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유감_10주년 특집] 나의 탈주 성공기

 

[글틴유감_10주년 특집]

 

 

나의 탈주 성공기

 

 

 

임국영

 

 

 

 

    때는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0년 전, 나는 17살이었고 동네에서 알아주는 찐따였다. 물론 농담이다. 동네는 나 같은 거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찐따였단 건 사실이다. 시골은 끔찍한 곳이다. 밤이 되면 너무 쉽게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깨어서 돌아다니는 이가 아무도 없단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밤이 돼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번화가로 가려면 두 시간마다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사십 분을 나가야만 했다. 그런 시골에 5살 때부터 내려와 살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곳 태생이 아니라는 의식 때문이었을까. 나는 좀처럼 아이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다. 나는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실은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열하나나 열둘까지 맞질 않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건물에 있었지만 전교생이 300명을 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제 서로를 친구라기보다는 친척에 가깝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장소에서 점심시간에 혼자 밥 먹는 일은 고됐다. 나는 가끔 비참한 심정으로 아이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갔고 그들은 날 밀어내지 않았다. 그럴수록 난 속으로 그들을 밀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식으로든 탈주를 꿈꿨던 때였다. 나에겐 가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수학이나 영어 축구, 달리기, 하다못해 리코더와 싸움, 농사일, 신발끈 묶기, 전화로 짜장면 시키는 일까지 그 어떤 분야에도 두각을 보이지 못했던 나는 소설이란 걸 쓰기로 했다. 이유는 이랬다. 주변에서 아무도 하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누구도 찾지 못한 금광을 발견한 듯했지만 실상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광 같은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언제 뺏길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로 몸을 움츠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누구라 하더라도 작정하고 글을 쓴다면 나보다 더 잘 해낼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난독증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모호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떤 책을 읽든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곤 했다. 심지어는 초등학생이 봐도 유치하다고 손가락질할 만한 판타지 소설을 10번 정도 정독해도 매번 볼 때마다 기억하던 것과 실제 내용이 다른, 한편으로는 유쾌하기까지 한 경험을 맛볼 정도였다.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소설에만 올인할 수 있었다. 이실직고하자면, 게임하고 만화보고 난 다음 남는 시간에 틈틈이 소설을 썼단 얘기다. 아무튼 그 즈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청소년 문학 사이트’에 가입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언제 어떻게 그런 장소를 찾아냈는지 기억이 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1회 ‘캠프’를 연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얘기지만 나는 그때 지하철 타는 방법을 몰랐고 3살 터울 친형을 대동하고 출발 장소인 서울역으로 향했다. 눈이 많이 오고 있었고 나는 시선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사람들이 전부 모이자 캠프지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은 벌써부터 친해져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내 옆자리에는 캠프 관계자로 기억하는 어른이 타고 있었다. 2박 3일 중에 첫날은 별다른 대화 없이 보냈다. 취침 시간에는 혼자 문가에 누웠다. 다른 아이들은 나도 알고 있고 흥미 있는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도 그 분함이 잊히지 않는다. 이래서는, 내가 변하지 않고서는 이곳에서도 시골에서의 삶과 똑같을 수밖에 없단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찾은 기회이자 새 삶(?)이란 말인가. 다음 날 아침, 나는 공격적으로 또래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수선을 떨었고 웃기지도 않으면서 웃기려고 들었다. 이전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과 괴리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또 나인가 싶기도 했다. 친절한 그들은 날 받아주었다. 난생 처음 얻은 동료들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두려울 게 없었다. 그들은 날 좋아했노라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돌아버리게 좋아했기 때문이다. 형평성의 문제 때문에라도 그들은 날 좋아해줘야 한다. 나는 소설을 쓰고 백일장을 다니고 연애를 했다. 그들이 좋아서 뻔질나게 날을 지새웠고 길거리를 헤집고 마로니에 공원을 점령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과 꿈과 낭만과 문학과 미래와 과거와 그 어떠한 치욕들, 돌이켜보면 낯이 시뻘개질 만한 얘기들을 지껄였다. 솔선해서 흑역사를 갱신하는 나날들이었지만, 좋았다. 그때 나는 바보짓을 하기 좋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평생을 두고 바보처럼 살 것이 틀림없었다.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연인과 헤어졌고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 글에 삶을 걸겠다던 내 동료들 중 몇몇은 벌써 작가가 되기도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는 이도 아직 많고 어떻게든 글과 관련한 직종을 택한 친구도 있고 혹은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 삶을 짐작할 수 없고 시간은 10년 치가 흘렀지만 내 맘은 아직 그 나날들의 단 하루도 채 다 놓질 못한다. 평생을 두고 곱씹어도 가슴 쓰려하고 부끄러워하고 멋쩍게 웃을 수 있는 시절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건강한 낭만이 아닌가. 나는 나의 이 추억이 평생을 함께할 거라 함부로 짐작한다. 서울역을 지나면 여전히 가슴 설렌다. 그곳에 가면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상상에 사로잡힌다. 나는 기꺼이 서글퍼진다.

 

    덧,

 

    언젠가 한 번은 그 시절 만났던 내 동료들, 나의 친구들과 그 모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기회를 얻게 될지는 몰랐지만, 오랜만에 행복한 글쓰기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여기서 줄여야 한다. 아무리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다고 해도 그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어 그 시절 그 아이들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소개 / 임국영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왕진물 칼국수(막걸리 무료, 셀프)집 둘째 아들. 격동의 팔십년대 마지막 해 태생. 꿈은 유명인 내지 재벌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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