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유감_10주년 특집] 추억담

 

[글틴유감_10주년 특집]

 

 

추억담

 

 

 

최선혜

 

 

 

 

    얼마 전, 2013년 겨울 글틴 캠프에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햇수로 따지면 거의 2년 만에 연락하는 친구였다. 뭐하고 지내냐, 잘 있었느냐 등의 인사말을 서로 건네며 나는 문득 ‘지금의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진부하고 상투적이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몇 년 전의 나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부터 내가 쓸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다. 재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걱정이 되지만, 그저 글틴을 통해 나의 시간들이 이제껏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런 글틴이 지금의 나에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솔직하게 적고 싶다. 재치 있게 글을 쓰는 요령은 없지만 내가 써 본 글 중에서는 아마 제일 솔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틴을 처음 알게 되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입시공부 위주의 고등학교 생활이 한창 막막하고 숨이 차던 시기였던지라 딱딱한 교과서보다는 책을 많이 찾게 되었다. 책 중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히는 소설책을 많이 읽었다.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 ‘싱커’ 등의 청소년 문학을 접하게 되었고 그 책들은 분명히 어떤 계기나 도화선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혼자서만 일기처럼 쓰던 글이 한두 문장 길어지기 시작했다. ‘쓰고 싶다’는 막연한 의지가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다. 어떻게든 바깥으로 옮겨 놓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두서없이 헤매던 문장들에 살이 붙었다.

 

    ‘답답하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었고, 그때까지는 오롯이 혼자서만 읽곤 했다. 아주 가끔, 정말 친한 친구 몇 명에게만 보여주었던 것을 빼놓고는 가족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걱정했던 것은 혹여 누군가가 내 글의 부족함을 너무 아프게 꼬집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심한 내가 어쨌든 글틴 이야기글에 소설을 올린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용감한 행동이었다. 글틴이란 곳을 알게 되었을 때는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것에 지쳐있던 때였다. 겁은 많아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쓴 글을 직접 보여주지는 못하던 주제에, 솔직히 내심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솔직한 감상을 들려줬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그 마음 안에는 외로움도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인터넷 검색 창을 전전하던 중에 글틴을 찾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러니까 내 나이대의 사람들이 그곳에 올린 글을 수없이 많이 읽었다. 읽는 것만으로도 새로웠다. 다양한 글들이 가득했다. 정말 완성도 높게 느껴지는 글도 많았고 ‘아, 이 부분이 조금 아쉽다’ 싶은 글도 많았다. 기성 작가가 아닌 사람들의 글을 읽어본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토록 많은 또래 친구들이 이토록 많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나지막한 위안을 얻었고 그 위안을 지탱 삼아 나만의 글도 써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내가 글틴에 올린 첫 소설 ‘비염’은 따지고 보면 오랜 숙고 끝에 나온 글은 아니었다. 비염으로 고생하던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 몇 시간 동안 노트북 앞에 앉아 완성한 글이었다. 하지만 온전한 구조를 갖춘 한 편의 ‘소설’을 써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썼던 어떤 글보다 잘 쓴 글이었다. 미약한 자신감이 생겼다. 조그마한 바람을 안고 글틴에 내 글을 올렸다. 주장원을 해보는 것이 내 바람이었다. 주장원이 되어 글틴 캠프를 가보는 것. 그리고 처음 내보인 내 글에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주는 것. 그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었다.

 

    주장원 발표를 기다리는 날들이 정말 길었다. 솔직히 정말 많이 걱정했다. 나름 제일 잘 쓴 글을 올린 건데, 평이 너무 안 좋으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이었다. 악평의 가능성을 안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순간들은 항상 절실했다.
그리고 나는 주장원을 했다. 처음으로 내 글에 대한 평가도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게는 행복한 일이었는데, 주장원에 이어 월장원과 연장원이 되었다. 현실감이 없어 먹먹한 가운데 나의 첫 글틴 캠프가 지나갔다. 글틴 출신 작가 분들을 처음 뵈었고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문학도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해보았다. 촌극이란 것도 처음 해보았는데, 준비하는 과정이나 다른 조 친구들의 촌극을 보는 것 모두 즐거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는 거다. 서로 블로그 이웃을 맺고 안부를 물어보면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단순히 책 읽기를 좋아하던 고등학생은 글틴 캠프가 끝난 뒤 본격적인 수험생이 되었다. 글틴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백일장을 다니면서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학 관련 입시를 생각했다. 그러던 중 글틴에 올라온 스터디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문예창작 입시 관련 스터디를 하며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었다. 덜컥 메일을 보내 신청했다. 그리고 그 스터디가 내 고3 생활에 활기를 더해준 ‘월스트리트’였다.

