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문장청소년문학상_우수_이야기글] 스테이지 19

 

[2014년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우수상_ 이야기글]

 

 

스테이지 19

 

 

김송기(필명 : 0g)

 

 

 

 

    누군가가 던진 야구공이 내 뒤통수로 날아와 부딪치는 순간, 나는 포켓몬스터로 변한다.

 

    내 목과 가슴, 팔, 다리는 차례로 점점 투명해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공중에 둥실 떠오른 내 머리만이 수박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다. 살구색의 피부가 빠르게 보랏빛으로 물들고, 얼굴에 난 여드름은 분화구처럼 울퉁불퉁하게 돋아난다. 나는 또도가스, 독가스를 뿜어내는 몬스터다.

 

    “오늘은 너로 정했다!”

 

    교실 뒤편에서 M자형 이마를 가진 나의 주인, 강우가 나를 부른다. 나는 깔깔거리는 반 친구들 사이를 지나 주인의 옆으로 날아간다. 주인과 나는 교실 뒷문 앞에 선다. 우리와 10미터 정도 사이의 거리를 두고, 맞은편에 형석이와 그의 포켓몬이 서 있다. 반애들이 우리를 빙 둘러싼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주인들은 의자에 앉아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다. 나와 상대편 포켓몬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한 발짝 앞으로 나온다. 상대편 포켓몬은 파이리, 불을 내뿜는 몬스터다. 뭉툭한 꼬리 끝부분에 작은 불꽃을 지닌, 조그만 몸집의 2학년 2반 왕따. 또도가스, 오물폭탄! 나는 강우의 명령에 따라 파이리에게 달려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이어 파이리의 복부를 걷어차자 그가 뒤로 나자빠진다. 나는 그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날린다. 파이리의 딱딱한 광대뼈와 내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마다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반 애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이 찌질아, 맞고 있지 말고, 칼등치기! 형석이가 답답하다는 듯 파이리에게 소리친다. 파이리는 피가 새어나오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재빠르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어깨에 박는다.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든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진다.

 

    “파이리 승!”

 

    형석이가 큰 소리로 외친다. 어깨에 입은 부상으로 나는 체력을 100퍼센트 상실한다. 어깨에서 흘러나온 피가 교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싸움에서 진 게 분한 듯 강우가 씩씩거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옆구리를 걷어찬다. 쓸모없는 새끼. 고장 난 자동차의 엔진처럼 내 입에서 독가스가 쿨럭, 뿜어져 나온다.

 

    내가 강우의 포켓몬이 된 것은 한 달 전에 먹었던 상한 고구마 때문이었다. 중간고사 날 아침, 나는 밀려오는 허기에 상한 고구마를 두 개나 먹어치우고 학교로 달려갔다. 아침 조례 시간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더니, 1교시 수학시험이 되자 배에 가득 찬 가스가 밖으로 비질비질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 가자미눈을 하고서 나를 노려봤다. 다리를 꼬고 괄약근에 힘을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방귀냄새는 내가 맡아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독했다. 그날 내 뒤에는 강우가 앉아 있었다.

 

    수학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강우에게 멱살을 잡혀 학교 뒤 쓰레기소각장으로 끌려갔다.

 

    “너 방귀냄새 때문에 도저히 시험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 수학성적이 2등급으로 떨어지게 생겼다고. 너가 책임져, 이 새끼야!”

 

    나는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강우는 욕을 씹으며 무차별적으로 나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밟기 시작했다. 한참을 얻어맞던 나는 입 속에서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강냉이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하, 한 번만 봐 줘. 하라는 건 모두 다 할게.”

 

    나는 강우의 종아리를 끌어안았다. 강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다시 살며시 뜨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강우의 그늘진 얼굴과 마주쳤다. 햇빛을 등진 그가 나를 보며 소름끼치게 웃었다. 정말?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날 이후, 나는 강우의 포켓몬이 되었다.

 

    포켓몬스터 놀이는 학교에서 유행하고 있는 일진들만의 게임이었다. 일진들이 힘이 약한 애들을 불러다가 ‘너로 정했다’라고 하면 힘이 약한 애들은 그들의 포켓몬이 되는 것이다. 일진 애들은 각자의 포켓몬을 데려와 싸움을 붙였다. 주인들이 공격, 방어 명령을 내리면, 포켓몬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싸워야 했다. 포켓몬스터란 언제나 그들의 주머니에 있어야 하는 몬스터,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애완용인 셈이었다.

