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_시_망] 조선 마음 3

 

[11월_시_망]

 

 

* 조선 마음 3

 

 

김현

 

 

 

 

 

   *   조선은 마사키와 코오우의 명복을 빌었다. 망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이었다. 빛이 들었다. 빛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그림자는 밝았다. 그게 조선의 마음을 작아지게 했고, 작아진 마음 때문에 조선은 작은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명복이란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다.

 

    꿈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만이 와타루를 검은 빛이라고 불렀다. 검은 빛은 배우였고 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은 빛 영화를 보았다. 어려서는 몰래 자라서는 앞과 뒤로 돌려 보았다. 검은 빛은 오랫동안 빛을 세우는 사람 한 번에 두 번씩 빛을 발산하는 사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검은 빛은 단단하게 살아남았다. 모두가 죽을 때에도 검은 빛은 살아남아 아름다웠다. 아름다웠으므로 쭈글쭈글하고 거무죽죽한 사람들만이 검은 빛을 동경하였다. 검은 빛은 동경에서 태어났다. 태양과 지구와 달이 순서대로 한 직선 위에 놓이는 때. 검은 빛은 부두에서 자라났다. 부두의 육체노동자들을 아버지로 두었다. 부두의 남자들이 모두 너의 아버지란다. 검은 빛의 어머니는 말했고 검은 빛은 씩씩하게 그 사실을 사실로 여겼다. 검은 빛은 부두의 남자들을 향해 고개 숙였다. 그 자세가 검은 빛을 부두의 남자로 만들었다. 부두를 떠날 때까지 검은 빛은 부두의 근육으로서 일했다. 남자들의 의리 의리는 드넓어졌다. 검은 빛을 찾아온 이는 망원경을 들고 검은 빛을 멀고도 가까운 부두 밖으로 인도했다. 검은 빛은 두 번 다시 부두로 돌아오지 않았다. 검은 빛 사라진 부두는 여자들 마음으로 마음대로 되었다. 밖에서도 검은 빛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을 생각하고 헐벗고 돈을 벌었다. 검은 빛의 첫 영화에 부두남이라는 제목이 붙은 건 당연했다. 이후, 검은 빛은 남자 시리즈를 찍었다. 여러 남자를 거쳐 검은 빛은 점점 더 어두운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가, 오늘날, 스물 몇 해의 생일을 맞아 털썩 풀죽었다. 맹장염이었다. 검은 빛은 사람들 앞에서 설 수 없었다. 빛낼 수 없었다. 검은 빛을 기억하는 죽은 이들이 그 작아진 불능을 안타까워했다. 계획이 생겨났다. 시간을 모으지 맙시다. 빛을 가두지 맙시다. 불알을 가진 남자들의 말들은 달려 나갔다. 죽은 전 세계가 검은 빛을 보았으므로. 우리 모두 우리의 죽어 있는 빛을 꺼내 놓읍시다. 토의했다. 합의했다. 정의했다. 마음과 빛을 꺼내 놓고, 검은 빛을 위한 영상을 찍었다. 한날한시에 빛을 일으켜 세운 이들의 살아 있는 영상은 빛났다. 앞에서, 뒤에서, 좌우에서, 아래에서, 위에서, 빛은 있는 힘을 다해 빛을 발산했다. 빛이 터져 나온 곳에서 희디흰 사랑이 망울지고 흘렀다. 그 흰 빛 검은 빛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검은 빛은 자기 죽음을 죽음이기에 비극적으로 죽음임으로 자연스러워했다. 검은 빛은 자신의 곁에 앉은 조선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마지막 꿈을 들려주었다. 흰 호랑이가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어. 내 앞에 가만히 앉아 있더니 갑자기 검은 용이 되어 굉장한 기세로 승천했어. 흰 호랑이는 좋은 것 같은데, 검은 용은 어떤 걸까 *

 

   *   마사키와 코오우는 대사를 읊조렸다. 조선의 흰 말들이었다. 자신이 했던 검은 말들이기도 했다.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 마사키와 코오우는 저승에서 어떤 복을 받게 될까 생각했다. 조선 냄새가 물씬 나는 조선 마음을 호위했다. 꿈이 아니라.

 

 

 

 

작가소개 / 김현(시인)

2009년『작가세계』등단. 시집 『글로리홀』

 

시작 메모_ 망

 
    여섯 시 오십이 분에 내가 되려고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건너가는 것들을 생각하는 밤이다. 평범한 마음을 먹어 본다. 마음을 어쩌지 못하여서 몸이 망가지고 있다. 가을이며 나쁜 마음은 나쁜 사람에게나 있을 거라고 그게 바로 나라고 마음먹는다. 가을이며 마음은 이토록 흰색이어도 되는가. 바위를 삼킨다. 가을이며 어쩔 수 없어 계절은 몸이나 가라앉히고 있다. 나도 아름답게 망하고 싶다고 적는 밤이다. 많은 죄를 지었으므로. 앞으로 오래 그날 밤 그를 회개하겠다. 그의 경멸을 기도하겠다. 그와 돌아서서 재회하겠다. 그의 말 때문에 망을 본다. 우리는 벌써 수년째 궤도를 벗어나 떠돌고 있다. 이름으로 우리를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망이, 망이 있는 한 우리는 현명해지고 싶다. 그런데 망이, 망은 왜 저 모양이 되었을까. 죽음의 그림자는 슬프다. 슬픔은 죽음을 한순간에 보편화한다. 망자들의 신체가 사라진 뒤에도 그들의 그림자는 여전히 산 자들의 세계를 걸어 다닌다. 죽음, 파시옹은 언제나 명예롭다. 말이 운다. 흰 벽지로 둘러싸인 곳에 누워 듣는다. 더럽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니라 영혼 같은 것도 아니라.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정신에 가까운 것 같은 언어를, 그곳을 스스로 더럽히고 싶다. 말은 망가진다. 흰 말이. 슬픈 말에게. 말 걸고 싶지만 말 걸지 않는다. 말을 얼굴에 쓰고 말의 소리를 내며 한 마디 말이 되어 간다, 침묵의 마구간인 아침으로. 그는 그곳으로 늙어 가고 있다. 남겨져야 할 풍경이 있다면 그건 세 그루 나무의 목, 시다. 망이 이긴 셈이다. 젊음으로써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는 산에서 늙은 얼굴을 집에서 늙은 얼굴로 본다. 나뭇잎을 기억해야 해, 그는 말한 뒤에 잔다. 나뭇가지처럼. 근육을 가지세요, 그는 말하곤 했다. 그의 얼굴은 흑백이다. 영정사진이 가진 내면이 이토록 따뜻하고 쓸쓸한 영화라니.

 

 

   《글틴 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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