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연재] 누에의 난①

<계속>

 

[중편연재]

 

 

누에의 난 (제1화)

 

 

 

김도연

 

 

1

 

    이것은 무서운 이야기다.

 

2

 

    건식은 적당히 취한 상태로 어둑어둑한 재래시장 거리를 걷고 있었다. 상가들은 대부분 셔터를 내린 시간이었다. 문을 연 곳은 허름한 야식집과 노래방 정도였다. 재래시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어둠이 빨리 내리는 것 같았다. 아홉 시가 되기도 전에 상가들이 문을 닫아버리는 탓이었다. 심지어 훤한 대낮에도 문을 열지 않는 가게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손님들이 점점 줄어들었기에. 새로 생겨난 휘황찬란한 대형마트로 옮겨가는 손님들의 야속한 발길을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재래시장은 한낮에도 침침했고 깊은 밤이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내뿜을 정도였다. 그나마 불을 밝히고 있던 몇몇 상가들마저 불을 끄면 마치 도시 한가운데에 납작하게 웅크리고 있는 검은 웅덩이 속을 떠오르게 할 정도였다. 오랜 세월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그 모습이 세월에 밀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지만 건식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가끔 이렇게 찾아와 뜨끈한 순댓국과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돌아가는 게 전부였다. 사실 그 역시 장을 볼 때면 망설이지 않고 대형마트가 있는 곳으로 자동차의 손잡이를 꺾는 게 일상이었으니…….
    건식은 불 꺼진 좁은 골목들에서 물컹물컹한 콜타르 같은 어둠이 흘러나오는 장거리를 걷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방금 본 게 뭐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장거리 시멘트 바닥에 놓인, 세숫대야만 한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가득 담겨 있는 것들. 머리를 허공으로 치켜든 채 꾸물거리고 있는 것들. 건식은 그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한 걸음 더. 바구니 앞에는 할머니 한 분이 목욕탕에서 쓰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거…… 누에 맞죠?”
    건식은 쪼그려 앉으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떨이야. 싸게 줄 테니 사요.”
    “……이걸 사서 뭐에 씁니까?”
    “귀한 약이야, 약!”
    “누에가 약이라고요?”
    누에들은, 아니 누에 떼들은 바구니 안에서 일제히 고개를 쳐든 채 아니라고 항변을 하는 것 같았지만 할머니는 꿋꿋하게 누에가 약이라는 것을 건식에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약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까지. 건식은 누에들에게 술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에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도 끙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을 이어 갔다. 건식은 조금 난처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과감하게 등을 돌리지 못한 채 팔짱을 끼는 걸로 할머니에게 자신의 심정을 전하려 했다. 누에들은 두 사람의 발과 발 사이에 놓인 바구니 안에서 꿈틀거리며 어두운 장거리의 허공으로 알 수 없는 신호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생각 좀 해보고 다음에 살게요.”
    할머니의 말을 건식이 용케 끊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그럴 시간이 없어. 낼모레면 고치 지을 누에들이라니까. 그 전에 빨리 약을 만들어야 돼.”
    “고치를요?”

 

    택시의 뒷좌석에 앉은 건식은 바구니 속의 누에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지 누에들은 무슨 말을, 아니 어떤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것만 같았다. 아주 작은, 가느다란 붓 끝으로 찍어 놓은 듯한 까만 점 같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건식은 저도 모르게 올라오는 한숨을 누에들에게 내뱉으려다 참고 대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누에들은 술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아주 멀리 있는 기억이 천천히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무슨 약을 만드는데요?”
    할머니는 누에가루가 혈당을 떨어뜨리고 당뇨병에 특효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에가루라니? 건식은 꼬물거리는 회색 누에들이 재로 변해 가는 걸 상상했다. 어린 시절 누에가 어떻게 비단으로 변해 가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끙끙거린 적은 있었지만 누에가루는 금시초문이었다. 요지로 찍어 먹는 번데기라면 몰라도.
    “그걸 어떻게 만드는데요?”
    “펄펄 끓는 물에 데쳐서 말리면 돼. 그걸 손절구에 찧어서 가루로 만들면 끝이야.”
    비단을 직조할 고치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누에가루만 남은 형국이었다. 건식은 두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바구니에서 누에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두 손으로 감쌌다.
    “누엘 뭐에 쓰려고 샀습니까?”
    중년을 넘어선 택시기사는 건식이 택시에 탈 때부터 계속해서 룸미러로 누에들을 훔쳐보며 궁금증을 참던 중이었다. 택시가 번잡한 도심구간을 벗어나자마자 건넨 질문이었다.
    “가루로 만들면 당뇨병 약이 된다고 그러네요.”
    “아! 요즘은 그게 약이 되는 모양이네요. 어렸을 때 뽕 따는 일 정말 싫었는데.”
    “뽕잎은 보통 여자들이 따지 않았습니까?”
    “우리 집은 딸이 없어 남자들이 죄다 뽕 따는 일에 매달렸지요. 한창 놀고 싶은 나인데 그러지도 못하고. 정말 누에가 싫었어요. 아참, 손님도 누엘 키웠습니까?”
    “예. 저도 시골에서 자랐으니까요.”
    “누에가 크면 뽕 먹는 양이 엄청나지요! 그것뿐인가요. 뽕잎 갉아먹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냄새도 그렇고. 거 뭐냐…….”
    다행히 택시가 마을 입구에 일찍 도착한 덕분에 건식은 택시기사가 늘어놓는 누에에 대한 수다를 그만 들을 수 있었다. 건식은 누에 바구니를 안은 채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집 앞까지 가면 요금이 지금보다 오천 원은 더 나올 게 틀림없었다. 이제 당분간은 술 마시고 택시 타는 것마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자가용도 마찬가지다. 시내버스 시간표를 외워야만 할 것이다. 실직이 오래가질 않기 바라며. 건식은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진 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초여름 밤의 냄새를 맡았다. 멀리 동쪽 하늘을 이고 있는 치악산은 건식의 타버린 마음처럼 한없이 검고 또 막막하게 검었다.
    “차는?”
    “고수부지에 세워 놨어.”
    “……그게 뭐야?”
    “누에.”
    “누에를 왜?”
    아내와 잠에 빠졌던 아들은 건식이 품에 안고 들어온 바구니 속의 누에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내의 얼굴에선 당혹스러움이, 아들의 얼굴에선 호기심이 번져 가는 밤이었다. 누에들 역시 한없이 졸린 동작과 눈으로 아들과 눈을 맞췄다.
    “이 누엘 어떻게 하려고?”
    “……길러 보려고.”
    “갑자기 왜? 그리고 뽕이 어디 있다고 누에를 길러?”
    “뽕은 없어도 돼. 얘들은 조만간 고치를 지을 거야. 소나무 가지만 세워 주면 거기에 올라가 집을 지어.”
    “……왜 누엘 기르려 하느냐고?”
    건식은 누에에 홀려 있는 아들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아내는 화장실까지 졸졸 따라왔다.
    “나, 직장에서 해고됐어.”