 

    나는 강우의 포켓몬으로서, 그가 친구들과 포켓몬스터 놀이를 하는 날 외에도 언제나 그에게 불려나갔다. 주인을 먹여 살려야 너가 살 수 있는 것이라며 강우는 자신이 배가 고플 때마다 나를 불러내 밥을 사라고 했고, 피씨방 돈을 대신 내라고 했으며, 사고 싶은 물건의 가격을 대신 지불하라고 했다.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의 말을 어길 시에는 가차 없이 훈련이 거행되었기 때문이다.

 

    훈련은 강우의 친구들과 함께 이루어졌다. 훈련생은 나 하나뿐이었다. 포켓몬인 나는 학교 뒤뜰에서 맞고, PC방에 가서 맞고, 노래방에 가서 맞았다. 주인이 포켓몬을 무차별적으로 패거나 고문하는 것, 강우는 이걸 ‘훈련’이라고 불렀다. 포켓몬의 싸움 능률을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

 

    파이리와의 싸움에서 졌다는 이유로 강우에게 호되게 맞은 나는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어깨에 난 얕은 칼자국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쓰라렸다. 현관문을 닫자 주황빛 보조등이 켜져, 집 안의 어둠을 잠시나마 밝혀주었다. 신발을 벗고 있는데 보조등이 다시 꺼져버렸다. 눈앞에 다시 익숙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뒤이어 무거운 적막이 거미줄처럼 내 몸에 끈끈하게 달라붙었다. 끈끈한 거미줄 사이를 뚫고 간헐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는 안방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동굴같이 어두운 방안, 창문 아래쪽에 깔아놓은 이부자리 위에 엄마가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3년째 껌딱지처럼 이부자리 위에 눌러 붙어서 움직이지 않은 탓에 엄마의 다리는 학 모가지처럼 얇아져 있었다.

 

    “엄마. 나 오늘도 애들한테 맞았어.”

 

    나는 엄마의 등 뒤에 서서 중얼거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엄마는 3년 전, 당신의 남편에게 완전히 버림받는 동시에 말과 행동을 잃어버렸다. 엄마의 남편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바람기가 충만한 사내였다. 그는 엄마가 버젓이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3년 전, 그는 젖먹이를 품에 안은 파릇파릇한 젊은 여자와 함께 우리 집에 발을 들였다. 엄마는 여자의 품에 안겨 있던 나의 이복동생을 보며, 배부른 채로 보냈던 자신의 꽃다운 18살을 떠올렸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자신의 발목을 잡지 말아 달라는 남편의 말과 함께 역겨운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가슴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지난 세월에 대한 기억 때문에 엄마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녀는 죽은 듯이 살았고,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은 존재였다.

 

    나는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하는 엄마의 등을 보며, 오늘도 엄마가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았음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엄마는 내가 뒤돌아 방문을 닫을 때까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교복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의 몸에는 여기저기에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개중에는 보랏빛으로 변한 것도 간혹 섞여 있었다. 이러다 정말 또도가스로 변해버리는 것은 아닐지. 나는 샤워기를 틀은 후 멍자국이 지워지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박박 씻어냈다.

 

    화장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물을 털면서 휴대폰을 켰다.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번 달 생활비 네 엄마 통장으로 보냈다. 늦어서 미안하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은 채 휴대폰을 껐다. 재혼할 여자를 위해 제 호적에서 파버린 자식에게 매달 문자를 보내는 남자에게 꼬박 감사를 드리고 싶진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굳게 닫힌 안방 문을 바라봤다. 가슴에 피어 있던 보랏빛 멍이 아릿하게 쓰려왔다. 안방 문에 달려있는 직사각형 거울에 사람의 알몸이 비춰보였다. 가슴에 핀 멍자국이 왠지 아까보다 더 커 보였다. 낮게 깔린 적막 위로 엄마의 숨소리가 삐걱거리며 들려오고 있었다.

