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할거야] 지금이순간을기록하라

 

[후회할 거야_시즌2]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라

 

 

고경원(잡지 기자)

 

 

 

 

    난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학교 앞 노점에서 파는 병아리는 물론이고 물방개, 금붕어, 새끼 메추라기나 새끼 오리까지 데려와 어머니를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고양이도 키우고 싶었지만,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하면서 키우던 개도 친척 댁에 보내야 했던 부모님이 허락할 리 없었다. 가족의 반대로 버려지는 고양이도 많다는 말을 듣고 보니,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쉬워하며 ‘그럼 고양이 사진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길고양이를 찍기 시작한 게 올해로 12년째다.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가장 자주 찍기 마련이지만, 내 경우엔 길고양이가 그랬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흔히 길고양이를 ‘도시의 무법자’ 쯤으로 여긴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드니 배가 고파 쓰레기봉투를 뜯는 것이고, 멀리 있는 짝을 부르기 위해 한밤중에 우는 것뿐인데, 그게 불편하고 싫다는 이유로 미움의 대상이 된다. 심하면 학대를 받고 비참한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길고양이에게도 감정이 있고 소중한 가족과 동료들이 있음을 안다면, 내가 싫다는 이유만으로 해충 박멸하듯 죽일 수는 없지 않을까. 워낙 빨리 달아나는 길고양이들이라 모든 사람이 그런 순간을 직접 목격하긴 어렵지만, 사진으로 그 순간을 붙잡아두고 전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라고 해서 감정이 없을 리 없다. 때리면 아파하고, 다치면 사람처럼 붉은 피를 흘린다. 영리한 데다 장난을 좋아해서 그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게 된다. 그들에게도 치열한 삶의 의지가 있고, 사람 못지않게 따스한 동료애와 모성애가 있다. 처음에는 그런 고양이가 좋아서 찍기 시작한 사진이었는데, 한국 길고양이들의 참담한 현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뭐든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길고양이를 위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밖에 없었다. 다만 나 혼자만의 추억으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게 예전과 다른 점이랄까.

 

    1인 미디어 ‘길고양이 통신’을 운영하면서 짬짬이 길고양이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고, 원고료를 주는 사람이 없어도 나만의 특집 기사를 써서 메타블로그를 통해 발행했다. 하나둘 모인 기사들은 2007년 1월 출간된 첫 번째 길고양이 에세이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로 묶여 나오면서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으로 전달되었다. 어차피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뭐라고 설득해도 싫어하고,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공포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고양이에 무심했던 사람의 마음은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건 큰 변화가 아니라 한 발자국만큼의 변화였다. 그 발자국들이 모여서 언젠가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1차로 한국 길고양이들 이야기를 정리하고 나서 2007년 여름부터는 세계 고양이 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길고양이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여행자’가 되어 세계 각국의 고양이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공존 사례들을 수집하는 일이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익숙한 자기 영역을 벗어나는 걸 꺼린다. 나 역시 고양이의 마음을 닮아서인지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몰랐던 고양이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호기심 많은 고양이처럼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모험이라면 질색하던 내가, 구글 맵 하나 달랑 들고 낯선 나라의 골목을 누비게 될 줄이야.
    시간도 돈도 늘 빠듯한 고단한 여행이었지만,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릴 고양이를 생각하면 힘이 났다. 일본 와카야마 현 키시 역의 역장 고양이 타마, 타이완의 고양이 마을 허우퉁, 스웨덴과 프랑스의 반려동물 묘지 등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사례를 취재하는 동안 나는 고양이 전문 기자로 불리게 됐다. 이 모든 것이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길고양이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일이다.

 

    좋아하는 동물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동물 보호 활동가처럼 길고양이를 위해 현장에서 뛰는 분들도 있고, 캣맘처럼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과 밥주기 등 관리를 해 주는 분들이 있겠지만, 나는 사진을 매개로 길고양이에 대한 오해를 풀어 나가려고 한다. 길고양이도 소중한 생명이라고 외치기만 할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2009년부터 매년 9월 9일을 ‘고양이의 날’로 기리며 고양이 작가들을 초빙해 기획전도 열고 있다. 9월 9일이란 ‘고양이는 아홉 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민간 속담처럼 길고양이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아홉 구(九)와, 오래도록 주어진 수명을 누리다 가길 바라는 오랠 구(久)의 동음이의어를 따서 시작한 날이다.
    지난 10여 년간 길고양이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에 내 사진이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면, 그건 내가 남들보다 사진을 잘 찍어서도 아니고 좋은 장비를 써서도 아니다. 단지 길고양이와 관련된 장소라면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는 발품을 아끼지 않았고, 지키고 싶은 대상인 길고양이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마음을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러분들께도 사진을 꾸준히 찍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딱딱해진 어른의 머리와 마음으로는 찍지 못하는 것들, 청소년기인 지금이 아니면 찍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카메라 기능을 갖춘 휴대폰이 대중화된 요즘, 사진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필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인화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을 남발하게 되는 경향도 없진 않지만, 무작정 아무 것이나 찍기보다 내게 정말 절실한 주제를 찾아 찍어 보자. 그리고 사진에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내 보자.
    몇 장 찍다가 시들해져 끝낸다면 사진에 담긴 힘을 찾아내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사진에 힘을 실어 주는 건 꾸준함과 시간, 그리고 발품이다. 그 과정이 다소 까다롭게 느껴지더라도, 사진으로 나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또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것도 국가를 초월해 통용되는 만국 공용어를 말이다.

 

 

 

작가소개 / 고경원(잡지 기자)

2002년 종로에서 만난 길고양이와의 인연을 계기로 그들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현재 잡지사 기자로 일하면서 짬짬이 국내외 고양이 명소를 취재하는 ‘고양이 여행자’로 살고 있다. 국내 사진 에세이 중 길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의 효시가 된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를 비롯해, 일본 여행기 『고양이, 만나러 갑니다』, 인터뷰집 『작업실의 고양이』, 10년간의 길고양이 관찰기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등을 펴냈다. 블로그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www.catstory.kr)에서 그가 찍은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글틴 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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