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같은 책이야기]반어와 풍자에 비친 역사적 책임의식

 

[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

 

 

반어와 풍자에 비친 역사적 책임의식

– 잭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이서빈(시인)

 

 

    『양철북』을 통해 인간들이 떨쳐버리고 싶었던 거짓말, 희생자와 패자 같은 잊힌 역사의 얼굴을 블랙 유머가 가득한 동화로 잘 그려냈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요. 좀 어렵고 힘든 일을 해내고 났을 때의 행복감과 아주 쉬운 일들을 해내고 난 후의 행복감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했던가요? 당연히 전자일 것입니다. 책을 선택해 읽을 때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기분이 울적할 때 기분전환용도 필요하겠지만 다소 어렵더라도 무게 있는 책을 읽고 난 후 그 무게만큼의 행복, 뿌듯한 포만감. 몰랐던 부분을 알 때나 하지 못했던 간접 체험을 하고 난 후의 그 기분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양철북』은 폴란드 단치히가 주 무대입니다. 전체적으로 읽어내기 조금은 힘든 책으로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혼용한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하는 것은 숨겨진 의미 찾기와, 구체적인 감각 묘사, 역사적 사회적 현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환상적으로 그리고 있어 한 번쯤 반드시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줄거리는 폴란드와 독일 국경지대, 수없이 짓밟힌 그곳에서 오스카라는 아기가 태어나면서 시작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신연령이 성인과 똑같은 오스카는 어른들의 위선적이고 탐욕적인 것에 환멸을 느껴 어른이 되지 않기로 결심하고 계단에서 뛰어내려 3살 이후로 신체적 성장을 멈춥니다. 반항심에 가득 찬 그는 나치의 행동을 분열시키며 끊임없는 소동을 일으킵니다. 3살 때 선물로 받은 양철북을 늘 친구처럼 가지고 다니며 양철북에 집착하는 오스카는 누군가 북을 뺏으려 하면 소리를 질러 주변의 유리를 깨트립니다. 간혹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반항심에서 나온 악마적인 그의 행동은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합니다. 삼촌과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한 후 폴란드 우체국 폭격 사건에 연루된 삼촌의 사형을 방관하기도 하지요.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을 돕는 마리아를 좋아하지만 그녀가 아버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자 그 아이(쿠르트)를 자신의 아이라 단정 지으며, 전선 위문 극단의 단원 신분으로 집을 떠났다 다시 돌아옵니다.
    오스카는 쿠르트를 보며 “그가 나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나에게 돌을 던졌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도 결국에는 제대로 된, 성장한 아버지를 갖고 싶었거나…….” 하며 쿠르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늘 ‘아버지로 추정되는’ 아버지란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소련군에게 사살당하는 것을 봅니다. 오스카는 서독으로 가서 누드모델과 드럼 연주자가 되어 독일 사회의 상처를 치유해나가지만 간호사 살해 혐의로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은 후 그는 다시 성장하기를 결심하지요. 성장을 결심한 오스카는 긴 반항을 끝내고 자신이 거부하고 경멸하던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작품의 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외사촌 형제이자 애인이며 오스카의 실제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브론스키의 죽음은 폴란드의 패배를 의미한다. 오스카가 그레프 부인과 벌이는 질퍽거리는 성교는 수렁에 빠진 러시아와의 전쟁을, 아버지와 마체라트의 죽음은 독일제국의 붕괴를 암시한다. 그리고 화물열차 안에서의 오스카의 성장은 나치 독일의 패망과 일치한다. 또한 양파 술집에서의 우스꽝스러운 눈물 짜내기 장면은 슬퍼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세태의 대한 풍자라고 하겠다. 오스카가 머릿속으로는 정상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외형상으로는 난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세기 독일 시민 계급의 예민한 지성이었던 시인 횔덜린이 ‘생각은 많으나, 행동은 빈약한’이라고 하면서 당대의 독일 지성이 처한 딜레마를 표현한 것처럼, 오스카라는 인물은 이념과 현실의 참담한 괴리에 짓눌려 있는 20세기 초·중반 독일 시민 사회의 딜레마를 나타내는 또 다른 전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봤자 오스카는 121센티미터의 난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등에는 새로 혹까지 생겨난다. 과거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는 전후 독일 사회에 대한 귄터 그라스의 안타까움은 그만큼 절절한 것이다. 작가 그라스의 문제의식은 이 같은 ‘소시민 의식에 대한 해부’와 함께 ‘역사적 책임’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가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의 순간순간이 모여 삶이 되고 역사가 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정보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삶의 방식은 변화하고 언어생활도 달라지고 있고, 정신문화는 물질문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방황과 혼란 속에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인문 정신과 문학을 통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것은 단연 책이 으뜸입니다. 폭넓고 다양한 시각을 길러,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 속에는 주인공 오스카처럼 유리창 몇 백 개쯤은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외침이 있다는 것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전부라고 여기는 양철북을 뺏기지 않으려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고음을 질러대던 그 모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한 장 한 장은 얇지만 묵묵히 읽다보면 어느 사이 두꺼운 명작이 되니까요.
    최근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여러분 또래의 비극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비극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들인지를 알았습니다. 부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존재들로 존재하시길 바랍니다.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없듯 때로는 넘어지고 고민하고 우울하고 힘겹더라도 성장통을 함께 앓아주는 친구 같은 고전들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스카의 옆에 늘 양철북이 있었듯이 말입니다.

 

 

 

이서빈(시인)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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