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당신들이 알고 있는 당신들이 궁금해!

 

[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

 

 

당신들이 알고 있는 당신들이 궁금해!

– 『안네의 일기』를 읽고 쓰던 날들

 

 

이소연(시인)

 

 

anne-book    내가 처음 『안네의 일기』를 읽은 것은 중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그래서인지 『안네의 일기』를 생각하면 붉은색 잔 꽃무늬 이불과 뜨듯한 방바닥, 그리고 무엇보다 삐드득거리며 속수무책으로 내 가슴을 비집고 들어오던 옥상의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차례로 떠오른다.
    우리 집은 저층 아파트 건물의 맨 오른쪽 꼭대기 층이었다. 나는 그런 집의 위치가 퍽 마음에 들었던가보다. 아파트 한쪽 모서리에 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고는 대단히 흡족해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마도 안네가 자신의 은신처를 소개하는 대목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거의 매일(상황이 안 될 때는, 한두 장씩일지라도) 반복해서 읽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대단히 괴로우면서도 기뻤고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나는 언제나 『안네의 일기』와 내 일기장을 꼭 함께 두었는데, 그렇게 하면 안네의 외로움과 내 외로움이 살며시 포개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게 꽤 위로가 되었다. 그 따뜻함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나는 녹색 하드커버로 되어 있는 노트 첫 번째 장, 상단에 ‘은신처가 필요한 나날들’이라고 써 두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내 자신을 대상화한 경험이었다. 나는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진짜 나를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열네 살의 나는 지나치게 밝았고 남학생들과 어울려 씩씩하게 합기도를 배우러 다녔으며 말괄량이였고 비밀 같은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한 척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진정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슴 속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네가 그랬던 것처럼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를 갖고 싶어했다. 그때 안네가 자신의 일기를 통해 내게 귀띔을 해 주었다. “종이보다 오래 침묵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그렇게 나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그 중 하나를 예를 들자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비밀이다. 그 당시, ‘검은 띠’였던 나는 고작 ‘흰 띠’오빠를 좋아했다. 그게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모른다. 도장 규칙상, 본격적인 수련 전에 몸 풀기 운동을 해야 했는데, 그 시간에는 띠별로 정열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검은 띠’와 ‘흰 띠’ 사이에 존재하는 그 거리를 내가 얼마나 증오했던가! 아무튼 나는 그 오빠로 인해 요동치던 마음을 일기장에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그것은 일종의 금기를 깨뜨리는 일이었고 그것은 내게 모종의 쾌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더욱더 처참해진 심정이 되어버렸다.
    안네가 묘사하고 있는 은신처의 생활은 매우 열악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안네의 시선은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솔직해서 사랑스럽다. 나는 무엇보다 그녀의 외로움과 고립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좁은 은신처에 뒤늦게 합류하게 된 ‘뒤셀’ 씨와 하나뿐인 탁자를 나눠 쓸 수 있기를 희망할 때, 나 또한 그것을 간절히 원했다. 아마, 그녀도 내 일기를 읽게 된다면 나의 외로움을 사랑해주기를, 그리고 내가 원하는 작고 사사로운 것들을 나보다 더 간절히 원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네의 더욱 사랑스러운 면모는 나치 정권의 끔찍한 만행에 대한 고발에 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축을 운반하는 트럭에 마구 실려, 수용소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들을 선뜻 도와주지 못하고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숨죽이며 공포에 떨어야만 했던 안네의 고백이 비극적이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고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읽은 『안네의 일기』는 1993년도에 ‘지경사’에서 출판된 판본이었다. 그 판본에는 사진 자료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었는데, 그때 본 낮잠 자는 안네의 어릴 적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 평온한 안네의 얼굴 밑으로는, 후기처럼 안네의 마지막 일기 이후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다른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읽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끔찍한 아우슈비츠 생활에 대한 회고 끝에 있었던 그 증언이란,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누구도 안네를 묶어둘 수는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안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지금도 안네가 건물 입구에 서서 수용소 안쪽으로 나 있는 길을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 그 길을 지나 반나체가 된 소녀들이 화장터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안네는 울었다. 또 아이들이 가스실 앞에서 반나절 비를 맞으며 잠자코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그 옆을 지날 때에도 역시 안네는 울며 말했다. ‘저기 좀 보세요. 저 아이들의 눈을…….’”
    증언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모두 몽유병자처럼 반은 죽은 듯이 일했다고 한다. 무엇인가가 늘 그들을 지키면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느끼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때조차도 안네는 그토록 뜨겁고 예민하게 삶을 느끼고 있었다니! 나는 가끔씩 내 감각을 말살하고 싶은 충동에 이를 때가 있다. 똑바로 보기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 말이다. 하지만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보고 에누리 없이 견뎌내야 하지 않을까? 안네의 일기는 숨겨진 책은 아니지만 그냥 보물 같은 책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감각을 말살하는 삶을 살지 않길 깊이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당신이 당신으로부터 당신을 탐구해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독해질 수 있으며 어디까지 선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어디까지 단순해질 수도 복잡해질 수도 있는지 궁금하다면, 안네의 일기를 읽고 자신의 일기를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청소년기에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닐는지……. 그리고 당신의 감정의 경로를 한 번 들여다보라!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지, 어떨 때 울고, 어떨 때 화를 내고, 누구를 설레어하는지. 나는 당신들이 알고 있는 바로 그런 당신이 궁금하다.

 

 

이소연(시인)
 

1983년 포항 출생.
2014년 한국경제 청년 신춘문예에 시 「뇌태교의 기원」으로 등단.

 

 

   《글틴 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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