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신간 리뷰] 불의 몫

 

[문학 신간 리뷰]

 

 


불의 몫

– 김소형, 『ㅅㅜㅍ』(문학과지성사, 2015) 리뷰

 

 

 

김태선(문학평론가)

 

 

 

 

죽음과 더불어 손에 손을 맞잡은, 공모와 내밀의 순간.
나를 불태우는 과잉은 내 안에 사랑의 화합이니, 나는 […] 사랑으로 전율하는 것이다.
 
– 조르주 바타유

 

    그러니 시작에서 시작해 보자. “그리고 버려진 성당에 종이 울린다.” 『ㅅㅜㅍ』의 시작에 쓰인 김소형 시인의 말이다. 성당은 예배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대개는 내일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찾는다. 그러나 발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이 성당은 버려진 곳으로 제시된다. “그리고”라는 접속사는 앞서 성당을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만든 일련의 사건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사건이 일어난 상황과 지금이 단절된 채로 접속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더 이상 내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전망을 상실했기에 성당은 그 쓸모를 다해서 버려진 것일 터이다.
    아직 파국이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는 때라면, 여전히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버려진 성당”이 표상하는 것처럼 『ㅅㅜㅍ』에서 시인은 어떤 단절, 혹은 파국 이후의 시간을 노래한다. 전망을 상실한 이에게 시간은 죽음의 이미지들로 다가온다. 때문에 시집에 가득 수놓인 것들은 뼈와 시체, 혹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다. 심지어 ‘나’가 이미 죽은 것으로 나타나는 노래들도 있다. 전망이 부재하는 상황에 놓인 이에게 지금 여기는 닫힌 공간으로 인식된다. 때문에 시인은 “어느새 나는 지루한 시계가 되어/ 그들과 뛰어다녔단다,/ 그렇게 하루를, 또 하루를,/ 사물함 안에서 자물쇠를 걸고, 그렇게.// 또, 세계를 닫았단다.”(「사물함」)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그렇다. 파국 이후의 시간에 놓인 버림받은 이도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버려진 성당에 종이 울린다”라는 말은 그렇게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음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버려짐 이후에도, 전망이 부재하는 시간 속에서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김소형의 시집 『ㅅㅜㅍ』은 그렇게 유폐된 시간 속에서 방기된 존재가 당신을 부르는 노래다. 어떤 종말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모든 것이 마모되고 부식되는 것만 같더라도, 부름이 있다면 단순하게 끝나버린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끝에서부터 시작을 해보자. 시인이 전하는 어떤 종말과 그 이후의 시간의 양상을 먼저 살펴야 한다. 관을 두고 “처음으로 생긴 내 방이야”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관은 분명 죽은 자가 제 몸을 마지막으로 두게 되는 공간이다. 관에 몸을 두게 되었다는 건, 곧 그이가 삶, 혹은 공동체로부터 유리된 존재임을 의미한다.

 

방 구하러 왔소
모든 게 갉아 먹히기 위해
시계는 돌아가지
모든 게 무너지기 위해
관은 돌아가지
 
목에 숨겨 둔 눈알에선
작은 무화과 열매가 달렸네
몰래 한 알 품속에 숨기지
우리는 각자 돌아가며 무너지네
시계는 다시 두 시, 오로지 두 시
썩은 계절은 돌아가며 무너졌어

        – 「 관」 중에서

 