 

3

 

    토요일 오후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학교에서 바로 돌아오니 잠박 속의 누에들은 뽕잎을 달라고 일제히 머리를 치켜세운 채 꿈틀거렸다. 도서관의 책처럼 시렁에 층별로 올려놓은 잠박들, 그 속의 누에들을 바라보던 건식은 한숨을 내뱉었다. 시간을 보니 분명 누에들에게 뽕을 먹일 시간인데 집이 텅 비었다는 건 모두 산에 뽕을 따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건식은 교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잠실에서 풍겨 나오는 뜬내 비슷한 냄새에 코를 막으며 뽕을 담아 놓은 자루를 끌고 좁은 복도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누에들은 사람의 기척을 눈치 챘는지 꿈틀거림이 한층 더해졌다. 뽕잎을 꺼내 잠박에 뿌리는 건식의 손놀림도 덩달아 바빠졌다. 뽕잎은 회색 누에들로 가득한 잠박을 하나둘 초록빛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상전벽해, 상전벽해…… 중얼거리며 누에들에게 뽕잎을 뿌리다가 급기야는 ‘뽕~을 따던 처녀들은 서울~로 가고’라는 가사가 나오는 대중가요까지 흥얼거렸다.
    건식은 잠실의 문지방에 걸터앉아 누에들이 맹렬하게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며 마당의 고요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올해 벌어서 갚으면 되잖아요!”
    “그 많은 돈을 뭐 해서 갚아!”
    “누엘 더 많이 쳐서 갚을 테니 두고 봐요.”
    “잠실이라곤 방 두 개가 전분데 어디서 누엘 쳐?”
    “여기서 치면 되죠.”
    “우린 어디서 자고?”
    “잘 데가 없겠어요.”
    쌀밥보다 강냉이밥을 더 많이 먹지만 나름대로 평화롭던 집안에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들이닥쳤다. 엄마가 외가 쪽 친한 친척이 하는 어떤 사업에 보증을 섰는데 그 사업이 어이없이 망했다는 게 골자였다. 결국 엄마는 보증을 서준 대가로 돈을 빌려준 이에게 빌린 돈을 대신 갚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였다. 당연히 그 액수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날씨 화창한 봄날 건식의 집에만 어마어마한 홍수가 들이닥친 거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보증을 엄마가 아버지 모르게 섰다는 사실이었다.
    건식이 학교에 갔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마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집 안에서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버지의 고함과 함께. 마당에 서 있는 건식은 어두컴컴한 집으로 걸음을 옮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열어 놓은 부엌문으로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때는 엄마와 그 옆의 동생들이 보였지만 그곳으로도 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외양간에선 소가 머리를 밖으로 내민 채 여물을 달라며 길게 울고 있고.
    “니 엄마 땜에 다 망했다!”
    저녁상 자리가 거의 장삿날 분위기였다.
    “니들 학교 보낼 돈도 없으니 알아서 해!”
    아버지는 밥 대신 소주만 벌컥벌컥 마셨다. 건식은 부엌으로 나가는 쪽문 옆에 앉아 있는 엄마를 훔쳐보았다. 엄마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제야 입을 열었다.
    “……학교는 보내야지요.”
    “아, 집안이 망했는데 학교는 무슨 학교야!”
    급기야 밥상이 쪽문으로 날아갔다. 동생들의 울음소리. 방바닥으로 쏟아진 반찬들. 굴러가는 밥그릇들. 쪽문의 창호지에서 흘러내리는 김칫국물. 깨어진 접시……. 건식은 슬그머니 일어나 방을 나왔다.
    뒷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밤, 건식은 숟가락을 손에 잡은 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도 달도 뜨지 않은 밤이었다. 방에서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고함은 점점 더 거세졌다.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부서진 별처럼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건식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밤이 제트기처럼 빨리 흘러가고 어서 날이 밝아 학교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아직 소쩍새 구슬피 우는 초저녁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등 뒤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밥상이 토방으로 날아오고 뒤이어 따라온 술병이 마당에서 깨어졌다. 대문 옆의 개집에 웅크리고 있던 삽살개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안에서 컹~ 하고 우는 밤이었다.
    “엄마, 진짜 학교에 못 가는 거야?”
    “……학교 가고 싶은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 예식이와 남동생 하식이가 멍석을 깔아 놓은 아궁이 앞에 앉아 엄마에게 차례로 물었다. 건식은 그 뒤편에 앉아 남포등을 켜놓고 숙제를 했다. 천장이 없는 부엌의 보꾹과 벽에서 네 사람의 기괴한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술에 만취해 홀로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는 마침내 잠들었는지 코 고는 소리가 쪽문으로 흘러나왔다. 엄마는 긴 한숨을 아궁이 속으로 계속해서 토해 냈다. 아궁이 앞으로 끌어내 놓은 알불들이 사위어 가자 부지깽이로 뒤적거려 불씨를 살리며.
    “학교 보내줄 테니까 공부나 열심히 해.”
    “정말?”
    동생들은 토끼처럼 눈을 반짝 뜨고 두 귀를 곧추세웠다. 중학생인 건식은 한숨을 삼켰다. 소쩍새가 집 바로 뒷산까지 내려와 우는 밤이었다.

 

