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어느 날 낯선 세계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

 

 

어느 날 낯선 세계에 내동댕이쳐진다면?

– 잭 런던의 『야성이 부르는 소리』

 

 

김덕희(소설가)

 

 

    할머니는 개를 기르셨다. 개들은 주로 누르스름했고 가끔은 하얬다. 뽀얗고 예쁜 놈도 있었고 지저분하고 미운 놈도 있었다. 어떤 놈은 다가가면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마중을 나와 벌떡 일어서서는 앞발을 허우적거리며 놀아달라고 졸랐고, 어떤 놈은 제 집으로 쏙 들어가 구석에 몸을 밀착시킨 채 어두컴컴한 곳에서 힐끗힐끗 눈치만 봤다. 나는 녀석들을 공평하게 좋아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놈과 좀 놀려고 하면 다른 놈들이 샘을 내느라 마구 짖어대서 성가셨다. 그런 개들이 어느 방학 때는 한 마리도 없다가 어느 방학 때는 여덟 마리쯤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녀석들이 훗날 어떤 운명에 처해지는지는 좀 더 자라서야 알게 됐다. 변변한 벌이가 없는 시골 노인에게 개는 쏠쏠한 수입원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개를 판 돈으로 내 중학교 교복을 마련해주신 뒤부터 나는 더 이상 개들을 볼 수 없었던 듯하다. 커가는 손자의 눈이 신경 쓰여서라기보다는 연세 때문에 기력이 달렸고 타산이 맞지 않아서였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내가 개들에게 닥칠 운명을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사실은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녀석들의 미래를 짐작하고 있었다(내가 자랄 땐 아이가 곁에 있는 데서도 그 아이의 정서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맹렬히 수다를 떠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 짐작이 무서워 개들의 목줄을 죄다 풀어버릴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할머니에게 흠씬 혼난 뒤 쫓겨날 각오를 할 만큼 영악하지 못했으니 실제로 그런 일이 벌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과연 목줄을 풀어줬다고 해서 개들이 모두 제 갈 길을 찾아 떠났을까? 떠올리자니 할머니가 기르던 개들 중에는 목줄 없이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놈도 분명히 있었다.
    마흔한 살에 요절한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의 눈부신 소설 「야성이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 ‘벅’도 마찬가지로 마당에 안주하던 개다. 벅은 따뜻한 지방의 큰 부잣집에 살던 애완견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안락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졸지에 어떤 야비한 인간의 계략에 휘말려 납치된 뒤 썰매개로 팔려가고 만다. 북쪽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갔고 유일한 운송 수단인 썰매를 끌 개의 값은 하늘을 모르고 치솟았으므로 벅이 살던 지방에서 덩치 큰 많은 개들이 벅과 같은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늘 점잔빼며 살면서 사람을 무척 좋아하던 벅에게 열린 새로운 세상은 지옥과도 같다. 벅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때까지 이어지는 모진 매질과 혹독한 노역의 장면들을 읽고 있노라면 특별한 애견인이 아닌데도 마음이 무척 무거워진다. 그렇게, 저러다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때쯤 작가는 이 가련한 동물에게 새 생명과 능력을 불어넣어준다. 시간이 흘러 벅이 자연에 적응하고 질서를 파악하기에 이르자 벅의 근육과 뼈와 털에 깃들어 있던 야성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후 수시로 묘사되는 벅의 외양은 이미 애완견의 상을 한참 벗어나 있다.

 

    벅의 진보(어쩌면 퇴보)는 실로 빨랐다. 근육은 쇠처럼 단단해졌고, 어지간한 고통에는 무뎌졌다. [……] 시각과 후각이 놀랄 만큼 예민해졌고, 청각도 아주 날카로워져서 잠자는 동안에도 아주 작은 소리에 그것이 안심해도 좋은지 위험을 뜻하는지를 구별해냈다.