 

    *

 

    아침 조례시간부터 강우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 나눠준 11월 달 모의고사 성적표 때문일까. 그의 오른쪽 볼은 약간 발갛게 부어 있었고, 손톱에 긁힌 듯한 희미한 상처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의 흔적일 터였다. 한 달 전이었다면 그의 기분이 좋던, 말던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나는 현재 그의 포켓몬이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강우가 나를 데리고 학교 뒤편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갔다. 하늘에는 비를 잔뜩 머금은 회색빛 먹구름이 먼지처럼 가득 껴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형석이와 그의 포켓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편 포켓몬은 2학년 2반의 왕따다. 나처럼 피부가 허옇고 비실비실한 몸으로 학교를 쏘다니는 폼이 영 불안하다 싶더니, 결국 우람한 몸집을 가진 형석이의 포켓몬이 된 왕따, 그는 일진들이 사냥하기 딱 좋은 인간형이다.

 

    형석이와 강우가 학교 벽에 등을 기댄 채 삐딱하게 섰다. 왕따와 나는 그들의 앞에 섰다. 야, 너네 10미터 간격으로 넓게 떨어져 서. 형석이가 땅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왕따와 나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섰다.

 

    “넌 오늘 피카츄다. 엎드려서 기어.”

 

    강우가 명령을 내렸다. 나는 다리가 네 개 달린 짐승처럼 땅에 두 손을 짚고 선 다음 왕따에게 두 걸음 다가갔다. 왕따는 지금 거북이 등껍질을 가진 물을 쏘는 몬스터, 꼬부기다. 꼬부기의 손에는 물이 담긴 보온병이 들려 있었다. 피카츄, 몸통 박치기. 강우의 외침과 함께 본격적으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나는 짐승처럼 꼬부기를 향해 네 발로 뛰어갔다.

 

    “꼬부기, 물대포 공격!”

 

    손에 흙을 묻히며 달려가던 내 머리 위로 별안간 물벼락이 쏟아졌다. 꼬부기의 침과 뒤섞인 찐득한 물은 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교복 소매로 얼굴을 닦아낸 뒤 고개를 들었다. 꼬부기는 들고 있던 보온병의 뚜껑을 닫고, 내 얼굴에 가래 섞인 침을 뱉었다. 누런 가래가 왼쪽 눈 밑에 눌러 붙었다. 구역질이 났다. 꼬부기, 몸통 박치기. 형석이가 신이 난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주인의 명령대로 꼬부기가 네 발 달린 짐승처럼 달려와 내게 몸을 부딪쳐 왔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강우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피할 수 없다. 꼬부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을 짓밟기 시작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강우가 소각장에서 각목을 하나 가져와 내게 던졌다. 형석이가 강우의 어깨를 툭 치며 저건 안 된다고 얼굴을 찡그렸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 이건 게임이잖아.

 

    나는 재빨리 각목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꼬부기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피카츄, 저 새끼 다리 부러트려. 강우는 주저하는 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나 오늘 기분 안 좋다. 훈련 받고 싶냐? 그 말은 내 귓속으로 흘러들어와 뇌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찌릿하는 전기입자는 혈관을 타고 몸 곳곳에 피어있는 멍 자국들을 일제히 아프게 쏘아댔다. 나는 각목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꼬부기의 얼굴이 바닷물처럼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전속력으로 꼬부기를 향해 달려갔다. 꼬부기는 형석이가 방어명령을 내려주지 않아서, 나를 피할 수 없었다.

 

    꼬부기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감싸 안은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그의 오른쪽 다리를 정확히 여덟 번 더 내리쳤다. 오른쪽 다리의 뼈가 부서졌으므로 체력 100퍼센트 상실……. 나는 중얼거리며 각목을 떨어뜨렸다. 각목이 땅에 부딪치며 난 마찰음과 꼬부기의 비명소리가 한 데 섞여서 소각장에 메아리쳐 울렸다. 내가 이겼다, 강우가 형석이의 어깨를 치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때 소각장으로 통하는 학교 뒷문이 벌컥 열렸다.

 

    “누가 소리 질렀어? 뭐야. 너 이 새끼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빨간색 조끼를 입은 학생주임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우리를 노려봤다.