 

    글틴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두어 명 정도 있었고, 그 외에는 처음 보는 친구들이었다. 어색했던 첫 만남과는 달리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입시 스터디로 모인 것 같지 않게 우리는 정말 많이 친해졌다. 솔직히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스터디를 하면서 온전히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했다고는 양심상 말하지 못하겠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가차 없이 놀려대고 낄낄대면서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 와중에 분명히 우리는 진지하게 서로의 글을 평했고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함께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아마 가장 글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입시 때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가장 가고 싶던 학과에 가지는 못했다. 그 말인즉슨 글로써 대학을 가지는 못했다. 우리 중 몇은 문학에 관련된 학과로 갔고, 몇은 아니었다. 그래도 각자 갈 길을 나름대로 준비하면서 십대의 마지막 겨울이 흘러갔다. 월스트리트의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 글틴 캠프도 참가했고, 우리의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월스트리트 문학 축제’도 기획했다.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참 많이 부족하고 미약했다. 그랬기 때문에 부딪히기도 많이 부딪혔다. 그럼에도 내가 내 마지막 십대를 예쁘게 기억할 수 있었던 건 오롯이 글틴과 친구들 덕분이었다. 어찌됐든 함께 무언가를 해내었고, 나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일들이 여럿 생길 수 있었으니까. 같이 여행도 떠나보고, 앞으로의 일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서로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을 풀어놓으면서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이었을 뿐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정말 아끼는 사람들이 여럿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시에 글틴에서도 졸업했다.
    생각해보면 글틴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편은 아니다. 단지 겨울마다 캠프에 다녀왔을 뿐, 글을 많이 올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선뜻 이 ‘추억담’을 쓰고 있냐면, 어찌됐든 나를 바꿔놓은 계기가 글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껏 이뤄놓은 몇 안 되는 일들 중에 글틴이 가져다 준 것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며, 십대의 가장 큰 성취가 글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붙들 힘을 글틴에서 얻은 셈이다.

 

    지금의 나는 그럭저럭 살고 있는 대학생이다. 몇 년 전의 고등학생 시절보다 더 많이 혼란스러워 하고, 더 방향성을 잃은 것 같은 대학생이다. 글틴이나 스터디 같은 일들은 정말이지 일종의 ‘추억’이 되어 일상의 물결에 삼켜졌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를 염려해 볼 틈도 없이 시간은 갔고, 글이나 책은 뒷전으로 밀려나 어느새 나는 그냥 평범하고 불안에 가득 찬 대학생이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그다지 특별한 편은 아니었지만 여유를 잃고 시간에 허덕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나는 달라졌다.

 

    얼마 전 스터디를 함께 했던 친구 한 명이 외국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날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모여 무언가를 끄적이며 고민하던 우리들은 어느새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물론 우리들 중 몇 명은 여전히 쓰는 것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이따금씩 글틴이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서 나 역시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의지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없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활력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생생하게 보이던 세상이 무기력해진 나의 시선을 따라 숨 막히게 잠잠해졌다. 나는 이제 내 자신에게서 정적을 본다. 겨우 내 나이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스스로도 가소롭게 느껴지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스스로 활기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그럼에도 추억한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기에 나는 여전히, 꽤 자주, 글틴이 만들어 준 시간들을 추억하곤 한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활력을 가지고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도, 활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시간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지루할 뿐더러 길고 개인적인 글을 써버린 것이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있어 추억하는 것만으로 지금의 자신을 일으킬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대로 추억이 가진 힘이 아닐까.

 

 

작가소개 / 최선혜(글틴 필명 : 최 솔)

– 스물한 살의 평범한 대학생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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