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낯설지만 친절한 작가 황정은

 

[서울국제도서전 SIBF2014 저자와의 대화 참관기]

 

 

낯설지만 친절한 작가 황정은

 

 

 

배혜지 (문학특!기자단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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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0일, 2014 서울국제도서전이 한창이던 삼성동 코엑스에서 황정은 작가와 독자들의 만남이 있었다. 황정은 작가는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후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과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를 펴내며 독특하고 뚜렷한 개성으로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단편 『양의 미래』가 제5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날은 작년 가을에 펴낸 『야만적인 앨리스 씨』를 테마 도서로 저자와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황정은 작가는 꾸준한 작품 활동과 <문장의 소리>, <라디오 책다방> 등 팟캐스트 활동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은 편이면서도 ‘낯설고 이상한 소설들’, ‘1976년 서울 출생이 전부인 간결한 작가 소개’, ‘무심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프로필 사진’ 등으로 인해 신비주의라거나 시크하다는 등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특히 이번 작품 『야만적인 앨리스 씨』는 전작들보다도 더 폭력성이 두드러지고 거칠어 ‘이런 소설을 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라는 반응도 많았던 것이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궁금증과 기대 섞인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자리에, 황정은 작가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등장했다.

 

 

    세상에 원래 존재하는 폭력에 대하여, 『야만적인 앨리스 씨』

    저자와의 대화는 최근작인 『야만적인 앨리스 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첫 질문은 『야만적인 앨리스 씨』라는 오묘한 제목이 어떻게 나왔냐는 것. 작가는 “‘제목은 작가가 짓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제목이 어떻게 나왔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라며, “작가 아닌 무엇과 더불어 만들어 낸 제목 같다.”고 말했다. 다만 “『야만적인 앨리스 씨』는 제목이 먼저 있었던 소설이에요. 어떤 ‘애도’의 과정을 담은 소설이고, 그래서 제목도 자책하는 내용을 가졌죠.”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여장 노숙인, 고모리 등 구체적인 작품 내의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뒤따랐다. 작가는 “여장 노숙인이라는 소재 이전에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적겠다는 다짐이 먼저였어요.”라고 말한 후 ‘앨리시어’라는 인물이 태어난 배경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있는 상태에서 우연히 일본에 갔는데, 여장을 한 노숙인이 오사카 번화가의 평지를 산을 오르듯 가고 있는 걸 봤어요. 보는 순간 ‘저 사람이 내 이야기의 화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 작중 앨리시어의 고향이자 재개발 지역인 ‘고모리’에 대해서는, “재개발 지역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음…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세상에 던져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중에서도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가장 충격 받을 것이 연약하고 도망칠 데 없는 사람들, 어린 아이인데 ‘그들을 어른들이 가장 잘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이 뭘까?’생각하다 역시 재개발과 같이 돈에 관련된 상황이다 싶어서, 재개발이라는 소재를 활용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작가는 “폭력이라는 것은 어딘가에서 가까이로 오는 게 아니라 항상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앨리시어에게 가해진, 또 앨리시어가 뿜어내는 폭력 또한 맥락이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원래 있는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앨리시어의 엄마가 휘두르는 폭력의 정도는 분명 과하지만, 과하지 않은 폭력이 있을까요?”라고 되물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디에나 방어기제, 그러니까, 모든 돌출된 것에 대한 푹 들어간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앨리시어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만큼 이 작품을 통해 사회를 탓하거나 하려는 의도는 없어요.”
    작가는 작품의 목적이 사회비판은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대신 과거의 일임에도 시종 현재형으로 서술하는 앨리시어의 목소리를 통해 이것이 서술자에게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적인 사건임을 강조할 뿐이라고. 작가는 이것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메시지라거나 방어기제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 사회 체제에 대한 비판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애도의 한 방식’, ‘동생의 이름을 부르려는 시도’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동생의 손을 잡고 찾아간 상담사에게 ‘엄마를 때려도 되나요?’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다는 사회자의 말에도 이와 같은 맥락의 답변이 돌아왔다.
    “엄마를 때린다는 행위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미 정도를 넘은 폭력을 감당하고 있는 앨리시어에게는 상식과 비상식을 따질 그럴 만한 여유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헤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소설쓰기

