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유감_10주년 특집] 10

 

[글틴유감_10주년 특집]

 

 

10

 

 

 

박서련

 

 

 

 

    구멍 뚫린 그림 수 점에 대해 생각한다.

 

    한 번은 걷다가 뜬금없이 눈물이 주륵주륵 나서 보도 한켠에서 심하게 울었다. 어릴 때는 이런 게 예민한 감성의 증거라고 믿었으나 이제는 심한 감정기복과 불안한 심리상태가 걱정될 뿐이다. 그로부터 십 년이다. 무엇이 변했는지, 무엇이 그대로인지 따져보기를 좋아한 것도 몇 년 전까지고 요새는 그저 떠오르는 것을 받아먹는 식으로 그때를 곱씹는다. 의외로 기억이 마르지 않는다. 작고한 뮤지션들의 수많은 명곡들을 듣고 있자면 아직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기억이 중첩될수록 의미는 더 많이 발생하고, 구구해지고, 변형되고, 마침내는 기억을 제외한 인상들끼리 번식을 시작한다.

 

    나는 영등포역에 있다. 오 분 전까지만 해도 영등포에 기차역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다. 혼자는 아니다. 함께 부산에 가기로 한 사람들 중 아직 오지 않은 한두 명을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하자 몇 사람이 던킨도너츠에 들어간다. 그전까지 던킨도너츠에 가본 일이 없는 나는 망설이다 그들을 따라간다. 나보다 훨씬 어른인 듯한 알바생이 너 같은 애가 어딜 들어오냐며 핀잔을 줄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아무도 그런 기분을 눈치 채지 못했기를 바라며 일행 뒤에 바싹 숨는다.

 

    멀어지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강박적으로 그러모아 완성된 퍼즐로 만들어놓기를 좋아했다. 가운데에 내가 눕기만 하면 딱 들어맞을 그림들. 그런 기억들이 내가 나였음을 담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거기 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들, 증언들, 구체적인 기억들. 기억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기록과 수집에 대한 강박. 구체적인 기록은 기억을 되레 뒤틀어놓는다는 것을 안다. 사진도 글도 남아 있지 않아 꿈이었나 싶은 일들이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른다.

 

    부산은 그때껏 보호자 없이 가 본 행선지 중 가장 먼 곳이다. 우리는 입석표를 가졌고 자리가 없어서 객차와 객차 사이에 앉아 있었다. 행선지가 부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산과 밀양 사이에 있는 삼랑진이어서 한밤중에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허름한 역 앞에 내린다. 한 시간을 걸어 친구의 집으로 간다. 휘파람을 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서 좋다. 누군가 가방에서 폭죽을 꺼낸다. 밤하늘보다 어두운 산그림자에 불꽃이 먹힌다. 거기서 우리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내 마음에 꼭 든다. 그날 처음 본 여자애가 무섭다며 내 소맷부리를 꼭 쥔다.

 

    글틴 회고담을 써 보라는 말씀을 듣고 게시판 지난 글들을 뒤지다 내가 지키지 않은 약속 하나를 찾아냈다. 백일장 후기를 쓰기로 했지만 오류가 나서 다 날아갔다며 수상자들에 대한 축하만 짤막하게 전하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십 년 만에 쓰는 그때 그 백일장 후기다.
    지난 일이고 끝난 이야기다. 그럼에도 실제 녹화된 시간보다 더 많은 분량의 편집본이 지금도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산문부는 축제, 운문부는 그릇이라는 글제를 받아든다. 나는 전날 밤에 했던 조용한 불꽃놀이를 생각하며 축제의 불꽃에 대해 쓴다. 잠과 글이 뒤섞여 어디까지 썼는지 까먹은 채로 침을 닦으며 깨어난다. 같이 온 친구가 옆줄에서 졸고 있다.

 

    남몰래 뻥 뚫린 그림들 속 내 몸 자국에 스스로를 맞춰볼 때도 있다. 내가 큰 건지 그림이 작아진 건지 오래된 그림일수록 잘 맞지 않는다. 얼굴만 간신히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빡빡한 그림도 있다. 애써 몸을 밀어 넣기보다 그림의 빈 모양을 보면서 그때, 나는 그랬구나를 생각한다. 내가 빠져나온 자리에 그대로인 나의 흔적을 애틋하게, 아득하게, 우습게, 어쩔 때는 참담한 심정으로 본다. 구멍이 뻥 뚫린, 나 없는 내 그림을 내가 보고 있다. 그림 안에서 당신들이 구멍과 나를 번갈아본다.

 

    백일장이 끝나고 이어진 부대행사에서 우리는 시끄럽다는 주의를 여러 번 받는다. 우리 중 여럿이 상을 받지만 그 중에 내 이름은 없다.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부러 그런 티를 내고 싶지도 않다. 모두 하루 더 묵고 간다는 말에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모조리 부재중 알림으로 만들면서 찜질방에 따라간다. 한밤중에야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이 늦어서 강원도 끝자락에 있는 집까지는 도저히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자고 가겠다고 한다. 모친은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알아서 하라며 전화를 끊는다. 울적해진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이놈의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창 밖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앉아 있다. 마피아 게임을 하는 중이다. 앞으로의 모든 밤이 이런 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열여덟 살의 내가 그 그림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십 년 바깥의 나는 그 애의 바람들이 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안다. 하여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내 얼굴은 그 애처럼 밝지 않다. 그럼에도 그 그림을 보는 일이 기껍다. 이것이 내가 글틴을, 시절을 회고하는 한 방식이다.

 

 

작가소개 / 박서련 (글틴 필명 : 레몬섬)

마법소녀가 못 될 바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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