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_시_멍]
요트의 기분
서윤후
우리는 발 하나 담갔을 뿐인데
웅덩이는 바다가 되어 넘쳐흐르고 있었지
유약한 사람들이 만든 종이 요트 타고
바다를 찢으며, 그렇게 나아갔지
구멍 난 바다를 채우려드는 저 파도에게, 파도가 게을러질 때쯤 우리는 백사장에 선착장 하나 그려놓고선
다음 날이면 지워져 돌아올 수 없는 주소를 가지고 그렇게 바람을 찾아갔단다
맨발을 숨기고 자꾸 손으로 걸으려고 하니까
김 서린 안경을 닦고 돛 끝에 달린
바람개비를 흔들며 안녕!
마중인지 배웅인지 헷갈리는 인사를 나눠야만 했지
요트는 흔들리지 않고 걸을 수 없는 신발
요트 접는 방법을 알아갈 때까지
몸에 점선들이 생길 때까지 부딪히는 모래들
발 하나만 빼면 수평선은 다시 나란해질 텐데 우리는 우리를 밝혀주지 못한 채로 어둠에 속았어 너무 많은 등대들이 생겨나고 있으니까
웅덩이의 속사정을 붉힐 수 있는 것을 찾으러 가자
선체 모서리부터 조금씩 젖어드는 기분을
어디에 정박해두어야 할까
멀미 난 나침반이 파르르, 파르르 떨며 요트를 이해하고
누군가 짓다 만 모래성에 잠시 머물다
젖은 종이 요트를 덮고 잠에 들었지
내일 꼭 일찍 일어나자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약속은 멍든 팔베개처럼
조금은 다정하고
조금은 힘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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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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