    「관」에 등장하는 ‘관’은 특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이 열렸다”라는 말처럼 ‘관’은 열고 닫을 수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2연에는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 문은 보이지 않고 그는/ 내 옆에 앉아 있네”라고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우리는 말캉한 눈을 뽑아/ 구워 먹었어 진흙에/ 늑골을 심고 오줌을 누고/ 다시 먹었지”라는 대목은 더 기이하다. 여기서 우선 ‘눈’에 주목해 보자. 「눈」에서 ‘눈’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씹어” 먹는 기관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눈은 당신을 천천히 삼켜/ 한 구의 신선한 시체로 밀어 넣을 거야.”라고 말하는 일이 가능하다. 무언가를 보는 행위는, 대상을 이미지로 만들어 기억으로 옮겨 놓는다. 실재하는 대상을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움직임은 곧 사물을 ‘삼키고’ ‘신선한 시체’로 만드는 것과도 같다. 이런 과정들은 모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난다. 반면 「관」에선 ‘눈’을 ‘먹는’ ‘우리’가 등장한다. ‘눈’을 먹는다는 건 보는 일을 그치게 된다는 것, 이런 행위는 어떤 시간의 정지를 보여줌으로써 전망이 부재하는 곳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양상을 일러준다. 관이 열려 있더라도 ‘눈’을 먹어버렸기에 문을 볼 수 없는 것일 터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의 ‘문’이 보이지 않기에 ‘관’은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장소처럼 보인다.
    ‘관’이라는 장소는 죽음 이후에 사람이 거하는 곳이듯, 그 안에 있는 이들이 속한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때문에 「관」에 등장하는 시계는 “계속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그곳으로 찾아오는 이들은 “몇몇은 마네킹처럼/ 부러진 채 벽을 보고 얘기하지”라는 것처럼 불구와 같은 모습이거나, “누군가 바짝 마른 살가죽을 뜯고/ […]/ 누군가는 그걸 물어 담배를 만들지/ 담뱃재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작은 이빨들만 떨어져 나가네”라는 말처럼 자신을 마모시키고 소모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관」에서 정지된 건 바로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망’이라는 말은 ‘앞을 내어다 보는 일’을 가리킨다. 모두가 ‘눈’을 구워 먹는 공간에선 그런 전망의 가능성이 차단된다.
    전망이 없는 곳에 거하는 이들이 행하는 건 자신을 마모시키는 일뿐, 그곳에서 시간은 “모든 게 갉아 먹히기 위해” 돌아간다. ‘관’이라는 공간 역시도 “모든 게 무너지기 위해” 돌아가는 모습으로 있을 뿐이다. ‘관’에 있는 ‘나’ 역시도 “방 구하러 왔소”라고 말하며 찾아오는 이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눈’을 숨겨 둔다는 점이다. “숨겨 둔 눈알에선/ 작은 무화과 열매가 달렸네/ 몰래 한 알 품속에 숨기지”라고 ‘나’는 노래한다. 물론 여전히 시계는 같은 시각만 가리키고, “우리는 각자 돌아가며 무너지네”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거하고 있지만, ‘나’의 숨기는 행위는 그런 파국의 시간 속에서도 어떤 미래를 도모하려 한다.
    무화과라는 이름은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 그러나 사실 무화과는 꽃이 없지 않다. 과육 안에 꽃이 숨어 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모든 것을 마모시키기만 할 뿐, 어떤 생성이나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파국의 시간 속에서도 꽃은 ‘나’의 ‘목’ 속에 숨어서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꿈을 꾸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고여 있는 시간의 벽에 틈을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을 터이다. 그러니 이제 꿈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김소형의 시에 등장하는 이상한 장소, 이상한 시간의 모습은 마치 꿈에서 만나는 것들과 같다. 환영처럼 보이기도 하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공간에서 노래하는 일은 기괴하기도 하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괴한 것들 사이에 내밀한 욕망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 「ㅅㅜㅍ」에서 ‘나’는 “꿈속이라 믿었던 숲”에 대해 이야기한다. ‘숲’은 “어딜 가나 음악이고 어디서나 음성이던” 곳이라 한다. 그런데 어떤 음악, 어떤 음성일까.
    「귀」에서 ‘나’는 “네 귓속에 묻힌 묘지”를 보며 “사라진 소리들이 햇살을 받으며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저기 내 이름도 있어, 네가 나를 불러 주지 않는다면 저곳에 눕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휜」에선 “이 밤, 당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마도 ‘숲’의 음악과 음성은 ‘나’를 불러 주는 ‘당신’의 소리, 동시에 ‘당신’을 부르는 ‘나’의 소리일 것이다. ‘숲’은 사랑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환한 잠을 따 광주리에” 담는다.
    환한 잠, 이는 「불편한 연인」의 “서로 뒤집혀 새까맣게 말라 가는/ 오후 한 시, 불면에 시달리는 날들”과 대립되는 이미지다. 「불편한 연인」에서 연인은 서로에게 “이미 죽었잖아”라고 말한다. “오후 한 시”는 “죽음이 다닥다닥 들러붙는” 시간, 대낮이지만 두꺼비를 내린 것처럼 인공적인 어둠의 시간이다. 여기서 ‘죽음’은 끝나버린 사랑이다. 그와 반대로 ‘환한 잠’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꿈을 연상시킨다. 사랑의 공간을 지키기 위하여 ‘나’는 “밤마다 불 피우며 땅속에다 숲을 두고 돌 속에다 숲을 두고 주머니에도 발가락 사이에도” 둔다.
    그런데 그렇게 ‘숲’을 두는 시간에 ‘당신’은 “이미 죽은 당신”이라 불린다. 지금 이 시간 ‘나’와 ‘당신’ 사이에는 단절이 있다. ‘당신’은 이미 ‘나’를 떠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당신에게 총을 겨누는 병사들과 당신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 인부들과 숨겨 둔 숲을 찾아 도끼질하는 벌목꾼”들을 피하려 한다. 이들은 사랑을 완전하게 끝내버리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 이들을 피해 “숲은 만들어졌”다. 여기서 ‘숲’은 단순한 사랑의 공간이기보다는, ‘이미 죽은’ 사랑을 되살리기 위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환한 잠을 따 광주리에” 담는 일은 그런 ‘숲’을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숲을 두고 숲을 두고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고 싶었습니다
빛이 주검이 되어 가라앉는 숲에서
나만 당신을 울리고 울고 싶었습니다