    이상했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뽕을 따러 간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예년보다 누에를 두 배로 치면서 집 뽕만 가지고선 누에들의 먹이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마을의 웬만한 집들은 모두 누에를 치기에 뽕나무가 부족한 집들은 봄날이면 뽕잎 채취 전쟁을 벌이곤 했다. 건식네는 밭 옆과 밭 중간 중간에 심어 놓은 뽕나무 덕분에 그동안 그 전쟁을 비껴갈 수 있었는데 누에가 곱으로 늘어난 터라 올해엔 아니었다. 건식과 동생들도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뽕을 따러 밭으로 산으로 돌아다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건식이야 중학생이니 주말에만 거들었지만 초등학생인 동생들은 매일 뽕을 따는 일에 동원되었다. 아직 어려서 조금밖에 못 따지만 그래도 조막손 하나가 아쉬운 봄날이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날이 저물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이상했다. 건식은 대문도 없는 뒷문 밖에 나가 우두커니 서서 어두워지는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다들 어디 갔는지 넌 아냐?”
    외양간의 암소는 구유에 부어 준 여물만 우적우적 씹을 뿐 가족들이 어디 갔느냐는 건식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니는 알지?”
    대문을 지키는 삽살개 역시 밥그릇에 코를 처박은 채 쩝쩝거리기만 했다. 꼬리만 빙빙 돌릴 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골짜기의 외딴집이라 물어볼 만한 이웃도 없었다.
    “니들이 알 리는 없을 테고…….”
    벌써 횃대에 올라간 닭들은 나란히 앉아 까딱까딱 졸고 있었다. 건식은 알둥지에서 닭똥이 묻은 달걀을 꺼내 바가지에 담았다. 그 옆 알둥지에선 알을 품은 암탉이 눈을 부릅뜬 채 건식을 째려보았다. 여차하면 부리로 쪼아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니 건 가져가라고 애걸해도 안 가져간다.”
    아궁이에서 마른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뱉으며 불꽃을 피워 올렸다. 장작개비를 깔고 앉은 건식은 졸음을 참으려 애를 쓰며 열어 놓은 문 밖으로 자주 고개를 돌렸다. 뒷마당엔 어둠이 가득했다. 그 어둠을 헤치고 금방이라도 동생들이 들이닥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건식은 남포등에 불을 붙여 부엌 뒷문 옆 나무기둥에 반쯤 박아 놓은 못에 걸었다. 마당이 조금 밝아졌다. 건넛마을엔 전기가 들어왔지만 외따로 떨어져 있는 건식의 집은 아직 등잔이나 호야로 불을 밝혔다. 라디오는 건전지로 들었고 텔레비전은 자동차 배터리로 보고 있는데 충전하는 일이 번거로워서 먹통이 된 지 한참이었다. 전기는 가을이나 되어야 들어온다고 하니 집에서 마음껏 텔레비전을 보게 될 날은 멀고 먼 나중의 일이었다.
    “무슨 뽕을 밤중까지 따는 거야-?”
    부엌문에 기대서서 캄캄한 골짜기를 향해 소리쳤지만 기다리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 산으로 갔는지 알 수 없으니 마중을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건식은 뒷마당과 앞마당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건식의 집은 디귿자 형태의 집이었다. 오른편이 외양간과 헛간이고 왼편은 잠실, 그리고 가운데 두 칸짜리 방이 있는 집이 식구들이 거처하는 집이었다. 외양간과 집은 부엌을 매개로 붙은 형태였고 왼편 잠실과 집 사이엔 지게를 지고 다닐 수 있는, 앞마당과 뒷마당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었다.
    엄마가 누에의 양을 배로 늘리면서 벌어진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는 뽕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따야 하는 거였고, 두 번째는 누에들이 점점 커지면서 잠실도 모자라 식구들이 생활하는 방 두 개까지 누에들이 점령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방 네 개가 모두 잠실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식구들은 부엌으로 가재도구를 옮겨야만 했고 잠도 아궁이 앞에 멍석을 깔고 잘 수밖에 없었다. 누에가 고치를 틀고 그 고치를 모두 딸 때까지. 건식은 누에들이 뽕잎을 먹고 있는 잠실의 방문들을 하나하나 열어 호야의 불빛으로 비춰보곤 부엌의 아궁이 앞으로 되돌아왔다.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냐…….
    건식은 멍석 위에 깔아 놓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앞아 끄떡끄떡 졸기 시작했다.

 

4

 