    대담 중반에 이르러 이야기는 『야만적인 앨리스 씨』를 넘어 황정은의 소설 전반으로 옮겨갔다.
    ‘황정은 작가에게 소설이란?’이라는 사회자의 진부한 질문에 작가는 잠시 난처한 웃음을 짓더니 “글 쓰는 분들이 이런 자리에서 하는 얘기가 백퍼센트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며 “이제 제법 여러 권 소설을 썼는데도 여전히 소설 쓰는 게 뭔지 잘 모르겠고 정말 어려워요”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다만 “소설을 쓰는 것은 하지 않는 걸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개미지옥 같은 것”이라는 말로 답변을 마무리 지었다.
    이어 ‘어디서 영감을 받고 어떻게 소설을 시작하느냐?’는 질문에 잠깐의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잘 모르겠습니다.”였다. 소소한 웃음이 퍼진 뒤 작가는 “소재는 그냥 살다가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막연하게 대답했다.
    소설을 시작하는 작업은 조금 더 설명이 길었다. 조금 엉뚱하게도, 황정은 작가에게 집필의 시작은 청소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청소 안 하고 도망 다니고 했는데(웃음), 소설을 쓰려고 보면 먼지 같은 게 보여서 책상부터 닦고 시작하는 게 습관이 되더라고요.”
    “등단 상금 받고 맨 처음으로 (책 등을) 많이 쌓아놔도 끄떡없는 큰 책상을 샀는데요. 그러고 10년이 지났는데 후회하고 있어요. 소설을 쓰려면 책상을 닦아야 하는데, 너무 넓어서 닦기가 힘들어요. 망가지면 새로 사려고 했는데 너무 튼튼해요.(웃음)”
    이런 작가의 투덜거림에 사회자와 관객들 모두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이어진 질문은, ‘평론가끼리는 휴가 가서 서로 읽은 책을 물어보지 않는 게 불문율이거든요. 작가들 사이에도 그런 것이 있나요?’였다. 작가는 “저는 작가 모임 같은 것도 자주 나가질 않아서 친한 작가가 많지는 않아요.”라며 이번에도 잠시 생각을 해 보다, “‘이번 여름에 마감 있어?’ ‘마감 언제야?’ 같은 얘기를 제일 자주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는 웃었다.
    자연스럽게 주제는 작가의 다음 마감, 즉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다.
    “7월 말에 마감 예정인 소설이 있어요. 사실은 이게 지난달 말이었다가 이번 달이었다가 계속 미루고 있는데, 이젠 진짜 마감해야죠. 단편집도 준비 중이에요. 계속 쓰는 거죠.”

 

 

