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달로 간 사나이

 

[숨겨진 보물 같은 책 이야기]

 

 

달로 간 사나이

– 서머셋 모옴『달과 6펜스』

 

 

나푸름(소설가)

 

 

    1919년에 출간된 『달과 6펜스』는 서머셋 모옴이 소설가로 성공하게 된 출세작이자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작품이다. 학창시절의 나 또한 모옴의 소설 중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접했다. 처음에는 소설이 폴 고갱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며 완성까지 14년이 걸렸다는 데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됐을 때 마지막까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찰스 스트릭랜드의 광기에 찬 기이한 생애였다. 책을 덮은 후, 나는 이 경이로운 작가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그것은 오만하고 비정한 천재가 아닌 정확히 저자에게 겨누어져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글을 쓰는 건 좋아하지만, 소설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렇듯 질투는 때때로 저도 모르는 스스로에 대해 알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이 스트릭랜드처럼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았다. 다음 날에도 나는 학교에 갔고 수업을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저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수십 번씩 다짐을 해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없는 것 같다. 대신 때때로―혹은 더 빈번히―참고서가 아닌 소설을 읽었는데, 당시 읽었던 독서량을 지금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나에게 책을 읽는 행위는 그때 저자에게 느꼈던 강렬한 인상의 재연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소설은 나에게 내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도 했다. 소설이 픽션이라는 것을 모를 나이가 아님에도 그랬다. 아마도 그 안의 세상이 내가 아는 현실과 아주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재하는 공간 안에 교묘히 끼워진 소설 속 인물들은 어느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침범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과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저 자신의 세계 안에서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게 가능한 것인가. 인간이라면 개인의 성향보다 사회 집단 속에서 통용되는 윤리와 원칙에 맞춰 살아가야 하지 않던가. 우리는 어머니의 산도를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아니, 뱃속에서 몸을 불리고 귀를 세울 때부터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주변의 가치관과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게 받은 첫 번째 질문은 이런 의문 속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과연 스스로의 만족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의 가장이었는데 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주변 모두로부터 사라진다. 아내는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의 도망이 결코 혼자일 리 없다고 장담한다.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의 아내에게 부탁을 받아 그를 만나러 파리에 가고, 거기서 모두가 믿으려 하지 않았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홀로 파리에 간 것이었다.
    예술적 재능 자체가 불분명한 이 마흔 넘은 남자의 낭만적인 도피는 남은 가족을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지만 정작 ‘나’가 만난 스트릭랜드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가장이 지어야 할 의무, 나아가 인간이 지어야 할 모든 의무를 내려놓은 그는 예술적 성취를 제외한 모든 삶의 가치를 내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후 ‘나’가 쫒게 되는 스트릭랜드의 행적은 스스로의 이기로 인해 주변을 불행에 내몰기도 하나 그림에 대한 그의 광기어린 집착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찰스 스트릭랜드의 작품론이 아니라 다만 그의 인격과 특이한 개성에 대해서이다.

 

    물론 스트릭랜드의 작품이 죽음 뒤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그의 삶 전체는 남에게 평가받기 이전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나 또한 화자가 이야기에 앞서 밝혔던 것처럼 그가 죽음 뒤에 갖게 된 영광에서 최대한 벗어난 채로, 그의 이상과 가치관에 대해 더 주목하고 싶다. 그의 삶이 비록 사람들이 바라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난 것이라 해도, 스트릭랜드가 스스로에게만큼은 충실한 삶을 살았다는 건 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생에 가지는 모든 욕구를 오로지 ‘예술’ 아래에 놓았다는 것은―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그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의 삶의 목적은 짐승이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너무도 명료하고 단순해서 오히려 순수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목에서 상징되는 ‘달’과 ‘6펜스’는 손에 닿지 않는 이상과 세속적 가치를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고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들은 함께할 수 없고, 한쪽을 선택한다 해도 그마저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군가는 일생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지금도 꿈을 이루지 못했고, 자신이 꿈꿔온 달이라고 생각한 가치를 위해 노력했던 누군가는 지금 또 다른 달을 꿈꾼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에게 작금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은 아마도 죽음 직전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스트릭랜드가 6펜스의 가치를 버리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이 달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삶의 어느 순간, 그것만이 자신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퍽 강렬하고도 낭만적인 열정이라 나는 자신에게 그런 부분이 있는지, 혹은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스트릭랜드를 떠올렸다. 그는 마흔이 넘어서야 자신의 길을 찾지 않았나. 돌이켜 보았을 때, 열일곱의 나에게 그것은 꽤 큰 위로로 다가왔다.

 

 

 

나푸름(소설가)
 

1989년 서울 출생.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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