    “아빠, 뭐 하는 거예요?”
    건식은 창고로 쓰는 방을 청소한 뒤 잠실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빈 책장을 시렁으로 대신하고 책이 꽂히는 공간에 산에서 꺾어온 소나무 가지를 누에가 고치를 지을 섶으로 하나씩 얹어 놓았다. 누에가 바로 섶으로 오르지 않을 것을 대비해 산뽕나무까지 찾아 뽕잎도 어느 정도 따두었다. 아들 녀석은 신기한 모양인지 건식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누에가 살 집을 만든다.”
    “좀, 이상해요.”
    “두고 보면 알게 된다.”
    집에 있는 넓적한 플라스틱 바구니를 모두 가져와 누에들을 나눠 담은 뒤 소나무 가지 아래 하나씩 놓고 뽕잎까지 얹어 주었다. 누에들은 스멀스멀 뽕잎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마치 새로 이사 온 집을 슬그머니 살펴보는 듯이. 개중엔 뽕잎을 갉아먹는 누에까지 있었다.
    “아빠, 왜 누에를 기르려는 거예요?”
    “비단옷을 입고 싶어서.”
    “비단옷?”
    “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누에하고 비단옷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알기 쉽게 설명해 봐요.”
    “아빠 바쁘니까 백과사전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봐.”
    “누에가 비단옷으로 변신한다는 얘기예요?”
    “맞아.”
    “아빠?”
    아들 녀석이 소리를 꽥 질렀다. 건식은 아들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누에는 무척 예민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병이 들 수도 있어.”
    아들이 건식의 손을 떼어냈다. 그러곤 씩씩거렸다.
    “그러니까 알아듣게 설명해 줘요.”
    “알았어. 이거 마무리하고 누에에 대해 말해 줄게.”
    어떤 누에들은 벌써 플라스틱 바구니에서 나와 소나무 가지를 타고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건식은 손가락으로 그 누에를 가리켰다. 아들 녀석의 눈과 입이 쩍 벌어졌다. 하기야…… 아들이 누에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자, 지금부터 누에의 일생에 대해 설명해 줄게.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는 잘 몰라.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잘 모르는 것처럼. 하여튼 누에도 알에서 태어나. 아주 작은 알이야. 아마 좁쌀보다 작을 거야. 알인데 보통 씨라고 부르곤 했어. 씨는 식물의 종자고 알은 동물의 종자란 것은 알지? (아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여튼 봄에 누에씨를 외상으로 사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면 알에서 아기누에가 깨어나는 거야. 달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처럼. 누에는 뽕만 먹어. 아기누에는 작기 때문에 뽕잎을 아주 잘게 썰어서 솔솔 뿌려 줘야 먹을 수 있지. 뽕잎이 너무 크면 작은 입으로 먹기 힘들겠지. 네가 어렸을 때 아기 숟가락으로 밥을 먹은 거랑 비슷해. 그러다 누에가 조금씩 자라면 뽕잎의 크기도 커지는 거야. 양도 많아지고. 참고로 누에는 대식가야. 뽕잎을 엄청 많이 먹기 때문에 누에가 이만큼 커지면 누에 기르는 사람들은 온종일 뽕잎 따느라 정신이 없을 때도 있어.”
    “뽕잎 말고 다른 건 안 먹어요?”
    “……거의 뽕만 먹어.”
    “뽕? 뽕은 뭐고 뽕잎은 뭐예요?”
    “뽕나무 잎이 뽕잎인데 줄여서 뽕이라고도 해. 뽕 따러 가세! 이런 노래 못 들어 봤어?”
    “못 들어 봤어요. 아빠, 좀 쉽게 설명해 주세요.”
    도시에서 자라난 초등학생인 아들이 뽕나무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건식은 짧은 한숨을 내뱉곤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누에와 뽕을 모르는 녀석에게 누에의 일생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건식은 플라스틱 잠박에서 소나무 가지로 줄지어 올라가는 누에들을 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하여튼 누에와 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야. 누에가 살려면 뽕이 있어야만 돼. 누에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이야. 완전변태가 뭐냐면 자라는 동안 알, 애벌레, 번데기를 거친 뒤 누에나방이 되는 거야. 애벌레가 바로 누에지. 누에를 치는 사람들이 기르는 건 바로 애벌레야. 알에서 깨어난 누에가 고치를 짓고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될 때까지인데 한 달 보름 정도가 걸려. 그럼 사람들은 그 고치를 따서 실 만드는 공장에 파는 거야. 고치가 뭔지 알아?”
    아들이 고개를 저었다. 건식은 소나무 가지로 올라간 누에를 가리켰다.
    “고치는 누에가 번데기로 살아갈 동안 거처하는 집이야. 저 누에는 지금 고치를 지으려고 올라가 있는 거야. 이제 애벌레의 시기를 끝마치고 번데기로 변할 단계거든. 누에의 삶에는 약간 특징적인 데가 있어. 사람처럼 매일 자는 게 아니라 한 달 반 동안 딱 네 번만 잠을 자. 한 잠, 두 잠, 석 잠, 넉 잠. 잠에서 깨어나면 허물을 벗어. 뱀처럼. 그 나머지 시간은 오직 뽕을 먹는 일만 하고.”
    “네 번만 잠을 잔다고요? 왜요?”
    “그건 나도 잘 몰라. 누에의 특징 중 하나겠지.”
    “엄청나게 졸릴 거 같은데…….”
    “그렇게 줄기차게 뽕을 먹다가 때가 되면 먹기를 멈추고 고개를 쳐든 채 두리번거려. 고치 지을 장소를 찾는 거지. 저 누에들처럼. 변신할 때가 됐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 걸 거야. 자, 그럼 고치를 어떻게 만들까? 그건 이제부터 네가 저 누에들을 잘 관찰하면 알 수 있을 테니 생략하고 지금부턴 누에고치에 대해 말해 줄게. 지금은 다르지만 옛날엔 누에를 기르는 목적이 고치를 얻기 위해서야. 한 달 반 동안만 누에를 잘 길러 고치를 팔면 짭짤한 목돈을 만질 수 있었거든. 실 만드는 공장, 즉 제사공장에선 그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고 방직공장에선 천을 만들어. 그게 바로 명주라는 천이고 또 비단이라는 천이 되는 거야. 천 중에서 가장 비싼 천이 바로 비단이야. 그 비단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입는 거지. 옛날에는 아무나 비단옷을 입을 수가 없었어. 비싸기도 했지만 신분제도라는 게 있어 양반들만 입을 수 있었지. 중국에선 저 멀리 유럽까지 비단을 수출했는데 그래서 생긴 길이 비단길이고. 이 모든 게…… 누에 한 마리에서 시작된 거야.”
    아들은 한동안 소나무 가지에서 꿈틀거리는 누에들만 바라보았다. 입에서 희미한 안개 같은, 달리 보면 솜사탕 같은 것을 토해 내는 누에들을. 그러더니 거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럼 고치 속에 있던 번데기는 어떻게 됐어요?”
    “번데기?”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에 앞으로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더니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눈을 바짝 들이댔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사람들이 술안주나 간식으로 먹지. 너도 먹어 봤잖아?”
    아들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굵어지더니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건식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그마한 잠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여기서 잘 생각이야?”
    아내의 표정은 한심하다, 그 자체였다. 건식은 담요를 덮고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서 흘러 들어온 불빛이 고치를 짓는 누에들을 염탐하듯 훑었다.
    “오늘만 잘 거야. 누에들은 예민하니까 빨리 문 닫아.”
    “누에만 예민해!”
    건식은 누에들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서둘러 일어나 밖으로 나와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아내는 팔짱을 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곤 이내 징그러운 무엇을 봤다는 듯 손가락으로 건식의 어깨를 가리켰다. 건식의 어깨에는 입에서 실을 뽑아내는 누에 한 마리가 머리를 들고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건식은 다시 잠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누에들은 화장품 냄샐 싫어해.”
    “당신 왜 그래!”
    아내의 갈라진 목소리가 깊은 밤 거실의 적막을 일시에 뒤흔들었다. 건식은 손으로 아내의 입을 막았다.
    “살살 말해. 누에들은 고성도 싫어해.”
    “……여보.”
    “고치를 다 지을 때까지만 조심하면 돼. 얼마 안 남았어.”
    “여긴 누에들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야. 내가 왜 누에들 눈칠 봐야 하는 거야? 당신, 직장에서 잘리더니 미친 거 아냐!”
    “……나, 멀쩡해.”
    “방금 한 말 취소. 난 당신이…… 왜 갑자기 누에들에게 집착을 하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어.”
    거실에 꽉 차 있는 답답한 속으로 두 사람이 번갈아서 한숨을 보탰다. 건식은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궁리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가 건식의 말을 믿어 줄지도 의문이었다. 도리어 이상하게 여길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입을 다문 채 누에들만 돌본다는 것도 무리였다. 아내의 말처럼 이 집은 아내와 건식, 그리고 아들이 지금껏 함께 살아온 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누에가 그들을 일시에 밀어낼 수는 없었다. 건식은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붙여 놓고 침을 끌어 모아 삼켰다. 아내는 그의 어떤 말을 끈질기게 기다리고.
    “……어렸을 적에 가족들이 나만 빼놓고 모두 누에로 변해버렸어.”
    “……가족들이 누에로 변했다고?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잖아?”
    “당신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누에로 변했다고 하면 믿지 않을 거 같아서.”
    “……지금 그 얘길 나더러 믿으라고?”
    “……믿기 어렵겠지만 믿어 줬으면 좋겠어.”
    “당신 정말 왜 그래! 당분간 직장 안 구해도 돼.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은 하지 마, 제발!”
    “거짓말이 아니야.”
    “……무서워!”
    건식의 눈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이 파르르 흔들렸다. 건식은 슬그머니 일어나 잠실로 들어가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아내를 돌아보았다. 아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줘.”