 

    아, 좆됐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꼬부기는 학생주임 등에 업혀서 보건실로 옮겨졌다가, 구급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나는 강우, 형석이와 함께 교무실에 불려갔다.

 

    학생주임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담임선생님이 한쪽 눈을 찌푸리고 우리를 올려다봤다. 누가 잘못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형석이와 강우가 앞다퉈 말했다. 저는 잘못 없거든요, 얘네가 싸우는 걸 구경했을 뿐이에요. 선생님은 골치 아프다는 듯 마른세수를 했다. 지들끼리 싸우더니, 이 새끼가 갑자기 흥분해서 각목으로 김상일 다리 내리친 거라니까요. 흥분한 강우의 M자형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얼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웅얼거리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너네는 일단 나가봐.”

 

    강우의 얼굴에 순간 안도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애들과 교무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너는 말고.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강우와 형석이가 밖으로 나가 교무실 문을 닫으며 나를 찢어죽일 듯이 노려봤다. 나는 저 눈빛의 의미를 알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정말 너를 찢어 죽일 테니까 알아서 하라는 협박이다.

 

    “왜 그랬어?”

 

    교무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진실을 말할지, 아니면 거짓을 고하고 강우에게 덜 맞을지 고민했다. 강우에게 구타당한 내 몸은 나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선생님은 강우보다 힘이 세니까, 학생들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주인은 선생님이잖아. 나는 마른 침을 삼킨 뒤 선생님을 마주봤다.

 

    “그게, 사실은…….”

 

    나는 그동안의 일부터 방금 소각장에서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전했다.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갈수록 나는 마음이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은 나의 상황과 감정을 공감하고 동정하며 분노해주는 것 같았다. 마침내 내 말을 끝까지 들은 선생님은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더 이상의 폭력은 없을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선생님과 시선을 맞췄다. 그러나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기대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이건 다 네 잘못이다.”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이건 절대 바꿀 수 없는 ‘진실’이라는 듯 말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빨리 말을 했어야지. 네가 강우 핑계로 애들을 때리고 다니던 짓을 안 즐겼다면,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네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강우가 그랬던 건 아니니?”

 

    나는 머리가 전기에 감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선생님은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내가 아닌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고, 나는 그녀가 그것을 기정사실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보 같았다. 그녀는 학부모위원장의 아들이며 곧 명문대에 진학할 강우 같은 아이는 절대 처벌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말문이 막혀 그녀가 계속해서 지껄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꼬부기가 심하게 다쳤으니까 이번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할 폭력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의 체력 게이지가 감소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 내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남의 탓이나 하고 말이야.”

 

    선생님은 그 말을 끝으로 내게 나가보라고 했다. 나의 경직된 표정을 외면하던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힘이 센 주인에게 굴복하던 나의 모습을. 어쩌면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포켓몬일지 모른다. 나는 무너질 것 같은 다리로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

 

    스테이지 19. 나는 사냥을 위해 물안개에 뒤덮인 거대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새벽의 축축한 습기가 피부에 스며들 때마다, 나의 공격능력이 1퍼센트씩 상승한다. 고요한 적막 사이로 이따금씩 부엉이와 이름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늘 높이 뻗어있는 침엽수를 몇 그루 헤치고 나가자, 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빈 공터가 나온다. 10미터 정도의 거리 맞은편에 어린 회색늑대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몸집이 작은 걸로 보아 아직 새끼인 듯하다. 나는 잇몸에 숨겨뒀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아이를 향해 달려간다. 아이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나의 첫 번째 공격을 피한다. 아이의 표정에 두려움이 스친다. 그 순간은 싸움에서 절대 놓쳐선 안 될 부분이다. 나는 재빠르게 날아올라 아이의 뒤를 덮친다. 새벽달빛 아래, 나의 날카로운 이빨이 늑대의 회색빛 털을 스치고, 두꺼운 피부층을 뚫고 들어간다. 이빨 끝으로 뜨듯한 액체가 닿는다. 스테이지 19, 클리어다.

