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_이 또한 여행②] 펭귄을 찾아서

 

[여행에세이_이 또한 여행②]

 

 

펭귄을 찾아서

-호주 필립 섬과 아르헨티나 푼타 톰보

 

 

양재화

 

 

    여행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가슴 벅찬 순간 중에 순도와 강도로 으뜸을 꼽자면 자연 속의 동물을 마주할 때이다. 제가 나고 자란 혹은 나고 자랐어야 할 환경과 동떨어진 이역만리 낯선 땅도 아니고, 교육적 목적이든 오락적 목적이든 다른 뭐든 간에 인간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지도 않는 공간에서 자연스레 접하거나 우연히 마주치는 동물들은 여행이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를테면 그 동물이 원래 사는 곳 또는 잠시 머무는 곳에 객으로 찾아가, (귀찮고 반갑지 않은 객일 테니) ‘아이고, 실례합니다. 하지만 꼭 한 번 뵙고 싶었어요. 괜찮다면 얼굴 좀 보여주시겠어요? 부디 제가 너무 큰 방해는 되지 않기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조심스레 보고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잽싸게 떠나는 방문 같은 것이다.
    호주 필립 섬에서 아침에 먼바다로 나가 먹이를 사냥하고 저녁때 ‘퇴근’하는 페어리펭귄들을 숨죽여 맞이하던 순간, 서호주 퍼스와 가까운 로트네스트 섬의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순백의 해변에서 홀로 사색하듯 무심히 바다를 바라보던 펠리컨 한 마리와 조우한 순간,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 숲길에서 비에 젖어 오도 가도 못한 채 떨고 있는 아기 아르마딜로를 목격한 순간, 남미의 땅끝 마을 우수아이아에서 비글 해협을 항해해(찰스 다윈처럼!) 바다사자들이 사는 바위섬을 먼발치서 바라보던 순간,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의 아르헨티노 호수에서 분홍 점처럼 보이는 플라밍고 무리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 진창을 뛰고 또 뛰던 순간,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자유로이 다니는 과나코 무리와 맞닥뜨린 순간,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터질 것 같았다.(물론 서호주 아웃백의 윈드자나 협곡에서 악어 떼를 보고는 다른 식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던 순간도 있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눈을 뜨고 꿈꾸는 기분이었다. 그 두근거림은 경외감이라 부를 만한 감정이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비교적 한결같은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돌로 된 웅장한 건축물이나 거대한 산과 바다 같은 것을 볼 때 느끼는 경외감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버리는 유동하는 세계의 한순간을 포착했다는 성취감, 시시각각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생명을 대하는 순수한 경이, 지구라는 삶터를 공유하는 동지로서 느끼는 유대감, 100퍼센트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눈이 마주치는 찰나에 찌릿 하는 교감, 유한한 삶을 사는 동일한 존재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 버무려진 복잡한 느낌이었다. 물론 겉으로 나오는 반응은 실실거리는 웃음이나 “억!” 따위의 외마디 비명처럼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해도. 그건 또한 마법 같은 위로이기도 했다. 혼자 걷는 길에도 동물이 있다면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모든 순간이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조그만 펭귄들이었다. 우연히 마주치기가 불가능하고 오로지 그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그토록 인간과 멀리 떨어져 사는 생명체가 왜 그토록 인간의 혼을 쏙 빼놓는 귀여움으로 뭉쳐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쩐지 맹한 느낌의 새카만 점 같은 눈, 투실투실한 배와 파닥거리는 몽똑한 날개, 있는 둥 마는 둥한 발, 보폭이 제 몸을 벗어나지 못하는 뒤뚱뒤뚱 걸음걸이, 육지에선 약간 고장 난 로봇 같다가도 바다만 들어가면 쏜살같이 물살을 가르는 반전 매력까지.
    몇 년 전에 한 온라인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업체에서 대대적으로 광고를 한 적이 있다. 호주에서 펭귄들에게 먹이를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수많은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2000 대 1에 달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필립 섬이다.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 주의 주도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14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2000 대 1의 경쟁률을 뚫지 않아도, 펭귄들을 보는 것만이라면 멜버른에서 당일 투어를 이용해 그리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필립 섬은 코알라, 물개, 왈라비, 흑백조 등 다양한 야생동물의 천국이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펭귄(신장 30~40센티 가량)인 페어리펭귄이다. 요정(fairy)처럼 작고 귀엽다 해서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우리말로는 잿빛에 푸른빛이 감도는 털 색 때문에 쇠푸른펭귄이라고 한다. 이 펭귄들은 해변 안쪽의 모래 언덕에 굴을 파 둥지를 틀고 이른 아침이면 먼바다로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해가 지면 일제히 돌아오는데, 이 ‘퇴근’ 행렬을 구경하는 ‘펭귄 퍼레이드’라는 에코투어 프로그램이 큰 인기다.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때로는 펭귄보다 사람이 많다는 뜻)이 해변에서 멀찌감치 설치된 계단식 스탠드에 앉아 펭귄들을 기다린다. 큰 소리는 금물이고 가장 철저하게 통제하는 건 사진과 비디오 촬영이다. 본디 자연 상태대로라면 어둠 속에서 움직였을 펭귄들의 눈은 밤에 무척 예민해서 갑작스러운 플래시 불빛이나 셔터 소리가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해가 진 뒤부터 두어 시간에 걸쳐 한 번에 적게는 10여 마리에서 많게는 30~40마리씩 무리 지어 뭍으로 올라오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퇴근길 직장인들 같다. 집에 가는 길은 이 작은 가장들에게 너무나 멀고 힘겨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하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나 또한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에 대해 알아가던 무렵이라 감정이입을 한 것이다. 그러다 놀라운 광경도 목격했다. 한 무리가 뭍으로 올라와 해변을 중간쯤 지날 때, 무리의 대장쯤 되는 듯한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행동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녀석은 뒤를 살피더니 곧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거지? 그렇게 다시 한참을 걸어 해안선에 다다르자, 그제야 뭍으로 올라오는 다른 펭귄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녀석이 무리에서 뒤처진 펭귄을 챙겨 함께 올라오는 것이었다! “사람보다 낫다.” 옆에서 함께 본 엄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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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섬의 펭귄 퍼레이드 (사진 출처: www.penguins.org.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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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인근 해역의 기름 유출 사고 당시 필립 섬 펭귄들의 깃털 손상과 체온 손실을 막기 위해 스웨터를 지어 입히는 운동이 벌어졌다. 최근 2014년에도 같은 이유로 스웨터를 기부받았다. (사진 출처: www.penguins.org.au)