 

5

 

    이 이야기는 옛날하고 옛적 오대산 깊은 골짜기에서 호랑이가 담배를 곧잘 피우던 시절에 벌어졌던 일이야. 어느 날 신하들은 임금님에게 이런 간청을 드렸어. 백성들이 목화와 삼, 모시풀, 뽕나무를 재배하지 않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목화에서는 솜과 무명이 나오고 삼에서는 베가 나오고 모시풀에서는 모시가 나오고 뽕나무 잎에 달린 뽕잎을 먹은 누에는 명주라는 천을 생산하거든. 사람들이 입는 옷과 덮을 수 있는 이불의 솜이 모두 이 네 가지에서 나와. 그런데 당시엔 백성들이 이 비싼 네 가지 천을 사기 위해 일 년 동안 농사지은 쌀과 보리를 팔았나 봐. 그러니 어떻게 되겠냐? 응? 몰라?
    ……어떻게 되었는데?
    등잔불이 실같이 가느다란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방에서 엄마는 뽕칼로 뽕도마에 올려놓은 뽕을 듬성듬성 썰고 있었다. 동생들은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칼날에 잘려 나가는 뽕잎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뒷방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던 건식은 잠시 볼펜을 놓고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옷 만드는 데 필요한 천을 사니 당연히 먹을 곡식이 줄어드는 거야.
    엄마, 사람이 옷을 안 입고 살 순 없잖아요?
    맞다!
    엄마, 옷 입는 것보다 배가 고픈 게 더 중요하잖아요?
    그것도 맞다!
    에이, 옷도 입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임금님이 결단을 내리셨단다. 백성들이 곡식도 생산하고 옷을 만드는 원료가 되는 작물도 함께 재배하도록 임금님이 직접 나선 거야.
    임금님이요?
    응. 백성들이 따라서 하도록 궁궐에 잠실을 만들고 누에를 기르기 시작한 거야. 여러 가지 천 중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게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명주, 즉 비단이거든. 더군다나 누에는 다른 것과 달리 한 달 반, 45일이면 고치를 생산할 수 있어서 훨씬 유리했어. 뽕나무를 심을 땅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그러니 백성들이 농사도 지으면서 부업으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거야. 배도 곯지 않고 비단을 판매한 돈으로 다른 천을 구해 옷도 만들어 입을 수 있었거든.
    왜요? 비단옷이 더 좋을 텐데.
    옛날 옛적에는 아무나 비단옷을 입을 수 없었어. 비단옷은 양반들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어. 백성들은 목화로 만든 무명옷이나 베옷을 주로 입었어.
    에이, 말도 안 돼!
    자기가 만든 비단으로 옷도 못 만들어 입어요?
    비단이 워낙에 비싸고 귀한 천이어서 그런 거야. 대신 그걸로 더 많은 다른 천이나 곡식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 하여튼 옛날 옛적에 임금님은 백성들이 누에 키우는 걸 장려하기 위해 궁궐에서 직접 누에를 기르는 시범을 보였어. 게다가 임금님은 매년 누에의 신에게 제사까지 지냈고 왕비 역시 뽕을 따고 누에에게 먹이는 시범을 보였지. 백성들에게 누에 기르기를 권장하기 위해서. 옛날 옛적, 호랑이가 오대산 깊은 골짜기에서 가끔 담배도 피우던 시절에 누에와 관계된 이야기는 그뿐만이 아냐. 옛날 옛적에…….
    엄마의 이야기를 듣던 동생들은 가느다랗게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엄마의 뽕잎 써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쓱! 쓱! 피어나는 밤이었다. 건식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등잔불을 입으로 불어서 껐다. 석유 냄새가 확 피어났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졸음이 몰려왔다. 동네 가겟집에서 술을 마시는 아버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가끔 칼질을 멈추고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다가 한숨을 짧게 뱉어내곤 다시 뽕을 썰었다. 엄마의 보증에 여태 화가 풀리지 않은 아버지는 저녁만 먹으면 동네 가겟집으로 달려가 술을 마시는 게 일이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건식이 엄마가 누에들의 옛이야기들을 어떻게 저리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막 눈을 감았을 때 갑자기 밤의 적막을 깨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개 짖는 소리는 곧이어 깨갱거리는 신음소리로 바뀌었다.
    아버지였다.
    술 취한 아버지였다.
    집 안은 술집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자다 깨어난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들처럼 애처로웠다.
    엄마는 동생들을 데리고 부엌으로 나갔다. 술 취한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부엌의 아궁이 앞에서 새우잠을 청할 요량이었다.

 

6

 