 

    늑대의 목을 물고 있는 내 모습 위로 화려한 폭죽이 터진다. 폭죽의 불꽃은 금방이라도 휴대폰 액정 화면을 뚫고 내 방안으로 넘어 올 기세다. 나는 죽어 있는 늑대를 클릭해서 그를 19번 몬스터 주머니에 넣는다. 휴대폰 게임 속 내 캐릭터는 드디어 20레벨로 상승한다. 이 게임에서는 주머니 속의 포켓몬이 많아질수록 레벨이 올라가는 법이다.

 

    게임 설정으로 들어가 내 포켓몬스터 종류를 살피는데, 담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수신거부를 한 뒤 다시 게임으로 돌아왔다. 원칙대로라면 내 포켓몬스터는 주머니 수대로 19마리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 포켓몬스터는 새로 들어온 늑대까지 합해 총 17마리밖에 없었다. 사라진 2마리는 내가 너무 과도한 훈련을 시킨 탓에 주머니에서 뛰쳐나갔다. 주머니 속에서 나간 포켓몬들의 빈자리가 오만해 보였다. 힘이 약한 포켓몬 주제에 나를 기만하려 들다니.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 게임에서만큼은 내가 가장 힘이 센 주인이니까.

 

    맵2에서 포켓몬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돌아다닌다. 주머니에서 도망친 포켓몬들은 으레 이곳에 은신하기 마련이다. 주인들은 이곳에서 사냥을 통해 공격능력을 높인다. 어둠에 잠긴 거리는 텅 비어 있고, 양 옆에 늘어선 상가는 모두 닫혀 있다. 나는 얼마 안 가서 회색 빌딩에서 나오는 남자와 여자를 발견한다. 내 주머니에서 이탈한 포켓몬들이다. 나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그들의 뒤를 쫓는다. 남자를 먼저, 여자를 다음으로 공격한다. 그들의 연약한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과자를 부셔먹듯이 그의 뼈를 씹어 먹는다. 고무줄처럼 팽팽한 핏줄에 날카로운 이빨을 쑤셔 넣고, 매혹적인 향을 풍기는 뜨듯한 피를 들이켜서 목을 축인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피의 감촉이 더 없이 황홀하다. 그들은 내게 피를 전부 빨리더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나는 그들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거리를 활보하는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도망치는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목을 부러트린다. 엄마를 외치며 달려오는 아이를 높이 들어 올려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버린다. 토마토처럼 바닥에 형편없이 터져버린 아이의 모습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그들을 클릭해서 비어있던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나는 더욱 강력해진다. 때맞춰 나의 공격능력이 80퍼센트에서 100퍼센트로 증가한다.

 

    다시 게임 설정으로 돌아와 훈련을 안 하고 잠을 자고 있던 8번 몬스터 잠만보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던 순간, 화면 위로 새 문자메시지가 떠올랐다.

 

    『일주일 째 연락도 안 받고 대체 뭐 하자는 거니? 내일도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퇴학처리 할 거다』

 

    발신자는 담임이었다. 퇴학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나는 머릿속에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메시지를 닫았다. 전기충격을 받은 잠만보가 벌렁 드러누워 발작을 일으켰다.

 

    폭력자치위원회에서 꼬부기의 진술을 토대로 내게 폭행 및 금품갈취라는 죄명을 내린 뒤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두 달간의 사회봉사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전치 8주를 받은 꼬부기에게 다리 수술비와 정신적 피해보상비로 170만원을 주어야 했다. 만약 거부할 경우, 나는 소년원에 들어가 우락부락한 몸에 용 문신을 한 형들과 함께 2년을 보내야 했다. 나는 회의 내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꼬부기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강우와 형석이는 증인석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꼬부기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고 했다.

