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같은 책이야기]그런데 당신, 그거 당신 맞나요?

 

[2014년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함께하는
숨겨진 보물 같은 책이야기]

 

 

그런데 당신, 그거 당신 맞나요?

– 아베 고보의 『타인의 얼굴』

 

최현우(시인)

 

 

book-24    부끄러운 첫사랑 얘기로 시작해볼까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습니다. 겉으로는 안 좋아하는 척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미니홈피 일촌을 걸었습니다. 일촌신청이 수락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여자아이가 좋아하던 연예인, 음악, 영화, 책, 생각 등을 공부보다 열심히 익혔습니다. 그 시기와 맞물려 처음으로 외모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두꺼운 안경을 벗고 부모님 몰래 콘택트렌즈를 사서 끼고, 학교 두발 단속을 피해 머리를 기르고 교복을 줄였습니다. 여자아이의 마음에 들고 싶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짝사랑이 일 년쯤 되었을 때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아이는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잘생긴 남자아이였습니다. 세상 모든 이별노래는 그때 다 들었습니다.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얼굴을 비롯한 신체에 장애나 기형이 있어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성형수술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들의 불우한 아픔만을 과장하여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지원자는 외면의 고통 때문에 내면까지도 고통 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밖을 쉽게 돌아다니지 못하기도 하고 가족과도 잘 지내지 못하거나 일과 연애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런 그들이 수술을 통해 외모를 보정하고 나서 당당하게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내면만큼이나 외면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 특별한 장애나 기형은 없지만 스스로의 얼굴이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자신의 모든 사진을 포토샵으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고쳐 올리는 사연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가상공간에 함몰되어 현실에서의 소통을 단절시킨 사람이었습니다.

 

    메를로 퐁티는 알고 있는 바 실존주의 현상학자입니다. 그는 “우리는 결코 무(無)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마치 얼굴이 쉬고 있을 때나 심지어 사망해 있을 때도 늘 무엇인가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처럼.”이라는 말과 함께 외부 대상이 우리에게 의식되는 데 필수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몸’을 강조합니다. 몸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을 감각하고 인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우리가 느끼고 체험한 세상은 몸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몸은 우리를 세상에게 인식시키는 형체입니다. 퐁티의 말처럼 몸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늘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와 세상 사이에는 반드시 몸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몸이 그만큼 살아있는 자들에게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베 고보, 『타인의 얼굴』은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와 함께 아베 고보의 ‘실종 3부작’ 중 하나입니다. 소설은 어느 날 액체질소 폭발사고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시작합니다. 얼굴을 잃은 주인공은 얼굴을 되찾기 위해, 나아가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인간의 피부와 똑같은 가면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자기의 본래 얼굴과 다른 얼굴을 만들어낸 그는 타인 행세를 하며 얼굴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을 연구하고 또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자인 것처럼 유혹하는 실험을 시작합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기록한 연구일지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끝에서 아내의 편지를 배치하며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타인의 얼굴』은 1964년에 나온 작품이지만 지금까지도 세련된 문체와 이야기가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얼굴이 마음의 창문이라는 오랜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사람은 사람의 표정만으로 많은 마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몇 마디 말보다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더 깊은 대화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한 얼굴을 잃고 만 주인공은 얼굴을 찾는 과정에서 얼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지금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는 현재의 우리 역시 많은 얼굴을 만들며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운동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고 좋은 물건을 삽니다. 예쁜 ‘얼굴’ 만들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예쁜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당신, 그거 당신 맞나요?

 

    지금도 가끔 느껴집니다. 늦은 밤 놀이터 벤치에 앉았을 때 살짝 닿아 부끄러웠던 어깨의 감촉.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시원하게 웃는 그 목소리. 할 일 없는 주말 오후 냄비채로 젓가락만 들고 같이 먹던 라면의 맛. 싸우다가 집어던져 깨져버린 필통. 빌려줬다 돌려받은 외투에서 나던 샴푸 냄새. 물수제비 내기하다 졌다고 분해서 열심히 연습했지만 세 번도 못가서 퐁당 빠지는 소리가 나던 강가.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아는, 나만 아는 당신의 얼굴입니다.

 

    지금 당신은 나의 얼굴을, 나는 당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자주 가면 속에 우리의 얼굴을 구겨 넣고 있지는 않은 걸까요. 확실한 것은 어느 날 한 번쯤 우리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매만져주는, 매만져주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타인의 얼굴??의 주인공은 그 지점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살면서 가면과 맨얼굴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점점 어려워지는 일 같습니다. 어렸을 적 그 여자아이가 잘생겼기 때문에 그 남자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히 만나 그 남자아이의 어디가 좋았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여자아이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냥 이유 없어.” 그럴 줄 알았으면 렌즈 사고 교복 줄이느라 용돈 다 쓰고 두발단속 피하다 걸려 실컷 맞고 한 달 내내 아침청소 할 필요 없었을 텐데요.

 

    소설 속 주인공에게 아내가 이렇게 씁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분명히 거울입니다. 어떤 타인도 당신에게 있어서는 어쨌든 자기를 비추는 거울밖엔 안 되니까요.”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었나요. 당신은 진짜 그들과 함께 있었나요. 그들의 기억 속 당신은, 진짜 당신이었을까요.

 

 

 

최현우(시인)
 

1989년 서울 출생.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글틴 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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