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유감_10주년 특집] 글틴의 성지 치엘구스또

 

[글틴유감_10주년 특집]

 

 

글틴의 성지 치엘구스또

 

 

 

김병주

 

 

 

 

    글틴을 이야기하려면 내가 스무 살이던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9년 전이라니, 징그러울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이 바로 얼마 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06년은 그러니까, 독일 월드컵이 있었던 해였고, 원더걸스의 텔미가 한반도를 강타하기 일 년 전이다. 가끔 2006년 이후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사람들의 생김새도, 옷차림도 그다지 위화감이 들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세계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2006년에 스무 살이 된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스무 살의 나는 실망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대학은 이렇게 재미없는 곳이구나, 여태껏 속아왔구나 생각했다. 나는 줄곧 문예창작학과만 가면 내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는데, 수능 점수에 맞춰서 얼떨결에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온 애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가 될 리가 없었다.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이나 대학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사실 내 문제에 가까웠겠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남 탓으로 모든 걸 돌리고 싶었다.
    그나마 나에게 위안은 글틴에서 만난 사람들과 노닥거리는 일이었다. 글틴은 내가 고3때 처음 만들어졌다. 내가 고등학생일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백일장을 같이 간다거나 정모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문예창작학과 입시 때문에 그 해에 있던 1회 캠프를 불참해서 글틴 사람들과 친해진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그 무렵의 글틴에는 내가 대학에서 원했던 모든 것이 있었다. 글틴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어떤 헛소리도, 어떤 뻘짓도 할 수 있었다. 스무 살이었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으니까.
    그 무렵에는 글틴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대학로에 위치한 치엘구스또라는 지하 카페도 그 중 하나였다. 가장 저렴한 메뉴가 2천 원이었고, 1층 카운터와 격리된 지하에 자리가 있어서 주인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가장 저렴한 메뉴 하나만 시켜놓고 대여섯 명씩 모여서 합평을 하거나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시간을 죽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대책 없이 스물한 살이 되어 있었다.
    그날도 우리는 하는 일 없이 모여서 김경주와 칸트, 하마랑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따위를 토론하며 밤을 샜다. 어느새 해가 떴고, 죽을 것처럼 피곤했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어들어간 곳이 치엘구스또였다. 우리는 테이블에 엎드려서, 혹은 긴 의자에 뻗어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우리를 깨웠다.
    “저기요, 죄송한데, 나가주세요”
    카페 주인이었다. 카페 주인은 “제가 너무 하는 거 아니죠?”라고 덧붙이며 우리를 쫓아냈다. 카페 주인은 우리를 가출 청소년 무리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긴 그렇게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는 행색이긴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잠이 덜 깬 채로 치엘구스또를 나와야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치엘구스또에 발길을 끊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치엘구스또에서 2500원짜리 레몬티 하나만 시켜놓고 몇 시간이나 죽치고 앉아 있곤 했다. 그것 말고는 대책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된다고 믿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서 나는 스물세 살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글틴 출신으로는 최초로 군대를 제대했고, 대학을 새로 가기 위해서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모임 장소는 물론, 치엘구스또에서였다. 그런데 세 번째 모임이었나, 대학로로 가던 길에 치엘구스또가 없어졌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믿을 수 없어 치엘구스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입구 앞에는 옷가지가 걸려 있었다. 언제나 찌질했던 우리들을 받아주던 치엘구스또는 아무 말도 없이 옷가게가 된 것이다.
    그날 나는 한 시절이 지났음을 직감했다. ‘밤하늘의 별이 가야 할 곳을 알려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의 말대로 우리는 총체성이 사라진 시대에 돌아갈 곳이 없는 개인이었다. 이제 우리는 ‘죄송한데 나가주세요, 제가 너무 하는 거 아니죠?’라는 치욕스러운 말에도 다시 돌아와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 수 있었던 'teen'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은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 어디론가는 가기 마련이다. 지금 나는 시시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되어서 너무 낯설어진 대학로를 지날 때마다 치엘구스또가 있던 자리를 가늠해보곤 한다. 이제는 옷가게도 없어져서 그 자리가 맞는지조차 긴가민가하다. 나는 결국 치엘구스또의 언저리에서 발길을 돌리고 만다. 언제나 함께라고 믿었던 우리는 대로변을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각자 다른 길로 걸어간다. 낄낄거리면서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을 하나쯤 갖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는 정말로 행복했었다.

 

chilgusto

 

 

 

 

 

 

풍경은 피를 흘린다

 

 

 

 

나는 이 세계에 맞춰진 시간은 없음을 안다

 

빗방울에서 우산의 무리가 걸어나왔다
사람들의 머리통을 꿀꺽 집어 삼켜버린 그들
무도회장을 빙그르르 도는 치맛자락의 춤처럼
다리 달린 우산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신호등은 불연속적으로 깜빡이며
프레임 저편으로 조난신호를 쏘아댔고
발밑에 엎질러진 얼굴 하나가 하수구로 쓸려 갔다
불 꺼진 거리의 상점, 쇼윈도에 진열된 신발들
에 포장된 발들
을 스쳐 지나가던 발목이 없는 사람들, 가끔씩
손목 잘린 신사가 악수를 건네곤 했다
이제 목 없는 여자는 주머니에서
말풍선을 꺼낼 것이다
바닥에는 살해당한 숨들이 낭자하다
나는 우산을 받쳐 들고 거리 한가운데
난독증 환자처럼 서 있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빗소리가 적요하다고 생각한다

 

빗물이 모두의 배후에서 발자국을 따라 흐른다
다시 한 개의 빗방울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작가소개 / 김병주(글틴 필명 : 보헤미안 랩소디)

– 스물 아홉. 대학원생. 삶이 지속될 거라고 믿는다. 다음 생은 돌로 태어나 아무것도 안 하리.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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