 

    아르헨티나 대서양에 면한 푼타 톰보 반도는 마젤란펭귄 80여만 마리가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둥지를 틀고 번식을 하는 곳이다. 단일 개체로는 지구상 최대이자 남극을 제외한 최대 펭귄 서식지이기도 하다. 길이 3킬로미터, 너비 600미터에 이르는 작은 반도 전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곳을 찾아가는 건 필립 섬과 달리 좀 까다롭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로 19시간, 비행기로도 2시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거리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인 1시간 거리의 트렐레우나 2시간 거리의 푸에르토마드린에서 투어를 신청하거나 직접 운전해 방문할 수 있다.
    흔히 펭귄은 남극처럼 추운 곳에서만 산다고 생각하지만, 18종의 펭귄 중 실제 얼음 위에서 혹한을 견디며 사는 건 3종밖에 안 된단다. 온난한 기후에 바싹 마른 땅 곳곳에 굴을 파고 들어앉은 푼타 톰보의 마젤란펭귄들은 봐도 봐도 마냥 이채로웠다. 제한된 구역을 따라 방문로를 조성해놓았는데, 펭귄들은 제 집이니 마음대로 다녀도 손님인(그것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인간들은 반드시 정해진 선 안에만 머물러야 한다. 이 펭귄들은 도무지 인간들을 무서워하는 법이 없어서, 바로 코앞에서 수시로 지나다닌다. 인간들은 자지러져도 펭귄들은 초연하다. 늘 거기 있으니까 인간을 그저 털 없고 덩치 큰 이웃쯤으로 여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조심해야 하는 쪽은 인간이다. 항상 1.5미터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절대 만져서는 안 된다. 룰을 무시하고 펭귄에게 다가갔다간 방문로 곳곳에 있는 감시원들에게 혼쭐이 난다.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물건을 만지지 않고, 정해진 곳 외에 불쑥 들어가지 않으며, 지나치게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멋대로 음식을 먹거나 쓰레기를 남겨서도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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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굴을 파고 둥지를 트는 마젤란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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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방문로를 따라 이동하고 펭귄은 방문로를 수시로 가로지른다.

 

    마젤란펭귄은 키가 60~70센티미터에 가슴에 검은 띠 한 줄이 있다. 부리 주변으로 수줍은 듯 술 취한 듯 번진 분홍빛이 매력 포인트다. 내가 푼타 톰보를 찾았을 때는 산란기를 지나 새끼를 기르는 시기여서, 어미들 배 아래에 꼭 붙어 있는 회색 털뭉치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엄마와 아기가 나란히 잠든 평화로운 풍경, 혹은 암수가 사이좋게 걷거나 서로 털을 골라주는 모습, 혹은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듯한 녀석이 목을 길게 빼고 구슬프게 울어 젖히는 모양 등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곳에선 점잖은 노부부든 새침한 프랑스 아가씨든 금세 아이가 된다. 여기저기서 “꺅!” 하는 탄성, 손뼉을 치는 소리, “세상에” 같은 감탄사가 돌림노래처럼 들린다. 표정들은 또 얼마나 천진하고 행복해 보이는지. 나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땅바닥에 툭하면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눈높이에서 보고 싶어서였다. 그럼 거짓말처럼 눈앞으로 펭귄들이 아장아장 지나가곤 했다. 투어에서 주어진 2시간에는 밥을 먹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펭귄을 보다가 뛰듯이 종종걸음을 해 겨우 출발 직전에야 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마음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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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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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실 좋은 펭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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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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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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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펭귄들, 방문객은 해변에 들어갈 수 없다.

 

 

 

양재화
 

– 대학에서 언론정보학 등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편집자로 1년 중 10개월은 돈을 벌고 2개월은 여행하며 살고 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에 ‘여행의 뒷모습’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blog.naver.com/moodforlife

 

 

   《글틴 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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