        – 「 ㅅㅜㅍ」 중에서

 

    ‘나’의 바람은 “숲을 두고 숲을 두고/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는 일이다. ‘나’는 ‘숲’을 두고 “빛이 주검이 되어 가라앉는 숲”이라 한다.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고 싶었습니다”라는 바람처럼, ‘숲’은 사랑을 되살리기 위한 공간이니만큼 시간의 흐름에 맡겨진 곳이기도 하다. ‘나’의 바람은 ‘당신’을 붙들어 두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일월」의 ‘나’가 “안녕,/ 어제와 오늘을 축복하면서 행복해야 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드는 것처럼, 「ㅅㅜㅍ」에서의 ‘나’도 떠나감을, 시간의 이행을 긍정한다. ‘숲’은 고여 있는 시간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곳이 아니라, “하루만 늙고 싶었습니다”라는 바람처럼 ‘당신’의 떠나감을 긍정하는 공간이다.
    그렇게 「관」에서 ‘눈’을 목에 숨겨 둔 것처럼, ‘숲’을 숨겨 두는 일은 곧 정지된 시간에 맞서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긍정하는 일인데, 이를 통해 유폐되고 닫혀 있는 시간에 틈이 열리면서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이 이루어진다. “나만 당신을 울리고 울고 싶었습니다”라는 바람은 그런 떠나감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정한 소통에 이르는 일이다. 그리하여 ‘숲’을 두는 일도 역시 “밤마다 불을 피우”는 일과 함께한다. 이는 어둠을 밝히는 행위면서, 동시에 존재가 사라짐으로 이행하는 일을 긍정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행위다.
    ‘불’은 김소형 시집의 전반을 아우르는 독특한 상징이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서 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이와 같은 불의 속성은 시간의 이미지와 닮았다. 모든 것은 나타남 뒤에 사라짐에 이를 운명, 불의 존재 역시도 이 세상에 잠시 나타났다가 곧바로 사라짐에 이른다. 불과 시간의 속성이 맞닿아 있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소리 이미지와도 유사하다.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시인은 “불이여, 멈추지 말고 연주해 다오”라며 모든 것을 불사르는 장면을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다룬다.
    모든 것을 사라짐에 이르게 하기에, 불은 때로는 어떤 아픔으로 다가오는데, 가령 ‘불’로 인해 만들어지는 ‘검은 오렌지’를 두고는 “시체의 둥근 뺨을 닮았고/ 가슴에서 솟아난 눈물과도 닮았다”(「검은 오렌지와의 대화」)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 ‘검은 오렌지’는 마치 시인의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염의 손 부드럽게 흔드는/ 오케스트라/ 넌 이곳에 날 밀었지”(「오케스트라」)라고 노래하는 대목과 같이 ‘나’는 시간이라는,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질 운명에 수동적으로 놓여 있는 존재자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수동성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탈자태(脫自態, extase)의 정념을 발산한다. 그렇다. “그리고 버려진 성당에 종이 울린다.”라는 말에서, ‘버려진 성당’은 곧 시인 자신의 몸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은 ‘버려진 성당’, 유폐된 시간에 거하고 있을지라도 시인은 ‘하얀 방’ 방에서 “방이여!/ 영원히 굴러 다오!/ 개의 입에 물려 있을 때도/ 대지가 물어뜯을 때도”(「눈」)라며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그 사라짐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만남에 이르려는 내밀한 욕망을 노래한다.
    비록 자신의 몸을 이루는 것은 “하얀 점이 그려진/ 그런 벽”(「벽」)이지만, 그는 “붉은 머리통으로 뾰족한 우주를 두드리는 새가”(「4」)되어 ‘문’과 ‘창문’이 계속 연이어 등장하더라도 계속 열고 들어갈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은 불처럼 한 번 타오르고는 곧바로 사라짐에 이를 것이다. 분명 그와 같은 존재의 운명은 슬프다. “불시착한 빛은 숲이 고요해지게 태우고 있었다.”라는 시인의 마지막 말처럼, 언젠가 ‘숲’도 타오르고 난 뒤에는 고요해지며 온전히 불의 몫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불사른다는 건 사라지게 함을 이르지만 동시에 연주한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음을 일컫는다. 이렇게 시간의 이미지들은 불사름으로써 자신을 내어 주는 노래로 등장한다. “불이여, 제발 연주해 다오”(「오케스트라」)라고 노래하며 자신을 불의 몫으로 내어 줌으로써 탈자태의 정념을 분출하는데, 이로써 조르주 바타유가 말한 “어떤 공동체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를 위한 존재의 나눔이, 참여가 이루어진다.