    앉은뱅이책상에 올려놓은 두 팔을 베개 삼아 깜박 잠이 들었던 건식은 꿈에서 깨어나듯 눈을 번쩍 떴다. 아궁이 앞에 끌어내 놓은 불은 재로 변한 지 오래였다. 건식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멍한 눈으로 남포등의 불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남포등은 부엌의 일부밖에 밝히지 못했기에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물건들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보꾹 아래 매달아 놓은, 연기에 끄슬린 창호지를(매년 터 제사를 지낼 때 새것으로 교체하곤 했다) 올려다보던 건식은 그제야 아직도 식구들이 잠자리를 깔아 놓은 부엌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방금 전의 꿈속에서 애타게 건식을 부르던 어떤 목소리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여동생의 목소리였던 것도 같은데 고개를 돌려 보니 이상하게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엄마와 아버지, 동생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손전등을 켜고 잠실을 둘러보는데 어떤 서늘함이 등덜미에 철썩 달라붙은 것만 같아 건식은 몸을 떨었다. 황급히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부엌과 붙어 있는 잠실의 문을 열고 안을 둘러보았다. 잠실의 후끈한 열기가 건식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부엌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따스한 공기였다. 문을 닫고 부엌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질 정도로. 얼음판처럼 등에 찰싹 붙어 있는 어떤 서늘함도 건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손을 내밀어 방바닥을 만져 보니 문지방 앞마저도 잘잘 끓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거든. 잠시 누웠다가 나갈게.”
    부엌의 남포등을 끄고 얇은 담요와 베개를 가지고 잠실로 들어온 건식은 누에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손가락만 한 누에들은 대답 없이 뽕잎만 갉아댔다. 건식은 걸레로 시렁과 시렁 사이의 통로를 대충 치우고 누워 담요를 덮었다. 서늘했던 등이 일시에 녹는 것 같았다. 손전등도 끈 터라 처음에는 깜깜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문종이를 바른 양쪽 여단이문에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이 어느 정도 주변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잠실을 드나들었지만 베개 베고 담요 덮은 채 누워 보기는 처음이었다. 물론 누에들이 차지하기 전엔 건식의 가족들이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잠을 자던 방이었지만. 바람 없는 날의 웅덩이에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들자 수면으로 번져 나가는 잔잔한 파문처럼 누에들이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건식의 귓속으로 한 겹 두 겹 밀려 들어왔다. 건식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아직은 쌀쌀한 봄날 저녁에 돈을 빌려준 윗마을 아주머니가 아저씨와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그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아저씨는 술을 마시고 왔는지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아마 그 아주머니도 아저씨에게 꽤나 시달림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동생들을 건식이 공부하고 있는 윗방으로 보내고 미닫이문을 닫았다. 어른들이 나누는 목소리와 술잔을 비우고 술병을 밥상에 내려놓는 소리만 윗방으로 건너왔다. 건식은 동생들에게 조용히 놀 것을 손짓과 표정으로 일러주고 책상에 펼쳐 놓은 교과서를 넘겼다. 아무리 넘기고 또 넘겨도 머릿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을.
    “누에 쳐서 갚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아주머니, 누에 쳐서 얼마나 번다고.”
    “작년까진 반 장만 쳤는데 올해부턴 한 장1) 모두 치기로 했어요. 누에씨도 이미 받아왔고.”
    “한 장이나 되는 누엘 어디에서 쳐요?”
    잠실의 크기를 놓고 하는 말이었다. 우리 집 잠실로는 반 장밖에 칠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치면 됩니다! 그러니 편의를 좀 봐주세요. 부탁해요.”
    건식은 한숨을 삼켰다.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까지 누에를 치겠다는 게 엄마의 계획이었다. 그럼 학교에서 돌아와 공부는 어디서 하고 잠은 어디서 잔단 말인가. 밥은 어디서 먹고, 옷은 어디서 갈아입지? 건식으로서는 도무지 엄마의 계획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계속 술잔만 비우는 것 같았다. 보증 한 번 잘못 서서 찾아온 피해가 이루 만만치 않았다. 집 안에 웃음이 사라졌고 아버지는 매일같이 밤이면 술독에 빠졌다. 엄마와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싸운다고 동생이 일러주었다. 보증을 서면서 구문이라도 받았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단지 엄마의 어린 시절 가까이 지냈던 친척이라는 이유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행동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지만 그래도 부부가 아닌가. 부부라면 어떤 곡경이 닥쳐도 함께 헤치고 나가야지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에게 술주정이나 하다니. 엄마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보증을 선 건 분명 아니니까 말이다. 건식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잠든 동생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등잔의 심지에 붙은 불꽃은 미미한 바람에도 꺼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하여튼 아주머니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올해 누에고치 수매하면 한 푼도 빼지 않고 받는 조건입니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미안해요. 밤늦게 찾아와서.”
    “이해해요.”
    윗마을 아주머니가 방을 나가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처음 입을 열었다. 건식은 등잔불을 끈 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손등으로 비볐다. 책상 위에 얼굴을 묻었다. 대체…… 돈이란 게 뭐기에……. 조만간 이어질 아버지의 술주정을 기다리며 짝을 찾지 못한 소쩍새처럼 훌쩍거렸다.

   1)  누에 한 장엔 보통 20,000알이 누에씨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만 마리의 누에로 변할 알들이.

 

    “……오빠?”
