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유감_10주년 특집] 이젠 아무도 MSN을 쓰지 않아

 

[글틴유감_10주년 특집]

 

 

이젠 아무도 MSN을 쓰지 않아

 

 

 

백지윤

 

 

 

 

*

    봄이 다 지나갔다. 정신 차리고 보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나간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다. 오월이 저물어간다. 오늘은 비 소식을 듣고도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아 옷과 머리를 적셨다. 나는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또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다.

 

*

    열일곱 살이었고, 학교에 가는 게 죽는 것만큼 싫던 때였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백일장에 참가했었다. 먼 지방에서 열리는 것이었기에 당당히 학교를 빠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네 시간을 가야 했다. 버스 안에는 버스 기사와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버스에 타자마자 코를 골았다. 나는 맨 뒤 창가 자리에 앉아서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했다. 나머지 한 명은 뭘 하는 건지,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관심 없었다.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했을 때, 버스 통로를 빠져나가며 슬쩍 봤는데 노트에 글을 쓰고 있었다. 무릎에 노트를 올리고 허리를 잔뜩 구부려서 불편한 자세로, 그런데 너무 집중해서 그게 불편한 줄도 모르는. 아, 얘도 백일장에 참가하는 애구나. 나는 휴게소에서 초콜릿 하나를 샀다. 그걸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불편한 자세로 글을 쓰던 그 애를 불렀다. 이름을 모르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어…”라고밖에 못 했다. 너도 백일장 나가? 이거 먹어. 그리고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백일장 장소에 도착해서는 뭘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분명한 것은 나는 상을 타지 못했다는 것과, 날씨가 좋아서 학교 빠지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 서울로 올라올 땐 버스가 아니라 기차를 타고 싶었다. 태어나서 기차를 혼자 탄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애를 또 만났다. 그제야 통성명을 하고 짧은 대화를 했다. 나랑 동갑이고,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어느 작가를 좋아하는지, 오늘 백일장은 어땠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없는 그런 얘기들이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 애는 인터넷 사이트 중에 글을 봐주는 곳이 있는데 너도 올려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사이트 주소를 말해주려는데 그 애가 내려야 하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리면서, 그리고 창밖에서 급하게 불러주었지만 내가 미처 받아 적지 못했다. 내가 들은 것을 토대로 몇 번 검색을 해 봤지만 그런 사이트는 없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잊기로 했다.
    학년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었다. 학교 게시판에 촌스러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 포스터에 적힌 주소가 바로 그 주소였다. 바로 컴퓨터실로 달려가 글을 썼다. 그때의 글 제목, 내용, 그 글에 댓글 달았던 친구들, 댓글의 내용들, 하나하나 다 기억나지만 차마 부끄러우므로 여기엔 적지 않겠다.
    나에게 사이트 주소를 급하게 불러 주었던 그 애와는 또 한참 후에나 만날 수 있었다. 간혹 ‘아, 그런 애가 있었지’ 하고 생각이 나서 수소문을 해 보면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영영 못 만날 줄 알았다. 열아홉 살이 되고 입시를 준비할 때, 문예창작과 실기시험장에서, 그 애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란히 합격했다. 참 멀리 돌고 돈 인연이다. 지금은 또 연락이 되지 않지만, 언제고 다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날 것을 믿는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람을 좋아하고, 또 미워하기도 했던 한 시절이었다. 다시 또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요즘도 종종 생각하지만 자신이 없다. 모두가 너무나도 서툴렀지만 그게 서투른지도 몰랐던, 그게 즐거웠던, 밉지 않았던, 아니 사실은 정말로 미워했지만 가끔 생각나서 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하게 만드는.
    그리고 사실은 이게 착각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야밤에 문 닫힌 학교 담 넘어 들어가서 뛰어놀던 어떤 여름과, 지금과는 모습이 많이 다른 마로니에 공원에서 벚꽃잎과 시집을 찢어다 모아 태우던 4월을, 여기에 하나하나 다 적기엔 지면이 너무나도 부족한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

    짧은 주말이 끝나가고 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출근과 야근과 퇴근이 반복되는 날이 계속될 것이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에 하루 종일 픽 픽 웃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무슨 얘기들을 쓰셨을지, 혹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분이 계실는지. 모두에게 안부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맺을까 한다. 다들 많이 바쁘신지? 잘 지내시는지? 막상 안부 묻자니 낯간지러운 말만 하게 되어서 다 지우고, 결국엔 잘 지내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내가 참 못났다.
    우리는 또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작가소개 / 백지윤(글틴 필명 : 도도한 여자)

– 좌우명은 운칠기삼. 요행수를 믿으며 살아간다. 아직까지 나빴던 적은 없다. 현재 계획에 없던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도도한 여자라는 필명을 장난처럼 사용했다. 실제로는 도도함과 거리가 멀어서 큰일이다.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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