 걸까?”
    안나의 말에 아델이 코웃음을 쳤다.
    “설마. 진짜로 다른 곳에 갔겠지.”
    “강제 시술을 또 했을까?”
    이번에는 아델이 코웃음을 치지 않았다. 다만 먼 곳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야.”
    재단을 택한 아이들이 모두 떠나자 교실에는 열 명 정도가 남았다. 그 중 두 명은 재단을 택한 아이들이었지만 아델은 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분노가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개중에는 자살을 시도한 아이들도 있었다.
    거창한 구호는 없었다. 장렬한 투쟁도 없었다.
    다만 자신으로 살고 싶은 아이들의 분노가 웨일 재단을 채우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재단을 택한 두 명의 아이들에게까지 랜덤 워프 카드를 나눠준 후, 아델은 학교 벽에 거대한 금을 만들었다.
    폭발물 소리에 화재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자동으로 분사되는 소화기 분말이 복도를 하얗게 덮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 ‘선생님’을 넘어뜨리고 워프 게이트로 달려갔다. 한 명씩 한 명씩, 어디론가 사라졌다. 로그는 남지 않았다. 아델은 마지막까지 남겠다고 했지만, 안나가 아델을 떠밀어 먼저 떠나게 했다. 그리고 안나가 떠났다.
    몇 명이 사라졌는지, 몇 명이 남았는지도 아무도 몰랐다.
    서로가 서로를 수소문할 수도 없었다.
    거대한 정보 속을 헤매며, 매일 갱신되는 워프 게이트의 목록을 확인하며, 서로가 서로를 찾아 헤맸다. 서로 자신의 워프 게이트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는 가장 가까운 한두 사람에게만 공유했다. 안나의 상대는 아델이 아니라 카롤링거였다. 마르고 병약해서 늘 허공을 보고 있던 선천성 약물중독자. 그 애라면 자신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자신은 영영 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카롤링거는 살아남았다.
    오늘까지.

 

    안나는 시트를 걷어차고 잠든 에바에게 담요 하나를 더 덮어주고 마른세수를 했다. 아델의 말. 마더 웨일은 성인이 된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 그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은 사막에서 혼자 살아남으면서부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와주기도 하면서 정보와 식량을 얻어 비행기 무덤이 있다는 곳까지 와서였다.
    성인이 된 자식을 원하지 않는다.
    영원히 자신 곁에 머무를 자식을 원한다.
    마더 웨일은, ‘영원한 어머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첫 번째 아이들이 그것을 박살냈으니, 그 다음 아이들은 더 강력한 족쇄를 채운 거로군. 떠나가지 않도록 말이지.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단다. 그러니 너희는 여기를 벗어나면 안 돼.
    기만이야. 사람은 자라지. 어떤 약물로도 어떤 처치로도 우리가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어. 우리가 영원히 당신의 아이로 남기를 바랐다면 당신은 더 나은 방법을 생각했어야지.
    우리를 성인이 되기 전에 모두 죽여버린다거나 하는 방법 말이야.
    안나는 잠든 에바를 보았다. 카롤링거에게 넘겨준 쪽지에 적힌 약물들을 생각했다. 익숙하게 약의 이름을 써내려가던 에바의 매끈한 손가락을 생각했다. 어디로도 더 도망갈 곳이 없어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몸뚱이를 보았다. 안나보다 작은 몸. 그 몸이 사방 일 미터 안에서 살아 숨을 쉬고 있었다.
    ‘죽여버릴까.’
    카롤링거가 에바를 죽일 거냐고 물었을 때, 안나는 ‘죽이지 않을 거’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죽이지 않았다고만 대답했다. 죽이게 될지, 죽이지 않게 될지는 안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함께 재단에서 도망쳤던 아이들 중 몇 명은 죽었다. 몇 명은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공동체를 이루거나 외따로 떨어져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약물이나 보조자를 필요로 하는 웨일의 아이들은, 아마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건 죽음을 뜻하는 거겠지.
    ‘너도 곧 죽지 않을까.’
    안나는 자신이 살아갈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의수는 가릴 수 있고, 지속적인 약물 투여나 보조자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탈출 직후 개조해서 이제는 훌륭한 무기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어서, 웨일 재단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힌 곳으로 떠날 수 있게 되면……
    ‘나는 뭐가 되어야 할까.’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꿈은 오른손의 두 손가락이 잘려나간 순간 버렸다. 한 손으로 피아노를 어설프게 치며 두 손으로 피아노를 완벽하게 칠 날을 기다렸던 안나는 그 순간 사라졌다. 의수와 새로 가져다 붙인 손가락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해서 메트로놈이라도 단 것 같았다. 오히려 원래부터 안나의 것이었던 세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있었지만, 촉각은 없는 손가락이었다. 반응하되 느끼지 못하는 손가락이었다. 차갑고 뜨겁고 따갑고 짓눌리는 통증을 자연 피부에 비해 지극히 덜 느끼는 의수로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손을 가지고 하는 일을 찾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뭘 하고 싶던 걸까.
    나는 왜 사막에 왔을까.
    워프 게이트가 왜 사막에 있었을까. 처음 안나가 내린 워프 게이트는 여기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워프 게이트는 사막을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이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비행기들의 무덤에, 왜 워프 게이트가 있었을까. 비행기를 가져다 버리기 위해서?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난 2년 간 이곳에는 단 한 대의 비행기도 더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도 이 게이트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안나가 발견한 이 비행기가 가장 마지막으로 버려진 비행기가 아닐까. 모든 비행기들의 막내가 아닐까.
    워프 게이트가 지금처럼 상용화되기 전, 사람들은 이 무거운 고철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지금은 불편하게 허공에 떠서 이동할 필요가 없지만, 옛날 사람들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를 가로질러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했다. 시간과 인력과 수많은 자원을 낭비하던 시대였다.
    이 사막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 저 하늘 위에서.
    안나는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막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저 끝에 펼쳐져 있었다.