 

    나는 휴대폰 게임 속에서 몸을 덜덜 떨고 있던 잠만보를 내 몬스터 주머니에서 버렸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동굴같이 커다란 주머니 속에서 해방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 것도 같다. 게임을 종료 시키고 나는 휴대폰을 베개 아래에 집어넣었다.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온 누런 햇빛이 벽지에 핀 푸른곰팡이를 핥고 있었다. 나는 벽지에서 떨어져 나온 곰팡이 입자가 햇빛 속에서 천천히 부유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베개 아래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내일도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퇴학처리 할 거다』

 

    나는 답장을 보내려다가 그만두었다. 170만 원이 없는 이상, 숨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책상서랍 속에 처박아 둔 내 낡은 지갑 속에는 1920원뿐이었다. 강우를 들먹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간, 내가 입을 타격이 너무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진실은 다시 조용히 은폐될 가능성이 컸고, 만약 그것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그 후에 닥쳐올 강우 패거리의 보복을 나는 혼자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망연히 방 천장을 올려다봤다. 햇살 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먼지들이 모두 돈이 되어 내게 쏟아져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어제와 달리 엄마는 누렇게 빛이 바랜 이불을 덮고 있었다. 때문에 엄마의 몸은 흡사 무덤의 봉우리처럼 아늑하며, 쓸쓸해 보였다. 나는 엄마의 뒤로 가 누웠다. 내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 엄마는 오래전에 굳어버린 사람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 나 좀 살려줘.”

 

    애원하는 내 목소리에 엄마의 목소리 대신 느릿한 숨소리가 건너왔다. 무거운 침묵 사이로 엄마의 느린 숨소리와 내 빠른 숨소리가 묘하게 겹쳐 들려왔다. 축축하게 젖어가는 내 숨소리가 엄마의 숨처럼 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가 무서워, 엄마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울었다.

 

    *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다. 무작정 발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이곳에 서 있었다. 나는 눈앞의 회색 빌딩을 마주봤다. 빌딩 입구에 쓰여 있는 ‘K전자서비스센터’라는 글자가 석양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세 시간동안 빌딩 입구에 서 있었다. 남자는 야근을 하는 모양인지 여간해서 모습을 드러내질 않았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나는 빌딩 안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남자가 일하고 있을 사무실을 찾아 돌아다녔다. 오래 전 남자의 손을 잡고 이곳에 왔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코너를 두 번 돌고 복도 끝에 보이는 영업1팀 사무실을 찾았다.

 

    “너 누구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뚱뚱한 아저씨가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사무실 안에는 그처럼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9명이나 더 있었다. 그들은 사무실 구석의 불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인 작은 방, 마치 독방처럼 보이는 그곳 앞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독방 문 위에는 정사각형의 모니터가 달려있었다. 하나같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한 그들은, 지금 내가 찾고 있는 남자와 같이 일하는 K전자제품의 서비스기사들이었다.

 

    “권영복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뚱뚱한 아저씨가 건조하게 피식 웃었다.

 

    “권 씨 아들이구만. 네 애비 지금 인민재판 받는 중이다. 거기서 기다리든지, 아님 여기 와서 기다리든지 맘대로 해라.”

 

    뚱뚱한 아저씨는 그 말을 끝으로 독방 문 위에 달려 있는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천천히 아저씨들의 뒤로 다가갔다.

 

    “고객님. 지금 집 앞인데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모니터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아저씨들 뒤로 더 가까이 가서 모니터를 올려다봤다. 모니터 속에서 남자가 혼자서 허공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마치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목소리는 모니터와 독방 문틈 사이에서 동시에 들려오고 있었다. 불투명한 유리에 머리를 조아리는 남자와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의 실루엣이 비춰보였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왼쪽에 서 있는 뚱뚱한 아저씨를 바라봤다. 뚱뚱한 아저씨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말했잖아, 인민재판이라고. 네 애비가 이번 달 서비스 만족도조사에서 10점 만점에 4점을 받았어. 그래서 지금 문제가 된 서비스를 재연하고 있는 거다. 피곤해 죽겠는데 네 애비랑 같은 조라고 우리까지 다 남아 있는 거야. 에라이, 염병할 놈.”

 

    고객한테 빌기라도 했어야지, 왜 점수를 그 따위로 받아와. 뚱뚱한 아저씨는 짜증난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찌푸렸다. 다른 아저씨들도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모니터 속에서 남자는 열심히 보이지 않는 고객을 향해 해실해실 웃으며 두 손을 내밀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모니터 속의 남자는 엄마를 자신의 주머니에서 버린 그녀의 바깥주인이 아니었다. 거듭 사과를 되풀이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내게 언젠가 학교에서 싸웠던 포켓몬, 고라파덕을 연상시켰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를 바라보면서 계속 맞기만 하는 고라파덕. 남자는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힘을 지닌 주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실 고라파덕처럼 자신을 방어할 줄 모르는 누군가의 멍청한 포켓몬이었던 것이다. 포켓몬 중에서도 가장 힘이 약한, 그는 비정규직 고라파덕이다.