    “……형?”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건식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천 마리의 누에들이 풍겨내는 냄새만 가득할 뿐이었다. 건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분명 동생들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누에들이 뽕잎을 갉아대는 소리만 물결처럼 퍼져 나갈 뿐 동생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잠실 밖에서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엉금엉금 기어 앞문으로 다가갈 때 다시 뒤편에서 목소리가 피어났다.
    “……건식아?”
    엄마였다. 건식의 등에 저녁의 소름이 일순간에 다시 번졌다. 엄마의 목소리가 피어난 곳은 시렁의 아래편 구석에 놓인 잠박 근처였다. 건식은 다시 엉금엉금 기어서 그곳으로 다가갔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딱 반반씩 섞인 얼굴을 하고서.
    “……누가 날 부른 거야?”
    건식은 누에들로 가득한 잠박에 손전등을 비추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누에들은 거의 줄기만 남은 뽕잎에 매달려 남은 뽕잎을 갉아먹고 있었는데 그중 귀퉁이의 네 마리만 따로 모여 뽕잎은 먹지 않고 머리를 쳐든 채 꼭 건식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두 마리는 어른 검지 정도의 크기였고 나머지 두 마리는 새끼손가락만 했다. 건식은 그 누에들에게 눈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누에의 입이 열렸다.
    “오빠?”
    “……예식이?”
    “응. 나 오빠 여동생 예식이야.”
    “……니가 예식이라고?”
    “형, 나는 하식이야.”
    그 옆의 작은 누에도 입을 열었다. 동그랗고 까만 눈이 정말 남동생 하식이를 닮아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엄마와 아버지는?”
    건식은 두 마리 작은 누에 곁에 있는 큰 누에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큰 누에가 꿈틀거렸다.
    “건식아, 애비다.”
    “나는 엄마고.”
    아버지와 엄마의 기운 없는 목소리가 건식의 귀에 무겁게 매달렸다. 건식은 입을 딱 벌린 채 네 마리의 누에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족들이 누에로 변해 있다니…… 이 사실을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의심하며. 옛날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다니. 건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누에로 변하다니. 말도 안 돼. 이건 분명 꿈일 거야.
    “………꿈이 아니란다.”
    엄마의 우울한 목소리였다. 건식은 알고 있었다. 엄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봐요.”
    건식은 잠박 귀퉁이에 모여 있는 누에 네 마리 앞에 자세를 바로하고 앉았다. 두근거리는 속내를 진정시키며.
    “왜 갑자기 누에로 변했는지 우리도 모른다. 너 학교 갔을 때 다 함께 산으로 뽕을 따러 갔어. 한나절 땀 흘려 뽕을 딴 게 전부야. 어느 정도 뽕을 따고 준비해 간 참을 먹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깨어나니 누에로 변해 있는 거야. 산에서 잠들었는데 장소도 여기로 바뀌었고.”
    “정말이야, 오빠!”
    “니 엄마 말이 사실이다.”
    “난 누에 말고 호랑이로 변신하고 싶었는데…….”
    건식은 자신도 모르게 남동생 하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잘못 만지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내 거두었다. 대신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다.
    “……왜 누에로 변한 걸까요?”
    누에 네 마리는, 아니 엄마와 아버지, 동생들은 건식의 질문에 머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때마다 까만 눈동자들이 손전등 불빛 속에서 반짝거렸다.
    “니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서서 이렇게 된 거 같다.”
    아버지였다.
    “아니, 그럼 보증 잘못 선 사람들은 모두 누에로 변했겠네요! 그리고 변하면 나만 변하지 당신과 아이들은 왜 변해요?”
    엄마의 목소리는 사람의 모습이었을 때보다 훨씬 강했다. 아버지가 움찔했다.
    “매일, 뽕만 따서, 누에로 변한 거 같아요.”
    하식이가 길게 하품을 했다. 사람은 매일 잠을 자지만 애벌레로 살아가는 동안 단 네 번밖에 자지 않는 누에가 하품을 하다니……. 건식은 새끼손가락으로 하식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누에가 되고 싶다고 꿈속에서 빌었나 봐요.”
    엄마와 아버지는 예식이의 말에 입을 쩍 벌렸다. 손이 없고 발만 여러 개인 누에인지라 엄마는 예식이에게 꿀밤을 먹인다는 게 그만 머리로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험험, 헛기침을 했다.
    “쪼끄만 게 못 하는 말이 없어!”
    “내 말이 맞지 뭐, 틀려!”
    “니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사는 게 힘들어!”
    “나도 알 만큼 안다, 뭐…….”
    “그만들 해!”
    마침내 아버지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분위기가 현저하게 달랐다. 밥상이 엎어지지도 않았고 마당으로 날아간 술병이 깨지지도 않았다. 동생들의 울음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아버지의 한숨과 욕도. 누에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건식은 묘한 심정이 되어 잠박 귀퉁이에 모여 있는 네 마리의 누에들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당분간 건식이 니가 누에들을 돌봐야 한다.”
    엄마의 말이 무거웠다. 건식의 머릿속이 일시에 복잡해졌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제가요? 이 많은 누에들을 어떻게 혼자서 돌봐요? 학교에 가야 하는데…….”
    “우리가 사람이 될 때까지 학교는 당분간 쉬어라.”
    아버지가 엄마 편을 거들었다.
    “……누에들을 굶겨 죽일 수는 없지 않겠니.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누에들이 고치를 지을 거야.”
    건식의 심정과 처지를 다 안다는 듯 엄마가 한숨과 함께 말을 끝마쳤다. 그동안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단 한 번도 학교에 결석을 시킨 적이 없던 엄마였기에 건식의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시험공부 해야 한다고 하면 두말 않고 밭에서 집으로 보냈던 엄마였다. 그랬던 엄마가 건식에게 누에를 돌봐야 한다고 말하니…….
    “난 누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다행히 우리가 말할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
    “우리가 언제까지 누에로 변해 있겠냐. 그동안만 네가 고생 좀 해라. 이 누엘 잘 키워야 빚을 갚을 수 있어.”
    건식은 엄마의 당부에 쇳덩이처럼 무게가 나갈 것 같은 머리를 천천히 끄떡였다. 누에들이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 밤이었다.
    사각사각…….
    싸각싸각…….
    사각사각…….