 

    – 안녕, 내 사랑, 나는 올가야 언제나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실 오래 전부터 생각한 게 있어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됐을까 싶은, 기묘한 역병이었으면 어땠을까 모두에게 희귀한 병을 주는 초능력이 있었다면, 시궁쥐의 붉은 배 속에서 웅크렸다가 사방으로 터지고야 마는 강력한 이름을 가졌더라면, 하지만 때로는 아주 볼품없는 불알로 태어나 묵언 수행을 하고 싶을 때도 있지, 꽤나 쓸모없는 그래서 쓸모 있는

        – 「 올가」 중에서

 

    “어떤 공동체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를 위한 존재의 나눔은 자신의 고립을 부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고립의 정념을 분출함으로써 노래를 듣는 이들로 하여금 그런 고립의 내밀함을 나누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마치 「관」에서 “우리는 각자 돌아가며 무너지네”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굴」에서 “여기 이 굴에서 길 잃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당신, 더러운 발 꼼지락거리며 슬프게 잠든 당신, 이 하얀 굴에서”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올가」에서도 그와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진다. “안녕, 내 사랑”이라며 사랑을 부르는 이의 음성으로 ‘나’는 자신이 ‘역병’처럼 모두에게 전염되는 “강력한 이름”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나’는 “방은 열어도 방이었고 벽은 움직여도 다시 벽이었어”(「굴」)라고 말하는 것처럼 홀로 ‘여기’, ‘하얀 방’에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발적인 정념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저 인사나 나누고 마는 올가가 되고 말았네”라고 하지만, 자신의 바람이 “꽤나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 쓸모없음이 “그래서 쓸모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만 내 사랑을 외칠까”라며 자신의 내밀함을 나누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물론 모든 것은 불의 몫처럼 사라질 것이고, ‘버려진 성당’과도 같은 나의 바람은 “미완성의 진흙은/ 뼈 줍는 꿈을/ 속닥이며 가라앉고 있었다”(「그날 온천에는」)라는 말처럼 ‘난파선’이 맴도는 곳 한가운데서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다. 시인은 물론 그런 존재가 처할 종말의 상황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필멸자의 유한성을, 한계 상황을 나누고 긍정하며 이를 노래함으로써 마찬가지로 고독한 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게 ‘나’는 ‘당신’들과 함께 ‘우리’가 되어 함께 들으며 공모하는 가운데, 계속 나타나는 한계 상황까지 자신을 밀고 나가며, 가로막고 있는 벽을 넘고 창문을 열며 그 너머로 나아간다.
    “우리는 계속 노래하기로 했어”라며 함께 노래하는 이가 있다면, “모든 것은 금빛으로 반죽”될 것이다.(「금빛 뱀 카누」) 이제 ‘문’과 ‘벽’으로 가로막힌 것처럼 보였던 공간은, ‘이미 죽은’ 것으로 보였던 ‘당신’들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사랑의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고여 있는 것만 같았던 시간이 다시 흐르게 될 것이다. ‘당신’이 “여기 이 굴에서 길 잃고 어쩔 줄 몰라” 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하는 시간들” 속에서 서로를 쓰다듬고 있을 테니까.(「굴」) 함께 노래한다면, 계속 노래한다면, 모든 것이 불에 타 사라지더라도.

 

 

작가소개 / 김태선(문학평론가)

–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문장웹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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