 

    나는 남자의 연극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도로변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뒷좌석에 몸을 파묻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남자의 회사가 눈물에 가려져 불안하게 출렁였다. 택시기사가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백미러를 바라보다가 생각 없이 대답했다. 택시가 도로 위를 달려 강남역 근처의 영재학원으로 달려갔다.

 

    손목시계의 시침이 9시를 넘어가자, 학원에서 가방을 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학원 앞 벤치에 앉아서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이마를 살펴봤다. 삼십분 쯤 지났을 때 M자형 이마가 학원에서 나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가 회색 후드의 모자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M자형 이마가 모습을 감췄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려다, 도로 멈춰 섰다.

 

    “학원 땡땡이에 모의고사 점수는 이따위로 받아놓고. 너 지금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감히 말대꾸야!”

 

    강우의 뒤로 하얀 정장을 입은 아줌마가 따라 나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우가 자리에 멈춰 서더니 아줌마를 향해 홱 돌아섰다.

 

    “내가 무슨 기계야? 내가 하루 종일 이런 데 처박혀서 1등급이나 찍어내는 기계로 보이냐고!”

 

    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얼굴이 왼쪽으로 돌아갔다. 아줌마는 그의 볼을 한 대 더 내리치려는 듯 오른손을 들었다. 강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줌마는 씩씩거리며 손을 내리고 도로변에 서 있는 검은색 승용차로 가버렸다. 강우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버스정류장 쪽으로 발을 옮겼다.

 

    “너 당장 이리 안 와!”

 

    검은색 승용차에서 튀어나온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강우의 발목을 붙들었다. 차가운 달빛 아래, 회색후드를 입은 그는 부모에게 목덜미를 물린 회색늑대로 변해갔다. 주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충실한 포켓몬이 되기 위하여 끝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회색늑대.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곧 주인의 명령을 따라서 검은색 주머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검은색 주머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못박혀 서 있었다. 학원에서 가방을 멘 회색늑대들이 쏟아져 나와, 내 다리를 치고 지나갔다.

 

    나는 학원을 떠나 거리로 나와 걸었다. 서울의 거리는 시끄러운 게임 속 세상 같았다. 고층 빌딩들의 수백, 수천 개의 창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환한 조명과 쉴 새 없이 도로변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배경음악, 그리고 그 속에서 싸우고 있는 포켓몬들. 포켓몬들은 언제나 자기보다 약한 타인을 자신의 포켓몬으로 만들어 ‘주인’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싸움은 끊이질 않고, 주머니 속의 포켓몬이 많을수록 레벨이 상승하는 게임의 룰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오른 손등이 아릿하게 쓰려온다. 내 손등에 둥그렇게 퍼져 있는 보랏빛 멍은 지난 훈련 때 강우가 발로 짓이기고 간 흔적이었다. 지금 나의 주인은, 그의 주인인 부모에게 훈련을 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공부도 못하는 너는 한심한 쓰레기야. 그의 주인은 말할 것이고, 강우는 몸을 웅크린 채 온몸으로 쏟아지는 매질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학교로 나와 그의 포켓몬인 내게 똑같은 매질을 할 터였다. 아니, 더 심한 매질을 가할 것이다. 포켓몬과 주인의 순환은 어느 맵에서나 존재하며 그 역시 절대 변하지 않을 게임의 두 번째 룰이다.

 

    자꾸만 통증이 느껴지는 손등을 내려다보던 내 옆으로, 검은 정장을 빼입은 훤칠한 키의 남자가 지나간다.