 

7

 

    소나무 가지로 올라간 누에들은 고치를 짓기 위해 본격적으로 실을 토해 냈다. 솜사탕 같은, 안개 같은 실이 솔잎 사이에서 둥그렇게 피어났다. 한없이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다. 그 가운데에 누에가 있었다. 누에는 마치 자신의 주변을 입에서 토해 내는 가느다란 실로 처음에는 성기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촘촘하게, 마치 천을 짜듯 둥근 집을 지었다. 집 밖에서가 집 안에서. 그동안 줄기차게 먹었던 뽕잎을 실로 만들어서 문도 없는 집을, 한동안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집을 줄기차게, 맹렬하게 짓고 있었다. 번데기로 변해 또 다른 잠을 자기 위한 준비였다. 잠을 자는 동안 다른 천적들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집이니만큼 튼튼해야 했다. 가느다란 실이 두툼한 실 가죽이 될 때까지 둥글게, 둥글게 부지런히 머리를 돌리느라 바빴다. 그러지 않으면 둥근 집의 어느 한 곳이 허술해질 테고 천적들은 그곳을 뚫고 들어가 잠든 번데기를 잡아먹을 테니 말이다. 잡아먹히지 않아야 고치 속에서의 잠을 모두 자고 날개 달린 나방으로 변신을 할 수 있었다. 비록 날개가 아름다운 나비는 아니지만…….
    자그마한 잠실에 누운 건식은 베개 위에 다시 팔베개를 한 채 누워 누에들이 피워 올리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흐뭇했다. 가까이 다가가 입으로 한 입 베어 물고도 싶었다. 입에 넣으면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녹을 것 같았다. 침까지 꿀꺽 삼켰던 건식은 곧 헛기침을 토해 낸다. 남의 집을 솜사탕인 것처럼 꿀꺽 삼키려 했다니. 잠도 자지 않고 집을 짓고 있는 누에들에게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밤중에 어디 가?”
    옷을 챙겨 입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내가 물었다. 건식은 그제야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데가 없었다.
    “……누에들이 집을 짓고 있어.”
    “……알아. 근데 어디 가냐고?”
    “……바람 좀 쐬고 올게.”
    “……너무 멀리 가진 마.”
    아내의 마지막 말이 누에처럼 실을 토해 내며 고치를 짓고 있었다. 너무 멀리 가진 마…… 자가용의 운전대만 움켜잡고 있을 뿐 갈 곳도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계속해서 둥글게, 둥글게 맴돌았다. 시동도 걸지 않은 채 한참 동안 운전석에 앉아 망설이다가 비로소 건식은 갈 곳을 정했다. 어디든……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마을길을 빠져나온 건식은 치악산 아랫자락을 따라 도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들어섰다. 어떤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들어섰다. 들어서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마침 좌회전을 알리는 파란 화살표에 불이 들어왔기에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가속 페달에 올려놓은 발에 힘을 주었다. 자동차는 꿈틀하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밤의 자동차 전용도로는 적막했다. 앞서가는 차도 뒤따라오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운전대에 두 손을 올려놓은 건식은 둥그런 전조등 불빛만 노려보았다. 인근 과수원에서 도로로 날려 온 무수한 복숭아 꽃잎들이 전조등 불빛을 받자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건식은 발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꽃잎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가 휙휙 사라졌다. 너무 멀리 가진 마…… 누에가 꿈틀거리며 실을 토해 내듯 아내의 말이 부드럽게 건식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건식은 오른발에 몰려 있는 힘을 조금 뺐다. 아내는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너무 먼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고 예상을 한 것일까. 나도 모르는 내 의도를 미리 엿본 것일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주 먼 곳으로 바람 쐬러 가려고 이미 예정돼 있던 것일까. 나보다 먼저 아내는 나의 무엇을 눈치 챘던 것일까. 건식은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끄떡였다. 멀리 가진 않을 거야. 누에를 돌봐야 되거든. 누에를 기르면 먼 곳으로 갈 수 없어. 전방에 야생동물 출몰지역입니다. 주의하세요. 야생동물? 건식은 내비게이션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로 왼편 가까이까지 치악산의 산줄기가 뻗어 있었다. 왜 산짐승들은 산을 떠나 도시로 내려오는 것일까. 먹을 게 떨어진 것일까. 무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짝짓기에 실패해 쫓겨난 것일까. 그도 아니면 나처럼 직장에서 해고당한 것일까……. 까닭이 무엇이든, 한번 산에서 내려오면 다시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건식은 혹시라도 도로로 뛰어들지 모를 산짐승을 대비해서 자동차의 속력을 늦췄다. 길 옆 표지판에 그려 놓은 고라니 한 마리가 천천히 다가왔다가 뒤로 사라졌다. 전방에 터널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저 앞에 노란 불빛으로 가득한, 거대한 누에고치 같은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건식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노란 불빛들이 자동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한 마리 번데기로 변한 느낌이 들어 황급히 시선을 내려 몸을 들여다보곤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 건식은 오른손으로 옷 속에 감춰진 왼팔과 가슴, 배, 허벅지를 차례로 쓰다듬어 보고서야 안심을 했다. 터널은 텅 빈 누에고치 속이나 다름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번데기들은 새로 생겨난 날개를 단 나방이 되어 모두 고치 밖으로 날아간 모양이었다. 건식도 터널을 빠져나왔다. 전방에 과속감시카메라가 있습니다. 과속에 유의하세요. 건식은 그동안 한 번도 과속감시카메라에 사진을 찍힌 적이 없었다. 아무리 급해도 웬만해선 과속을 하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다른 차를 무리하게 추월하지도 않았다. 조금 답답하더라도 그 뒤를 따라갔다. 빨리 가라고 빵빵거리지도 않았다. 따라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부터 다시 원래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추월해 간 다른 차들보다 시간차이도 그리 많이 나지 않았다.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왜 회사에서 자신을 해고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빨리 달리지 않아서? 아니면 너무 늦게 달려서? 해고를 당하고 난 뒤 줄곧 누에를 기르는 잠실에서 칩거하는 동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라도 납득하려고 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잠시 뒤 자동차 전용도로가 해제됩니다. 이륜차나 보행자를 주의하십시오. 삼거리 붉은 신호등 앞에서 멈췄다. 이제 어디로 갈까……. 오른쪽으로 가면 어디고 왼쪽으로 가면 또 어디지? 삼거리 건너편 쇠기둥에 매달린 커다란 이정표가 있었지만 건식은 글씨가 읽혀지지 않았다. 미끌미끌한 무엇인가가 자꾸만 시야를 가렸다. 너무 멀리 가진 마…… 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목덜미를 감쌌다. 누에가 뽑아내는 부드러운 명주처럼.
    건식은 차를 되돌렸다.
    “……어디야?”
    “……자동차 전용도로.”
    “……늦었어. 빨리 들어와.”
    “……조금만 더 있다 들어갈게.”
    “……누에가 당신을 기다릴 거야.”
    “……알았어.”
    자동차의 디지털시계는 새벽 두 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건식이 자동차 전용도로를 다섯 번 왕복하고 있을 때 걸려온 아내의 전화였다.
    집의 거실에 불이 커져 있었다. 건식은 집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전조등을 껐다. 아들 녀석이야 당연히 잠들었겠지만 아내는 잠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 아내와 함께 공들여 만들어 온 집이고 가족이었다. 건식은 의자를 뒤로 젖혀 깊숙이 등을 기댄 채 원주의 한 귀퉁이, 완전한 농촌은 아니지만 그래도 농촌의 분위기가 나는 곳에 자리한 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기에다 집을 정한 건 건식의 의지였다. 도시는 밥벌이를 해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도시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 차례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또 설득해서 정한 자리였다. 어린 시절에 살던 산골마을에야 비할 수 없지만 그나마 흙냄새, 나무 냄새, 풀냄새, 새소리, 꽃들…… 그것들을 온전히 지나온 바람 냄새를 그나마 맡을 수 있는 곳이었다. 건식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집에 왜 들어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는지. 단지 직장에서 해고된 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고작? 겨우? 아직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아내도 충분히 건식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다시 마을길을 빠져나온 건식은 이번엔 원주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로 차를 몰았다. 야트막한 언덕길 입구에서 노란 불이 깜박거렸다. 새벽의 길은 신호등이 모두 꺼져 있었다. 상가의 불도 대부분 꺼져 있었다. 24시간 문을 여는 마트만 불을 환히 밝힌 채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건식은 내비게이션의 코드를 뽑았다. 너무 멀리 가진 마…… 영동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칠 때 다시 피어난 아내의 말은 목덜미를 기어가는 누에처럼 서늘했다. 걱정 마, 멀리 가진 않을 거야. 기사식당들의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군부대로 들어가는 정문엔 바리게이트가 겹겹이 가로놓였고 총을 든 위병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병원의 간판, 교회의 십자가,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의 신호등만 그나마 제 역할을 하는 새벽이었다. 건식은 대로를 벗어나 구불구불하고 언덕이 많은 이차선 도로로 차를 몰았다. 불빛이 사라진 밤의 도로는 처음 와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낮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건식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헷갈렸다. 차는 멈추지 않고 이동하고 있었지만 거기가 거기 같았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 맴을 도는 느낌이었다. 도시 속, 밤의 미로로 들어와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점점 힘을 얻고 있었다. 쉬지 않고 실을 토해 내고 있는 누에를 데리고 왔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실을 따라 되돌아갈 수 있을 텐데……. 건식은 어느 막다른 골목 안에서 비상등을 켠 채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새벽 세 시야.”
    아내였다.
    “……시내로 들어왔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막다른 골목 안이야.”
    “……술 마셨어?”
    “아니.”
    “…….”
    “…….”
    건식은 전화기로 흘러나오는 아내의 숨소리만 들었다.
    “……길이 있을 거야.”
    아내의 말에 건식은 고치 안에 스스로를 가둔 한 마리 누에처럼 막다른 골목 끝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비상등 불빛이 깜박거리는 골목을.

 

    <계속>

 

 

작가소개 / 김도연(소설가)

– 강원도 평창 출생. 《강원일보》,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아흔아홉』, 『산토끼 사냥』, 『마지막 정육점』, 산문집 『눈 이야기』, 『영』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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