 

    카롤링거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날이 되었다. 에바는 의외로 약 없이도 잘 버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웨일 재단에서처럼 충분한 운동과 영양을 보장해 줄 수 없었다. 저장하기 편한 식량을 먹고 밤에는 추위와 싸우고 낮에는 더위와 싸우며 걸어야 했다. 에바가 비행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다.
    “괜찮아. 이 정도면.”
    에바는 신발을 벗고 식은 모래를 밟았다. 안나는 오늘 저녁에는 자리를 비울 거라고 이야기하며 에바를 곁눈질했다. 조금 말랐나. 아니면 부은 건가? 비틀거리면서도 사박사박 걷는 에바의 뒤에 대고 안나가 물었다.
    “왜 재단을 빠져나왔어?”
    에바가 뒤를 돌아보았다.
    “알고 싶어서.”
    “이제 알게 되었잖아.”
    에바가 조금 더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그러네. 적막한 곳이어서 그 소리가 안나의 귀에까지 닿았다. 안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워 물었다.
    “그 다음에는?”
    에바가 뒤로 돌았다. 다시 걸어와 안나와 마주보고 섰다.
    “다음?”
    “보물을 찾은 용사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잖아.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음. 생각 안 해 봤는데.”
    에바가 싱겁게 웃었다. 안나는 일부러 모든 감정을 지운 목소리로 물었다.
    “죽고 싶어? 아니면 살고 싶어?”
    어떤 결정을 하든 너를 도와줄게.
    에바는 안나를 지나쳐 비행기로 들어갔다.
    “내일까지 결정해도 돼?”
    에바의 목소리에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에바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안나는 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옷을 벗어서 한쪽에 놓고 랜덤 워프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젠장, 이것도 좀 더 구해놓아야겠다. 얼마 안 남았네. 식량과 물은 아직 여분이 남아 있었지만 둘이 지내게 되면 소모하는 속도가 늘어날 것은 뻔했다. 간 김에 이것도 좀 사야 하고, 약도 받아야 하고. 사막도마뱀을 기르는 거면 쥐나 몇 마리 잡아다가 던져주면 될 텐데 사람을 기르려니 이것도 일이 많구나. 안나는 한숨을 쉬면서 카롤링거가 사는 곳, 스탈린그라드로 이동했다.
    쾅.
    비상용 격벽에 부딪친 안나가 나가떨어졌다. 패스워드가 틀렸다는 음성이 나오고, 강한 바람이 불어 안나를 격벽 쪽으로 날려 보냈다. 아, 카롤링거, 성격 더러워. 안나는 욱신거리는 온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패스워드 입력기로 다가갔다. 뭐가 문제야? 실수라도 했나? 안나는 눈을 찡그리고 입력기를 보았다.
    패스워드의 자릿수가 바뀌어 있었다.
    웨일의 아이들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서로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도움을 청하지 말자고. 다른 사람에게 위험이 미치지 않게 도와달라는 말 대신 도망치라는 말을 하라고.
    바뀐 패스워드는 일곱 자리.
    안나는 이 패스워드가 아니길 바라며, 알파벳 하나하나를 입력했다.
    『RUNAWAY』
    문이 열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더럽고 흥청거리는 도시에, 카롤링거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패스워드.
    도망가.

 

 

 

작가소개 / 전삼혜(소설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제8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으로 장편소설 『날짜변경선』과 『내일의 무게』(공저) 『어쩌다 보니 왕따』(공저) 『조용한 식탁』(공저)이 있다.

 

 

   《글틴 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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