 

    벅은 세인트버나드와 셰퍼드의 잡종으로 소개돼 있다. 세인트버나드는 목에 와인이나 위스키가 담긴 수통을 달고 조난된 사람을 찾아 설산을 누비고 다닐 만큼 체력이 좋고 감각이 예민하며 지능이 높다. 셰퍼드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군견으로 유명한데 매우 똑똑하고 용맹하다. 이 두 종은 모두 대표적인 사역견이고 대형견이다. 그러므로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벅은 어마어마한 슈퍼견이라 할 수 있겠다. 둘의 조합이 반드시 벅과 같은 좋은 결과만 낳는다는 보장이 있는지에 대해 유전공학자나 진화론자 등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잭 런던은 다윈에 심취한 적도 있다니 아주 허풍은 아닐 것이다) 벅은 아무튼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나서지 않는 기질이라 잠시 다른 놈이 차지하고 있던 썰매개 무리의 우두머리 자리를 마음만 먹으면 재깍 빼앗을 수도 있고, 어쩌다 새로운 적수를 만나더라도 낮게 으르렁거리는 것만으로 응전은 충분하다. 이렇게 멋지게 그려진 개가 드디어 인간들조차 경외하는 존재(책에서는 사람들이 종종 벅을 악마에 비유한다)가 되는 과정은 굉장한 흡인력을 과시하며 좀처럼 시선을 놓아주질 않는다.
    실제로 잭 런던은 금을 캐기 위해 클론다이크라는 극지방에 머문 적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의 1여 년 경험을 되살려 쓴 소설들을 묶었기 때문에 책에는 잭 런던의 클론다이크 소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작가의 직접적인 극지방 체험에서 빚어지는 풍경 묘사는 책장을 든 손을 시리게 만들 정도로 생생하다. 특히 함께 수록된 「불을 피우기 위하여」를 읽고 있으면 내 손발가락이 동상에 걸릴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까지 마저 읽고 나면 이 책이 느닷없이 소용돌이에 던져진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챌 것이다. 그렇다, 심오한 레퍼토리다. 많이 듣고 봤는데도 딱 뭐라 아는 척하긴 까다로운 문제이다. 그래서 머리가 좀 아픈 소설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주제를 고민해보기도 전에 마지막 장을 덮을 것이다. 그만큼 극적인 재미를 위해 공을 들인 소설이다. 미국 문인들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강렬한 삶을 살다간 작가의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과감한 문장들이 고리타분한 맛을 싹 잡아주니 염려할 것 없다. 그러니까 우아한 분석 같은 건 두 번째 읽을 때 해봐도 되겠다는 말씀이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든 게 10년쯤 전인데 지금까지 특별히 어디 소개되는 걸 못 봤고 읽었다는 사람도 아직 한 명밖에 만나지 못했다. 10년 동안 이 책을 아는 사람을 한 명밖에 만나지 못했다는 글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써놓으면 이 책과 출판사의 명예에 누가 될 수 있을 테니 정정하자. 나는 잰체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혹은 구체적으로 물어볼까봐 내가 읽은 걸 누구에게 읽어봤느냐고 묻기를 굉장히 꺼리기 때문에 확인을 못 했을 뿐,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쓰기 전까지의 나처럼 조용히 읽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봤다는 저 1인도 어쩌다가 우연히 “그거 「불을 지피기 위하여」 얘기랑 비슷한데?”라고 하는 걸 듣고 내가 깜짝 놀라 되물어서 알게 되었다. 그와 내가 다른 판본으로 읽어서 제목이 좀 달랐던 거고 우리는 잭 런던을 함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아주 즐거워했다.
    좀 길어졌지만 사족을 하나 더 달고 마치자. 「야성이 부르는 소리」를 읽었다면서 자기 소설에 개를 등장시키는 신인 소설가는 분명히 좀 모자라거나 아주 무모한 작자다. 내가 왜 이런 소릴 하는지는 졸작이 옆 사이트에 걸려 있으니 확인해보면 된다.

 

 

 

김덕희(소설가)
 

1979년 출생. 201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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