 

    공격력 60퍼센트 방어력 40퍼센트.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이는 그의 머리 위로 그의 능력치를 표현한 하얀 글자가 공중에 둥실 떠오른다. 나는 두 눈을 비비며 다른 사람의 머리 위를 바라본다.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이 반대편에서 걸어와 나를 슥 지나쳐간다. 방금과 같이 그녀의 머리 위로 하얀 글자가 떠오른다. 대학생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각 20퍼센트다. 그녀의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지는 하얀 글자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고개를 흔들던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오던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뚱뚱한 남자를 보고 뻣뻣하게 굳는다. 엄마의 남편과 같은 비정규직, 턱수염이 난 고라파덕의 공격력은 10퍼센트. 방어력은 0퍼센트다.

 

    순간 손등에 찌릿 하는 느낌이 전해진다. 나는 다시 손등을 내려다본다. 보랏빛 멍 자국이 빠르게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다. 노란색 멍 자국은 혈관을 타고 서서히 번져가기 시작하더니, 팔뚝을 타고 올라가 몸 전체로 퍼져간다. 내 온몸은 금세 개나리와 비슷한 노란색으로 뒤덮인다. 내 팔과 다리는 반으로 접혀 짜리몽땅해지고, 배는 바람을 가득 채워 넣은 것처럼 퉁퉁하게 불러온다. 목이 점점 짧아지는가 싶더니, 턱이 쇄골에 붙는다. 양쪽 볼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한 붉은 원이 그려지고, 귀는 하늘을 향해 점점 길어진다. 엉치뼈가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번개모양의 꼬리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나는 옆에 있던 버스정류장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노란색 몬스터 한 마리가 붉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나는 뒤뚱거리며 거대한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입구의 거대한 문을 닫자, 천장에 달려 있는 보조등이 잠시 켜졌다가 금세 꺼져버린다. 어둠이 빠르게 몰려온다. 나는 번개모양 꼬리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전등 스위치를 켜듯 꼬리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앞이 보이자 나는 바로 앞에 거울이 달려 있는 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기로 앞을 밝히며 거울이 달린 문을 연다. 그 속은 조그만 동굴이다. 동굴 속,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부자리 위에 거대한 잠만보가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다. 지금 동굴 속에 울려 퍼지는 숨소리는 하나뿐이다.

 

    잠만보의 등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심장이 멈춘 잠만보에게 전기충격을 가한다. 두꺼운 피부층을 지닌 잠만보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잠만보의 누런 이불을 걷어낸다. 다시 전기충격을 가해보지만 역시 소용이 없다. 잠만보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나는 천장을 향해 입에서 주먹만한 강력한 전기볼트를 뱉어낸다. 동굴의 천장과 전기볼트가 마찰하는 부분에서 파박, 붉은 전기불꽃이 튄다. 불꽃은 벽 전체로 퍼지더니 동굴 전체를 감싸 안는다. 주위가 따듯해진다. 잠만보의 몸은 따뜻해지지 않는다. 뜨거운 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잠만보는 눈을 뜨지 않는다. 툭, 투둑, 타탁, 탁, 눈에 고인 전기가 불꽃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잠만보는 게임을 포기했다. 나는 그 사실이 아파서, 잠만보의 등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스테이지 19. 나는 더 이상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

 

 

< 수상소감 >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든 이성이나 이익이 명령하는 것에 따르기보다는
      하고 싶은 짓을 제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성질이 있다.
      설사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대되더라도 하고 싶은 걸 어쩌겠는가.(…)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의욕, 아무리 엉뚱한 것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변덕, 미치광이 같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여튼 자기 자신의 공상ㅡ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유익한 이익이다.
      『도스토옙스키ㅡ지하생활자의 수기』
 

    “성인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현실 앞에 던져진 아이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습니다. 그렇게 20살의 문턱을 넘은 후로는 자기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서서히 모험심을 잃어가죠. 사실은 그 모험심을 잃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손해라는 걸 모른 채 말이죠.
    저는 올해 성인이 되었고, 미치광이 같은 것이라도 좋으니 하여튼 제 자신의 공상ㅡ세상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유익한 이익만을 추구하며 제가 쓰고 싶은 글을 끝까지 놓지 않는 작가가 될 것입니다. 언제나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신 가족들, 고양예고 선생님들, 친구들과 또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송기(필명 : 0g)

ㅡ1996년 3월 출생
ㅡ소설가 지망생
ㅡ추계예술대학교백일장 소설부분 대상 등 다수 수상

 

 

 

   《글틴 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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