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유감_10주년 특집] 글틴, 여지없이 빛나는 우리

 

[글틴유감_10주년 특집]

 

 

글틴, 여지없이 빛나는 우리

 

 

 

손자연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글틴’에 대한 추억담을 풀어야 하는데, 도무지 첫 문장이 써지지 않는다. 그럴 법도 하다. 강산도 바꾼다는 세월 동안 그들은 시인이, 소설가가 되어 꽤나 이름을 떨치고 있다. 글틴 출신 작가들 틈에서 새우등 터질까 나는 지금 몹시 떨고 있는 것이다. 빈 문서1을 멀뚱히 쳐다보고 앉아 있다 나는 마침내 잊고 있던 블로그를 떠올렸다.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는 사진과 마주했다. 피식 웃었다. 오호라! 너희들의 ‘흑역사’를 내가 쥐고 있구나. 그리하여 나는 갑이 된 기분으로, 새우가 아닌 척하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코끝을 간질이는 추억을 꺼내보려 한다.

혜화 4번출구
(사진=2007년 2월 어느 날의 혜화역 4번 출구.)

 

    혜화역 4번 출구 앞. 다섯 명에게 연락했을 뿐인데도 늘 스무 명쯤 북적이던 곳. 우리의 오프라인 만남은 언제나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 “내일 3시 혜화”라는 문자를 보내면 으레 4번 출구 앞으로 갔다. 약속 시간이나 장소 변경 문자는 오가지 않았다. 이번에 못 가도 다음에 가면 될 일이었다. 다음 모임이라고 해 봐야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정해질 것이다. 모임은 늘 급작스레 만들어졌지만 북적였다.

 

    우리는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자주 퇴짜를 맞았다. 인원이 많아서였다. 나뉘어 다니면 될 것을 수차례 쫓겨나도 한데 뭉쳐 다녔다. 마로니에 공원은 모든 면에서 적격인 장소였다.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에 둘러앉아 온라인 공간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다. 시시콜콜한 것부터 소쉬르의 언어학까지, 그 분야도 주제도 다양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맥도날드 2층에 자리를 폈다. 열다섯 명이 감자튀김 열 개와 콜라를 주문하고 네 시간씩 앉아 떠들었다. 이야기 조금 나누었을 뿐인데도 금세 해가 졌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보면 나는 가끔 부끄러워졌다. 늘 ‘우리’라고 칭했지만 어느 순간만큼은 ‘그들’과 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시 게시판에서 ‘거미’라는 시를 읽었을 때, 비평글 게시판에 카뮈의「시지프의 신화」가 등장했을 때! 그 시를 읽고 나는 한동안 거미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었다. 생포한 거미를 투명한 컵에 담아 네 시간쯤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에게는 시(時)세포가 없구나. 그 후 도서관으로 가 카뮈의 책을 모조리 찾았다. 책상에 쌓아 놓고 마구 읽다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 부질없는 상장이오, 상금이었구나. 그날 어느 19세 소녀가 미처 들어보지도 못한 붓을 꺾었다는 슬프디슬픈 이야기. 그리하여 나는 ‘나일론 글틴’이 되었다.

2회캠프단체사진
(사진=제2회 글틴캠프. 우리의 ‘흑역사’는 단체사진으로 감당하자.)

 

 

    ‘나일론 글틴’이 되었다고는 하나 기성 시인, 소설가와 마주 앉아 쓰디 쓴 사이다를 들이켤 기회는 흔치 않으므로 캠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달리는 버스 차창을 물끄러미 내다보다 주르륵 눈물 흘렸대도 나와 친구해 주는 글틴들을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캠프를 목전에 두고 캠프의, 캠프에 의한, 캠프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배고픔이 창작열을 높인다 했던가? 백지를 ‘도전’이라 칭한 어느 수필가의 말이 무색할 만큼 잘 써지는 날들이었다. 덕분에 나도 등단에 성공했느냐고?

 

    나는 지금 대학교에서 한국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당시의 인연으로 여러 문학행사에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한다. 얼마 전 “신인작가와의 특별한 연속 데이트”를 콘셉트로 열린 “파릇, 빠릇 문학콘서트”에서 옛 글틴을 만났다. 그는 소설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해맑았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평소보다 사진을 많이 찍었고, 홍보 페이지에 올릴 때도 예쁘게 나온 사진으로 골라 올렸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다 인연이고 인맥 아니겠는가?

 

    10년 전. 무던히도 외로웠던 10대들은 지금 PD로, 한국어강사로, 공사 직원으로, 국어선생님으로, 회사원으로, 작가지망생으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이제는 사이다 대신 맥주 한 잔 같이 들이켤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미치도록 좋다. 단언컨대, 글틴으로 활동하던 열여덟, 열아홉은 내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그때의 인연과 경험, 수없이 오갔던 이야기들이 삶의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내가 빚어졌다. 우리는 더 이상 ‘teen’이 아니지만 여전한 ‘글틴’이다. 그리고 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여지없이 빛나고 있는 우리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더불어 이토록 오롯한 공간이 있음에 감사한다. 유난히도 보고 싶은 이들이 떠오르는 날.

 

 

작가소개 / 손자연(한국어강사)

글틴 2기. 청소년기부터 ‘사’자 직업을 갈망하여 마술사, 청소년지도사, 한국어강사 등의 행보를 걷고 있으며 매력 넘치는 얼굴에 미끈한 다리까지 소유……..하고 싶은 그런 여자. 안녕하세요? 손자연입니다. (www.facebook.com/handnature)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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