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같은 책이야기]나는 문학을 오래 보고 싶다

 

[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

 

 

나는 문학을 오래 보고 싶다

– 잭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

 

 

심지현(시인)

 

 

    누군가 詩가 어렵다고 말한다. 나도 어렵다고 말한다. 읽어도 전해지지 않는 시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모두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오래 잡고 있지도 않는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읽어 넘기는 것이 나의 시독법이다. 진득하지 못한 성격 탓에 그랬던 건데, 이게 어쩌면 오래 보는 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학을 오래 보려면 과감하게 버릴 것은 '억지'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쓴 글, 억지로 읽는 글. 이것은 서로의 시간을 지루하게 만든다. 좋은 방법은 나와 맞는 시, 내가 감동할 수 있는 시에 다가서는 것이라고 본다. 말이 쉽지, 찾기는 어렵다. '그런 시가 뭐죠' 물으면 '그건 각자 다르겠죠'라고밖에 대답할 수가 없다. 더불어 나도 오래 곱씹을 작품을 매번 찾고 있다고. 그러나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감성은 생각보다 쓰기가 어렵고, 생각보다 읽기가 좋은데 그런 시가 선물처럼 엮인 시집이 있다. 누구든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내가 더 설레는 글이 있다. 시인의 첫 시집 이후 19년 만에 나온 만큼 '크고 번쩍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단단한 것'이다. 어릴 적 누구든 우리 집에 방문할 때면 꼭 손에 사들고 와야 했던 과자선물박스처럼, 나에게 오려면 이 정도 선물은 되어야지! 싶은.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 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 「노숙」 전문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 깊이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모두가 백석을 안다. '잘생겼고, 나타샤…' 말끝을 흐리는 수준으로. '나 백석을 알아'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만큼의 깊이를 가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김사인 시인의 '노숙'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이 작품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한 남성성이 묻어나온다. 더불어 나와 몸은 힘들었다고 서로를 시기하거나 투정하지 않는다. '너 힘들었으니 이제 어떻게 할까?' 되묻는 것이다. 이게 시가 아닐까 하고 예전부터 고민해왔다. 겉에서 나를 바라보는 일을 성찰이라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 자아와 소통을 하는 작품이다. 과연 '어떤가 몸이여' 하고 내가 내게 물으면 나마저 뭐라 답할지 궁금한. 팔다리 갈비뼈를 괜히 들여다보게 되는 작품이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조용한 일」 전문

 

    이 시집을 소개하려 마음먹으면서부터 이 작품을 꼭 전하고 싶었다. 시집의 제목과 시집의 내용과 시집의 분위기를 통틀어 말할 수 있는 짧은 작품. '이 시집은 이런 내용들이 있어'라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시집의 내용을 단번에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과 '철이른 낙엽'을 통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느 한 계절과 시간 사이에서 나도 딱히 어쩔 도리가 없어 가만히 있어본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문득, 고맙다 말하는 것. 소박한 감사를 전하는 시인의 따뜻함과 깊은 감동이 전해진다. 시집 속에 시인이 있다. 자극을 주려고 검지를 펴고서. '짜릿'하게 뺨을 내려치지 않지만, '찌릿'하게 옆구리를 찌르기 위해. 짜릿한 작품은 읽으면서 충격적이었다고 말하지만 찌릿한 작품은 문득, 이렇게 생각나는 것이다.

 

    대부분은 작가보다 작품을 먼저 접하게 된다. 작품이 마음에 들면 작가를 찾아보고, 깊이 알기를 원한다. 내가 찾은 김사인 시인은 '시인이 곧 시'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이 시집은 정교한 자세로 이야기를 담고, 마지막 페이지 '시인의 말'에서 리본을 묶으며 포장을 마친다. 마지막 리본을 묶기까지는 19년이 걸렸다. 그만큼 천천히 늘 조금씩 매듭을 지어왔을 것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시 쓰기는 생을 연금(鍊金)하는, 영혼을 단련하는 오래고 유력한 형식이라고 믿고 있다. 금욕과 고행이 수반되지 않으면 보람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시인이 곧 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작품을 쓰려는 사람의 기초에 자리해야 할 말이 아닐까. 시는 고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조언이기도 하지만 보람에는 고행이 수반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위로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시가 버거울 때면 종종 떠올리곤 한다. 원래 그런 게 맞고 당연한 일이니까, 하면서 지치지 않으려 위로를 받는다.
    누군가 김사인 시인의 한 작품을 접하고 호감을 가졌다면 분명 이 시집 속의 모든 글을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다. 여러 번 읽어도 다양한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는 가만히, 이 작품들을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유하고 싶을 거다. 나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심지현(시인)
 

1990년 경남 김해 출생.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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