    터프하게 터프해지고 있다

    독자들이 직접 질문을 던지고 작가가 이에 답하는 시간, 평소 황 작가의 책을 즐겨 읽는다는 애독자들이 그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해 물었다.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긍정적인 결말이 적은 점, 초기작과 최근작의 차이에 대한 질문했다. 작가의 답변을 통해 작가의 창작관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의 결말에는 작가가 세계에 대해 감각하고 있는 게 반영되기 때문에 ‘사는 게 왜 이 따위지?’ 하고 있으면 ‘세상은 아름다워!’는 나올 수가 없어요. (소설에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건) 아마 제가 외로움을 많이 느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좋은 결말로 쓰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도 해봤고 『백의 그림자』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결말로 냈는데, 행복한 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주 그러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작품 방향도 내비쳤다.
“차기작도 폭력에 대한 거였는데 희망을 전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하고 있어요. 그 다음도 또 긍정적으로 하려고 생각해 봤는데, 요즘 좀 세상에 좌초한 면이 있어서 그렇게는 잘 안 되더라고요. 더 많은 경험을 하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초기작에서 최근작으로 넘어오며 스타일이 달라진 것 같다는 의견들에는, “바라보는 세계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니고, 친절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같은 초기작에서 ‘굳이 이것까지…’라는 생각에 많이 생략했는데 사람들이 다들 난해하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대답하면서, 소설을 읽는 것을 ‘징검다리가 놓인 강을 건너는 것’에 비유해 스타일의 변화를 설명했다.
    “「상행」이나 「상류엔 맹금류」에서는 그 징검다리를, 전에는 다섯 걸음 뛰어서 가는 거였다면 이제는 스무 걸음 걸어서 갈 수 있도록 조금 더 친절하게 쓰려고 하고 있어요.”
    또한 환상성이 강하고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초반작에 비해 최근작들은 더 현실적이고 가깝게 느껴진다는 평에 대해서는 “아직도 터프가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터프하게 터프해지고 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단, 작가 본인은 초반작들을 환상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엉뚱한 이야기’로 평했다.
    “환상적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 이야기들이 심연에 더욱 가까이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가까워서 직접적으로 말할 수가 없는 거죠. 무엇보다 ‘이렇게 쓸 수 있구나’가 재밌던 시기였어요. 요새는 글을 쓸 때 조금 더 많은 것을 생각해서 건조해진 게 아닐까요. 이렇게 쓰다 보면 또 어느 순간에는 다시 그런 엉뚱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 싶어요.”
    『야만적인 앨리스 씨』를 테마 도서로 한 행사였던 만큼, 그와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서도 답했다.
    ‘폭력을 휘두른 뒤, 엄마가 동생의 죽음을 왜 슬퍼할까요?’라는 물음에 “어미의 마음인 거죠”라고 간단하게 답한 뒤 부연 설명을 통해 여지를 남겼다.
    “본능적으로 가진, 자신의 것에 대한 상실감, 폭력으로 표현된 소유욕 같은 것이겠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분명 진심으로 슬펐을 거예요. 다만, 앨리시어가 그 슬픔에 공감하기는 힘들었겠죠.”
    앞선 대담에서 나온 ‘폭력은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는 발언과 관련해 ‘폭력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면 피해자들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라는 질문이 나오자, 작가는 잠시 고민하다 “그렇게 변태적인 사람은 아니고”라며 웃었다. 하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당사자에게는 그렇게 ‘원래 있는 거예요’로 끝날 문제는 아니죠.”라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문제가 있으면 방어기제가 항상 마련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작동을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인 거예요. 그건 사회적인 방어기제도 있지만, 개인이 져야 하는 책임도 있어요. (중략) 그런 것들을 글로 표현한다고 해소가 되지는 않고, 오히려 더 밤잠 설치고…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말을 맺었다.
    현대문학상에 선정된 「양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는, 답변 첫머리에 “일단 수상하지는 않았고요.”라고 웃으며 정정한 뒤 답변했다(「양의 미래」는 제5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으나 황정은 작가가 수상을 거부한 바 있다.). 「양의 미래」는 작가가 아끼는 소설이자 써놓고도 심정적으로 힘들었던 작품이다.
    “재밌는 게 ‘양’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동물을 먼저 생각하는데, 여자는 김 양, 이 양 할 때 그 양을 먼저 떠올리더라고요. 일단은 김 양, 이 양 할 때 그 양이 맞고요. ‘-양’이라는 호칭이, 저만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는 좀 하대하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래서 화자가 개인적인 지옥을 감당하는 느낌을 주려고 지은 제목이에요.”
    그 외에도 소설 속의 독특한 이름들을 지을 때는 인물에 어울리는 어감에 따른다.
    현재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지금 시점에서는 제일 많이 싸워야 하는 가장 최근작이 제일 좋고, 『파씨의 입문』에서는 「대니 드비토」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작품을 쓸 때 듣는 음악이 있느냐는 물음에 “작품 쓸 때는 음악을 안 들어요. 어차피 집중하면 안 들리고, 제가 기계식 키보드를 쓰는데, 그 소리가 좋거든요”라고 밝히기도 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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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행사가 끝나고…

    행사가 끝난 후 이어진 사인회에서는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독자와 마주앉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누르듯 사인을 하는 작가와 그런 작가의 사인을 받고자 길게 늘어선 독자들 탓에 다음 행사 시작 시간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던 것. 급하게 섭외한 새로운 장소를 향해, 사인을 기다리던 20여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런 와중에 돋보인 것은 작가의 친절함이었다. 작가는 장소를 옮기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인터넷 접수와 현장 선착순 접수자에게 주는 책이 다 떨어졌는데도 줄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책이 더 없는데 어떡하죠?”라며 계속해서 독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에 기다리던 독자들도 친절하시다고 연발했다.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저자와의 대화에 이어 사인회까지 모든 행사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글틴 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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